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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김형경 지음 / 예담 |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정신분석학의 여러 개념들은, 나에게는 말 그대로 '개념'들일 뿐이었다. 물론 자기분석을 해보는 과정에서나, 몇번의 정신과 상담에서 드문드문 그 개념들의 현실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그 개념들은 현실의 지시대상이 불분명한 채, 이론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점유하는 토픽(topique)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그 개념들이 현실의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추상적인 개념들이 현실의 지시대상을 획득했다고나 할까. 놀라운 독서 경험. 사람들에게 추천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사람풍경>은 외국을 여행하면서 있었던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정신분석의 개념들, 혹은 사람들의 정념의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 그 '낯선 것'들을 대면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그래서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 의미있는 것이란 걸 이제야 알다니!)
<천개의 공감>은 신문에 연재된 상담을 묶은 책으로,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려주고 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저자가 각각의 책에서 솔직하게 자기분석의 결과를 책 속에서 드러내는 덕분에 이해가 쉽다. 그것은 또한 똑같이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내가 유사한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면 아마 다른 독자들도 그랬을 텐데,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이 유사한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경은 소설가다. 오랜 동안 정신분석치료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비전문가인 작가가 이렇게 구체적이고 능수능란하게 사례들과, 개념들을 다루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서 서로 논쟁하는 상이한 학파들의 개념을 편리하게 끌어 쓸 수 있다는 것이, 드문드문 서로 논리적으로 정합하지 않는 설명을 내놓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독자들이 가려읽을 일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이 나의 이야기로, 어떤 것은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려왔다. 무엇보다 각각의 주체 안에 그런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이며, 그나마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게다. 많은 사람들이 또 그런 각자의 문제를 나와 유사하게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위안이 된다. 많은 이들과 동병상련.
이 책들을 통해서 우리 경험의 어떤 구체적인 요소들이, 그를 통해 형성된 무의식의 어떤 측면들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들을 나타나게 하는 지 알 수 있다. 그것도 평범한 우리 모두가, 한국 사회의 가족구조에서 겪었을 문제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건 매우 값진 일인데, 추상적인 개념 이전에 우리가 가족 속에서 어릴 적부터 겪었을 문제들을 한국의 가족형태, 이 가족형태의 모순 속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우리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어쩌면 소설가로서 저자의 묘사능력이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느라 독서의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나에게 이런 상황은 정신의 어떤 요소를 형성시켰을까, 그래서 내가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의 충족 혹은 좌절에 어떻게 반응해왔을까, 때로 그것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상처도 되었겠구나..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한결 더 객관적으로 대면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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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1
정신분석 치료는 너무 비싸고 시간도 많이 들어서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힘든게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치료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건강보험은 물론 이려니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얻어내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뜻맞는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해볼 만한 운동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건 그렇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노래 두가지만 언급해보자.
우선, 델리스파이스의 '동병상련'
여기서 들을 수 있다. : "푸른사막"님의 블로그
어쩌면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왜냐하면 모든 문제들의 근원에 있는 '사랑'이라는 정념이 시작되는 데서, 김형경이 지적하는 것처럼 (자신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사랑을 선택하는 병리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Simon &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 Water.
여기서 들을 수 있다. : "나야"님의 블로그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ll dry them all,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여기서 "I"란 말 그대로 그 누구보다 "나"일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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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2
다만 정신분석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향인 것같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정신분석이 특정한 치료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그 치료의 결과는 사회의 '정상적' 관계망 속으로 환자를 복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사회적 관념에서 부적절하거나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교정'의 대상이되고 이데올로기적 통념이 '정상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이런 것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정신의학의 성격으로 지적한 것이다. 정신의학과 결합한 형태로 진행되는 정신분석의 특수성(한국에서만 그런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형경이 제시하는 정신분석의 실천도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반항적인 여성에 대해서 외디푸스 컴플렉스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거나(-따라서 그 단계를 반복해야한다고 말할 때), 군복무가 나르시즘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거나하는 언급 등이 있다. 정상가족이 정신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있다. 매번의 정신적 문제가 해결되는 목표는 '가족의 유지'가 되기도 한다.(그럼 다른 가족 형태를 시험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로운 일로, 지양되어야하나?)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통념, '정상'이라고 규정된 정신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주체의 무의식을 치료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신분석과 이를 통한 치유의 결과가 기존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통념에 기초한 '정상적인 상태'에 이르러야만 주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설사 그렇다고해도, 그렇다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다른 종류의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단적인 주체는 치료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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