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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실수

완전 비몽사몽으로 자고 있는데

주선생님께서 절 깨웁니다.

 

"상구~여기서 자고 있었어?

왜 나 안 깨웠어...?"

 

순간 저는 뭔가 크게 잘 못 되었다는 걸 직감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왜 그냥 잤어...

나 젖이 탱탱 불어서..아파서 깼잖아.."

 

전날 밤에 주선생님께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제가 깨울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자버렸던 모양입니다.

 

밤마다 젖을 유축기로 짜지 않으면

밤새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젖이 불어납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출산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젖몸살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미안해..미안해..."

 

아무리 미안하단 말을 해도 수습이 잘 안됩니다.

 

새벽 3시 10분

 

유축기로 젖을 짜기 시작하는 주선생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상구는 내가 그렇게 얘기해도

이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는구나..."

 

제가 조금만 신경쓰면 괜찮았을 일인데

저도 제가 왜 그냥 자버렸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으면 당연히 깨웠을텐데

깨우지 않았으니까 결론적으로

전 젖짜내는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집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미안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변명하느라 말을 많이 할 것 같아

그 말만은 참았습니다.

 

"휴......외로워"

 

주선생님 갑자기 드라마스러운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해 받지 못한 사람의 탄식입니다.

 

저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잘 못 잡았습니다.

어디 기댈 데도 없이 방 한 가운데에 앉는 바람에

허리가 아파왔습니다.

잠은 확 달아나야 하는 상황인데 계속 졸립니다.

 

그러나 이럴 때 졸면 끝장이란 걸 잘 압니다.

 

주선생님은 제가 옆에 있어봐야

위로가 되지 않았을테고, 당연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기 앉아서 뭐할 건데...

그냥 들어가서 자.."

 

"어..그래, 고마워..."

이랬다간 역시 끝장입니다.

 

갈증도 심했지만 그래도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30여분..밖에서 매미는 엄청 울어댔습니다.

얘네들은 밤에도 그렇게 울더군요.

 

그러던 중 주선생님께서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좀 꺼내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컵에 따르면서 한 모금 살짝 마셨습니다. 살 것 같았습니다.

사이다를 갖다주면서는 책장에 살짝 기대 앉았습니다.

진짜 편합니다.

 

그렇게 한참 젖을 짜낸 다음

주선생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니까 그건 됐고...

제안 하나 할께..이제 앞으로 한달 간 매일

젖병이랑 유축기에 붙은 깔데기 상구가 소독해주고

젖 짤 때 마다 옆에 있어줘.."

 

제안을 안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리를 챙기는 주선생님.

 

정신 안 차리고 잠 잤다가

큰 손해 봤습니다.

 

사실은, 주선생님한테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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