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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주 선생님께서 어제 선언하셨습니다.

 

"나 내일 외출할거야~!"

 

저는 무덤덤하게 대답했습니다. "어, 그래~"

 

별 생각없이 대답한 저는,

오늘 저를 보기 위해 누가 찾아온다고 해서 안된다고 했다가 하도 봐야 한다고 우기길래 그럼 2시에 보자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하자, 주선생님 아주 약간 삐진 얼굴로

"그럼 2시 약속 끝나면 외출해야겠네~"라고 얘기했습니다.

 

아...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미루를 낳고 나서 처음 감행하는 '혼자만의 외출'의 감동을 제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손님을 만나고 3시쯤 집에 들어왔습니다.

 

미루를 안고 있던 주선생님은 바로 외출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됐다고 하는데도, 인제 몸이 좀 회복됐다면서

빨래를 갰습니다.

배고프다면서 계란을 삶아 달라고 하더니 계란을 먹었습니다.

애가 보채니까 달래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면서 또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5시가 됐습니다.

미루는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러자 주선생님...갑자기 우울한 모드로 바뀝니다.

 

.

.

.

 

"내가 오늘 외출할 수 있을까?"

 

울려고 합니다.

 

"해 지기 전에 얼른 나가~!!" 저는 있는 힘껏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그냥 나가도 될 것 같은데, 목욕탕에 가서 샤워하고, 머리도 감고..

감은 머리 말리고, 옷 이쁘게 입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근데 어디 나갈려고?"

"응, 선물로 포대기 받은 거 있잖아? 그거 아기띠로 바꿀려고.."

 

오랜만에 하는 외출의 이유가 좀 더 거창했으면 제 맘도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아무튼, 주선생님은 나가는 순간까지 온갖 걱정을 했습니다.

 

"애가 7시 30분까지는 젖 안 먹어도 되니까 걱정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근데..너무 떨린다.."

 

저는 평온한 표정으로

"걱정말고 다녀와.."라는 믿음직스러운 멘트를 날려주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에도

안 그래도 천의 표정을 가진 주선생님의 얼굴에는 긴장, 기쁨, 초조 이런 것들이 마구 스쳤습니다.

 

..

 

결국 주선생님은 외출한 지 40분만에 들어왔습니다.

성공적으로 포대기를 아기띠로 바꾸고

옆 식당에서 돈까스도 사왔습니다.

 

그 40분 동안 저한테 5번 전화했습니다.

 

"애 자?"

 

"애는?"

 

"애기는 자?"

 

"나, 벌써 포대기 바꿨어~!"

 

"지금 택시 탔어, 기다려~!"

 

...

 

외출을 잘 끝내고 돌아온 주선생님은 긴장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3박 4일 어디 갔다 온 것 같애"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어떻게 걸어다녀야 할 지 모르겠어"

 

 

그리고 미루한테도 말을 걸었습니다.

 

"미루야, 엄마 왔어~!", "나 1시간이나 외출하고 왔다~!"

 

그 동안 배냇짓으로만 웃던 미루가 느닷없이 눈의 촛점을 엄마한테 또렷하게 맞추고

활짝 웃었습니다. 주선생님은 좋아서 입이 얼굴의 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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