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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전, 밀레, 고흐

양재동 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오르세미술관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멀지않은 기간 안에 유럽 배낭여행을 가려고 생각 중인데, 프랑스 가서도 못보고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갔더랬습니다.(단순한 동기;;)

몇몇 작품을 소개한 것 뿐이지만, 좋더군요. (하지만 정말 '몇몇' 작품에 불과하니, 비싼 관람료가 좀 무색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도판이나 이미지들, 모작까지도 작품들의 느낌은 커녕 원래의 색조차 제대로 못살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왜 진품을 보려고들 그러는지 알 것같더군요.)

오르세미술관은 1848년에서 1914년까지 19세기 작품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도 19세기 작품들. 산업혁명의 시기이고 프랑스에선 1848년 혁명과, 1871년 파리코뮌을 기억해야겠죠. 그래서인지 부상하는 부르조아를 묘사한 그림도 많았고(19세기 말은 부르조아지들에게는 그야말로 Belle Epoque였으니까요, 그에 비해서 어떤 그림들은 부르조아의 호사스러운 취미와는 별로 잘 맞지는 않았을 듯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고흐의 "아를에 고흐의 방"이라는 작품.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창문을 통해 들어온 남프랑스의 햇빛이 그림에서 환하게 번져오더군요.
그 햇빛에 취해서, 한참을 가까이서 멀리서 반짝거리는 그림을 바라봤습니다.
남프랑스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햇빛을 봐야겠어요.

그리고 언론에 많이 소개된 밀레의 "만종".


평론가들은 이 그림에 대해서 '종교화의 새로운 경지'라는 표현도 한다는데, 굳이 성스럽고 혹은 영적인 것이 종교와 연결될 필요는 없겠죠. 그것은 오히려 종교적인 것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일 겁니다.

여튼, 작품을 보면서 그런 영적인 느낌, 정말 가슴이 울리더군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비판하더라도) 인간의 본질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이성적' 존재라고, 포이에르바하처럼 '종교적' 존재라고, 푸리에처럼 '사랑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맑스가 말하는 것처럼 노동하는 존재라는 것, 그 속에는 육체적인 것뿐아니라 지적인 것, 더구나 영적인 것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동하는 인간의 신성함. 작품을 보면서 더불어 경건해질 밖에요.

작품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참 아쉬웠던 느낌, 아니 그보다 프랑스나 유럽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생기더군요. 어릴때부터 지척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느끼고 자랄 수 있다니.. 그런 문화적 깊이를 우리가 따라가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민지적 감상이라해도 어쩔 수없습니다. 차이가 있는 건 있는 거니까;;)

유럽여행을 정말 간다면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군요. 특히 아래 그림.  고흐의 "한짝의 구두 a Pair of Shoes"


목사가 되려던 고흐는 복음을 전하러 갔던 탄광에서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산업프롤레타리아를 만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그리고는 곧 목사가 되려던 생각을 접고 그림을 그립니다만.) 아마 이 신발은 고흐 자신의 것이었겠지만, 그런 경험이 녹아있겠죠. 고흐는 벼룩시장에서 새로 윤을 낸 헌 구두를 사와서는 너무 윤이 난다고 생각하고 비오는 날 신고 진흙으로 더러워진 구두를 그렸다는 일화도 있으니, 노동하는 자의 구두라고 봐도 괜찮을 듯.

오늘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빛의 화가 모네展"을 합니다. 다음 주에는 거기로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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