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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SEC 시험 관련 정보


증권집단소송법상 입증책임과 시장사기이론

- 미국에서의 발전과 우리 법과의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


김 정 수1)



 

【목 차】

 

 

 

Ⅰ. 서  론

Ⅱ.미국에서의 시장사기이론의 발전

Ⅲ.증권집단소송법안의 손해배상책

Ⅳ.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

Ⅴ. 결  론




Ⅰ. 서    론

1. 최근의 발전과 논쟁


1997년 IMF 사태 이후 지금까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증권집단소송법의 도입을 둘러싸고 많은 찬반의 논쟁이 있었다.2)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부에서 제출한 "증권관련집단소송법률안"(이하 ‘법안’)이 지난 2003년 7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통과하였는데, 법안의 내용3)도 법사위의 논의를 거치면서 일부 수정이 되었고, 시행에는 1년의 유예를 두는 내용으로 여야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증권관련집단소송(이하 ‘증권집단소송’)의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서 다시 집단소송의 남발 우려를 제기하면서 보다 강력한 남소방지장치의 추가적 설치를 계속해서 주장함으로써 동 법안은 다시 법사위로 보내져 재논의를 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현재의 법안 내용으로는 집단소송의 남발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가 없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주어 기업활동과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집단소송의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 남소방지를 위해 현재의 법안에 여러 가지 장치의 추가적 설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원고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그 중의 하나이다.4) 현재 법안은 입증책임에 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증권거래법의 규정을 원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행 증권거래법은 피고에게 모든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현행 증권거래법상 입증책임 체계는 피고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어 민사소송의 일반원칙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형평성 차원에서도 어긋난다는 주장이다.5) 이 주장은 구체적으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되기 위해서는 고의성, 의존성, 거래인과관계, 손해인과관계, 손해액 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입증책임을 일반적으로 제소 원고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6)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입법자가 배려한 현행 증권거래법상 입증책임의 분배철학을 무시하고, 남소를 이유로 들면서 집단소송의 제기를 어렵게 하기 위해 일반 민사소송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러한 반대의 의견과는 달리, 현행 증권거래법이 일부 원고의 입증책임의 부담을 덜어주는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원고에게 과다한 입증책임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집단소송은 물론이고 일반 증권소송에서 원고가 현실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원고의 입증책임을 더 완화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7)

2. 증권시장의 특수성과 입증책임의 현실


증권집단소송의 도입을 반대하는 측의 의견처럼 현행 증권거래법은 모든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부과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괄적으로 그러하다고 할 수 없다.

증권거래법상 입증책임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증권거래법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위치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증권거래법은 개별 위법행위에 대해 각각의 손해배상책임 규정들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민법 제750조의 특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증권거래법이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에 근거한 손해배상책임 규정 이외에 별도로 손해배상책임 규정을 마련한 것은 증권시장이라는 특수한 메커니즘을 통해서 불특정다수인간에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은, 일반적으로 대면거래를 통해서 발생하는 보통의 사기사건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피고와 원고간에 균형 있는 입증책임의 분배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8) 즉 민법의 손해배상책임의 법리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증권시장의 특수성, 특히 증권거래법이 규정하고 있는 개별적 금지행위의 특성에 맞게 손해배상청구요건을 개별적으로 마련9)하는 것이 투자자 보호 및 증시발전을 통한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증권거래법의 정신과 목적에 합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단소송의 경우에 원고에게 개벌적인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집단소송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10)

이러한 증권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증권거래법이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측의 주장처럼 "고의성, 의존성, 거래인과관계, 손해인과관계, 손해액 등"의 모든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다. 증권거래법의 손해배상체계에서도 피고의 고의성 입증이 원고의 몫이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보며, 손해액의 주장․입증도 기본적으로 원고의 몫이라는데 대해 크게 이의가 없다.11)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현실적으로나 법리적으로도 손해인과관계와 거래인과관계를 둘러싼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손해인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증권거래법은 손해인과관계와 관련하여 피고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키거나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주고 있다.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환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는 발행시장에서의 부실표시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의 경우이다.12) 증권거래법이 발행시장의 부실표시의 경우 입증책임을 완화해 주지 않고 피고에게 전환시킨 이유는, 발행시장의 경우에는 최초로 증권이 발행되어 투자자에게 매각되는 시장인 바, 유가증권신고서나 사업설명서상의 정보가 투자자가 투자판단 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이기 때문에, 당해 정보의 정확성을 강화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책임을 발행자에게 묻기 위한 것이다.13) 이에 반해 불공정거래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규정인 제188조의3 및 제188조의5의 경우는 원고가 입증책임을 지되, 입증책임의 요건을 완화해 주고 있다. 이는 내부자거래나 주가조작과 같은 불법행위는 고도로 복잡한 증권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원고는 피고의 불법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접근할 수 없는 현실등을 고려할 때, 입증책임을 완화해 줄 필요가 크기 때문이다.

거래인과관계14)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소 복잡하다. 거래인과관계는 일반 손해배상책임 규정인 민법 제750조의 문언상 명백하게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 나라의 손해배상책임의 법리에서도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민법학자들은 보고 있다.15) 그렇다면 증권거래법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증권거래법은 개별 위법행위마다 독자적인 손해배상책임 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증권거래법은 개별 조항에서 거래인과관계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증권거래법의 경우에도 민법과 같이 거래인과관계가 요구된다고 보는 견해와, 증권거래법이 증권거래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독자적인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근거에 보다 강하게 서서,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견해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한다고 보는 입장에서도 증권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이고 또한 법원의 입장인 만큼, 실질적으로 거래인과관계를 면제해 주는 것과 결과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개별 조항과 관련한 거래인과관계의 입증책임에 대해서는 관련된 부분에서 자세하게 기술한다.

미국의 경우도 Rule 10b-5 소송의 초창기에는 보통법상의 사기소송에서 요구되는 일반적인 요건들을 모두 요구하였지만, 증권거래의 특성, 즉 대표적으로 증권거래소와 같이 "복잡한"(complex) 공개시장에서 불특정다수인간에 대규모로 "비개성적"(impersonal)으로 이루어지는 현대증권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거래에서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부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증권소송에서 보통법상 사기소송에서의 경우와 동일한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특히 집단소송의 개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상황을 이해한 미국의 법원은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주기 위한 다각적인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시장사기이론"(Fraud-on-the- Market Theory)의 형태로 1960년대 등장하였고, 이후 많은 논란과 변형을 거치다가 연방대법원이 1988년 Basic 사건에서 이를 인정하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증권집단소송의 허가와 입증책임


증권집단소송법은 절차법으로서 집단소송에 의해 다투게 될 실체적 사건들은 집단소송법이 청구적격으로 인정하는 특정한 증권거래법 위반행위들이며16), 따라서 이들 위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증권거래법 규정들이 입증책임과 관련된 근본적인 규정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집단소송의 손해배상책임 문제는 실체법인 증권거래법이 중심이 되지만, 그러나 절차법인 집단소송법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작동한다. 즉 실체법이 특정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증책임을 집단소송의 허가단계에서 요구할 지 여부는 절차법인 집단소송법의 문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고의 입증책임을 어느 시점에서,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 것이냐의 문제는 집단소송에서 원고 및 피고 모두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의 경험은 대부분의 집단소송이 소송의 초기 단계에서 화해가 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17) 입증책임의 요구시점은 화해의 결정 여부, 화해액의 규모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입증책임의 요구 시점과 허가단계에서의 요구 수준은 집단소송의 남소를 막으면서 원고의 적절한 소권을 보장해 주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절차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파트 II에서 미국에 있어 증권소송에서의 입증책임과 관련한 논쟁을 살펴보되, 신뢰요건의 완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시장사기이론이 미국의 판례를 통해서 어떻게 논쟁되고 발전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시장사기이론의 변형들, 그리고 이러한 변형들이 1988년 연방대법원이 다룬 Basic v. Levinson 사건에서 어떻게 정형화된 형태로 확립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이하 '개혁법')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끝으로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과 개혁법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파트 III에서는 법안에서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한 규정들을 살펴보고, 파트 IV에서는 실체법인 증권거래법에서 행위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손해배상의 입증책임 문제를 살펴보고, 이러한 쟁점들이 판례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다루어졌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이러한 입증책임의 요구가 어느 시점에 요구되는 것이 적절한지, 즉 집단소송의 허가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본다. 파트 V에서는 결론적으로 증권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 또는 피고에게 전환시킬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현재의 증권거래법상 인과관계 규정의 정당성을 논하고, 마지막으로 기업의 지배구조개선과 경영투명성 제고 차원에서도 증권거래법과 증권집단소송법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Ⅱ. 미국에서의 시장사기이론의 발전

1. Rule 10b-5의 등장과 이를 근거로 한 소송의 발전


미국은 1929년 시장대붕괴 이후 연방차원에서 증권시장을 규제하는 연방법을 제정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1933년 증권법(이하 ‘33년법’) 및 1934년 증권거래소법(이하 ‘34년법’)이 있다. 이 법들은 위반행위와 관련하여 각각 개별적인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중 34년법 제10조(b)와 SEC Rule 10b-5는 개별 조항이 커버하지 못하는 위법행위들을 규제하기 위한 "포괄적 사기금지조항"(catch-all anti-fraud provision)으로 제정되었다.18)

그러나 34년법 제10조(b)와 Rule 10b-5은 해석을 위한 특정한 가이드나 소송의 요건에 대해 명시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법원은 보통법상 불법행위(torts)에 대한 원칙들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 법원들은 Rule 10b-5 소송에서 원고에게 (i) 증권의 거래와 관련하여, (ii) 피고의 인식(scienter)하에, (iii) 중요한 사실에 대한 허위표시(misrepresentation) 또는 누락(omission)이 있었고, (iv) 원고는 이를 신뢰하여 거래를 하였으며, (v) 이 거래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의 입증을 요구하였다.19) 따라서 이들 요건들은 기본적으로 보통법상 불법행위에서 요구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20) 그러나 증권시장을 매개로 해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증권거래에 이러한 보통법상의 일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들 요건 중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인과관계의 문제였다. 즉 법원은 보통법에서 요구되는 거래인과관계(transaction causation) 및 손해인과관계(loss causation)를 Rule 10b-5 소송에서도 동일하게 요구하였는데, 특히 증권거래소와 같은 공개시장에서 비개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사기행위의 경우, 신뢰요건을 어느 정도까지 요구하느냐의 문제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은 기본적으로 대면거래라는 전통적인 거래관계를 전제로 적용되던 개념들이 증권의 거래라는 특수한 상황에 접목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거래인과관계 즉 신뢰요건이란 원고가 피고의 중요한 사실에 대한 부실표시를 실제로 신뢰하고 거래를 하였을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거래인과관계는 구체적으로 (i) 원고가 피고의 부실표시를 실제로 믿었으며(believe), (ii) 그러한 믿음이 원고가 당해 거래를 하도록 하는 원인(cause)이었다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21) 반면 손해인과관계란 원고의 거래행위와 발생한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의미하는데, 즉 피고의 행위가 원고의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사실을 말한다.22)

