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지오웰, <위건부두로 가는 길>(한겨레 출판) 1부 발췌독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쓴ㄴ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석탄을 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면 길어도 몇 주 이상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히털러가 거위걸음으로 행진하기 위해, 교황이 볼셰비키 사상을 지탄히기 위해, 로즈 경기장에 크리켓 관중이 몰리기 위해, 동성애자 시인들이 서로의 등을 글어주기 위해, 석탄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탄광의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을 때 땅속에서 허리에 마구 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차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그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없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듯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전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도 <타임스 문예 부록>의 편집인도, 동성애자 시인도 캔터베리 대주교도 아무개 동지도, <유아를 위한 맑시즘>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47-50쪽)

 

 

 

‘자산 조사’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그중에도 때로는 병석에 누워 있던 노인들이 지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이를테면 홀아비인 노년의 연금생활자는 대개 자녀들 중 하나의 집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으며, 그가 매주 받는 10실링은 가계의 생계비로 쓰이고 그는 그럭저럭 보살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자산 조사’라는 제도는 그를 ‘하숙인’으로 보며, 그가 자녀의 집에서 함께 살면 자녀의 실업수당을 삭감해버린다. 때문에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진짜 하숙집으로 나가 살면서 하숙집 주인에게 연금을 다 넘겨주고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번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자산 조사’ 덕분에 그런 일이 지금 이 순간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7-108쪽)

 

 

 

나는 필력이 정말 뛰어난 실업자를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따금 잡지에서 작품으로 접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아주 드문드문하긴 해도 그런 사람들은 종종 뛰어난 글 한 편이나 단편소설을 써내곤 하며, 그런 글은 추천사만 요란한 대부분의 작품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기 재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 걸까? 누구보다 시간이 많은 그들이 왜 차분히 앉아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노동계급의 집에선 고독하기도 어렵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책 읽는 게 편한 실업자는 어쨌든 책 읽기로 소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 읽는 게 도무지 편치 않은 사람은 어쩌겠는가? 어릴 적부터 갱도 안에서 일해오며 광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도록 길들여져 온 사람을 생각해보자. 허구한 세월을 대체 무엇으로 다 채운단 말인가?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얼토당토않는 소리다. 알아볼 일거리도 없거니와 그런 사실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7년 내내 매일같이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대 채소밭이 있어 소일도 하고 가족의 먹을거리도 조금 기를 수 있겠다 싶지만 큰 도시에선 그런 채소밭을 임대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실업자를 도울 목적으로 몇 년 전부터 문을 연 직업센터들이 있긴 하다. 이 운동은 전반적으로 실패였지만 여전히 번창하는 센터들도 있다. 나는 그런 곳들 한두 곳에 가보았다. 춥지 않고 지낼 만한 공간이 있으며, 목공, 제화, 가죽공예, 베 짜기, 바구니 짜기, 짚공예 등의 정기 강좌가 열리는 곳이다. 팔 목적은 아니고 자기 집에 쓸 가구 등을 , 연장은 무료로 쓰고 재료도 싸게 구하여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인 것이다. 내가 만나 얘기해본 사회주의자들 대부분은 실업자들에게 농지를 주는 기획을 비난하듯이 이런 운동을 비난한다. 그들은 직업센터는 실업자들을 잠잠히 있게 만들고 실업자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숨은 동기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업자가 구두를 수선하느라 바빠지면 <데일리 워커>(영국 공산당이 1930년에 창간한 일간지)를 잘 읽지 않을 테니 말이다.

(...)

