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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1. 현대판 상인법
1) 중세 상인법 성립의 배경
- 중세 유럽은 법적 제도의 일관성이 없는 파편화된 사회. 이는 12세기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상업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감당할 수 없었음. 그래서 중세 상인들은 스스로 상인법을 만듦.
- 유럽의 주요 교역로와 상업 중심지 곳곳에 상인법을 시행할만한 재판소를 세우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장치를 만듦. 여기서 판사는 오랜 장사꾼 경험 속에서 상업의 온갖 관행과 실제 사례에 정통해 있고 상인들 사이에서 신용과 명망을 쌓은 사람. 그는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양쪽이 조속히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재함.
- 상인법 재판의 특징 : ①재판소의 선택, 증거의 종류나 제출방식, 사용되는 법적 원천은 전적으로 분쟁 당사자에 의해 결정됨 ②판결이 강제력을 통해 집행될 수 없음. 영주 등 당시 물리력을 보유한 이들이 상인법에 관여하지 않음. 다만 판결에 복종하지 않는 상인은 상인 공동체에서 ‘왕따’가 됨.
2) 주권국가 등장 이후
- 베스트팔리아 체제 등장 이후 근대적 영토-주권국가의 등장. 이 국가들은 자국 영토 안에서는 오로지 자국만이 법을 정할수 있는 권력인 주권을 가지며 그 밖의 다른 어던 법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음. 이에 따라 이전 상인법은 국가의 법제화를 거쳐 각국에서 통일적으로 시행되는 민법과 상법으로 흡수.
- 국가간 법체계 수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 이에 20세기에 들어 일정한 구속력을 갖는 국제법 체계가 성립됨. 이 국제법 체계 하에서 의미있는 구성원은 오로지 국가. 국가를 제외한 주체(ex: 투자자)는 국제법적으로 국가의 상대가 될 수 없음.
- 이런 경직된 국제법 체계는 세계적 차원에서 상거래를 펼치는 이들에게 인기 없는 것. 그래서 19세기 들어 공식적인 국제법 체계의 가장자리에서 옛날 ‘상인법’의 정신이나 관행에 따라 국제상거래 관계에서 상인들 스스로가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절차에 호소하는 일이 많아짐.
3) 국제 중재절차의 제도화
- 1923년 국제상공회의소 주도로 유럽 17개국 대표들이 제네바에 모여 민간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해결을 구속력 있는 중재심판에 넘기기로 합의하고 이를 각국이 법적으로 인정. 중세 상인법 관행의 부활. 그러나 국제상공회의소는 중재심판의 대상이 민간인들 사이의 상업적 사안으로 제한돼 있다는 것에 불만.
- 1965년 투자분쟁조정회의 : 기존의 사적인 국제중재절차제도를 국가와 외국 투자자 간의 분쟁에까지 적용하기로 함. 세계은행 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라는 포럼을 설립하여 국가와 외국 투자자들 사이의 분쟁에서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중재심판을 하는 역할을 맡김.
- ICSID의 한계 : ICSID의 심판이 개별 국가에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이 건은 우리나라의 법적 권한에 속하지 않으며 ICSID의 중재심판 대상이 된다.”는 식의 명시적인 의사표명을 해야 함. 외국 투자자는 해당 국가와 계약 당시 이 조항에 합의를 해야 ICSID 중재심판에 대한 구속력을 갖게 할 수 있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2. 국제법 체계를 뒤엎은 자본의 공세
1) 잠에서 깨어난 국제 중재절차
- 특정 국가가 어떤 특정한 외국 투자자와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특정 국가와 협정을 맺는다면, 그 협정은 국가와 국가간에 맺은 조약이니 흠결 없는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다.(BIT) 이 경우 ICSID는 투자협정의 양 당사국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외국 타자자 대 국가의 분쟁에 대해 구속력 있는 중재심판을 할 수 있게 됨.
- 이런 투자협정은 국가 주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간헐적으로만 이루어져 왔을 뿐.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지구화가 본격화 되면서 양자간 또는 다자간 투자협정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ICSID의 중재심판 건수도 증가.