이처럼 거래인과관계와 손해인과관계는 증권사기소송에서 원고가 부담하는 중요한 입증책임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먼저 거래인과관계는 소송의 각 원고들이 문제가 된 부실표시를 신뢰하여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하였다는 사실의 입증을 ‘개별적으로 요구’(individualized inquiry)하는 것인 반면, 손해인과관계는 부실표시가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주가의 변동을 초래하였다는 ‘일반적인 요구’(generalized inquiry)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23)

이처럼 포괄적 사기금지조항인 Rule 10b-5를 해석함에 있어서 법원이 어려움을 겪은 반면, 원고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강력한 소송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첫째로 이 조항은 포괄적 사기금지조항이기 때문에 증권법상 개별적인 금지조항이 없더라도 모든 사기적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둘째로 1960년대 이후에 들어오면서, 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증권법상 개별적인 조항에 근거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개별법이 요구하는 모든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반면, Rule 10b-5에 근거할 경우 거래인과관계가 추정이 되었고, 일부 법원의 경우에는 손해인과관계의 추정까지도 허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33년법 및 34년법상 개별적인 손해배상책임조항이 원고에게 요구하는 일부 입증책임 요건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24)

예를 들어, 정기공시 문서상에 부실표시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조항인 34년법 제18조(a)는 원고가 (i) 부실표시를 직접 신뢰하였고(현실의 신뢰요건), (ii) 부실표시가 증권의 가격에 영향을 미쳤을 것(손해인과관계)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원고가 Rule 10b-5에 근거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제18조(a)에서 요구하는 현실의 신뢰요건이 면제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의 대부분은 Rule 10b-5의 위반만을, 또는 개별조항과 동시에 Rule 10b-5 위반을 주장하였고, 법원도 이러한 중첩적 주장을 인정해 왔다.25)


2. 신뢰요건의 완화와 객관적 접근방법


(1) 객관적 접근방법의 등장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Rule 10b-5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법원은 명백하게 거래인과관계와 손해인과관계를 모두 요구하였다.26) 그러나 특히 거래인과관계와 관련하여 보통법상의 요건을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증권거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법원은 신뢰요건에 수정을 가하기 시작하였는데, 피고가 적극적으로 부실표시를 행한 경우, 원고가 당해 부실표시를 "실제로 신뢰"(actually rely)하였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27) 피고의 소극적인 부실표시, 즉 피고가 중요한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불공시(non-disclosure)와 누락(omission)의 경우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는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공시되지 않은 어떤 사실의 존재를 원고가 "신뢰"하고 거래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법원은 불공시나 누락의 경우, 원고가 중요한 모든 사실이 공시되었더라면 다르게 행동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신뢰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였다.28) 이러한 논리는 이하에서 논하는 List 사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가. List v. Fashion Park 사건29)

이 사건은 Rule 10b-5와 관련한 소송에서 원고의 신뢰 문제가 다루어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원고인 List는 증권을 매도한 자로서, 피고회사의 이사가 중요한 내부정보를 공시하지 않고 주식을 매수하였다는, 즉 내부자거래를 하였다는 사실을 이유로 Rule 10b-5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지방법원은 원고가 피고회사의 이사의 침묵에 대해 직접적인 신뢰를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인과관계의 존재를 부정하며 원고의 주장을 거부하였다. 제2심은 제1심과 같이 원고의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지만, 원고의 신뢰여부를 테스트하는 기준으로서 원고가 피고의 침묵을 신뢰하였는지 보다는, 피고가 불공시된 정보를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하였을 것인지 여부가 더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시하였다.

그렇다면 원고는 어떻게 자신이 당해 불공시된 정보를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문제가 된 정보가 "중요한" 정보라는 사실을 제기함으로써 다툴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제2심 법원의 이러한 해석이 보통법상의 신뢰요건보다는 다소 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List 기준에 의하면 원고는 자신이 당해 정보를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하였을 것이라는 가설적인 내용을 입증할 책임을 여전히 부담한다.30)


나. Affiliated Ute Citizens v. United States 사건31)

이 사건에서 은행과 그 직원들(피고)이 아메리칸 원주민들(원고)이 보유한 주식을 공개시장에서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이 원고로부터 매입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다른 투자자들에게 당해 주식을 매도하였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자신들이 매입한 가격보다 더 유리한 가격으로 원고들이 매도할 수 있는 유통시장이 있음을 알리지 않았는데, 원고는 이것은 중요한 사실의 불공시라고 주장하며 Rule 10b-5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0항소법원은 은행과 그 직원들은 매도자에 대해서 신임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당해 주식을 위해 마켓메이커가 활동하고 있다는, 즉 더 유리한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원고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신임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가 중요한 부실표시에 대한 신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의 판결을 거부하면서, 연방증권법률의 제정 목적은 사기적인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 엄격하고 기술적으로 해석되기보다는 그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탄력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이 사건의 경우처럼 공시의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공시를 하지 않은 경우, 신뢰요건에 대한 적극적인 입증책임은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전제조건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즉 연방대법원은 (i) 공시의무가 존재하고, (ii) 중요한 사실을 공시하지 않은 경우, 공시하지 않은 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피고가 특정한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경우, 그 정보에 대한 신뢰입증은 매우 ‘가설적’(hypothetical)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신뢰요건은 중요성 요건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의 추정"은 피고가 원고가 당해 사실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에는 깨어진다.32)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논리는 원고에게 신뢰의 추정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원고가 직면해야 할, 부존재(不存在)에 대한 신뢰입증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본질적으로 불공시가 문제가 된 사건의 경우, 공시의무가 존재하고, 문제가 된 불공시가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인 경우, 정보의 중요성은 피고의 투자판단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중요성 요건은 신뢰요건과 분리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들은 하나로 합쳐지면서 원고에게 신뢰의 추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33) 

이 사건은 대면거래에서 비롯된 사안이었는데, 이후 공개시장에서 발생한 불공시 사안에도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는 경우 신뢰요건이 불필요하다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부실표시의 경우에 있어서 신뢰요건의 완화를 위해서는 "시장사기이론"(Fraud-on-the-Market Theory)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2) Affiliated Ute Citizens 사건의 확장

가. Shlick v. Penn-Dixie Cement Corp. 사건34)

Schlick 사건에서 피고인 Penn-Dixie 사는 Continental 사의 경영권을 장악하였다. 원고인 Continental 사의 소액주주들은 피고가 Penn-Dixie 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Continental 사의 자산을 이용했고, Continental 사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원고는 Penn-Dixie 사는 양 사의 합병시 교환비율을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Continental 사의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위임장 진술서에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에서 지방법원은 불리한 교환비율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인 Penn-Dixie 사는 Continental 사의 대주주로서 양 사간의 합병을 주도할 수 있는 충분한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임장 진술서에 대한 원고의 신뢰여부와 합병의 의사결정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고, 즉 신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제2항소법원은 이러한 지방법원의 인과관계 논리를 뒤집었다. 항소법원은 Affiliated Ute Citizens 논리에 따라, 사안이 단순히 위임장 진술서의 부실표시 또는 누락이 문제였다면, 원고는 거래인과관계와 손해인과관계 모두를 입증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지방법원과 의견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제2항소법원은 이 사건은 단순히 부실표시 또는 누락의 문제만이 아니며, 주가조작 또는 유리한 조건으로의 합병을 포함한, 사기를 위한 의도된 계획이 포함된 사안인 만큼, 원고는 손해배상청구를 위해서 단지 손해인과관계의 입증만 요구된다고 판시하였다.

제2항소법원은 Competitives Associates v. Laventhal 사건35)에서 Schlick 사건의 논리를 재확인하면서, "사기적 행위를 위해 계획적인 음모가 있었던 경우, 누락 및 부실표시 뿐만 아니라 상당한 부수적 행위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신뢰요건은 요구되지 않는다"36)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연차보고서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과관계의 문제와 별 관계가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Schlick 사건과 Affiliated Ute Citizens 사건의 논리에 따라 원고는 거래인과관계를 입증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손해인과관계의 입증만이 요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 Rifkin v. Crow 사건37)

Affiliated Ute Citizens 사건은 불공시가 문제가 된 사건이었는데, 누락(omission)이 포함된 경우는 어떠한가? 이에 대해 제5항소법원은 Rifkin v. Crow 사건에서 Affiliated Ute Citizens 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Recognition Equipment 사에 대해 연차 및 임시보고서상에서 회사의 재무상태에 관한 부실표시 및 누락을 이유로 Rule 10b-5에 근거한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는 이러한 부실표시가 회사의 주가를 부풀렸고, 이렇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한 원고는 회사의 진정한 재무상태가 공시가 되었을 때 발생한 주가하락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였다.

지방법원은 원고가 부실표시와 누락이 있는 연차보고서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 따라서 원고가 신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송을 기각하였다. 그러나 제5항소법원은 신뢰의 문제와 관련하여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는데, 적극적인 부실표시와 누락의 상황을 분리하여 판단하였다. 즉 이 사안이 "부실표시"가 문제가 된 사안이라면 원심이 피고에게 신뢰의 입증책임을 요구한 것은 정당하지만, 본 사안은 "누락"을 이용한 사기적 행위임을 고려할 때, 원고는 Affiliated Ute Citizens의 논리에 따라 피고가 반증의 책임을 부담하는 신뢰추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3. 시장사기이론의 등장과 발전


(1) 의의와 배경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증권거래의 경우에 보통법상의 신뢰요건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주기 위해 시도된 방법이 앞에서 살펴본 "객관적 접근방법"(objective approach)이다. 그러나 증권시장이 더욱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거래가 증권거래소와 같은 공개시장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불특정다수인간에 이루어지는 "비개성적"(impersonal)인 거래이며, 또한 복잡한 거래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객관적 접근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시장사기이론이다.

