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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끊임없이 합의한다”

 

 

 

스웨덴은 끊임없이 합의한다”

비예른 폰 시도브 스웨덴 국회의장에게 들어본 ‘복지와 성장의 조화’ 시스템… 위기마다 사회적 합의로 탈출구 마련, 인적 자본 개발로 ‘일하는 복지’ 만들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른바 ‘스웨덴 모델’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복지와 성장의 조화’로 불린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정치경제 모델을 선호하든 그렇지 않든, 스웨덴은 오랫동안 지구상의 여러 복지국가 중 최우등생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스웨덴 모델은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성장과 분배의 조화’ ‘사회적 대타협’의 조건과 가능성을 둘러싸고 곧잘 거론되는 시스템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와 관련해,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네덜란드 모델이 널리 연구되다가 요즘에는 스웨덴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타협·연대임금·산업구조 재편

<한겨레21>은 지난 4월11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스웨덴 국회의장인 비예른 폰 시도브(61)를 만나 ‘스웨덴 모델의 변화와 세계화의 도전’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비예른 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대담 자리는 스웨덴 모델 연구 전문가인 김용기 박사(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가 마련했으며, 인터뷰는 주로 김 박사와 비예른 의장 사이에 이뤄졌다.


△ 스웨덴의 전통적인 역사적 타협모델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비예른 폰 시도브 국회의장.

1990년대 들어 세계화 흐름 속에서 스웨덴 모델도 점차 동요하고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비예른 의장은 스웨덴의 전통적인 사회적 타협 모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사례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1913년에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일이 있고, 2차 대전 직후와 1960년대에도 공공연금 관련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1994년에도 노동, 자본, 정부 사이에 공공연금과 관련해 합의가 이뤄졌다.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이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합의를 모아냈다.”

스웨덴 모델은 △사회적 타협 △연대임금 정책(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의한 소득불평등 해소 △고생산성 분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세 가지가 주요 축을 이뤘다. 그러나 연대임금 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사실은 LO(스웨덴 블루칼라 노동조합총연맹)와 SAF(스웨덴경영자연맹) 그리고 SAP(스웨덴 사민당) 간의 역사적 타협이란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웨덴 모델은 일찍이 1930년대 초 집권 사민당이 스웨덴의 장래를 “노동 계급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행복해지는 ‘인민의 집’을 만들자”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어떤 세밀한 청사진에 따라 이 모델이 탄생했다기보다는 여러 번에 걸친 역사적·전략적 타협을 통해 각종 제도와 정책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노동조합·사용자·정부는 공동으로 경제·노동·산업에 대한 대규모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타협을 모색했다.

“각 정당마다 성장을 선호하지만, 평등한 분배가 성장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토론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스웨덴에서 소득 격차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정서가 강했다. 스웨덴의 노사 중앙교섭은 100년 가까운 전통이 있다. 최근에도 1995년 저인플레이션 정책을 중심으로 사용자협회와 노동계가 새로운 협상 틀을 만들어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합의를 통해 노동생산성은 물론 자본생산성도 높아졌다. 인플레이션도 잡혔다. 노동생산성을 중시할 것인지 소득분배를 중시할 것인지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1997년 가계소득에서 최상위 10%와 최하위 10% 간의 격차를 보면 미국은 5.94인 반면 스웨덴은 2.72에 불과했다.

“세계화에도 성장과 분배 확보”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환경 변화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은 해체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부터 고생산성 부문인 금속산업에서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중앙사용자단체)이 중앙교섭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임금협상에 나서면서 연대임금 정책이 흔들리고, 이전의 ‘완전고용’ 대신 실업률이 5%대로 증가하면서 스웨덴 모델이 심각한 곤경에 직면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와 복지를 양립하게 했던 스웨덴 복지국가 전략은 기능 부전에 빠진 것일까? 비예른 의장은 이에 대해 “스웨덴은 사실 자유무역 정책을 선호한다. 다른 노르딕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내부에서는 지금도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스웨덴은 특별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두고 있지 않다. 자본 이동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기업 지배구조가 고용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그 결과 세계화 흐름에서도 성장과 소득 분배라는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기업과 노동이 국제적 의식과 기준에 부합해야 하지만, 스웨덴 기업의 투자는 스웨덴 경제 내부의 고용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스웨덴에서도 우편·철도·전력 부문에서 민영화와 규제 완화가 취해지기는 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스웨덴 국민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함께 여러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세계화 속에서 스웨덴 모델도 고뇌하고 있다.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담 중인 비예른 의장(왼쪽)과 김용기 박사(맨 오른쪽).

