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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차 핵실험과 반복되는 한반도 전쟁위기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3/04/05 19:06
  • 수정일
    2013/04/05 19:1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북핵을 둘러싼 동북아 지배권력의 위험천만한 전쟁위협에 맞서

‘전쟁 반대! 모든 핵 반대!’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지난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의 전쟁위기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불가침합의 폐기를 앞세워 연일 강경한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1호 전투근무태세’ 명령을 발동하고 남한을 포함한 미국 본토까지 핵선제 타격을 공언하고 있다. 남한과 미국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정대로 한미 연합훈련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강행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전략 핵폭격기 B-52, 스텔스 폭격기 B-2의 잇단 공개는 대북 무력시위의 화룡점정이라 할만 했다.
 

얼마 전에는 그동안 북한정권이 언급을 자제해오던 개성공단마저 폐쇄할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한반도의 긴장수위가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자칫 남북간 우발적 충돌이 대규모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춘사불래춘(春似不來春), 한반도의 봄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국면이 종국에 가서는 북미협상을 재개시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1, 2차 북핵위기도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지만 결국 협상을 통해 위기가 봉합되는 모양새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최악으로 치닫는 한반도 정세가 쉽사리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은하3호 발사→올해 1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2월 북한의 3차 핵실험→3월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 결의로 이어지는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 속에서 지금의 군사적 대결양상은 위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나 위협 이후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 협상 테이블이 형성되었던 과거의 패턴을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게임 체인지


무엇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기존 북핵문제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전환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북한은 미국에 대한 핵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22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제 결의 직후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선언하며 하루 간격으로 ‘외무성-국방위원회-조국평화통일위원회’로 이어지는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대외관계-국방정책-남북관계에서 대결적 자세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때 핵심은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진행할 것”이란 엄포였다.
 

그동안 북한은 핵보유의 명분을 수세적 차원의 ‘자위적’ 핵억지력의 수단으로 내세웠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었고 김정일도 약속한 것이었다. 물론 김정일 시대에도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노리는 발언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화법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공세적’ 핵보유국으로서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미 김정일의 대표적인 유훈으로 핵보유를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개정 헌법에도 이를 명시한 바 있다.
 

북한의 이러한 단절적인 태도는 핵능력의 향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2월12일 3차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통신>은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 다종화된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이번 핵실험이 고농축 우라늄을 저효율로 사용한 소형 핵탄두 실험이었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받고 있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그해 6월 우라늄 농축선언을 발표한 지 4년 만에 북한은 플루토늄 핵 뿐 아니라 소규모의 핵시설로 생산 및 은닉이 가능한 우라늄 핵마저 보유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은하3호의 발사 성공으로 핵물질의 장거리 운반수단도 확보된 상황이다.
 

그 결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 또한 이제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미국을 압박하고 협상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위기조성용으로 벼랑끝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은 미국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지도 않고 3차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4년 전 북한의 2차 핵실험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내세운 오바마 정권의 강경한 태도 앞에서 되레 북미관계의 경색을 초래했던 만큼 북한이 또다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출범 직후부터 북핵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13년 1월18일자 본지 <북한의 은하3호 발사와 동북아 권력재편>)
 

