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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반자본주의


反자본주의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 유토피아


반자본주의라는 제목의, 다소 초정세적인 자본주의 반대운동을 다룰 것같은 이 책은 그러나 최근의 정세에서 반자본주의라는 정치적 지향이 가지는 의미를 소개한다. 20세기 후반부터 다시 활성화된 반자본주의 정치적 실천들을 개괄한다.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라고 하지만, 정작 정세에 둔감한 고참 활동가들에게도 매우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의 반자본주의는 반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다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는 책의 제목은 '반신자유주의'일 수도 있다.) 이 점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은 이전 시기의 반자본주의 운동으로서 좌파 운동을 한편으로는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특징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운동들에, 하나의 새로운 경향들이 활성화된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특히 두 가지 관점이 눈에 띄는데, 하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 모순으로 작동하던 하나의 경향-시장의 절대적 우위를 관철하려는 시도라는 관점.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의 작동으로 제기하는 셈이다. 또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정치의 종말(혹은 후쿠야마식으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곧이어, 신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 양식이 출현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시애틀 전투로부터 눈에 띄게 전면화된 반자본주의/반세계화운동에서 사파티스타, 세계사회포럼으로 이어지는 운동의 출현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이 운동들 속에 어떠한 경향이 있는지, 그 지형을 보여준다.

그것을 크게 개혁주의-근본주의로 나누고 그 아래의 여러 경향을 소개한다. 개혁주의 진영에는 이 운동 스팩트럼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유주의적 개입주의, 미국에서는 민주당식의 국제주의=개입주의니까.)에서부터 '민족주의적 국제주의'로서의 사민주의, 전지구적 사민주의 등이 소개된다. 근본주의에는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에서부터 자율주의, 평의회 공산주의, '비-정통'급진주의 조류들, 아나키즘, 급진적 환경주의 등이 소개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다소 거친 분석은 이러한 분류기준을 횡단하는 사고와 입장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좌파들이 모두 당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안세계화라는 논리를 저자는 초국적 시민권+세계정부라는 구도의 지구적 사민주의의 것으로 설명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민주의와 무관하게(그러나 초민족적 시민권에 대해서는 긍정할 것이지만)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대안을 세계화하는 국제주의적인 근본주의 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2003년에 나온 이 책에 붙인 2007년, 한국어판 후기에서는 일관되게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지구적 시민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별도로 강조되는 것은 사파티스타. 사파티스타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저자는 사파티즘가 탈이데올로기 정치를 구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어떤 거대담론을 운동의 지침으로 삼는다기 보다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제도들이 약속해왔지만 언제나 배신해왔던 대중의 실질적인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판본의-그러나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이 점은 '소수자'-정치의 논리와도 이어진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 참고.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제도화를 배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제도화없이는 오히려 목소리 큰 일부가 득세하는 등 비민주적인 상황이 초래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의 반자본주의/반세계화 운동을 "운동들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넓으며 통일적인 이데올로기-강령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운동들이 만나고 상호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운동을 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 좌파 운동과 다르게 현재의 반자본부의/반세계화운동이 당적 구조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 각각의 운동을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단일한 정치 프로그램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특징으로 이어진다. (물론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운동의 단층선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다소 거칠게 이것을 ['다수자'-정치]의 논리, ['소수자'-정치]의 논리로 구분한다.)

정치의 위기와 새로운 정치의 부활에 대한 지적은 눈여겨볼만하다. 저자는 각국에서 제도정치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분석하면서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한다.(월러스틴의 지적과 통하는 부분일 텐데, 여기서 저자는 새로운 대항정치로 더 나간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승리라고 간주했던 이데올로기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68년 이후, 그리고 구 사회주의권이 붕괴 이후 저항정치의 공백 속에서 대중들은 새로운 정치─능동적인 직접행동을 중심으로하는─을 재발견한다.
 
이런 지점들 요약해서 저자는 한국어판 후기(2007)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용해보자.
"새로이 거듭난 반자본주의 운동이란, 목소리와 현전의 정치이자 대화와 소통의 정치이고, 저마다의 꿈을 나누며 구체화하는 정치인 셈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낡은 간판을 달고 있지만 전에 없이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대표와 엘리트들의 민주주의가 아닌, 다채로운 무늬를 지닌 민중들의 민주의의다."

이렇게 '성장중인' 반자본주의/반세계화 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혹은 몇번의 시위 이외에는 너무 힘이 미약할 뿐인 것은 아닌가? 저자는 전자의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신자유주의와 함께 역사가 끝났다는 주장, '대안은 없다'는 주장들이 이 운동의 과정에서 시효만료되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도 몰락 중이다. 더 많은 변화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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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 왜 이재영(민주노동당 전 정책실장)씨의 글("자본주의를 넘어서-한국에서의 도전")이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재영의 글은 결론이 없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기껏해야 현재 민주노동당의 좌충우돌과 혼란을 변명하는 논리가 될 뿐이다.
 어찌보면 <反자본주의>의 저자인 사이먼 토미도 결론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대안세계화운동으로 성장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고유한 양식-성격과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지적한다. 그것은 논쟁도, 운동의 새로운 양식-성격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내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추상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에서의 반자본주의, 대안세계화운동은 민주노동당을 골백번을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한 글이 그런 제목을 달고 들어가다니 참.
이재영의 글은 레디앙에도 실려있다.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923
 
* 글을 쓰고 나서 보니, 독일에서 아셈과 G8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참세상 블로그에 올라왔다.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어느곳에서나, 세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흐름이 지하에서부터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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