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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총학생회, 뉴라이트, 오래된 반성

연세대 총학생회가 총여학생회를 폐지하겠다고 학생 총투표를 한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여기에 더해서 의결기구로서 단과대 학생회와 함께 구성하게 되어 있는 중운위를 폐지하고 그 권한을 총학생회 상집이 가져갈 뿐 아니라, 단과대 학생회가 "외부" 단체와 하는 연대활동(성명서까지도)도 총학생회의 허락을 받도록 한다고 하니, 독재를 위한 쿠데타가 따로 없다.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 참고

[연대총여] 연세대 총학생회의 독단적 총투표 강행과 총여 폐지 주장을 규탄한다!

 

학생동지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울러 들은 이야기는 (내가 요즘에 학생운동에 관심이 좀 많이 없었나 보다) 서울시내 규모가 있는 주요대학 17개 정도를 따져보니 몽땅 비운동권-반운동권 총학생회더라는.

 

연세대 총학생회는 '뉴라이트'라고 알려져있는데, 이들의 정치가 어떤 내용인지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반여성주의, 반정치주의(역설적이게도)에 입각한 대중의 정치적 동원. 이것은 그냥 '보수'라기 보다는 파시스트들을 떠올리게하는 정치양식이다. 특히 자신들이 장악한 총학생회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반의 비민주적 학생회칙 개정 사항을 반여성주의적 동원 아래 묻어가고 있다는 것은, 반여성주의가 가진 성격, 따라서 여성주의에 대한 쟁점이 가지는 보편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대자보들도 학내에서 훼손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들이 정치적이지만 또한 反정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란 무엇보다도 공동체 내에 이견과 쟁점을 다루는 방식일 텐데, 이들의 방식이란, 의견을 억압하는 폭력으로서 도대체 정치라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다는 것이 현재의 학생사회라고 생각하니 우울해지는 일이다. 여기까지 오는데에는 많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고,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어떠한 집단적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대중의 정치적 후퇴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현재의 노동자운동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한때 실천했었던 학생운동을 반성할 필요도 있을 것같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가 만들어낸 학생사회의 논쟁이란 참으로 빈약한 것들이었다. 특히 학생사회의 논쟁이 집중되는 총학생회 선거 공간에서 '정치적 후퇴'란 좌우파가 모두 공범이었다. 정치적 구호가 중심이던 총학생회 선거에서 92년부터 처음으로 이른바 '복지공약'이라는 것이 NL 선본의 대대적인 선전 아래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좌파들도 93년부터 이를 모방했다. 그래도 그나마 정치적 쟁점이 남아있던 것이 93년까지 정도였던 것같다. 그 이후로는 모든 정치세력의 선본이 학내 복지사항을, 기껏해야 학교와 협의해서 만들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 상품들로 선거를 도배했던 것이다. 미디어 선거를 전면화했던 것은 애초에는 NL이 시작이었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좌파가 더 유능했던 것같다.

 

군대를 다녀온 90년대 말에는 이런 상황은 더욱 전면적이어서, 총학생회 선거에서 정치적 입장이란 선본 자료집 맨 뒤 몇페이지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들 선거에서 항상 NL들이 복지공약에는 유능했지만, 그렇다고 좌파들이 그나마 정치적으로 나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감각에 무능했을 뿐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에서 노조운동이 90년대 내내 단위 사업장 내에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면서 모든 방면에서 노조를 실리주의에 빠지게하고, 결국 신자유주의에 제대로 대항할 수도 없게 조합원 사회(그것을 '현장'이라고 부르지)에서도 실리주의가 만연하게 만들고 말았다.

 

학생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생회는 실리적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은 애초에 운동권들이었다. 운동권들이 학생회를 '수권'하기 위해 몰두할 수록 이런 경향은 강화되었다. 그러나 결국, 비운동권, 반운동권들이 세력화될 수 있었을 때, 이런 쟁점이 훨씬 유리한 것들은 이들이었다. 일말의 꺼리낌없이 '정치'를 배제하자는 주장이었는데, 그래도 이제까지 복지사안이라는 것을 도구적 쟁점으로 제기했을 뿐인 운동권들보다 이런 방면에서 훨씬 유능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태는 매우 불행하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의 원인중에는 90년대 우리가 해왔던 학생운동의 실천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 요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주체였던 학생운동 세력이 이러한 상황에 전혀 책임이 없을 수 없다면, 그 책임의 내용과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반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같다. 나 자신도 이러한 상황에 (내가 활동했던 캠의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의 책임이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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