이처럼 신뢰요건의 완화가 강력하게 제기된 것은, 첫째로 비개성적 시장인 증권시장에서의 분쟁은 전통적인 사기거래와는 달리 원고는 누가 피고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거래를 하며, 또한 거래가 완성되기 이전에는 피고의 부실표시 또는 불공시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반 사건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신뢰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증권시장에서 발생하는 분쟁해결 자체를 외면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공개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증권사기분쟁은 대규모의 원고집단이 존재하게 되는데, 전통적인 개념의 신뢰요건을 그러한 집단 전체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증권소송의 많은 경우가 집단소송 형식으로 제기되는데, 개별적인 신뢰요건들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경우 소송의 "공통성"(commonality)을 훼손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집단소송시스템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따라서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 소송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원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이론들을 검토하였는데, 이하에서 논하는 시장사기이론이 가장 강력한 형태라 할 수 있으나, 아직도 법의 형태로 결론에 도달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2) 시장사기이론의 발전

시장사기이론은 1960년대에 도입되어 많은 변형을 거쳐, 1988년 연방대법원이 Basic 사건에서 다수결로 이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써 Rule 10b-5 소송에 혁명적인 충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 판결은 집단소송의 원고들에게 신뢰요건의 추정을 허용해주는 반면, 반대로는 피고에게 이를 반증할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이후 미국에서 증권집단소송의 남소 현상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을 제공해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의 등장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38)

가. 초기 단계의 시장사기이론

(a) Blackie v. Barrack 사건39)

이 사건은 피고의 불공시를 쟁점으로 집단소송이 제기된 사건이다. 법원은 공개시장에서의 거래가 개입된 증권집단소송에서 신뢰요건을 입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론적으로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시장사기이론을 근거로 "신뢰의 추정" (presumption of reliance)을 인정하였다.40) 법원은 중요성 문제를 신뢰요건에 연결시키면서, 증권거래소에서 비개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상황을 고려할 때, 당해 표시행위의 중요성이 입증된다면, 당해 주식을 매수한 사실만으로 거래인과관계는 적절하게 성립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즉 Blackie 법정은 부실표시가 중요하다고 판단된 경우, 상황적으로 시장에서의 거래자들의 신뢰를 확립해 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중요성 입증만으로 신뢰의 추정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원고가 부실표시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한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는 경우에는 신뢰추정이 깨어진다.

이 논리에 따르면 신뢰의 추정은 단순히 당해 정보의 중요성 입증을 통해서 충족되어 질 수 있게 된다. 즉 당해 정보가 중요한 정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 증권시장에서 수많은 거래자들이 진실로 당해 정보를 신뢰하였다는 설득력 있는 상황적 증거가 된다고 학자들은 보았고, 법원들도 이를 수용하여 판결하였다.41) 즉 합리적인 투자자가 당해 부실표시를 중요한 정보로 판단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면, 부실표시가 실질적으로 당해 주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상관없이 원고는 신뢰의 추정을 얻게 된다.

(b) Panzirer v. Wolf 사건42)

이 사건에서 원고인 Panzirer는 피고의 연차보고서에 부실표시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연차보고서를 읽지 않고 월 스트리트 저널의 낙관적인 기사를 읽고 브로커와 의논하여 투자를 결정하였다. 즉 원고는 학교 교사였는데, 투자를 결정하게 된 주요 동기는 피고가 교육 비디오 시장에 참여한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컬럼 때문이었으며, 연차보고서의 부실표시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고는 만일 연차보고서에 부실표시가 없이 정확하였다면 컬럼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컬럼에서 취급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다면 자신은 피고의 주식을 매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의 핵심은 원고가 부실표시가 된 문건에 대한 직접적인 신뢰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증권시장의 완전성(integrity)에 대한 "간접신뢰"(indirect reliance)43)의 인정 여부였다.

제1심은 원고가 부실표시가 된 문건을 직접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간접신뢰는 Rule 10b-5 소송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결하였다. 그러나 제2항소법원은 제1심의 판결을 뒤집어 간접신뢰를 통한 신뢰의 추정을 인정하였다. 즉 법원은 원고가 부실표시를 신뢰하지 않았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즉 투자판단의 기초가 부실표시와 무관한 경우에도, 부실표시에 관해 시장에 대한 간접신뢰를 인정함으로써 신뢰추정이론의 확립에 있어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c) Flamm v. Everstadt 사건44)

1965년의 List 사건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공개기업의 주식을 사고 파는 공개시장에서 기업의 부실표시를 신뢰하고 거래하였다는 신뢰의 요구는 ‘비현실적’(impractical)일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theoretical)도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은 사기적인 부실표시가 증권시장의 주가에 영향을 미쳤고, 원고는 이 시장을 신뢰하고 거래를 한 경우 신뢰에 대한 개별적인 입증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앞의 Blakie 사건이나 Wolf 사건의 논리와는 다르게 신뢰요건의 추정을 작동시키는 "촉발제"(trigger)로서 주가의 변동만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Daniel Fischel 교수와 Frank Easterbrook 판사를 들 수 있는데,45) 이러한 논리가 법원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사건이 Flamm v. Everstadt 사건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투자자가 증권시장의 완전성을 신뢰하고 증권거래를 하였다면, 그리고 피고의 부실표시로 인해 주가가 실제로 영향을 받았다면, 원고는 부실표시를 간접적으로 신뢰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46)

(d) 결  론

결론적으로 초기 단계에서의 시장사기이론은 다음의 3가지 형태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i) Blakie 사건에서처럼 단순히 중요성의 입증으로 신뢰요건을 추정하는 입장과, (ii) Wolf 사건에서처럼 간접신뢰를 통해 신뢰요건을 추정하는 입장과, (iii) Flamm 사건에서처럼 주가변동으로부터 신뢰요건을 추정하는 입장 등이다. 이중 주가변동만으로 신뢰의 추정을 인정하는 마지막 이론이 원고를 위해 가장 넓은 그물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 효율적 시장가설과 시장사기이론

이후 법원들은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한 신뢰의 추정을 허용하게 되었고, 많은 학자들이 최선의 모델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1982년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이하 ‘EMH’)이 시장사기이론과 결합하면서 시장사기이론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효율적 시장가설은 특정 시점의 주가는 그 주가의 미래가치의 반영이라는 가설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주가는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에서 피고의 부실표시는 반드시 주가에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원고는 효율적 시장에서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피고의 부실표시는 주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 결과 법원은 간접적 신뢰에 대한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하여 신뢰를 추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의 주장자들은 시장사기이론의 하나의 초점이었던 손해인과관계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효율적 시장가설을 채택한 것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시장사기이론에 접목되면서, (i) 증권이 효율적 시장에서 거래된다면, 법원은 시장의 주가는 문제의 부실표시를 반영한다는 것을 추정하여야 하며, (ii) 부실표시가 시장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원은 원고의 신뢰요건의 충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보다 명확한 형태의 논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신뢰추정의 논리를 "이중의 추정"(double presumption)이라고 한다.47)

이처럼 효율적 시장가설은 부실표시가 실제로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었는데, 시장사기이론에 효율적 시장가설이 결합하면서 발전된 논리는 초기 단계의 시장사기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론적 분열은 1988년 연방대법원이 Basic 사건에서 정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EMH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재무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주가는 특정한 재무정보에 대해 과소반응 하기도 하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과대반응하기도 한다는 증거들이 제시되면서, 시장의 주가가 반드시 정보에 따라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다수의 비판적 연구들이 발표되었다.48)49) 또한 일부 법학자들도 완전하지 못한 금융이론을 기초로 충격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법리를 세운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다. 발행시장과 시장사기이론

시장사기이론의 적용을 위해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상황은 "효율적 시장" (efficient market), 즉 잘 발달된 공개시장에서의 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는 데, 유통시장에 나오기 이전 단계인 발행시장에서 이루어진 거래에도 동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지 논란이 제기된다.

Shores v. Sklar 사건50)에서 문제가 된 증권은 공개시장에서 거래된 것이 아니라 33년법상 등록이 요구되지 않는 지방채의 발행과 관련된 것이었고, 또한 이 채권은 잘 발달되지 않은 시장에서 매각되었다. 이 사건에서 피고 Sklar는 채권발행의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발행회사가 제공한 정보를 가지고 채권의 매각을 판촉하기 위해 offering circular를 작성하였고, 이 과정에서 Sklar는 의도적으로 또는 인식 없이 발행회사의 자산의 건전성과 재산에 대해 관련된 일련의 사실들을 누락하였다. 원고는 자신의 증권브로커와 의논한 후 그의 의견에 따라 채권을 매입하였고, 문제가 된 offering circular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였고, 따라서 읽은 적이 없었다.

발행회사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자 원고는 Rule 10b-5에 근거하여 집단소송을 제기하였고, 제1심은 원고가 인정하는 것처럼 그는 offering circular를 읽지도 않았기 때문에 신뢰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결하였지만, 제5항소법원은 시장사기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제1심의 판결을 번복하였다.

비효율적인 시장에서 최초로 발행된 채권의 거래에 대해 시장사기이론을 적용한 제2심의 논리는 독특한데, 제2심은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하면서도 이 사건의 쟁점을 원고가 열등한 채권을 매입한 것에 둔 것이 아니라, 원고가 매입한 채권이 사기적인 방법을 통해서 시장에 나왔다는데 두었다. 즉 증권법은 투자자에게 증권시장의 완전성을 신뢰하는 것을 허용하는데, 그 완전성은 시장에서 거래되기 위해 투자자에게 제공(offer)되는 증권은 시장에 나올만한 가치를 지녔을 것이라는 신뢰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심은 증권시장에 공급되는 증권이 사기적인 계획을 통해 제공되는 상품이 아니라는, 즉 시장의 완전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거래한 투자자에게 부실표시 또는 누락된 문서에 대한 직접적인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시하였다. 결론적으로 Shores 사건은 시장사기이론의 또 다른 변형을 보여주는데, 즉 이러한 견해는 투자자에게 (i) 시장의 완전성과 (ii) 증권시장은 사기로부터 자유롭다는 기대를 부여하는 "규제절차"(regulatory process) 모두를 신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제5항소법원의 판결에 대해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시장사기이론은 "효율적 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Shores 사건은 이러한 기본적인 흐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완전성"(integrity)과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으며, 시장의 완전성은 시장의 효율성의 산물에 불과하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서 Shores 법정이 사용한 이론은 "Fraud-on-the- Market Theory"가 아니라 "Fraud-on-the-Undeveloped-Market Theory"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다수의 연방항소법원들이 Shores 법정의 논리를 받아들였고,51) 이러한 논리는 시장사기이론의 변형으로 "Fraud-Created-the-Market Theory"라고 불려지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52)

오늘날 대부분의 증권시장이 공시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제철학 아래에서 규제절차에 대한 신뢰추정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여야 하는지 논란이 될 수 있으나, 시장사기이론이 반드시 효율적 시장가설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미국처럼 "Fraud-Created-the-Market Theory"53)의 형태로 인정하든, 아니면 다른 형태의 논리를 구성하던 Shores 법정의 결론은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한다.


