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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백일 이후 잘 안 자는 미루한테  효과가 있어서

매번 공갈젖꼭지를 사용했는데

 

요새 이게 미루한테 작은 것 같아서

좀 큰 걸 샀습니다.

 

"히히, 이건 타임캡슐에 넣어놔야지...'

 

주선생님이 더 이상 안 쓰는 공갈젖꼭지를 가지고

어디론가 신나게 갑니다.

 

집이 안 넓으니까

고개만 돌리면 어디 가는지 다 보입니다.

 

"근데, 타임캡슐이 뭐야?"

 

"응, 그런 게 있어~~~"

 

전 몰랐는데, 주선생님은 혼자서

박스 하나에 미루의 이것 저것을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타임캡슐이랍니다.

 

"어디 봐봐..."

 

박스 안에는 지난 번에 처음 깎았던

미루의 배냇머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모아놓냐고 구박했었는데

다시 보니까 반갑습니다.

 

타임캡슐 안에는 배냇머리보다

오래된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우선, 배꼽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루가 태어나서 한 동안 배에 달고 다녔던 배꼽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탯줄을 빨래집게 같은 걸로 잡아 누른 다음에

제가 가위로 잘랐었는데, 그 집게도 같이 달려 있습니다.

 

미루가 태어나고 바로 손목에 찬 띠도 들어 있습니다.

그 띠엔 '주현숙'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집게 다음으로 미루 몸에 닿은 물건입니다.

 

놀랍게도 그 보다 더욱 오래된 물건도 있었습니다.

띠나 집게 보다 10달은 더 오래전에 우리 손에 들어왔던 물건.

바로 임신테스트기입니다.

 

테스트 하기 전에 임신한 줄 모르고

엑스레이를 찍었었는데

 

그 것 때문에 주선생님은

산부인과 가서 의사선생님이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

울고불고 그랬었습니다.

 

"이야~신난다~!!! 우리 인제 30년 후에 이거 보는 거야? .....그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애..."

 

나중에 보면 너무 감동적일 것 같아서 눈물이 날 지도 몰랐고

아니면 그새 우리가 다 늙었겠구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잊고 있었던 물건을 잘 간직해준 주선생님 마음 씀씀이 땜에 눈물이 울컥 했습니다.

 

"현숙아 우리 있잖아...만원 짜리도 몇 장 넣어놓자~열어 보고 기분 좋게~"

 

저는 괜히 흥분했고

주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잘 안 들렸습니다.

 

"이 타임캡슐 어디다 묻을거야? 요 앞 공원에 묻으까?"

 

"아, 묻긴 어디다 묻어~그냥 잘 보관하면 되지~!!"

 

"그래도, 타임캡슐인데 어디다 묻어야 되지 않으까?"

 

타임캡슐의 묘미는 중간에 한번도 안 열어봐서

뭐 들었는지 다 잊어먹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데 있습니다.

 

땅 속이 아니면 어디 손 잘 안 닿는

깊은 구석이라도 찾아서 넣어놔야겠는데

주선생님이 그건 지나친 호들갑이야라고 지적하면

그냥 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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