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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잠을 방해하는 세력들

티격태격하는 작은 전투에서

항상 지는 제가 오늘은 결정적 승기를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열심히 거실 바닥을 청소하다가

잠시 미루랑 놀아주고 있었습니다.

 

"달그락~달그락~"

"아~조용히 좀 해~~"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복수를 한 것입니다.

 

설거지를 할 때나 아니면 다른 일을 할 때

주선생님은 항상 "미루 자잖아~조용히 해~"라는 말을 무기로

저를 구박하기를 즐겨하셨습니다.

 

나름대로 조용히 할려고 하지만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아예 안 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선생님이 복숭아 놓을 접시를 챙기다가

소리를 "달그락~"낸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저는

곧바로 전가의 보도인 "조용히 좀 해~"를

꺼내든 것입니다.

 

주선생님,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설거지 하고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놔야지..이렇게 쌓아놓으니까 소리가 나잖아.."

 

"......"

 

이번 만은 제가 이길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루 잠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저 말고도 많습니다.

 

잠재우기가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에

미루 잠을 깨우는 모든 존재는 참 밉습니다.

 

바로 위층 1502호 사는 말들은 여전히 지축을 흔들며 뛰어다니고 있고

 

요새는 폭주족 한 마리가 저녁 12시30분쯤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부릉~부릉~부르르릉~~~~"하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닙니다.

왜 아파트 단지 옆에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고생해서 미루를 재우고 나니까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도시가스 점검이요~"

 

미루는 도시가스 점검이 싫은지

냅다 울어버렸습니다.

 

그 다음날엔 초인종이 울립니다. "정수기 아저씬데요~"

미루는 정수기 필터 교체도 싫어했습니다.  

 

이런 모든 세력들 중에서

매일 매일 미루 잠을 방해하는 세력은

바로 저입니다.

 

그릇 놓쳐서 울리고

잘 자는 옆에서 "에이~취" 기침을 해서 울리고

괜히 방문 열어놨다가 바람에 문이 '쾅' 닫혀서 울립니다.

 

오늘 저녁엔

촐싹 거리다가 밥그릇 위에 있던 젖가락을 날려보냈습니다.

 

젓가락과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갈라 미루 귀에 도착합니다.

 

미루는 대자로 뻗어서 자다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더니

파다닥 떱니다.

 

두 사람은 미루 표정만 바라봅니다.

'울면 지옥! 자면 천국!'

 

다행히도 이번엔 계속 잤습니다.

 

주선생님, 백마디 말을 담은 눈빛을 날립니다.

그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제가 선수를 쳤습니다.

 

"난, 구제불능인가봐..."

 

주선생님, '피식..' 웃습니다.

 

한 마디 더 했습니다.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

저의 갑작스러운 좌절성 대사에

주선생님 저를 안쓰럽게 쳐다봅니다.

 

그리고는

'애 키우는 데 자신을 잃으면 안돼..힘 내'하는 표정이 되어 묻습니다.

"괜찮아..뭐가 자신이 없는데...?"

 

"응...조용히 움직일 자신..."

 

확실히,

애 자는 데 가장 큰 방해 세력은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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