오히려 북한은 협상에 치중하고 안 되면 도발하는 것이 아니라 핵능력을 극대화한 상황에서 협상 여부를 결정하라는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물질의 다량확보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근접한 로켓기술을 앞세워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규정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3월이면 연례적으로 시작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맞서 북한이 국가급 대응훈련으로 맞대응하며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고조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다급해 보이며 북한사회 내부의 복잡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회생을 위한 김정은의 ‘거대한 도박’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 중 하나는 선군(先軍)정치에서 선당(先黨)정치로의 전환이다. 그 배경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경제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원년으로 선전해왔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민생문제는 아직 열악하기만 하다. 반면,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대를 거치면서 ‘과대성장’한 북한 군부는 온갖 특혜 속에서 국가자원을 독식해왔다. 따라서 경제재건을 위한 국정운영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선군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중심의 체제확립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지난해 4월15일 태양절 행사에서 김정은은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후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정책적 행보를 뚜렷하게 보였다. 그 출발점은 군부의 각종 경제적 이권을 당으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미 시장자본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는 북한에서 국가중심의 경제재건은 체제존립의 이유와 직결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였고, 그러자면 우선적으로 국가재정의 확충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군부의 반발이나 동요가 없었다는 점은 북한의 지배층 전체가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결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첫 경제조치이자 기업 자율성 제고, 배급제와 시장가격제 혼합 등의 내용을 담은 ‘6.28 방침’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지난 한해 북한경제는 일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곡물생산량이 10% 가량 증가했고, 경공업 뿐 아니라 금속과 화학공업 등 기간산업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미 피폐해진 경제현실에서 자구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면적인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결국 ‘종자돈’ 마련이 필수적이다. 더구나 에너지의 90%, 소비재의 80%, 식량의 45%를 현재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현실도 마냥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북한과 이란의 핵 비즈니스 연계설이다. <시사인>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은 북한과 핵무기 관련 기술을 놓고 김정일 사망 이후부터 협상에 들어갔고, 전체 인수금액으로 약 200억 달러를 제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향상된 핵능력이 검증된 가운데 북한과 이란의 핵 비즈니스는 언제 성사되느냐 하는 시간만 남았다는 관측이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말 그대로 거액의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북핵의 대중동 확산으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두 차례의 북미 비밀접촉의 전말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북한과 이란과의 핵 커넥션을 포착한 미국은 지난해 4월과 8월 북한과의 비밀접촉을 통해 북한이 이란에 핵기술을 넘기기 않을 경우 300만㎾ 상당의 화력발전소 제공과 마그네사이트 광산개발 및 판매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7일 자원개발에 관심이 많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곧이어 1월10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 기업대표단과 북한 투자유치기관 간에 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접촉을 가졌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더 나아가 최근에 미국은 북한이 핵문제를 해결하면 버마처럼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버마 사례’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협상안을 곧이곧대로 신뢰하기보다는 일단 3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다음 이후 추이를 살펴보려고 한 것 같다.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 때도 미국은 200만㎾급 경수로 건설을 북한에 약속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북한이 이란에 핵기술을 넘기지도 않을 것 같다. 북한이 원하는 바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이란과의 핵 커넥션마저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북한이 더는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만성적인 경제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 그만큼 현 국면에서 북한은 미국을 향해 강경한 자기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초조한 미국과 답답한 중국


사실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누구보다도 궁금해 해왔다. 지난 1월말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했을 때 <뉴욕타임즈>는 미국이 북한의 핵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로 3차 핵실험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핵개발 포기나 저지를 금지선으로 설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이상 북한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며 북핵의 비확산을 실질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게 북핵 그 자체는 주요한 변수가 되지 못했다.
 

반면, 지난해 1월 ‘아시아 복귀’를 표방한 미국 오바마 정권에게 핵심과제는 대중국 포위전략이었다. 아시아를 넘어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견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과거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동아시아에 대한 정치군사적인 개입의 명분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중국을 향해 노골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공세적인 팽창전략을 본격화하며 주변국들과 영토분쟁도 불사하자 그만큼 중국위협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위협론이라는 우회로를 굳이 거치지 않고도 중국과 직접 맞대응할 수 있는 안보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의 이 같은 대중국 대립전선의 이면에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 군산복합체는 무기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동아시아를 주목했다. 종전의 이라크나 아프간은 고가의 첨단무기 시장으로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2012년 한해는 북한을 비롯해 동아시아 일대에서 사상 유례없는 동시적 권력교체기를 맞고 있었다. 경제위기 속에서 자국의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국가주의가 대두되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그것이 직접적으로 맞부딪친 결과였다. 미국은 이 사태에 직접 개입하며 동이사아 군비경쟁의 격화 속에서 무기시장의 판을 키우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전반에 군비확대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북한의 은하3호 발사는 미국의 입장에서 여러 모로 호재였다. 미국은 중국견제를 위한 북한카드마저 되살아나면서 오랜 숙원사업인 한미일 MD(미사일방어) 구축 등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대응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슬슬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다크호스처럼 등장한 북한의 도발을 가지고 한바탕 굿판을 벌였지만 개운치 않은 모습이다. 전환점은 바로 북한의 3차 핵실험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 수준을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북한과 이란 간의 핵 커넥션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란의 핵보유는 미국이 가장 마주하기 싫은 선택지로 어떻게 보면 지금의 국면에서 시험대에 오른 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일 수도 있다.
 