(3) 연방대법원의 시장사기이론 채택

시장사기이론은 1960년대에 등장하여 다양한 유형의 사건 속에서 몇 가지 패턴을 보이면서 발전을 하였는데, 1988년 연방대법원은 Basic v. Levinson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시장사기이론과 부딪히게 되었는데,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시장사기이론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Basic 사건은 합병의 협상과 관련한 3번의 사기적인 공시를 문제삼아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건인데, 원고들은 피고가 정확하게 합병협상에 대해 공시를 하였다면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의 소장을 처음으로 접수한 지방법원은 신뢰의 추정을 받아들여 집단소송을 인정하였고, 제6항소법원도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한 신뢰의 추정을 인정하였다. 연방대법원도 신뢰요건은 Rule 10b-5 소송에서 하나의 요건이지만, 현대증권시장의 본질을 고려할 때, 그리고 연방증권법이 지향하는 보다 넓은 목적을 고려할 때,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한 신뢰의 추정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연방대법원은 공개되고 잘 발달된 증권시장이 관련된 소송에서, 신뢰의 추정은 집단소송의 메커니즘과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합리적이며, 또한 실질적으로도 중요하다고 판결한 것이다.54) 이와 함께 대법원은 피고가 신뢰 또는 손해인과관계를 논박함으로써 신뢰추정을 다툴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장사기이론을 통해서 거래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환하였고, 광범위한 이중의 추정을 인정하였다.


4. Basic 판결 이후 시장사기이론의 발전


연방대법원이 Basic 사건에서 시장사기이론을 채택하면서 그간의 논란을 종식시켰지만, 대법원은 하급법원들이 이 이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 이론의 적용에 있어서 다소의 혼란이 발생하였다.


(1) 효율적 시장가설의 전면적 확산

연방대법원이 Basci 사건에서 EMH를 기반으로 시장사기이론을 인정하자 연방 하급법원들은 집단소송의 원고가 신뢰추정을 위해 시장사기이론을 어떻게 '작동‘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EMH를 주요 원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부분의 하급법원들은 EMH를 절대적인 부분으로 해석하였는데, 즉 원고는 문제가 된 증권이 "효율적" 또는 "공개되고 잘 발달된" 시장에서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시장사기이론을 적용받게 되었다. 즉 원고가 신뢰의 추정을 위한 시장사기이론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는 법원의 효율적 시장의 존재에 대한 인정 여부로 답변된다.55)

이처럼 많은 하급법원들이 시장사기이론을 작동하는 가장 훌륭한 접근방법으로서 EMH에 대한 상당한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EMH의 핵심적인 개념인 "효율적" 또는 "공개되고 발달된 시장"에 대한 개념에 있어서 통일적인 기준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즉 어떠한 시장이 "open and developed" 또는 "efficient" 시장인가의 문제는 숙제로 남게 된 것이다.56)

Basic 사건에서 법원은 문제가 된 증권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되었기 때문에 논의할 필요도 없이 이를 인정하였다. 이는 뉴욕증권거래소 또는 주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증권은 효율적 시장에서 거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한편 뉴욕증권거래소나 아메리칸증권거래소, 그리고 Nasdaq 시장과 같은 거대한 시장이 효율적 시장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문제가 된 증권의 특징도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총 유통주식수에 대비한 거래량이나 거래대금, 애널리스트의 수, 기관투자자의 관여 정도 등이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57)58)

이와 관련하여, 일부 법원들은 어떠한 시장이 효율적 시장인지 여부를 검토하였는데, Cammer v. Bloom 사건59)에서는 (i) 평균 주간 거래량, (ii) 애널리스트 분석보고서의 수, (iii) 마켓메이커 또는 아비트라져(arbitrageur)의 존재, (iv) 유통주식수의 시가총액 및 거래량, (v) 예상치 않았던 기업의 사건 또는 재무상태의 공시에 주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지 여부 등을 들고 있다.60)


(2) 피고의 항변

일부 법원들은 피고가 "truth-on-the-market" 방어를 통해 시장사기이론을 반박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이는 피고가 문제가 된 정보의 진실이 이미 알려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다른 말로 진정한 정보가 이미 시장에 알려졌고, 따라서 문제가 된 허위표시는 신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61) 피고가 이 방어수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된 허위표시에 의해 오도된 사실을 효과적으로 상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하고 믿을 만한 수준으로 정확한 정보가 투자자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의 입증이 필요하다.62)

이처럼 법원은 피고에게 "상당할 정도의 특별한 사실"(intensely fact- specific)을 갖춘 반증을 요구하는데,63) 이러한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 실제로 피고가 반박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64)

이러한 피고의 반박 논리와 관련하여, 연방대법원이 특별히 어떻게 이를 논박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첫째로 마켓메이커가 허위표시행위와 관련하여 진실을 알고 있었음을 피고가 증명하는 경우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가격이 허위표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경우 인과관계가 끊어진다. 둘째로 피고가 진실이 이미 시장에 흘러들어 갔고, 허위표시가 주가에 미친 영향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인데, 진실이 공시된 이후에 거래한 투자자는 신뢰추정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째로 피고는 특정한 원고가 실질적으로 시장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면책이 가능하다.


(3) 법원의 신뢰추정 허용시기

시장사기이론의 추정을 허용하는 경우 집단소송 허가단계에서 결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법원간에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하급법원은 시장사기이론의 추정이 허가단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다. 법원들은 소송을 각하하는 경우에 법원들은 원고가 신뢰추정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사실적인 문제를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지만, 소송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소송의 허가단계에서 신뢰의 추정을 위해 광범위한 조사를 행해야 할지, 아니면 summary judgement 때까지 그러한 결정을 유보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서 견해가 나뉘어 있다.65)

대다수 법원들은 허가단계에서는 사실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하지 않고 원고의 신뢰의 주장을 단순히 수용하였으며, summary judgement 때까지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Basic 사건에서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66) 이에 반해 다른 법원들은 Basic 사건에서 시장사기이론의 추정은 집단소송 허가결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며, 따라서 집단소송의 허가단계에서 추정 문제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법원이 소송의 어느 단계에서 신뢰의 추정을 결정해야 하는지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증권집단소송의 흐름을 보면 압도적으로 소송의 초기 단계에서 화해가 이루어지고, 일부는 소송의 허용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에서 1999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82%가 초기에 화해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67) 더 나아가, 소송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은 소송에 대한 엄청난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피고로 하여금 소송을 가능한 한 피하게 만든다. 따라서 원고가 시장사기이론에 의한 추정을 어떻게 제기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 하급법원의 이러한 불일치는 증권집단소송의 원만하고도 효율적인 작동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68)


5. 1995년 증권민사소송개혁법의 제정과 변화


(1) 1995년 개혁법의 배경과 개요

1995년 연방의회는 증권집단소송에서 남소경향이 나타나고, 이러한 불건전한 흐름이 증권시장과 기업의 의사결정에 장애가 된다는 일부 증거가 입증되면서 연방증권소송체계의 개선을 시도하였다. 즉 불필요한 소송은 가능한 억제하고, 소송의 가치가 있는 소송들은 더욱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증권민사소송체계의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하였다.

개혁법은 우선적으로 증권소송의 총 건수를 줄여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점차 증가하고 있는 "strike suits"를 줄이고자 하였다. 이는 소송을 통하여 쟁점을 다투기보다는, 원고에게 유리한 증권집단소송 시스템을 단순히 이용하여 피고에게 압박을 가하여 화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 남소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혁법이 무분별한 남소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혁법의 취지가 기업으로부터 진정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해 주는 집단소송의 근본 정신을 퇴색시킨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개혁법은 증권시장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예측공시에 대한 기업의 소송 리스크를 경감시켜 줌으로써 투자자에 대한 정보공시의 촉진을 제고하였다.69)


(2) 시장사기이론에 대한 개혁법의 충격70)

개혁법이 시장사기이론이나 신뢰의 추정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하원에서 작성한 법안에서는 34년법 제10조(b)와 관련한 소송에서 명백하게 손해인과관계와 거래인과관계를 모두 요구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Basic의 논리를 뒤엎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원에서 거래인과관계의 요건은 삭제되었지만 손해인과관계의 요건은 살아남아 최종안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의 과정의 논란은 연방의회의 상당수가 시장사기이론 또는 신뢰의 추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71)

개혁법이 시장사기이론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지만, 개혁법의 내용과 세부 조항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정신은 향후 법원들이 시장사기이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중요한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하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주요 부분에 대해서 살펴본다.72)

가. 손해인과관계의 요구

개혁법은 원고의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Basic 사건 이후 확산되어 왔던 EMH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MH 이전의 시장사기이론은 문제가 된 허위표시가 실제로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경우, 즉 손해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신뢰의 추정을 인정하였지만, EMH는 허위표시가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방법에서 EMH는 신뢰에 대한 시장사기이론적 추정에 필요한 손해인과관계 입증의 대체물로서 활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하에서는 원고는 피고가 주가변동에 실제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 없이 집단소송의 허가단계에서 신뢰의 추정을 빠르게 얻는 것이 허용된다. 그런데 개혁법이 명백하게 원고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요구함으로써 EMH에 기반을 둔 시장사기이론에 상당한 제한을 가하였고, 결과적으로 피고에게 책임도 없는 사유를 근거로 일단 집단소송을 제기해 놓고, 피고를 압박하여 거대한 화해금을 취득하는 행태의 남소를 방지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개혁법은 시장의 효율성 여부에 관계없이 34년법 제10조(b)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는 모든 원고들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을 명백하게 요구하였지만, 원고가 소송의 초기단계에서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법의 정신을 통해서 볼 때, 소송의 초기단계에서 원고의 손해가 피고의 행위로 말미암아 야기되었다는 사실의 증명을 요구할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소송 초기단계에서의 입증을 적극적으로 명령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법이 하급법원이 원고에게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한 신뢰의 추정을 허용하여 인과관계에 대한 어떤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소송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나. 손해배상액 산정방법에 대한 새로운 사고

