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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혁신, 절망이거나 희망 혹은 미망

민주노총 강승규 비리 사건 이후, 그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보다 더 뻔뻔스러운 민주노총 지도부에 절망했다. 그러고도 계속 자신있게 버틸 수 있는 조건이 참담하다. 또 이를 막을 수 없는 우리의 한계, 나의 한계가 가슴 답답하다.

 

민주노총 사무총국 15명의 동지가 사직서를 냈다. 사회단체와 각 연맹과 지역본부 활동가들의 성명서, 호소문이 쏟아지고 있다. 오늘은 시국토론회도 진행되었다. 나 역시도 이러한 작업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같이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지도부가 사퇴하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절망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것이 하나의 '운동'으로서 민주노총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도들은 애당초 성공을 거의 기대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민주노총을 혁신하고, 이를 통해서 노조운동의 혁신에 계기로 삼자는 우리의 주장은, 그래서 슬프게도 미망(迷妄)일 수 있다.

 

"어느 쪽도 운동의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참세상뉴스에 실린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 대표의 글이다.

 

거친 댓글들이 이어 달린다. 소부르조아, 운동을 그만해라는 말까지.

 

그러나 가치판단들과는 무관하게 민주노총의 건설과정과 그 한계에 대한 그의 지적은 그 자체로 사실명제들이다. 민주노총은 건설 당시부터 변혁지향적 민주노조의 구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을 혁신한다고 하는 것은 애당초 이 프로젝트가 가진 한계, 그리고 그의 논리적 귀결인 국가권력과의 타협, 그리고 그 효과로 나타난 오늘의 비리사건 전체를 바꾸어내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총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노총을 넘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투쟁은, 어쩌면 정세의 호기를 만나 이수호 집행부를 퇴진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민주노총'을 쟁점으로 하는 한 애초의 목적은 달성할 수가 없을 것이다. 구조적 한계. 그런 점에서 우리의 투쟁은 미망일 수 있다.

 

우리에게 비극은, 이것이 미망일지라도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그런 점에서 다시 비극일 지라도 김승호 대표와는 달리 한번 더 그것에 대면해야한다. 그리고 스스로 비극의 조건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가 '진정성'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진정하기 때문에 비극일 수 있다.) 

지금은 다만 여기서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조건을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것이다. 운동의 결과로 그 한계들을 집단적으로 깨닫게 될 때, 비록 비극적이었을지라도 이 운동은 어떤 종류의 성과를 남길 수 있다.

 

나 역시 김승호 대표가 던진 아래의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예 질문으로 구성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지금 시작하는 이 투쟁 속에서, 계속 걸으면서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과연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이, 기존의 정파 혹은 계파들 그리고 거기에 속한 활동가들이 이런 역사적 과업을 짊어지고 나갈 수 있을까? 과연 이 진통을 산고로 삼고서 노동운동의 신새벽을 열어 제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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