한편,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아무래도 중국이었다. 현재 중국의 최대 외교현안은 일본과의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이다. 지난해 여름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에 강경대응하며 제5세대 지도자로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중국의 시진핑에게 그것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중국의 대외현안을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에만 집중하지 못하도록 전선을 분산시켰을 뿐 아니라 북핵사태를 빌미로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 만들어 버렸다. 더구나 북한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에게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주문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도 중국을 곤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중국은 사전에 모든 외교채널을 가동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중국에게 악재였다.
 

북한은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북중관계에서 미묘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 있어 국경을 맞댄 북한은 여전히 완충지대이자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다. 북한변수의 안정적 관리를 우선시하는 중국의 기존 방침은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한에 대해서는 박근혜의 집권을 계기로 관계개선을 시도하려는 것 같다. 미국의 중국견제가 확대되고 일본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한마저 이명박 정권 때처럼 노골적인 친미주의로 흘러갈 경우 안보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한다고 중국에 통보한 사실을 과거와 달리 남한에 바로 알려준 중국의 태도 변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미국의 견제


지난 대선시기 박근혜는 자신의 대북정책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집약했다. 남북신뢰를 기초로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인도적 대북지원과 대화창구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보기에 박근혜의 대선공약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미사여구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북한의 핵․미사일의 무력화를 위한 억지력 강화’가 핵심이었다. 이는 공세적인 군비강화를 통해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으로 남한의 군비확대가 결국은 중국견제를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박근혜의 집권을 안심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가 막상 집권하자 미국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같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친미정권의 수장을 바랐지만 박근혜는 그런 기대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명박이 임기 말까지 공들여 미국과 맺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제 무기구입 약속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당선인 신분시절 특사를 중국에 먼저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취임 후 첫 해외일정으로 4월 중국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북한문제의 공동대응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전의 친미일색에서 확연히 벗어난 모습이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남북간 경제협력을 일괄중단한 ‘5.24 조치의 해제 또는 완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독자적인 대북행보를 준비하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박근혜의 대외기조가 이른바 ‘친중비미’(親中非美)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은 미국과의 갈등을 더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박근혜가 당선인 시절부터 무려 23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권한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핵폐기물 관련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핵산업계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재처리 과정은 그 활용도가 1% 안팎에 불과하며 문제가 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대부분은 여전히 남게 된다. 주장과 다르게 경제성이 없을 뿐더러 사용후핵연료의 포화상태가 문제라면 원전 자체의 폐기가 우선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주목하는 것은 박근혜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남한의 무기급 핵물질 추출 가능성이다. 미국은 남한내 일부 보수세력의 핵무장론도 단지 대북 이데올로기 공세로 치부하기보다는 실제로 강한 의혹을 품고 있다.
 

박근혜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는 미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국면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북한위협론을 고리로 박근혜의 외교안보 노선을 한미일 3각동맹의 구조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압박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무산된 바 있는 한일 군사협정을 재추진하라고 공공연하게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북․대중정책에 있어 박근혜의 독자노선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뜻으로 ‘박근혜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한미 연합훈련 과정에서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B-52 폭격기를 공개한 것도 사실은 박근혜 정권과 일부 보수세력을 향해 내놓은 일종의 연출이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서 다른 생각을 품지 말라는 의미였다. 결국 박근혜의 첫 방문국이 5월 미국으로 정해진 것은 이 같은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근혜는 한반도 정세가 아직 엄중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대북정책과 직접 연계시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22일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첫 승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박근혜가 보수정권으로서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정부조직법 파행, 인사파동 등 정권 출범 직후부터 온갖 악재에 시달리면서 오히려 대북정책을 국면전환용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견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공약이행 의지를 밝힐수록 북한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강화가 필수적이지만 이는 미국이 원치 않는 그림인 까닭이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과의 신냉전 구도 속에서 한미일 3각동맹의 강화이며 이 속에서 남한을 어디까지나 자기통제 하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구도 속에서 좌우되는 한반도 질서