개혁법의 손해배상조항은 Baruch Lev 교수 및 Meiring de Villiers 교수에 의해 발전된 시장 움직임에 대한 "충격이론"(crash theory)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주가는 기업의 정보에 과민반응을 하며, 그리고 후에 올바른 정보가 공시되면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 이론에 근거하여 의회는 손해배상조항에 올바른 공시가 이루어진 90일간의 개념을 포함시켰다. 개혁법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시장이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회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90일 개념, 그리고 이것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충격이론은 기본적으로 Basic 사건에서 기반하고 있는 EMH 버전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개혁법의 손해배상조항은 시장이 즉각적으로 정보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고에 근거하여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해 보다 실질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한 것이며, 이는 시장에 대한 기술적인 이론인 EMH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다. 증권집단소송의 적절한 통제와 지원

앞에서 언급한 손해인과관계 입증책임의 법령화나 손해배상액 산정방법의 개혁을 논외로 하더라도, 증권집단소송의 수를 줄이기 위한 개혁법의 일반적인 목적은 시장사기이론을 채택하는 하급법원들에게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개혁법의 뒤에 숨어있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증권집단소송의 남발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Rule 10b-5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들에게 소장 및 증거요건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기소송과 관련하여 거대한 비용으로 시달리는 피고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개혁법의 일반적인 목적과, Basic 사건에서 보다 많은 소송을 허용하는 것이 투자자보호를 위해 최선이라는 판단으로 신뢰추정을 허용하였던 다수의 연방대법관의 철학은 서로 대립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대립적 관계에 놓여있지만 어느 철학이 옳으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며, Basic 사건의 신뢰추정 허용은 증권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경우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해 주기 위해 논리적으로 명백하게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결론이 남소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자, 이에 대한 보완으로 개혁법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의 입증책임의 어려움을 가능한 한 제거해 주는 동시에 집단소송의 남소를 방지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법원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하겠다.


(3) 개혁법과 사베인스-옥슬리법

미국은 2002년 7월, 연방증권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사베인스-옥슬리법" (Sarbanes- Oxley Act)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엔론, 월드컴, 아더 앤더슨을 붕괴시킨 회계부정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경영 및 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에 획기적인 개선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사베인스-옥슬리법이 증권규제의 다양한 부분에 걸쳐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1995년 개혁법에 의해 이루어진 개혁과 관련된 부분은 없으며, 특히 시장사기이론에 대한 개혁법의 생각에 변화를 가하는 시도는 전혀 없다. 즉 사베인스-옥슬리법이 투자자보호와 증권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증권규제의 범위를 상당할 정도로 확대하였지만, 증권사기의 입증문제와 관련하여 엄격한 요구를 가한 개혁법의 목적과 충돌하는 조항은 없다.

개혁법은 일부 원고와 변호사들이 집단소송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증권사기소송을 조작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Rule 10b-5 소송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위해 증권법의 조항들에 상당한 개혁을 가하였지만, 사베인스-옥슬리법은 이러한 개혁법의 실체적 조항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으며, 단지 절차적인 징벌적인 부분만에 손을 대었다. 따라서 개혁법이 시장사기이론에 대한 가하려고 했던 일정한 통제의 방향과 투자자보호라고 하는 증권규제의 커다란 이념간의 갈등과 긴장은 사베인스-옥슬리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Ⅲ. 증권집단소송법안의 손해배상책임

1. 집단소송의 허가요건


(1) 객관적 요건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일반 소송과는 달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법안 제7조, 제10조). 이는 집단소송이 가진 위력과 피고에게 미칠 수 있는 커다란 압박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남소를 방지하고 소송의 가치가 있는 사안에만 집단소송을 허용하기 위해 법원의 심사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현재 법안이 집단소송의 허가요건으로 열거하고 있는 것으로는, (i) 구성원이 50인 이상일 것, (ii) 구성원의 각 청구가 제3조에 해당되는 청구로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한 쟁점을 공통으로 할 것, (iii) 증권관련집단소송이 총원의 권리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수단일 것, (iv) 제9조에 따른 허가신청서의 기재사항 및 첨부서류에 흠결이 없을 것 등 4가지이다(법안 제12조). 이러한 허가요건은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제2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들 허가요건은 집단소송으로 허가 받기 위한 객관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으며, 법원은 허가결정을 내리기 전에 필요한 경우 대표당사자에게 허가신청의 이유를 소명하도록 할 수 있으며(법안 제13조 1항), 당사자를 심문하여 허부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동조 2항). 또한 법원은 심문과 관련하여 직권으로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동조 3항). 그리고 허가신청서에는 (i) 당사자, 법정대리인 및 소송대리인, (ii) 총원의 범위, (iii) 대표당사자 및 소송대리인의 경력, (iv) 허가신청의 취지와 원인 등이 기재되어야 한다(법안 제9조 1항).


(2) 허가의 요건으로서 입증책임

 법안 제9조 제1항은 허가신청서에 "허가신청의 취지와 원인"을 기재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허가신청의 취지와 원인을 어느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작성하여야 하는가? 이러한 요구는 허가단계에서 원고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미국의 경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개혁법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집단소송의 허가단계에서 원고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도 소송개시 단계에서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소송의 개시에 필요한 수준, 즉 소송의 가치가 있다는 정도의 입증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일반 소송의 경우 입증책임은 소송의 진행과정에서 필요한 단계에서 요구되는 개별 사항마다 입증하면 되는데, 이러한 일반적인 상황이 집단소송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법안에서 특별히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허가신청서에 기본적인 청구의 취지와 원인을 기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러한 요구가 인과관계의 입증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집단소송의 경우도 일반 소송과 마찬가지로, 소송의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마다 필요한 인과관계를 입증하면 충분하다 할 것이다.


2. 집단소송의 청구원인


우리 법안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청구원인으로 (i) 증권거래법 제14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ii) 증권거래법 제186조의5의 규정에 의하여 사업보고서, 반기보고서 및 분기보고서에 준용되는 제14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iii) 증권거래법 제188조의3 또는 제188조의5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iv) 증권거래법 제197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의 4가지로 제한하고 있다(법안 제3조).

이들 조항들은 사업보고서 등 정기공시의 경우 법 제14조의 규정을 준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각각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집단소송과 관련한 손해배상문제는 궁극적으로 증권거래법에서 행위별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각 조항이 증권집단소송과 관련한 손해배상책임의 실체법이 된다.

집단소송의 청구원인을 이렇게 4가지 사항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정기공시 문건상의 허위기재는 집단소송의 대상으로 인정하되 수시공시의 경우에는 불허한다는 것은 설명되기가 어렵다고 본다. 법을 도입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집단소송 도입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구원인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투자자보호와 형평성 차원에서 부적절하다.73)


Ⅳ.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

1. 서   론


(1) 민법상 손해배상책임과의 관계

증권거래법은 현재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청구원인별로 각각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과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은 어떠한 관계로 보아야 하는가? 이들의 관계에 대해 학설은 법조경합으로 보는 소수설과 청구권경합으로 보는 다수설로 나뉘어 있으나, 대법원이 한국강관 사건74)에서 이들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청구권경합으로 판단하면서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손해배상청구를 구하는 자는 양 청구권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데,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은 원고의 입증책임을 민법에 비해 완화해 주고 있어 원고가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실익은 없다고 본다. 다만 증권거래법상 배상청구권의 시효는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보다 짧기 때문에,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 경우에 한하여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실익이 있을 것이다. 또한 손해배상액 산정방식에 있어 민법의 규정이 유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민법상 청구권을 택할 실익이 있을 것이다.75)


(2) 손해인과관계와 입증책임

가. 민법상 인과관계론

피고의 불법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하는데,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가 필요한가? 민법은 규정상 명백하게 "상당인과관계"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민법 제763조, 제393조).76) 상당인과관계란 어떠한 사실이 현재에 있어서 결과를 발생하게 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때에 있어서도 역시 동일한 결과를 발생시켜야만 그 사실을 결과발생의 원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판례와 통설도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고 있다.77) 이 설에 따르면 "우연한 사정" 내지 당해 위반행위에 따르는 "특수한 사정"은 행위의 결과에서 제한하게 되어 인과관계의 범위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78)

그러나 이러한 상당한 인과관계의 요구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업재해․공해․의료과오 등에 관한 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을 매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소송의 경우 때때로 높은 자연과학적 지식을 요구하고, 공적 조사기관의 불비․가해자의 비협력 등 입증을 어렵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에 이러한 인과관계의 입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개연성설"이다.79) 즉 원고의 사법적 구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인과관계의 증명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80) 개연성설에 의하면 피고의 원인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정도의 것이면 된다는 것이다. 즉 원고의 이러한 입증에 대하여 피고가 거기에는 인과관계가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인과관계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것이다.81)

현재 우리나라의 판례들이 이러한 개연성설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일부 판례에서는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결과 발생의 개연성은 물론, 의무를 부과하는 행동규범의 목적, 즉 입법의 목적, 보호법익, 위반행위의 태양이나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서 규범목적설을 포용하고 있어, 원고의 입증책임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82)

나. 증권거래법상 요구되는 인과관계

그렇다면 증권거래법에서는 어느 정도의 손해인과관계를 요구하는가?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규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증권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민법의 특칙으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설치되었기 때문에 민법의 논리를 구태여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즉 증권거래법은 개별 위법행위의 특성에 맞게 각각 개별적인 손해배상책임 규정을 설치하고 있어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이 경우에도 개별 조항의 문언에 충실하게 독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증권거래법상 특칙이 없는 경우에는 당연히 민법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증권거래법은 위법행위의 특성과 책임의 정도를 고려하여 일부 경우에는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환시키고 있으며, 일부 경우에는 그 요건을 완화시켜 주고 있다. 증권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의 경우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은 원고 및 피고 모두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누가 입증책임을 지느냐는 소송의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 경우 원고보다는 법이 금지하는 불법행위를 행한 피고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법적 정의감에 충실한다고 본다. 개별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한 인과관계와 입증책임의 구체적 논의는 관련된 부분에서 자세히 기술한다.

