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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화장실

미루랑 잘 놀던

한 낮에

 

갑자기 장 내부의 압력이

부동산 가격 보다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아침 일찍 모든 일을 처리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고

 

혹시 있더라도 차분히 인내하다가

미루가 자는 시간을 적절히 이용했었습니다.

 

오늘은 모든 게 어긋났습니다.

 

요새 미루는 한 번 깨면 2시간 넘게

쉬지 않고 놉니다.

 

엄청난 압력을 2시간 동안 버티는 건

더 큰 대형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합니까. 당장 화장실로 달려 가야지.

 

근데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마구 구르기와 뒤로 배밀이 하기로 기동력이 생긴 미루는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어디로 굴러가서 박힐 지 모릅니다.

 

고민했습니다.

'미루를 업고 화장실로 들어갈까?...몸이 앞으로 쏠릴텐데..'

'안고 들어갈까?...음, 괜찮네..'

 

하지만 정녕 미루를 안고

변기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인간성 상실이 또 없습니다.

점점 후각도 발달하고 있을 미루도 불쌍하지만

저도 불쌍합니다.

 

다시 고민 끝에 전 화장실 앞쪽에 미루를 눕혀 놓고

화장실 문을 연 다음에 말로 미루를 끊임없이 붙잡아 두기로 했습니다.

손을 뻗어서 잡고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안 닿았습니다.

 

"미루야~아빠 금방 나갈거니까, 조금만 그대로 누워 있어..."

 

미루는 아빠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곧바로 뒤집더니 뒤로 배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루야~~어디 가~~"

 

미루는 뒤로 후진에 후진을 거듭했습니다.

중간에 혹시 몰라 바리케이트로 쳐 놓은

수유쿠션, 베개를 전부 뚫고 쇼파 밑으로 곧장 직행합니다.

 

"미루야~~거기 드러워~~미루~~"

 

조금만 있으면 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루야~~이거 봐~~곤지 곤지 곤지 곤지 잼잼잼~"

 

변기에 앉아서 별 짓을 다 합니다.

 

저의 노력에 미루가 멈칫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획 바꿉니다.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곳엔 쓰레기통도 있고, 각종 전선에, 오래 묵은 기름 때등이 조화를 이뤄

아이들이 잠시 머무르기에 지극히 나쁜 곳입니다.

 

"미루야~제발~~"

 

애가 나쁜 길로 빠져드는 걸 보고만 있으려니까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만약 미루가 더 이상 가서는 안되는 길로 간다면

내가 이 상태에서 뛰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위급한 상황이 오면 뛰쳐나가겠지만

인격에 큰 손상이 오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루야, 이 놈아~~가지 마~~야아아아아~~~"

 

어제 광주에 갔었는데

만나 뵀던 분들 중 몇 분이

저와 똑같은 일을 겪으셨고

다들 애를 두 팔로 꼭 껴안은 채로 사태를 해결하셨답니다.

 

다들 한번쯤 이렇게 하셨을텐데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통한의 눈물만 흘리셨을 전국의 많은 산모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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