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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YES24에서 벌인 이벤트 <사회과학 출판사 응원하기>에 당첨되었다.
사실 내가 응원한 책은 직접 읽어보지도 않은 책(김원의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인데, 재수도 좋게 YES24측에서 잘 속아주셔서 ㅋㅋㅋㅋ 이매진 출판사의 책을 공짜로 5권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어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 집 근처 도서관에서 2번이나 빌려놨는데도 한번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뭐 여튼간 그렇게 해서 받게 된 책은
1.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 우기동 외, <행복한 인문학>
3.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4. 이명원, <말과 사람>
5. 여러 만화가들(ㅋㅋ), <악! 법이라고?>
우선 1번 책이 가격이 2만원을 넘어가는 대작인지라, 거의 감계무량 수준... ㅋㅋㅋ 그러나 지금 당장 읽기에는 부담되고... 일단 4번부터 건드려 봤다.
이명원씨는 풍선인형이 맨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던 사람이라 대체 어떤 인물인가 했는데, 얼마전에 문화과학에서 <바리데기>에 관한 평론도 그렇고, 여러 글들이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서 <말과 사람>에도 쉽게 손이 갔다.
물론 이명원씨의 개인저작이 아니라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을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을 담은 거라 이명원씨 개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들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튼 그래서, 여기다가는 인터뷰 내용 중 인상깊은 부분만 좀 담아본다.
아, 그러기 전에 이들 6명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을 밝혀보자면....
1) 이문열 : 역시 구제불능인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불평대로 나도 그의 최근작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니, 인터뷰에서 주로 언급된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책 부터 읽어보고 제대로 평가해 봐야 겠다. 그의 말대로 한 사람의 작가를 '이미지'로 작살내는것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으니....
2) 조정래 : 인터뷰 내용이 너무 싱거웠다. 신자유주의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탈하는 행위라니...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닌 것을 너무 심각하게 얘기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3) 백낙청 : '진보가 통일문제에 너무 지적으로 태만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그의 방식으로 통일을 고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변혁적 중도주의'라니... 이건 뭐 좌파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4) 김민수 : 이 사람은 잘 몰랐는데, 아주 매력적인 지식인이란 생각이 든다. 도시 디자인을 통해 근대 철학적 문제를 사유하는 그의 통찰력은 오랜만에 나의 뒷통수를 '뻑'하고 때려주셨다. 한국사회가 '이미지맹'에 빠졌다는데 한 표!!!
5) 김상봉 : 이 분은 최근 황석영, 노무현 관련 논의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발언으로 좀 미워졌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서 보기드문 사유를 하고 있는 뛰어난 분이란 생각이다. (특히 그가 주축이 되어 작성된 진보신당 강령 전문(前文)은 후대에 기리기리 남을 명문이라 생각한다.) 특히 5.18을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절대 공동체'를 지향한 씨알들의 투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깊었는데, 숙고해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6) 김종철 : 가라타니 고진은 김종철이 문학비평계를 떠나면서 한국에서는 근대문학이 종언되었다고 말했다는데, 이와 관련된 발언들은 좀 신선했다. 갑자기 그의 <시적인간과 생태적 인간>이란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는 욕구가 불쑥 불쑥!!! "근대 문학의 핵심은 야생의 정신 유무의 문제다"
총평을 하자면 1,2,3번은 탈락, 4,5,6번은 합격 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을 옮겨 적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36-138쪽 김민수의 발언 내용)
C.P.스노우가 1959년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강연 제목에서 발의한 두 문화 논쟁은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심화된 단절 현상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각예술과 인문학 사이에 그러한 단절이 존재하는 것인데, 사실은 시각예술과 인문학의 관계는 스노우의 두 문화 논쟁과 좀 다른 특수한 한국적 맥락이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시각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17세기 이래 근대 인문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서 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봉건적 길드에 속한 일개 장인에 불과했던 미술가들이 인문적 성찰을 통해 미술 아카데미를 성립시켰고, 바로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신 활동으로서 시각예술이 출현했던 것이다. 즉 시각예술은 인문적 성찰을 통해 예술의 지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시각예술은 인문학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일제에 의해 서구 학문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오독된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과거 조선 시대보다 퇴화된 인식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날 조선 시대에 문인들은 예술을 겸비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고산 윤선도 선생은 <산중신곡>과 <고산유고>같은 문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직접 거문고를 제작해 사용한 악기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거문고 제작과 사용법을 수록한 책 <회명정측>과 악보를 기록해놓은 <낭옹신보>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유실하고 마치 시각예술과 인문학이 두 문화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구 학문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통마저 잃어버린 이상한 학문 세계에 갇혀 있는 꼴인 셈이다.