다. 손해의 발생

원고가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피고의 불법행위가 원인이 되어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여야 한다. 예컨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손해가 생겼다는 증명이 없으면 손해배상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손해발생 또는 손해액의 입증책임은 보통 원고에게 있다.

증권거래법상 손해의 발생은 대부분 객관적인 가격이 있는 증권의 거래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소송의 경우보다 입증에 있어 쉬운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가조작과 같은 일부 사안의 경우, 피고의 특정한 행위가 주가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느냐로 논쟁이 발전하면 손해인과관계와 관련되어 손해발생의 입증이 어렵고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될 소지도 크다.83)

원고의 손해가 피고의 불법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면, 그 정도만큼 피고의 손해배상액의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


(3) 거래인과관계

거래인과관계 또는 신뢰요건이란 원고가 피고의 중요한 사실에 대한 부실표시를 실제로 신뢰하고 거래하였을 것을 말한다. 이러한 거래인과관계의 법리는 미국에서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거래인과관계는 구체적으로 (i) 원고가 부실표시를 실제로 믿었으며(believe), (ii) 그러한 믿음이 원고가 당해 거래를 하도록 하는 원인(cause)이었다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84)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먼저 민법 제750조는 이러한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는가? 민법 제750조의 표현상으로 명확하지는 않지만 민법학자들은 제750조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피고의 부실표시 등에 대한 원고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증권거래법상 개별 조항들은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는가? 세부적 논의는 개별 조항의 문제로 돌아가야 하는데, 증권거래법상 대부분의 규정은 명백하게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문언상 함축적으로 거래인과관계, 즉 피고의 부실표시를 신뢰하여 원고가 행동하였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85)86) 판례의 입장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인과관계의 존재가 요구되는 경우, 그 입증책임은 누가 부담하는가? 일반적으로 증권거래법상 거래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은 피고가 진다고 보아야 한다. 즉 원고의 거래인과관계의 존재를 추정해 주는 것이다. 많은 법원의 판례가 이러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87) 이는 미국이 시장사기이론을 적용하여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을 허용해 주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88)


2. 유가증권신고서 등 허위표시에 근거한 손해배상책임


(1) 현행규정

증권거래법 제14조 제1항은 발행시장에서의 허위기재로 인한 배상책임에 대해 "유가증권신고서와 제12조의 규정에 의한 사업설명서(예비사업설명서 및 간이사업설명서를 포함한다. 이하 이조에서 같다)중 허위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한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함으로써 유가증권의 취득자가 손해를 입은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자는 그 손해에 관하여 배상의 책임을 진다. 다만, 배상의 책임을 질 자가 상당한 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 수 없었음을 증명하거나 그 유가증권의 취득자가 취득의 청약시에 그 사실을 안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가증권신고서 등 발행시장에서 사용되는 공시문건에 허위표시를 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는 제14조는 1963년 4월 7일, 법률 제1334호에 의해 당시 제8조의2(허위기재로 인한 손해배상)로 처음 신설되었다. 당시 규정의 내용은 원고를 "선의의 유가증권 취득자"로 표현한 반면, 현재의 규정은 단서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1963년 신설 당시나 현재의 제14조 규정은 손해배상책임 요건으로서 (i) 위법성, (ii) 손해인과관계, (iii) 손해의 발생을 들고 있다. 다만, 단서에서 피고가 상당한 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 수 없었던 경우에는 면책을 해 주고 있다.  


(2) 손해인과관계와 손해배상의 범위

가. 입증책임

법 제14조는 "허위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한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함으로써 유가증권의 취득자가 손해를 입은 때"라고 명시하면서, 피고의 부실표시 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분명한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1997년에 추가된 제15조 제2항에서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제14조의 규정에 의하여 배상책임을 질 자가 청구권자가 입은 손해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허위로 기재․표시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기재․표시하지 아니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 부분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하여 피고가 원고의 손해가 자신의 행위에서 기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의 감면을 허용해 주고 있다. 

먼저 원고는 유가증권신고서상의 부실표시의 존재, 즉 위법행위에 대해 입증책임을 부담한다. 이 경우 개인투자자가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는 어려움이 있으며, 보통 증권감독당국의 발표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아무튼 원고가 피고의 위법행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입증하여야 한다. 증권감독당국의 발표나 법원의 판결이 있는 경우, 동 사실과 관련한 정보를 법원에 제출하면 입증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실표시와 원고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누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가? 제14조로만은 원고가 입증책임을 지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1997년 제15조 제2항이 신설되면서 피고에게 손해인과관계의 부존재의 입증책임을 요구함으로써 명확하게 피고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89)90)

따라서 원고로서는 자신이 당해 부실표시가 이루어진 시점 또는 그 이후의 시기에 거래를 해서 손해를 입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만의 제시로 충분하다고 본다. 즉 손해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이 아니라 피고의 불법행위의 증명과 함께 자신이 유사한 시기에 거래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책임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나. 제15조 제1항의 성격과 손해배상의 산정방법

제15조 제1항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고, 특히 마지막 문언에서 "...... 금액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이 규정의 성격이 간주규정인지 추정규정인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996년 헌법재판소가 영원통신 손해배상청구사건과 관련해서 제15조 제1항(당시 제15조)의 성격에 대해서 결정을 내린바 있는데,91)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증권거래법 제15조92)는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는 주가의 등락분 중 감사의 부실감사 등으로 인한 하락분을 가려내어 그 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이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반드시 용이한 것이 아님에도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입증을 요구할 경우 투자자보호라는 증권거래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함에 충분하지 아니하므로 손해배상의 범위를 법정(간주)함으로써 투자자보호를 강화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하여 간주규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제15조를 문언대로 간주규정으로 볼 때 이를 준용하도록 한 증권거래법 제197조 제2항이 헌법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하므로, 이를 단순위헌으로 선언할 경우 증권거래법 제197조 제1항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반투자자는 민법상의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되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다고 판단하면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간주규정과 추정규정은 본질적으로 상이한 규정이라기보다는 간주규정이 배상의무자의 반증을 불허함으로써 추정규정보다 배상권리자를 보다 더 두텁게 보호하는 정도의 질적․양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것이고 따라서 증권거래법 제15조를 추정규정으로 해석하더라도 입법권의 침해에 해당하지는 아니하므로 이를 추정규정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위헌성을 제거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제15조를 추정규정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 제15조 제1항의 방식에 반드시 구애받을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일부 법원들은 제14조의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한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서 제15조 제1항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적용하여 손해배상액을 산정하였다.


(3) 거래인과관계의 추정 

가. 제14조의 해석

제14조는 문언상 명확하게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함축적으로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민법 제750조의 해석의 논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느냐에 있어서는 민법과는 달리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민법의 경우에는 그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제14조의 경우에는 피고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증권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의 누락의 경우는 물론 적극적 부실표시의 경우도 동일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미국의 시장사기이론과 같이 원고가 부실표시를 읽고 직접적인 신뢰를 하지 않았어도, 증권시장의 특성상 시장에 대한 신뢰, 즉 간접신뢰를 인정하여 원고의 거래인과관계를 추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가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을 깨뜨릴 수 있는데, 즉 원고가 공시사실이 부실표시라는 것을 알았거나,93) 이미 시장에 당해 사실이 알려진 경우, 즉 "ruth-on-the-market" 방어를 할 수 있는 경우에 이러한 추정은 깨어진다.

나. 한국강관 사건과 그 의미

거래인과관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판례로는 한국강관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제2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이 거래인과관계 부분에 대한 내용을 분명히 하였다. 한국강관 사건은 청운회계법인의 부실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제14조에서 쟁점이 되는 부실기재의 문제와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거래인과관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매우 중요한 판례이다.94)

이 사건에서 원고의 증권거래법 제197조 제1항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는 증권거래법상의 시효소멸로 인하여 다툼의 실익이 없어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해서 내려진 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제2심은 "원고가 .... 분식된 재무제표와 부실한 감사보고서를 신뢰하고 이를 투자판단의 자료로 삼아 이 사건 주식을 취득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 증거가 없고"95) 라고 판단하면서, 이를 원고 패소의 이유로 삼았다. 즉 제2심은 원고가 거래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가 소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함에 있어서는 다른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증권거래소를 통하여 공시된 피고 회사의 소외 회사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소외 회사의 정확한 재무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믿고 그 주가는 당연히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리라는 생각 아래 소외 회사의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96)라고 판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원고가 분식된 재무제표와 부실한 감사보고서를 신뢰하고 이를 투자판단의 자료로 삼아 주식을 취득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고 만 것은 채증법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97)이라 하면서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미국의 시장사기이론을 반영하여 공개시장에서 원고가 피고의 부실표시를 신뢰하고 거래하였다는, 거래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간접적 신뢰를 인정하여 원고의 신뢰를 추정해 주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시효만료로 인해 증권거래법상 신뢰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고,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논리를 전개하였는데, 민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장사기이론을 적극적으로 원용하여 원고의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을 허용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민법학자들이 제750조의 경우 거래인과관계가 요구된다는 점에 일치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한국강관 사건에서 대법원이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거래의 경우에, 민법 제750조에 근거한 일반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원고의 거래인과관계를 추정해 줌으로써 원고의 입증책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4) 피고의 항변과 반증

법 제14조 단서는 피고가 "상당한 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 수 없었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피고의 면책이 허용된다. 이는 피고의 과실책임을 규정하면서, 피고에게 "주의의무의 항변"(due diligence defense)를 허용하고 있다.

발행시장에서의 부실표시와 관련하여 배상책임을 질 자는 다양하며, 특정 분야의 담당이사나 전문가들의 경우 due diligence 의무를 다한 경우 면책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면책의 범위에 발행자가 포함되는 것은 입법론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미국의 경우 발행회사는 due diligence의 항변을 주장할 수 없다(33년법 제11조(b)).

또한 "취득자가 취득의 청약시에 그 사실을 안 경우"에도 면책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피고가 부담한다.

