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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주선생님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까

제가 사오정이 된 것 같습니다.

 

자꾸 뭘 잘 못 듣습니다.

 

미루가 잘 때가 많아서

조용조용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도 붙어 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유가 없어..."

 

"사올까?"

"뭐?... 뭘 사온다고?"

 

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우...유..."

 

주선생님이 다시 대답하십니다.

"참나, 의욕이 없다고 의욕이..."

 

아마, 그 뒤에는

"인제, 말귀도 못 알아듣냐?"가 생략된 것 같긴 한데

주선생님은 착해서 그냥 참은 것 같습니다.

 

미루가 우는데 보니까 오줌을 아주 조금 쌌습니다.

기저귀를 갈려다가 주선생님이 그냥 더 차고 있어도 되겠다 싶었나 봅니다.

 

"갈아주는 척 하다가 다시 채우는 엄마의 센스~~

갈아줬다고 생각해~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미루야~"

 

미루가 막 웁니다.

 

"아..이런, 알아버렸어? 엄마의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네..."

 

엄마의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다!

세상에 계획이 수프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거기다 대고,

"현숙아~'수프'가 아니라 '수포'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주선생님이 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 미쳤구나~?" 라고 했을 겁니다.

 

 

출산 전에는 맨날,

키위, 호두, 철분제 등등을

꼬박꼬박 먹고, 운동도 매일 하도록

아예 점검표를 만들어서 챙겼었는데

 

산후에는 산후풍약도, 철분제도 계속 못 챙겨줍니다.

 

게다가 이젠

말귀까지 못 알아듣는 겁니다.

 

계속 붙어 있어도 좀 집중해야지..하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낮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역시 주선생님이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점심땐 국수 먹자~~!"

"옥수수 먹자고? 갑자기 무슨 옥수수?"

 

증세가 더 심해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구, 비디오 빌려왔어?"

"드디어, 뭐?"

 

...아, 어디가서 수련이라도 해야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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