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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노조;선거-관료제-민주주의etc.

영국 인민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돼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루소, "사회계약론" 3권.

 

 

무한히 복잡한 공공노조 선거제도

 

공공노조 선거 기간이다.(투표는 21~23일 동안 진행된다.) 금속노조는 1차 선거가 끝나고 결선이 예정되어 있다. 금속노조보다는 작지만 유례없는 규모와 복잡한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선거를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당장 걱정되는 것은, 이 선거가 과연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불안. 이것은 선거제도의 지나친 복잡성과 관련있다. 아래 공공노조에 대한 글에서, 공공노조가 지역본부-업종본부의 이중골간 체계를 인정하면서 관료조직이 두배로 확대되고 말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러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 선거는 두배로 진행되고 있다.

 

한명의 조합원이 투표해야하는 투표용지는, [중앙 위원장/처장], [지역본부 본부장/처장], [업종본부 본부장/처장], [지역선출 중앙대의원], [업종선출 중앙대의원]다섯개 선거에 여성할당 별도 투표용지까지 모두 7장이다. 후보는 특히 대의원의 경우 큰 선거구는 12~16명에 이르는데, 이 결과 한명의 조합원이 투표해야하는 후보자수는 무려 30여명에 이른다. 이번 선거와 지부-지회 선거를 겸하는 경우에는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게다가 현재 규약규정상 3월 중에 지역본부, 업종본부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해서 이러한 규모의 선거를 한번 더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이쯤되면 "조합원을 표찍는 기계로 전락.."운운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선거를 많이 한다고 민주주의가 증진되는 것은 아닌만큼 나는 3월 선거는 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 직후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30여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조합원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투표용지에는 얼굴도, 소속사업장도 없이 오직 성명 세 글자 뿐이다. 게다가 투표방식 역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너무나 엄격하다. 각 종이박스로된 투표함은 모두 20곳을 봉인해야하며, 각 투표용지에 지부 선관위원의 날인이 필요하고, 각 비표는 따로 봉인해서 23일 저녁까지 개표소에 인편인든 퀵이든 박스채로 모두 보내야한다. 볼펜기표는 금지되며 반드시 인주를 사용해야하고... 나는 내가 조직하고 주로 대해왔던 환경미화, 청소, 경비 고령의 노동자들이 이걸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당장, 투표용지가 빠졌다는 전화를 받으면 어떤 경우에는 (선거구가 다르기 때문에) 단지 옆 지부와 투표용지 크기가 다를 뿐인 경우들도 있다..

 

투표에서 ; 민주주의 조건

 

이쯤되면 직선투표가 과연 '민주주의'인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위로부터의 조직구성,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조합원을 고문하는 수준이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30여명을 모두 투표해야하는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은 근무 중 현장에서 뛰어다니다가 이 투표를 해야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최소한 고민해야할 것들이 (그야말로) 대규모로 누락되고 있다. 아무리 선거가 복잡하더라도 선거제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칙이 있는 법일텐데, 실무적으로 바쁘다는 이유로─다른 말로 하면 관료기구의 편의를 위해서─면밀하게 보지 않는 것들. 누구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는 가장 쉽게 구성되어야한다. 가장 지적으로 부족한 조합원의 눈높이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제도 전반은 사무전문직 조합원들의 수준, 가장 높은 수준에 맞추어져있다. 이 기준에 따라가지 못하는 비주류-교육수준이 낮고, 고령이며, 행정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은 권리를 행사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바쁘더라도 더 신경써야하는 부분도 있다. 10여명의 이름이 있는 투표용지에 최소한 사진이나 사업장같은 기초 인적 사항이 들어가지 않으면 구별할 수도 없을 정도다. 조합원 선거 공보물에는 대의원의 경우 '엑셀'로 만든 표가 그대로 건조하게 들어간 정도여서 내 선거구 후보를 찾는데 나조차 곤란을 겪을 정도다.(그나마 서울본부의 경우 사진-경력-출마의 변이 담긴 포스터를 겨우 제작했다.)

 

물론, 선거구의 크기, 후보의 크기와 같은 면에서 지역 선거구를 분할하는 과정에서 나의 경우에도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초기업 선거구를 만드는 것을 관건으로 보다보니 일부 선거구는 너무 비대해졌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선거구도 더 분할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선거가 복잡해지는 것은 지역-업종 이중골간체계에다가 과도한 선거제도, 불친절한 선거행정.. 등의 복합물이다. 우리가 버려야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민주주의와 지역-현장에 밀착한 운동구조, 그리고 가장 낮은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춘 제도의 구성을 지킨다면 버릴 수 있는 것들도 많을 텐데.

 

노조에서 대안적인 조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조에서의 선거는 또한 지속적으로 대안적인 관계, 대안적인 조직을 실현해나가야한다는 점에서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산별노조를 건설하자마자 관료조직이 (제대로 구성되고 작동하지도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복잡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말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 행정은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관리들이 우리들이 위임한 사업의 단순한 집행자, 즉 책임을 지며 소환 가능하고 근소한 보수를 받는 "감독과 부기 계원"(물론 여기에는 모든 종류와 모든 등급의 기술자들이 포함된다)의 역할로 끌어내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프롤레타리트적 임무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하면서 먼저 시작할 수 있고 또 먼저 시작해야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 같은 시작은 대규모 생산을 토대로 하여 저절로 모든 관료제의 점진적인 "사멸"로 나갈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식은 더욱더 단순화되는 감독과 계산의 기능을 모든 사람이 순번대로 수행하여 나중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는, 그리하여 결국 특수한 인간계층의 특별한 기능은 소멸되어 버리는 그러한 질서─괄호없는, 즉 임금노예제와 같은 유보조건이 없는 질서─가 점차 조성되게 할 것이다. (돌베게 판, 71쪽)