우리는 영국에서 수백만 명이 (또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이승에서는 절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낫다. 할 수도 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 하나는 , 원하는 모든 실업자에게 약간의 땅과 연장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생활보조위원회의 실업수당으로 연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채소라도 기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 (111-114쪽)

 

 

 

말하자면 여생을 실업수당에 의존하기로 작정한 듯한 사람들이 잔뜩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감탄스럽고 심지어 희망적이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정신적인 파탄을 겪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그렇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노동 계급은 중산층처럼 빈곤의 부담 때문에 망가지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 계급은 실업수당을 받는 처지이면서도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남부의 브라이턴에 사는 노부인들에겐 당치도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노동계급의 분별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증거다. 즉,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만큼 사정이 나쁜게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럭저럭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그렇다. 수많은 가족이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사치를 끊고 꼭 필요한 것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한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례없는 공황기에 온갖 값싼 사치가 늘어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전쟁 이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두 가지는 영화와 값싸고 맵시 있는 의류의 대량생산이다.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가망 없는 일자리를 얻은 청년이 스무 살 때 실직하여 어쩌면 평생 실업 상태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할부로 2파운드 10실링을 내는 조건으로, 슬쩍 보면 그리고 약간 떨어져서 보면 ‘새빌 로’(고급 양복점들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에서 맞춘 듯한 양복을 살 수가 있다. 아가씨들은 그보다 싼 값으로 최신 유행복을 입은 이처럼 보일 수가 있다. 주머니엔 반 페니 동전 세 닢뿐이고 이 세상에 아무 전망도 없으며 돌아갈 집이라곤 비가 새는 작은 골방뿐이라 해도, 새 옷 차림으로 길모퉁이에 서서 클라크 게이블이나 그레타 가르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나느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동 계급이 겉으로마나 보이고 있는 적응은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혁명적으로 변한 것도 자존심을 잃은 것도 아니다. 단지 노여움을 참고, ‘피시 앤드 칩스’ 수준에서 그럭저럭 견뎌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안은 절망의 고통을 이어 가나는, 신만이 아는 무엇일 터이다. 아니면 영국처럼 통치력 강한 나라에서는 헛된 학살과 가혹한 억압의 체제로 이어지기 십상인 반란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118-122쪽)

 

 

 

한편 나는 실업자들이 돈을 보다 경제적으로 쓰는 법을 배운다 해서 궁극적으로 득을 볼지 의심스럽다. 그들이 경제적이지 ‘않은’ 까닭에 그들의 실업수당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매주 생활보호위원회의 실업수당이 15실링인 것은,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실업자 한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테면 쌀과 양파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인도인이나 일본인 쿨리라면 한 주에 15실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실업수당은 비참한 수준이지만 기준은 아주 높고 경제 관념은 별로 없는 시민들에게 맞춰 설계되어 있다. 실업자들이 씀씀이를 더 야무지게 하는 법을 배운다면 아마도 실림이 눈에 띄게 나아질 텐데,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실업수당도 그만큼 삭감되고 말 것이다.(135쪽)

 

 

 

그런데 내가 떠올린, 훈제 청어와 진한 차를 먹고 석탄 난로 주변에 둘러 앉은 노동 계급 가정의 정경은 우리 시대에만 속하는 것일 뿐, 미래의 것도 과거의 것도 아니다. 200년 뒤의 유토피아적 미래로 건너뛰어 가본다면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해 온 것들은 거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육체노동이 전혀 없고 모두가 ‘배운’ 사람인 시대엔 셔츠 차림으로 앉아 구수한 사투리로 한마디씩 할 투박하고 손 큼직한 아버지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난로는 석탄불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태우는 것이리라. 가구는 고무나 유리나 강철로 만들 것이다. 석간신문 같은 게 아직 남아 있다 해도 경마 뉴스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다. 빈곤이 없어지고 말(馬)이 지상에사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도박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 말이다. 개도 위생 문제 때문에 키우는 게 금지되고 말 것이다. 산아 제한 주장이 기승을 부린다면 아이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

우리 시대가 살기에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근대 기술의 승리도, 라디오도, 영화도, 매년 5천 종씩 출간되는 소설도, 애스컷 경마장의인파도, 명문교 이튼과 해로의 크리켓 라이벌전도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하게도 내 기억에 남은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며, 그중에서도 아직 영국의 번영기이던 전쟁 이전의 내 어린 시절에 이따금 보았던 정경들이다.(158-159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