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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순하네

며칠 전에 처가집 식구들이 왕창 놀러와서

거실이 인파로 북적인 때가 있었습니다.

 

방문단 중에는 처제도 끼어 있었는데,

처제한테는 곧 한살 되는 딸이 있습니다.

이름은 '김아영'입니다.

 

아영이는 참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입니다.

 

저희 집에 오면

별로 뽈뽈뽈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얌전히 앉아서

웃기만 합니다.

 

얼마나 얌전한 지,

막 씩씩거려봐야 뒤로 밖에 못 가는 미루한테 가서도

살짝 건드려보는 거 말고 딴 짓은 안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오면

미루 입에다 손가락도 넣어보고

때리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영이는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야...애 참 얌전하네..."

 

저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러네.." "보리차 잘 마시는 거 봐"하면서 동의를 표합니다. 

 

처제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에 힘을 줘 외쳤습니다.

 

"얘 안 얌전해요~~!!"

 

그 말을 듣자 마자

제 입이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애들은 엄마랑 혼자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꼭 밖에만 나가면 얌전해지더라..그치?"

 

방금 전까지 속으로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새 다른 말을 합니다.

 

역시 남들이 듣기 좋은 말하기 분야의

일인자답습니다.

이럴 땐 '입'이 '생각'보다 빠릅니다.

 

 

"맞아요, 아영이가 꼭 그래요..."

 

"나도 미루 어디 데려갔는데 사람들이 얌전하다고 하면 막 억울하다니까...이렇게 얌전한 애 키우니까 하나도 안 힘들겠다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다니까요, 억울해 죽겠어 아주..."

 

대화가 진행되면서

처제와 저 사이에는 점차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그럼, 그럼~' '맞아 맞아~' 같은 단어들이

거실에 가득 찼습니다.

 

듣고 있던 주선생님이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오호~두 사람 통하는 데...애 키우는 사람들이라 할 말이 많은가 보네~"

 

처제가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역시 형부가 애를 직접 키우니까 아는 거야...

미루 봐봐..아빠가 쳐다보기만 해도 활짝활짝 웃잖아..."

 

어느새 처제는 자기 남편 들으라고 얘기를 하더니,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남편에게 구박의 가랑비를 내려줬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영이 아빠는

놀러 왔다가 내내 싫은 소리만 듣고

나중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 날의 대화로 '역시! 애 키우는 아빠'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이 좀 간사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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