(5) 판례 분석

가. 신정제지 사건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상의 부실표시를 근거로 소송이 제기된 사건으로 1996년 6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 제기된 신정제지 손해배상청구 사건을 들 수 있다.98) 이 사건에서 원고는 발행시장에서 당해 주식을 매수한 자, 즉 법 제1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가증권의 취득자"가 아니라 거래소에 상장된 이후에 거래소시장에서 매수한 유통시장에서의 매수자이다. 따라서 법원은 증권거래법 제14조를 적용하지 못하고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여 책임을 물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 병은 위와 같은 주식을 불법으로 상장시키고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에 허위의 사실을 기재하여 주식투자자인 원고에게 손해를 입게 한 행위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인용된 판결문에서 보듯이 법원은 피고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인정하였고, 또한 그로인한 원고의 손해를 인정하면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손해인과관계나 거래인과관계와 관련하여 원고의 입증책임 문제를 특별히 거론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에서 원고의 매수시점은 당해 주식이 거래소에 상장된 지 불과 2달 후이고, 이 시점은 상장 이후 첫 번째 반기보고서가 발표되기 이전의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 시점의 매수자들에게 발생시장에서 공시된 문건인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를 신뢰하고 매수하였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라 할 수 있다.

또한 손해인과관계도 원고의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가 명백하고, 원고가 당해 주식을 매수한 이후 그러한 부실표시가 알려지면서 주가가 하락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시장사기이론의 추창기에 피고가 중요한 정보와 관련하여 부실표시가 있었고, 그 부실표시가 시장에 알려진 이후 주가가 하락한 경우, 피고의 부실표시와 원고의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의 존재를 추정해 준 판례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판례는 증권거래법이 아니라 민법에 근거한 경우라도 증권시장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 문제는 증권시장의 특수한 상황, 즉 공개시장에서 명백하게 불법행위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불법행위가 알려진 이후 주가가 하락하여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특별히 원고의 입증책임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판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 옌트 사건

피고회사 옌트는 1997년, 재무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기 위하여 등록과정에서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에 자금사정이 어려운 사실을 기재하지 않고 누락시켰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 을은 유가증권신고서를 신뢰하였거나 적어도 김 모씨 등을 비롯한 동부증권 직원들과의 상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위 유가증권신고서의 주요 내용을 파악한 후 이를 투자판단의 기초로 삼아 피고 옌트의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보이고, 그 후 피고 옌트의 주가가 하락하여 위 원고가 손해를 입었다 할 것이므로 발행인이자 신고인인 피고 옌트, 위 신고자의 이사인 피고 戊, 위 발행인과 당해 주식의 인수계약을 체결한 피고 동부증권은 증권거래법 제14조에 따라 각자 위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99)

이 사건은 발행시장에서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에 중요한 사항이 누락된 사건인데, 법원이 원고가 동 서류의 부실기재를 간접적으로 신뢰하였을 것이라는 신뢰추정을 인정하였다. 이는 미국의 시장사기이론을 발행시장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3. 사업보고서 등 정기공시문서의 부실표시로 인한 손해배상


증권거래법은 제186조의5에서 사업보고서, 반기보고서 및 분기보고서 상의 부실표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경우 발행시장에서 유가증권신고서 등 문건에 부실표시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제14조 및 제15조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제14조에 의해 피고가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부담하며, 원고의 거래인과관계는 추정 또는 면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15조 제1항에 의해 손해배상액이 산정될 수 있으며, 제2항에 의해 원고의 손해가 피고의 행위와 관계없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감면된다.


(1) 진흥기업 사건

진흥기업 사건100)은 1989.3.15 증권시장지에 1988년 결산결과 55억원 정도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하였다는 취지의 결산속보를 게재하였는데, 외부감사를 거쳐 결산을 확정한 결과 오히려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였음이 밝혀지자 투자자가 허위표시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된 행위로 인하여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는 보통 그 결과를 발생케 하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인 바, 주식시장에서 매수인이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할 때에는 당해 회사의 자산상태, 사업전망 뿐만 아니라 정부의 경제시책, 경제계의 제반 상황과 업계의 전망, 물가 등 경제적인 요인은 물론, 노사분규, 학원문제 등 사회적인 여건, 기타 국내외 정치상황, 외교문제, 국제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을 참작하여 이를 결정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건에 있어서는 원고가 위 각 주식을 매입할 때 위 금액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하였다는 결산속보만 믿고 이를 매입하게 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101) 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은 초창기의 판결이기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102) 먼저 손해인과관계에 대해서 법원은 "상당한 인과관계"를 요구하였는데, 구체적으로 투자자들이 경제계 제반상황은 물론 노사분규, 학원문제까지 고려하여 투자하기 때문에 피고가 부실표시 한 결산속보만을 믿고 이를 매입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원고의 입증책임의 실패를 논하였다.

이 사건의 근거 규정은 제14조와 제15조인데, 당시에는 피고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전환시킨 제15조 제2항이 신설되기 이전이어서 원고에게 입증책임이 있었다. 또한 거래인과관계도 엄격하게 해석하여 "피고가 부실표시 한 결산속보만을 믿고 이를 매입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였다. 증권시장에서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은 다양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원고는 법원이 지적한 수많은 요소 중에서 결산속보의 부실표시가 주가에 미친 영향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원고 패소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제15조 제2항을 신설하여 불법행위를 행한 피고에게 인과관계의 부존재의 입증책임을 전환시켜 원고의 부담을 덜어준 것은 적절하였다고 생각한다. 증권시장에서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많으며, 따라서 피고의 불법행위가 주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가를 입증하는 것은 원고 및 피고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피해자인 원고보다는 불법행위를 행한 피고에게 입증책임을 부담토록 하는 것이 법적 정의감의 차원에서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피고는 자신이 비록 불법행위를 하였지만, 자신의 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4. 내부자거래와 손해배상책임


(1) 법령의 규정

증권거래법은 내부자거래와 관련하여 제188조의3에서 "제188조의2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당해 유가증권의 매매 기타 거래를 한 자가 그 매매 기타 거래와 관련하여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103)104) 이 규정은 매우 단순하게 내부자의 민사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내부자거래가 가진 구조적 특성상 내부자거래의 손해배상책임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2) 내부자거래의 구조적 특성

먼저, 내부자거래란 기업의 내부자가 중요정보가 공시가 되기 이전에 당해 정보를 이여 거래하는 행위를 말하는데,105) 따라서 내부자거래는 전형적으로 불공시(non-disclosure)가 문제가 되는 불법행위이다. 이는 인과관계의 입증책임 분배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내부자거래는 피해자가 없는 증권범죄라는 일부 시각도 있는데, 이러한 인식과 관련하여 다른 증권거래법상 불법행위들은 민법 제750조와 청구권경합의 관계에 있으나, 내부자거래와 관련한 제188조의3은 민법에 근거한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가능하다.106) 이러한 견해는 내부자의 거래가 상대 거래자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거래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즉 내부자거래 자체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으며, 실질적인 가격변동은 내부자거래가 거래를 종료한 이후에 당해 내부정보가 시장에 공시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부자의 거래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사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부자거래를 증권거래법에서 중대한 증권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시효의 만료로 제188조의3에 의한 청구권이 소멸되는 경우라도 민법 제750조에 근거한 청구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내부자가 취득한 이득 또는 회피한 손실이 형사처벌을 통해서 환수되지 않는 우리의 일반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민사소송을 통해 부당이득을 환수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107) 

이러한 특성 이외에도 내부자거래의 상대방은 공개시장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매치되어 거래의 상대방이 되게 되는데, 원고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가 어려운 문제가 된다. 즉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적 거래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내부자와 매치되어 거래한 자에게만 원고적격을 부여할 것인지, 이것이 부당하다면 원고의 범위를 확장하되 어느 정도까지 확장이 필요한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이는 순수한 법리적 문제라기보다는 입법정책의 문제로 귀결된다.


(3) 인과관계

내부자거래의 경우 누구에게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이 있는가? 제188조의3은 손해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으며, 원고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특정다수인간에 대량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공개시장에서 공시되지 않은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거래하는 내부자거래의 경우, 원고가 자신의 손해발생과 피고의 행위간에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법 제188조의3은 원고의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상당히 완화해 주고 있다. 즉 피고가 내부자거래를 행한 이상, 원고는 자신이 내부자거래가 발생한 비슷한 시기에 거래를 하였고, 그러한 거래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의 입증 또는 주장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고의 손해인과관계가 실질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피고는 반증에 의하여 이러한 인과관계의 추정을 깨뜨릴 수 있다.108)

거래인과관계는 어떠한가? 법 제188조의3은 원고에게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이는 앞서 논한 것처럼, 내부자거래의 경우 원고들은 그러한 거래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를 하게 되는데, 그러한 거래에서 피고의 불공시를 신뢰하였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내부자거래의 경우에는 신뢰요건을 추정해 주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법 제188조의3에서 명시적으로 이를 요구하고 있지 않고 있다.109) 결과적으로 내부자거래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 규정인 제188조의3은 원고의 입증책임을 상당히 완화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110)


(4) 집단소송의 제기와 원고의 범위

집단소송에서 원고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부자거래의 특성상 내부자거래의 상대방은 우연히 결정되는 바, 원고의 범위를 결정함에 있어 어려움이 많이 발생한다.

법령에서는 "내부자의 거래와 관련하여 손해를 입은 자"로 되어 있는바, 여기서 "관련성"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가 소송에서 쟁점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집단소송의 경우 "집단"(class)의 확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부자거래의 원고의 범위를 결정하는데 현실적으로 3가지의 기준이 있을 수 있는데, 즉 (i) 내부자와 반대방향에서 거래하여 매치된, 즉 대응관계에 있는 자, (ii) 내부자거래가 거래한 시점 이후 공시가 있기 전까지의 모든 반대방향의 거래자, (iii) 내부자가 거래한 동 시기의 거래자로 하는 방법 등이다.