2) 2차 대전 이후 ‘지구화’ 3단계
- 1단계(70년대 초) : 고정환율제 붕괴와 오일쇼크. 영미권에서의 보수화와 제3세계 외채 증가.
- 2단계(80년대) : 통화주의자들의 금리인상에 따른 제3세계 국가들의 외채위기. 제3세계 시장개방과 구조조정.
- 3단계 : 워싱턴 컨센서스에 후속하는 지구화의 단계
3) 전세계에 강제되고 있는 ‘신헌정주의’
- 타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진다는 신헌정주의는 투자협정과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를 통해 몇백년 동안 유지되어 온 국제법의 체계를 무너뜨린다. 투자 수익성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장벽들에 따로따로 싸울 필요 없이 국가를 책임자로 몰아 소송으로 국제법정에 불러낼 수 있게 된 것.
■‘투자자의 보호’란 무슨 의미인가
1. 보호용 방패가 공격용 창으로 변하다
1) ‘물건’이 아닌 ‘자산’이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다
- 미국 헌법상의 ‘사적 소유 보호’ 개념 : “정부는 개인의 사적 소유물을 가져 갈 수 있지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개인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소유의 대상은 ‘토지’와 같은 가시적인 물건에만 해당.
- 미국 남북전쟁을 거쳐 1870년대부터는 소유의 대상이 사물이 아닌 온갖 자산, 즉 소득을 창출해주는 모든 것으로 전환. 땅투기와 온갖 신종 금융기법들의 출현으로 사적 소유의 법적 정의는 ‘화폐가치’쪽으로 기울게 됨.
- 1890년 미네소타 주정부의 철도건설 과정에서 토지의 가치변동을 겪은 땅주인에게 보상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문제. 주정부 입장 “정부에서 토지 소유권을 가져간 것이 아니며 단지 토지의 가치 삭감만 일어났으니 사적 소유가 침해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이 문제는 헌법적 사안이 아니라 주정부의 재량 아래 있는 것” 땅주인 입장 “정부에서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았다 해도 토지의 화폐가치가 떨어졌으니 주정부가 사적 소유물을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 ==> 대법원 판결은 땅주인 입장 승소. 소유개념이 20년만에 단순한 사물에서 ‘소득창출능력’으로 바뀐 것.
2) 레이건 시대의 ‘규제에서 파생된 수용’
- 1930년대 뉴딜 정부의 등장으로 사적 소유의 의미가 ‘국가가 허용하는 만큼의 소득을 취득할 권리’로 축소.
-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등장으로 ‘규제에서 파생된 수용’(regulatory expropriation)개념 등장. 1992년 판례에서 행정 규제라 하더라도 일정한 경우 토지에 대한 수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
- 나프타 11장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에서는 이 ‘규제적 수용’ 개념이 이상적으로 펼쳐져 있음.
2. 나프타 11장에 나타난 ‘투자’와 ‘수용’의 의미
1) ‘투자’의 넓은 범위
- 나프타 1139조의 정의 : ‘투자’는 기업은 물론 각종 유가증권, 부동산, 유형 및 무형의 재산 등 사실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산’ 취득을 포괄하고, 더 나아가 각종의 이익을 낳는 자본기탁과 투자대상국 내의 각종 허가 및 특허권을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 자원의 취득도 포함.
- 나프타 1101조의 11장 규정이 적용되는 대상 : 투자자 및 투자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투자대상국이 취하고 유지하는 ‘조치들’. 여기서 ‘조치들’이란 ‘모든 종류의 법, 규제, 절차, 요건 및 관행’.(201조 1항)
- 1110조에서 수용의 의미 : ‘간접적 수용’(indirect expropriation)과 ‘수용에 맞먹는 조치’(measures tantamount to expropriation).
┖→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곧 ①‘점진적 수용’(creeping expropriation). 즉 소유자의 소유권에는 아무런 직접적 영향이 없지만, 국가의 개입과 조치로 인해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투자의 가치가 잠식되는 상황. ②‘규제에서 파생된 수용’(regulatory expropriation). 소유권의 화폐가치에 영향을 주는 법적 규제. 경찰력까지도 문제 삼을 수 있음.