 

그러나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 또한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가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직무의 기능들이 주민 대다수에 의해, 나중에는 주민 모두에 의해 이해되고 수행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통제와 회계사무로 전화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05쪽)

...모든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배우고 또 실제로 사회적 생산을 관리하게 되며 독립적으로 계산을 하게될 그 때에는.. (137쪽)

 

노조기구를 전화하는 것이 사회주의에서 국가의 전화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조직에서 노동자의 자기통치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에 착목해야하는지를 발견할 수는 있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갈 사회에 미리 훈련될 것이다.

 

여기서 두개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나는 행정이 더욱 단순해져서 누구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이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적 차이가 감축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에 익숙해지도록 훈련되는 것이다. 이는 노조에서도 (선거제도까지 포함하여) 노조행정의 단순화, 그리고 단순히 선거를 조합원 머리위로 위해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교육과 훈련─을 전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레닌의 첫번째 인용문은 하나의 논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노조 활동가들의 경우 억압적인 자본주의국가의 '국가관리'가 아니며 '감독과 부기계원'도 아니라는 점. 유기적 지식인이자 활동가라는 점에서 '단순한 집행자'로 끌어내려가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없다. 문제는 지적 차이를 감축하면서 대안적인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순번대로"

 

레닌의 첫번째 인용문중에 주목할 만한 한 단어가 있다. "순번대로".

레닌은 베른슈타인이 이러한 자신의 주장(마르크스의 주장)을 "원시적" 민주주의라고 비웃었다고 말하면서 반박한다.(62쪽) 따라서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하의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논의는 주로 "선거는 민주적인가/버나드 마넹"에서 참고한 것이다.)

 

아테네에서 공직은 (선출되는 것도 있었으나) 추첨에서 의해서 선발되었다. 오늘날, 대의제가 지배적인 "민주정"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것은 간단히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시민이 지배자이자 피지배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그것은 적절한 제도이다.(아리스토텔레스) 그것은  시민들이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운영에 적합하도록 교육되고 훈련될 것을 요구한다.(정체의 필수적인 유지조건으로서 시민들 사이의 지적차이의 감축) 그리고 그것은 평의회, 법정, 입법 위원회, 민회 등 다양한 기구를 구성하고 필요한 자리에는 선출제를 택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민회가 인민 그자체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인민의 규모의 문제, 기술적 문제는 전혀 아닌데, 충분히 대규모 조직에서도 추첨은 가능하다.(법정의 배심원제도와 같이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충분히 가능하다.) 시민들의 평등한 권리에는 추첨이 더 적절해보인다. 추첨이 무정부적으로 아무나 고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제도와 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다시 상기해야한다.

 

(이번 공공노조 선거에서 자신이 좌파라고 주장하는 어떤 후보는 자신이 "지도자형"이며 "실무자형"과는 다르기 때문에 위원장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노조가 지향해야할 '민주정'에 대한 생각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조합원-노동자들은 누구나 공동체에서 지도자이자 피지도자이다. 그것을 고양하고 공동체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선출될 후보가 특권적인 "지도자형"이 될 것을 요구하는 모델은 전혀 아니다.)

 

한편, 여기서 시민 개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민은 "일차적으로 민주정에서 존재한다." 시민은 "판결권과 집행권에 참여하는 자이다." 시민은 민주정에서만 가능할 뿐 아니라, 민주정은 판결권과 집행권을 시민에게 부여한다. 그것이 민주정.

 

레닌이 말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도 그러한 순번, 혹은 추첨이 사회의 운영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묘사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노조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예를 들어 대의원 제도와 같은 경우에는 추첨을 통할 수도 있는 문제다. 아테네에서처럼,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출마하고, 추첨하며, 다만 선출될 경우에는 회의 참가에 따르는 일급을 지급할 수 있다.(무한히 복잡한 선거제도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이것이 적절한 '민주주의 비용'일 것이다.) 지금의 선거에서 20~30명이 출마한 선거구에서 기계적으로 투표하는 것보다는 민주적이다.

 

(대부분의 선거구가 미달이거나 후보자와 선출자수와 같기 때문에 선거제도가 변별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을 뿐더러, 경선이 된다 치더라도 대사업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중소영세사업장은 불리하다. 게다가 과반수 이상 득표해야 당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노조 기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모두 투표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과제들

 

지금 진행되는 선거의 이례성─그 규모 등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새로 만든 조직의 첫선거이며 따라서 아직 '관례'가 아니고 우리에게 '낯설다'는 점─ 은 노조에서 선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민주노총 직선제 주장에서도 직선제가 만능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던 적도 있지만,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이자 그것을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지금 문제는 관료제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합원 사이의 민주주의를 증진할 의지와 고민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일부 정파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장 민주주의"라는 말을 수없이 한다고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제도의 문제이자 그것을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문제의 복잡성 속에서 끈기있게 작업할 수 있어야 겨우 가능할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첫 시도에서 우리에게는 끈기보다는 감각과 속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많이 늦었고, 당장은 이번 주의 선거, 투표-개표까지 실제로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선거 이후 다시 평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 평가가 선거의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다시 한번 관료제의 편의성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할 수 있도록 논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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