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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거창한 제목의 교안. (교안인 만큼 역시 짜집기 텍스트이고, 특히 아리기의 짜집기)
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세미나의 일환으로 진행된 강연용입니다.
교안 텍스트텍스트는 작년에 진행했던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의 강연의 텍스트를 수정해서, 특히 아리기의 노동자운동에 대한 지적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하려니, 목소리도 잘 안나오더군요; ㅎ (그러나 무엇보다, 함께한 분들과 특히 오늘도 오셨던 농민운동하시는 선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기의 전환과 세계 노동자운동의 역사"라는 내용으로 진행하면서 참 벅찬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무엇보다 역사적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그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물론 1강에서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한 맥락에서 통합적인 강연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강연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현재의 노동자 운동의 위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지, 따라서 어떠한 혁신이 필요한지를 사고할 수 있겠죠. 다들 결론을, 비정규직 운동이라느니,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라느니, "쉽게" 이야기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20세기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역사적 반성 속에서 던지지 않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저 역시 내용을 진행하면서, 그럼 대안은 무엇이냐라는 부분에서 갑갑하더군요.(그러니 듣는 분들은 얼마나 더 그랬을까요;;) 발리바르를 따라 '네 번째 공산주의' 혹은 대안세계화운동..이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의 실제의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참 막막한 것이 사실입니다. 텍스트에 인용한 몇개의 문구와, 발리바르가 "공산주의 이후에는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라는 텍스트에서 이야기한, 국제주의와 인간학적 차이(지적-성적-문화적 차이)에 대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종별적인 것의 목록에 무엇이 포함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한 소묘일 뿐이라는 점에서 대안에 대한 사고와 토론은 더 멀리,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운동들 속에서 발견되고 사고될 수 있을 텐데, 어려운 것은 그런 지점이죠.
다만, 그런 대안세계에 대한 전망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자운동의 전망, 미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의미있는 흐름들은 남한에서도 항상 있어 왔습니다. 더구나 최근의 중요한 투쟁들이 노동자운동, 혹은 노조운동의 표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어렵지만 힘있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기 때문에 더 잘보이는 지도 모르겠군요.)
최근 금속노조의 FTA반대총파업, 이랜드 상암점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국민연금 개악저지투쟁 등은 대중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전형적인 표상이던 "대공장의 전투적인 경제투쟁"이라는 상에 생경한 충격을 주는 투쟁이라고 봅니다.
노조운동이 '다른' --계급적 이해에 관계되지만 사업장의 경제적 이해에 제한되지 않는,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적인-- 투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비조합원 대중들 뿐 아니라, 노조의 조합원들도 변화시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의 흐름이 강화되면서, 노동자운동의 지배적 표상을 내-외적으로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더 가까와지겠죠.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대안세계'의 상을 대중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뒤따라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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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세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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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대안세계에 대한 상의 결여가 현재의 투쟁들을 이끌어나가는데도 일정한 제약을 가하는 것 같습니다.사회운동적인 노조운동은 미래의 대안세계와 어떤 관련을 가지는듯 아닌듯 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관련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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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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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노동자운동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과제라고 생각해왔고 여전히 그렇습니다만, 최근에는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20세기 말부터 출현한 운동들의 새로운 '경향'들을 경험적으로 모은 것일 뿐, 대안세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대안세계화 운동'과의 결합은 주요한 요소이지만, 그 운동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죠.)그렇다면 결국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에 사상적 이념적 재구성이라는 것이 관건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사회운동 노조주의와는 별도의 과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운동론, 혹은 운동의 경향을 제시하는 것과 새로운 세계..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인 듯.(물론 최소한 사회운동노조주의가 그러한 이념적 사상적 혁신을 위한 '조건'을 만든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제 경험으로는, (물론 확신을 갖고 어떤 이름들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으시지만)
현재의 투쟁 과정에서,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면서도 이 투쟁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당장 우리 사업장에서 임금인상하고 고용안정하는 것을 넘어야한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법안만 재개정하면 되는 것인지, 정권바뀌면 되는 것인지, 그걸 넘어서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대중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노동해방'? 그것이 무엇인지 더 말하지 않고는 이제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같습니다. (특히 새롭게 형성되는 비정규직 운동주체를 중심으로) 대중들이 한 걸음 더 나가야한다고 말하지만, 어디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활동가들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그곳에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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