3. ‘공공이익’은 어떻게 되는가
1) 매탈클래드 사건의 경우
- 각각의 국제 중재재판소는 서로 독립적으로 심사하고 판결하며, 사건 유형별로 구속력 있는 판례가 쌓이지 않음. 따라서 분쟁의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게 마련.
- 매탈클래드 사건에 대한 중재재판소의 판결문 :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
2) 정부를 쫄아들게 만드는 된서리 효과
- 투자자는 제소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투자대상국을 쫄아들게 해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음. 제소 절차를 밟기 이전에 투자대상국 관청에 ‘의도 통지’를 보내는데 여기서 제소의 논리와 배상금의 크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중재재판으로 가지 않고도 해당 국가를 굴복시킬 수 있음. (캐나다 필립 모리스 사건과 공공자동차보험 사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1. 국제 중재절차의 성격
- 국제 중재절차는 일정한 법적 효력의 근거와 원천이 명확하게 규정된 법체계 내에서 그 법체계가 정해놓은 절차와 규칙을 따라 행해지는 일반 법정의 재판과는 성격, 절차과 완전 다름.
- 상인법의 심판과정은 두 명의 분쟁 당사자들간에 ‘쇼부’치는 과정.
2. 소송은 누가 제기하는가
- 간접투자자, 소수 주주, 채권 보유자 또는 주식 이외의 투자자, 소유 구조가 외국 투자가들에게 넘어간 현지 법인 모두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음. 게다가 투자자에 따라서는 원하는 국적의 나라로 가서 자회사를 세우든가 아니면 그 나라의 회사를 인수해 ‘투자협정 쇼핑’을 할 수 있음. 즉 한미FTA 협정 하에서는 중국회사가 미국에 자회사를 만들거나 그 나라 회사를 인수하여 한국에 투자를 하고, 여기서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면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음.
- 이 많은 주체가 개별적으로 소송을 걸면 한국 정부는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놓고 여러 다른 주체들과 다른 곳에서 여러 다른 소송에 휘말리게 될 수 있음.
3. 국제 중재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1) 규칙과 절차는 양쪽 당사자들이 결정한다.
- 국제 심판소송을 주관하는 국제기구와 틀 : ICSID, 국제상공회의소의 중재법정 규칙(ICC Rule), 스톡홀름 상업회의소 중재 제도, 유엔 산하 국제연합국제무역법위원회의 중재규칙(UNCITRAL) 등.
- 그런데 투자협정은 대부분 투자자들이 이 가운데 몇 개를 동시 선택할 수 있는 ‘메뉴’로 제시. 그래서 투자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제도를 선택하여 투자대상국 정부를 공격하는 ‘규칙 쇼핑’을 감행할 수 있음.
2) 중재심판 과정은 철저한 비공개로 진행된다.
- 규칙과 절차가 결정되면 양쪽은 각자의 변호사를 내세우고 중재인을 결정하여, 세 주체로 중재심판소를 구성. 중재인은 ICSID의 경우 ICSID기관에서 미리 작성해둔 명단에서 한 사람을 지명하여 선임. 그런데 이 과정은 철저하게 세 주체만 참여. 양쪽 당사자는 자신들의 문서나 의견을 공개할 의무가 없고, 변호사와 중재인이 누구인지, 심지어 판결문 자체도 비공개.
- 중재심판에서는 장사와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사업 기밀과 평판만이 중요할 뿐 공공의 이익은 전혀 논의대상이 아님.
- 단 투자자와 투자대상국 정부가 모두 동의할 경우 당사자 이외의 이해 집단들에게 심판소에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전달할 기회를 줌.
3) 변호사는 물론 중재인도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
- 보통의 재판에서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그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됨. 판사가 분쟁의 양쪽 당사자와 금전적 관계로 얽혀있다면 완전 상식 밖의 일. 그러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서는 변호사는 물론 중재인도 보상을 받음. 상인법의 전통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 법률 서비스에 대한 대가.
- 누구를 중재인으로 선정하느냐는 심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침. 실제 국제 중재 관련 경험이 있는 법률가가 극 소수여서 일종의 ‘클럽’이 형성되어 있고, 이들에 대한 인적정보는 초국적기업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음. 법률가의 입장에선 이 중재심판 시장에서 인정과 평판을 쌓아 계속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기업 쪽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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