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3차 세계대전

1914년과 1939년에 발발했던 제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3차 세계대전이 오늘 아침 저희 집에서 있었습니다.

 

전쟁의 징후는 얼마 전부터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별 것 아닌 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소규모 분쟁이

그 동안 국지적으로 발생했었는데

 

지난주부터는 점차 전면전의 양상으로 치달았습니다.

 

"아침 시간엔 제발 내가 책 좀 읽을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저를 위해서 특별히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려고 했다가

아침 7시도 안됐는데 시끄럽게 굴어서 책도 못 읽게 한다며 제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전쟁의 열기는 한 차례 고조됐었습니다.

 

"조금만 빨리 준비해줘~"

"내가 뭘 늦게 했다고 그래~!!"

 

10시가 넘어서 막 잠이 깬 미루가 보채는데

아직 이유식 준비가 안 끝나서 주선생님이 가볍게 한 말에

저는 괜히 상처를 받고 막 지랄을 했습니다.

 

정세는 점차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결국 양 진영은 대규모 화력을 동원해서

상대방 진영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위아래집 및 옆집에선 전쟁의 포성을 다 들었을 겁니다.

 

저는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포악함을 무기로

주선생님의 심장에 맹폭을 했고

 

주선생님은 아름다운 피부 밑에 숨겨져있던,

니가 힘들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욕 먹을까봐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있던 최근의 괴로움을 전면에 드러내며 맞섰습니다.

 

저는 36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극악무도한 행동으로 주선생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고

 

주선생님은 심하게 몸떨기와

한번에 주름살 수백개씩 만들면서 얼굴 찌뿌리기로 대응했습니다.

 

전쟁은 마침 그 순간에 누가 누구한테 총을 쏴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주선생님이 요새 다큐작업 마무리 하는데

임신, 출산이 핑계가 되선 안된다면서 몰두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고

저는 원래 제정신이 아닌데다, 오랜 육아로 지쳐 있었다는 점입니다.

 

주선생님은 워낙에 다큐 제작 막판에는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냅니다.

저는 원래 뭐든지 6개월 이상하면

얼굴에 짜증꽃이 핍니다.

 

전쟁은 핵무기 발사 직전에 종료됐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성의 힘이 파국을 막았습니다.

전쟁 발발 1시간 후의 일입니다.

 

두 사람은 일단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미루야, 미안해..."

 

미루를 재운 후

두 사람은 종전협상을 통해

평화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여

새로운 번영의 길로 도약할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주선생님이 요즘 많이 힘듭니다.

힘든데 힘들다고 못해서 더 힘듭니다.

 

사실 미루는 두 사람이 공평하게 보고 있는데

힘들다고 하면 남편이 애 다 보는데 니가 뭐가 힘드냐는 소리 들을까봐 말 못해서 더 힘듭니다.

 

덕분에 주선생님은 새벽부터 밤까지

다큐만들거나 미루 보거나 집안 일 하느라 쉬지를 못합니다.

 

주선생님한테 위로가 필요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