사실 스웨덴에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들어오고, 복지 관련 각종 급부가 삭감되거나 수혜 조건이 엄격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스웨덴 모델의 골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스웨덴은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 자본이 들어와도 스웨덴 경제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 스웨덴에 투자한 외국 자본 100개 가운데 99개는 스웨덴 국내 환경에 맞추고 있다. 스웨덴 기업이든 미국 기업이든 노동 조건 등 제반 조건은 똑같다. 특별한 구별을 두지 않는다. 일부 외국 투자자들은 스웨덴 노동조합과의 관계 설정에서 성공하지 못해 고용 부문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고용 문제든 노동자의 안전 문제든 세금 문제이든 간에 스웨덴은 기본적으로 외국 자본에 대한 특혜나 예외 적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스웨덴 경제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지만 외국 자본이 스웨덴에 들어와서 특별히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교육·훈련으로 새 일자리 쉽게 얻어

사실 복지국가 스웨덴 모델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한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재분배와 평등’만 지향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 경제정책’을 통해 생산성 증가와 산업 합리화를 도모해 경제 성장을 꾀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웨덴 모델은 과도한 복지 수혜가 경제에 무거운 족쇄로 작용하거나 ‘효율’보다는 ‘평등’을, ‘시장’보다는 ‘국가’를 강조하는 복지국가 모델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자본의 수익성만 중시하지도 않고 노동세력이 경제를 주도하는 것도 아닌 스웨덴 모델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한 ‘중간층의 복지국가’를 지향했다. “북유럽 국가들에는 한편으론 불평등을 줄이는 문제가 중요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들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대신 그에 따른 정부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영미식이나 지중해식 그리고 독일을 대표로 하는 라인형 모델이 있지만, 북구에서는 그 나름의 또 다른 자율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스웨덴에서도 소득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위층의 수입이 주식시장 붐을 타고 많아졌지만, 최상위와 최하위층을 뺀 나머지 국민 80%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그리 큰 격차가 없다. 이들의 대부분의 소득은 2배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스웨덴 사회의 대다수는 소득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경영자가 스톡옵션과 연봉으로 지나치게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좌파·우파 가리지 않고 이런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사업가는 자기 돈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하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합당하고 특별한 노력 없이 아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돈만 많이 챙긴다면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젊은 층의 가정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회적 관심과 동정이 쏟아진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를테면 스웨덴에서는 지하철에서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사례가 없다.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비교적 균등하다.”

스웨덴은 모든 사람에게 ‘지금, 여기’의 평등을 보장하기보다는 인적 자본 개발을 강조하는 ‘사회적 투자전략’을 강조해왔다. 교육-노동-퇴직의 세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유롭게 노동시장을 떠나 교육을 받고 다시 노동시장에 참가하는 것이 쉽도록 정책을 펴온 것이다. 비예른 의장은 “스웨덴 모델에서 교육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웨덴 국민은 교육도 잘 받았고, 각종 사회 안전망이 있으므로 구조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세계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적극적인 직업 교육·훈련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자신감도 있다는 게 스웨덴의 강점이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생산성 향상이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소득정책이 사회적 합의로 도입되고, 이에 따라 생산성이 다시 높아지면서 가계 소득도 높아졌다.”

“기혼여성의 경제적 의존 없다”

스웨덴은 노동시장 참가를 전제로 몇몇 사회보장 수급권이 주어지고, 급부가 소득에 비례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복지(welfare)보다는 일을 강조하는 복지(workfare)에 가깝다. 특히 1930년대에 출생률이 급속히 낮아지고 ‘인구문제 위기’를 겪게 되자 정부는 출산수당·아동수당·육아휴직·부부 분리과세를 도입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산시켰다. 스웨덴에서 7살 이하 자녀를 둔 25∼45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1982년에 80%를 넘어섰고, 18∼64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1993년 77.2%에 이를 정도였다. 남녀간 임금 비율도 90%대로 거의 격차가 없다. “1960년대부터 스웨덴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기혼여성들이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이는 ‘사회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슬로건과 맞물려 주부를 비롯한 여성들의 광범위한 경제활동 참가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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