글을 못 읽는 것을 문맹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것을 '이미지맹'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는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문맹과 같은 차원에서 취급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에 익숙해 있기 대문에 이미지 언어에 대해서는 독해가 거의 안 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예를 들어 청계천 복원 사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실제로 청계천에서 복원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한강물 펌프로 퍼올려 분수대처럼 물 흘려 내보내고 풀을 심어 '짝퉁' 녹지 공간을 조성한 것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마치 인형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조립되는 인형들처럼 청계천을 구경하러 가는 것은 일종의 도시적 강박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포섭하고 있다. 일상 속의 광고의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소비자들의 이미지 독해가 충분하지 못하니 과장, 사기성 광고에 속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이미지 독해력이라는 차원에서 디자인이 중요하다. 단순히 환경미화 차원의 장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읽어내는 이미지 독해력의 차원에서 일반인도 디장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에게는 디자이너 교육만큼이나 소비자 교육도 중요하다.
(139-140쪽 김민수 발언 내용)
과학기술은 여전히 일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신비화되고, 인문학은 위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담을 쌓고 있고, 예술은 여전히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에서나 하는 것으로 생각해 일상과 거리가 있고, 디자인은 세상과 너무나 가까운 공간, 제품, 이미지를 다루고 있는데도 우리들의 삶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판타지만을 부추기고 있는 점이 그렇다.
(214-215쪽 김종철의 대답을 듣고 이명원이 정리한 내용)
요컨대 오늘날 지배적으로 돼가고 있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종철의 근본적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녹색당조차 제도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장을 내놓고 제기하기 힘들다. 대의제 민주주의 구조 아래서, 녹색당이 제도 정당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여론'에 편승해야 할 텐데, 그랬을 때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당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비관이 앞선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김종철의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는 매우 뿌리깊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김종철은 비관적 상황에 대한 어설픈 희망보다는, 비관적 상황 그 자체를 냉철하게 사유하는 시각이야말로 오늘의 시민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가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러한 반문은 현재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서경식 교수 역시 동일하게 제기한 바 있다. 서경식은 이른바 민주화 시기에 자신의 두 형인 서승과 서준식 형제가 한국의 감옥에 수감 중일 때,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이탈리아 작가는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전쟁 뒤 이탈리아에 돌아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작품 등을 통해서, 우리가 인간에게서 찾고 있는 통념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이 실상에 있어서는 얼마나 허구적이고 절망적인 가치인가를 되물었다. 프리모 레비는 증언하는 문학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돌연 자살을 했다. 서경식 교수는 이 증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절망에 전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은 정작 뿌리 깊게 절망해야 할 때 그 절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헛된 낙관주의보다는 정직하고 근원적인 절망이 때로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절망을 회피하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어쩌면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보다, 절망을 좀 더 투명하게 투시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김종철의 절망은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근본적 절망과 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과 비관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를 틀 지우고 있는 반인간주의와 반생명주의의 무서운 발전주의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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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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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필요없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저도 읽던 도중이었는데.. 숀언니가 잠시 빌려갔지만.. 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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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시타'라는 필명으로 이 책의 저자가 쓴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지...근데 <오빠가 필요없다>는 왠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은 아닌 듯...
여하간에 나는 <말과 사람>을 추천하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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