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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시작

이유식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일찍부터 온갖 장비세척을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미루가 깼습니다. 생각보다 좀 빠른 시간이지만, 걱정 없습니다. 

쌀 20g과, 물 200cc를 이미 냄비에 부어놨습니다.

 

가스렌지 불을 켜자,

체해서 방에 누워있던 주선생님이 미루를 안고 나옵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이유식 준비되면, 그때 젖먹여...5분이면 돼.."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됐을 때 구사할 수 있는 말투입니다.

 

"쌀 갈아서 끓여야 되는 거 아냐?"

 

깜빡했습니다. 쌀 갈려고 믹서기까지 씻어놓고

그냥 냄비에 부었습니다.

 

"익을 때까지 한참 걸릴텐데.."

"다시 할까?"

"그게 빠를 걸?"

 

순간, 초반 페이스가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금방 다시 하면 됩니다. 행주를 집었습니다.

 

미루가 보챕니다.

"미루야 조금만 기다려~"

 

"쿵...와당탕..으악~~~"

 

끓는 물이 싱크대로 쏟아지고,

쌀알이 여기 저기로 튀는 데, 몸을 날려 피했습니다.

 

행주를 냄비의 긴손잡이에 올려놨는데

그게 뭐 무겁다고 냄비가 뒤집어진겁니다.

 

오래된 싱크대의 주름살을 타고, 

뜨거운 물이 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상구, 괜찮어?"

"어..나 괜찮아..큰 일 날 뻔했다..."

 

부엌이 난장판이 됐습니다.

쌀을 갈아야 합니다.

 

믹서 용기에 쌀을 다시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물 너무 많으면 잘 안 갈아질텐데.."

"어..? 어..그러네..물 다시 덜어낼까?"

 

페이스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차라리 쌀을 더 부어.."

"그럴까?"

 

정신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 부어야 할 지 계산이 안 됩니다. 

미루는 엄마가 옆에 있는 데도 더욱 보챕니다.

 

겨우 쌀을 갈았습니다.

냄비에 붓는데 용기에 붙어서 애를 먹입니다.

바닥은 흘러내린 물로 철벅철벅하고,

미루는 이제 배가 고파서 막 울어댑니다.

 

"그냥 젖 먹이자..."

 

오전 이유식은 포기하자는 말입니다.

 

그냥 어제 쌀가루 만들어 놓을 걸.

첫날이니까 잘 해줄려고 했다가, 애 굶게 생겼습니다.

젖 먹이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미루는 젖을 조금 먹더니,

입을 빼고 놀기 시작합니다.

 

"미루가 젖 더 안 먹네...이유식 먹을려고 그러나 보다.."

 

다시 희망이 보입니다.

그 사이 한번 끓여서, 약한 불로 바꾸고 쌀 미음을 젖고 있던 저는

이제 미음을 식히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좀 식었으면 좋겠구만, 잘 안 식습니다.

 

주선생님, 한 마디 하셨습니다.

"먹일만큼만 덜어서 식히는 건 어때..."

 

아, 그런 정교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두 숟갈을 퍼서 식혔습니다.

금방 식습니다. 

 

"미루야, 아~~~"

 

미루는 뭘 하자는 건지 몰라, 저를 멀뚱멀뚱 쳐다 보다가

숟가락을 입속에 넣어주자, 낼름 받아 먹습니다.

아주 잘 받아 먹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미루가 아니라 다른 걸 안고 있었으면 막 던지면서 파도타기를 했을 겁니다.

 

금방 네숟갈을 먹였습니다.

첫날은 한숟갈만 먹이라고 책에 되어 있는데

열광하다가 많이 먹였습니다.

 

이제 남은 미음만 처리하면 됩니다.

미루가 먹은 양의 100배쯤 되는 미음이 남았습니다.

 

"현숙아, 너 체한 거 좀 어때? 밥 먹지 말고 미음 먹을래?"

 

일석이조의 제안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정신이 든 모양입니다.

 

"싫어~나 밥 먹고 싶어.."

 

저는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나서

미음 한공기를 또 다 먹었습니다.

양도 많은 게 맛도 밍밍해서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주선생님이 쌀 더 넣으라고 안 했으면 양이 좀 적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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