확실히 북한은 이전 김정일 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도발이나 위협을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했고, 이른바 출구전략까지 넌지시 내비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북미 평화담판이냐, 전쟁이냐’의 양자택일만을 말하고 있다. 지난 3월30일 북한이 ‘정부·정당·단체 특별성명’을 통해 남북 전시상황 돌입을 선언하며 “김정은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북한문제가 불거질 때면 흔히 거론되는 중국의 대북특사도 이번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북미관계는 물론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북한은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의 스타일 차이 또는 김정은의 치기어린 모험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북한이 수령제로 집약되는 권력체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김정은의 선택을 독단적인 자기판단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현재 김일성 일가의 세습정권과 공동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는 북한 지배층의 이해관계 역시 김정은으로 투영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목적은 결국 미국과의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대규모 경제적 지원에 있다. 
 

여차하면 이란과의 핵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겠다는 위협도 이런 목적에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북한은 지난해 12월 은하3호 발사 이후 일관되게 공세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 정세를 긴장국면으로 그것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키는 과정에서 북한은 마치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듯 권력기관 전체가 매우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동아시아 일대에서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구도 또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동북아 각국의 지배권력 교체가 마무리된 직후 북한문제가 본격 제기되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미국의 오바마 2기 행정부와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내부적으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기도 전에 은하3호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신냉전 질서가 고착화되는 현 상황에서 다시금 북한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북한문제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는 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에 남한과 미국이 대규모 무력시위를 통해 강경하게 맞대응한 것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대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제대로 통했음을 입증해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긴장조성이라는 자신의 1차적인 목표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반도에서 극단적인 군사적 대결양상이 지속되는 것은 관련국 모두에게 부담이다. 이는 북한이 더 잘 알고 있다. 장기간의 전쟁위기 상황의 피로도는 경제여건상 북한에 더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서해상 무력도발 가능성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은으로 상징되는 북한 지배층이 자신의 강경한 언사에 대내외적으로 힘을 싣기 위해 실제 제한적인 무력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지적 도발은 언제든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때문에 남한내 일부 운동진영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요구는 사태의 엄중함 속에서 일면 호소력을 갖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평화의 가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제는 북한도 의식하고 있듯 동아시아의 신냉전 질서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과 갈등구조는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역학구도를 형성시키고 있다. 남북간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질서가 곧 동아시아 역내 질서를 좌우하고 대변하던 시대가 마감되고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를 둘러싼 파워게임 속에서 한반도가 강한 규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제쳐두고 국가주석 취임 이후 첫 외교행보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상황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맞서 러시아와의 전략적 공동행보가 북한문제보다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미국 또한 외교안보 차원의 대응을 넘어 일본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끌어들이고 유럽연합과 TAFTA(범대서양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중국의 고립을 노리는 서방권의 대동단결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북핵사태가 오는 5월 한미 정상회담과 이후 각종 정치일정으로 외교적 해법이 모색되고 심지어 북미간 평화체제 협상이 본격화된다 하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여건은 여전히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남한 내에서 주장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그 당사자가 실질적으로 북한을 비롯한 부르주아 지배권력 사이의 약속과 합의라는 점에서 전쟁과 모든 핵에 반대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데 한계적이다. 또한 한반도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는 전쟁의 그림자가 남북관계 또는 북미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간 무력충돌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일관되게 ‘전쟁 반대! 모든 핵 반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북핵을 놓고 위험천만하게 전쟁위기를 가중시키는 동북아 지배권력에 맞서 평화를 위한 우리 스스로의 행동과 자발적인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글 :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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