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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모유수유센터에 갔습니다.

 

여전히 미루가 엄마 젖을 깊게 물지 않아서 젖꼭지가 마구 헐어버렸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유수유센터에 갔다 올때 마다

자신감이 가득해져서 돌아오는 주선생님은

한 이틀 쯤 지나면 다시 자신감을 상실합니다.

 

"어디까지 물려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어...ㅠㅠ"

 

 

선생님께서는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는 표정으로

젖꼭지로부터 약 5센티 부근에 매직으로 선을 쭉 그었습니다.

수성은 금방지워져서 유성매직을 쓴 것 같았습니다.

"애기 입이 여기까지 오게 물리면 됩니다"

 

우리는 금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인제 확실히 어디까지 물려야 할지 감이 잡혔습니다.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어서 미루가 젖을 먹고 싶어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때가 돼서 젖을 물리려고 했을 때는

유성으로 썼던 그 선이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그을까?"

 

"일단 한번 먹여보고..."

"계속 헷갈릴텐데, 아예 문신을 할까?"

"문신? 문신으로 선을 쭉 그어놓자고?"

"선으로 그냥 찍 그어놓으면 이상하니까 나비로 문신할까?"

"그냥 '여기까지'라고 쓰는 건 어때?"

 

...

 

갑자기 군대 훈련 받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옛부터 문신은 주로 무서운 아저씨들이 하는 것으로서

대표적인 문구로는

"차카게 살자" 와

하트에 화살표를 관통시켜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 가서 저는 정말 다양한 문신을 봤습니다.

한 친구가 샤워를 할려고 웃통을 벗었는데 등짝이 온통 그림이었습니다.

십장생도였습니다.

 

주위에 있던 다른 훈련병들은

십장생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험악하게 생긴 어떤 훈련병은

이런 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효도'

 

어떤 사람은 주먹에 새긴 글씨로

좌중을 압도했습니다.

'복수'

 

하지만,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있었으니 

그 사람의 문신은 이것이었습니다.

'용서'

 

다 용서하시겠다는 데, 그 대자대비함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순 없었습니다.

이 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

 

주선생님은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라는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젖을 먹였고,

저는 옆에서 덥다고 부채질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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