먼저, 첫 번째 방법은 기술적으로 매치되는 자에 한정하여 원고의 범위가 우연적으로 결정된다는 단점과 함께 원고의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고,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와는 반대로 원고의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또한 내부자가 공시의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신의 거래가 끝나고 공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루어진 모든 거래자에 대해서까지 배상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111) 이는 우리 법이 "관련하여"라는 표현을 통해 원고의 범위를 일정한 범위로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고, 원고의 범위를 제한하되 기술적으로 매치된 자의 범위보다는 내부자가 거래한 유사한 시기에 반대 방향에서 거래한 자를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기본적인 법의 해석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선택은 피고가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액의 한도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112)

미국의 경우, 1974년 Shapiro Lynch, Pierce, Fenner & Smith, Inc. 사건113)에서 내부자거래가 이루어진 "동일기간 중에"(during same period) 공개시장에서 당해 증권을 매수한 모든 매수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인정하였는데, 이 사건에서 동일기간의 범위를 내부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동안, 즉 내부자가 거래를 시작하여 동 정보가 공개되는 시점까지로 보았다. 그러나 Shapiro 사건에서 등장한 동일기간의 개념이 지나치게 넓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청구권자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Fridrich v. Bradford 사건114)을 들 수 있다. Fridrich 사건에서는 청구권자의 범위를 내부자가 거래하고 있는 기간 중에 공개시장에서 반대방향으로 거래한 모든 자로 인정하였는데, 이 경우 역시 내부자의 거래가 연속적이지 않고 며칠의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경우, 그 사이에 이루어진 많은 거래에까지 원고적격을 부여하는 것이 되어 비현실적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논란을 거치다가 1988년 "내부자거래 및 증권사기집행법"(ITSEF : Insider Trading and Securities Fraud Enforcement Act)을 제정하여, 청구권자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내부자와 동시기(contemporaneously)에 거래한 자"로 한정하였다(34년법 제20A조(a)).


5. 시세조종과 관련한 손해배상책임


(1) 법령의 규정과 인과관계

법 제188조의5 제1항은 "제188조의4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그 위반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가격에 의하여 유가증권시장 또는 협회중개시장에서 당해 유가증권의 매매거래 또는 위탁을 한 자가 그 매매거래 또는 위탁에 관하여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 인과관계

시세조종도 불특정다수인간에 거래되는 증권시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고의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의 어려움을 배려하여 "위반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가격에 의하여 유가증권시장 또는 협회중개시장에서 당해 유가증권의 매매거래 또는 위탁"을 한 것만 입증하면 충분한 것으로 그 요건을 완화해 주고 있다. 따라서 원고는 피고가 위법행위인 주가조작을 하였고, 그 위반행위로 인해 형성된 가격으로, 즉 피고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종된 가격으로 원고가 거래하였다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제시하면 청구요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법이 원고의 입증요건을 완화해 주고 있지만, 원고는 손해의 발생을 입증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고의 시세조종에 의해 형성된 가격에서 원고가 거래를 하였지만, 주가가 하락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나, 피고의 행위가 실제로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의 행위가 제188죠의4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하다. 즉 현실적으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어야 한다.

거래인과관계는 어떠한가? 시세조종은 크게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과 부실표시에 의한 시세조종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행위들이 인위적으로 시세를 조종하는 행위임에는 공통되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거래인과관계 요건을 분리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부실표시에 의한 시세조종의 경우는 구조적으로 제14조 및 제186의5의 경우와 유사하다. 단지 시세조종의 경우에는 "위반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가격"은 적극적인 허위표시에 의해 형성된 가격이 될 것이며, 따라서 이 경우 거래인과관계가 요구된다고 본다. 그러나 시장사기이론에 근거하여 원고에게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이 허용된다고 본다. 둘째로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경우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약하다고 본다.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의 경우 원고가 매수한 가격은 피고의 현실적인 주가조작 행위로 인해 형성되어 있는 가격인데, 원고는 주가조작이라는 불법행위의 존재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에 거래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본다. 아무튼 이 경우에도 원고에게 거래인과관계의 추정이 허용되며, 피고가 이를 반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본다.


(3) 대한방직 손해배상청구 사건 

이 사건은 현실거래에 의해 이루어진 시세조종행위와 손해의 인과관계를 논한 사건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1심에서 문제가 된 주식의 가격이 이전보다 훨씬 높게 형성된 사실 및 원고들이 이 사건 주식을 매매하기 시작한 이후 이 사건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여 원고들이 손해를 입은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원고 주장과 같이 피고들에게 증권거래법상의 책임이나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을 묻기 위하여서는 피고들의 시세조종행위와 원고들의 손해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이러한 인과관계를 인정하려면 이 사건의 주식의 가격이 적정주가에 비해 높게 형성되었고, 이렇게 고평가된 주식의 가격이 주식시장의 선순환에 의하여 적정주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가격이 하락하여 원고들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원고는 그러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115)

이에 제2심에서 간단한 논리로 제1심의 판결을 취소하였는데, 피고들의 행위는 "증권거래법 제188조의4 제1항 제1호, 제2호 또는 제2항 제1호에서 금하는 시세조종등 불공정거래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피고들은 "법 제188조의5 제1항에 따라 이 사건의 주식의 매매거래를 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116)

이 사건에서 제1심의 논리는 매우 자의적으로 보인다. 즉 피고들의 행위가 위법행위임이 명백하고, 법 제188조의5 제1항은 "그 위반행위로 인하여 형성된 가격에 의하여" 손해를 입은 자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식시장 전체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동 주식도 하락하였다는 등, 당해 주식은 유통물량이 적은 소형주이기 때문에 주가의 하락폭이 컸다는 등 인과관계 성립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논리를 전개하며 손해인과관계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제2심의 논리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법 제188조의5가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피고의 위법행위로 인해 주가가 높은 가격에 형성되었고, 원고가 그 가격으로 거래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피고는 배상책임을 진다. 따라서 제188조의5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법행위의 성립이며, 다음은 원고의 손해의 발생이다. 이 사실만 입증되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되며, 이러한 측면에서 제2심의 판결은 정당하다고 본다.

(4) 세종 하이테크 사건

이 사건은 시세조종으로 이미 형사판결을 받은 사건으로서 피고의 동일한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가 제기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제1심에서는 원고가 승소를 하였으나, 제2심에서는 원고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형사사건에서의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사소송에서 그 책임을 부정한, 흔치 않은 판례라 할 수 있다.117)

제2심의 논리는, 비록 피고의 행위가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는 피고의 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한 입증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실제로 주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시세조종 행위가 없었다면 시세조종 행위기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가를 정상주가로 볼 수 밖에 없고, 조작주가가 정상주가보다 현저히 높게 형성되었다면 시세조종 행위가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피고의 시세조종 행위로 주가가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감정에 있어서 감정인의 감정결과가 여러 부분에서 정확성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하면서, 피고의 시세조종 행위가 주가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피고의 행위가 "소위 회사의 실제 주가에 영향을 주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원고들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은 원고의 손해인과관계의 입증실패를 언급한 대한방직 사건의 제1심과 유사하다. 그러나 대한방직 사건의 제1심은 직접적으로 손해인과관계에 대한 원고의 입증실패를 논한 반면, 이 사건에서 제2심은 피고의 행위가 소외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따라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논할 실익이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 사건에서 쟁점은 실제로 피고의 시세조종 행위가 주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제1심과 제2심의 의견이 나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제2심이 제시한 "정상주가에 의한 차액 산정방식"에 따라 원고의 손해를 산정하는 경우에조차 구체적인 산정방법에 따라 계산상 커다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18) 향후 증권집단소송이 도입될 경우 이 문제는 중요한 쟁점으로 크게 부각될 것으로 예산된다.


6. 외부감사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1) 법령의 규정

증권거래법 제197조는 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면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인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제17조 제2항 내지 제7항의 규정을 준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즉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외감법으로 넘어가는데, 외감법 제17조 제2항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허위의 기재를 함으로써 이를 믿고 이용한 제3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그 감사인은 제3자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 인과관계

이러한 외감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은 제14조 및 제15조에 의한 손해배상책임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즉 감사인의 부실표시와 제3자의 손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되, 그 인과관계의 부존재의 입증책임은 감사인에게 전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관하여는 제15조의 규정이 준용되므로 감사인이 원고의 손해와 자신의 부실표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만큼 손해배상액이 감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감법 제17조 제2항이 부실표시를 "믿고 이용"할 것을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바, 거래인과관계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증권시장에 대한 간접신뢰를 통해 원고의 거래인과관계를 추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한국강관 사건에서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공표된 것으로 믿고 주가가 당연히 그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으리라는 생각 아래 대상 기업의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가 부실표시된 감사보고서를 직접 읽고 신뢰하지 않았더라도, 시장에서의 가격이 그러한 감사보고서의 내용을 반영하여 결정된 것으로 믿고 거래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간접신뢰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외감법 제17조 제2항은 원고의 거래인과관계를 추정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미국의 시장사기이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한국강관 사건

한국강관 사건은 1997년 대법원이 판단한 사건으로서 피고의 부실표시와 원고의 손해와의 관계, 원고가 당해 부실표시를 신뢰하였는지 여부의 문제들이 다루어진 매우 중요한 판례라 할 수 있다.119)

이 사건에서 제2심인 서울지방법원 본원합의부는 피고인 청운회계법인의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위법행위로 인하여 허위작성된 위 재무제표 및 감사보고서는 소외회사의 주가를 결정하는 기초가 되었으며, 일반투자자인 원고는 소외회사의 주가를 적정한 재무제표에 의하여 형성된 정당한 가격으로 믿고 이 사건 주식을 매수하였다 할 것이므로 감사인으로서 중요한 사항인 위 분식결과 사실에 관하여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아니한 피고는 증권거래법 제197조 제1항, 외감법 제17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이를 믿고 이용한 선의의 투자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120)

또한 제2심은 허위표시에 대한 원고의 "신뢰" 문제를 거론하였는데, 법원은 문제의 허위작성된 재무제표가 시장의 가격에 영향을 미쳤고, 그러한 영향으로 형성된 가격을 원고가 "정당한 가격으로 믿고 이 사건 주식을 매수하였다 할 것이므로"라고 하여 신뢰의 추정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본질적 문제는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 문제는 시효의 만료로 기각되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민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책임상 입증책임이 관건이 되면서, 법원은 민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요건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였다. 즉 허위로 작성된 재무제표에 대한 원고의 신뢰문제와 관련하여 법원은 "원고가 위와 같이 분식된 재무제표와 부실한 감사보고서를 신뢰하고 이를 투자판단의 자료로 삼아 이 사건 주식을 취득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하면서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주식거래에 있어서 대상 기업의 재무상태는 주가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고,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를 거쳐 작성된 감사보고서는 대상 기업의 정확한 재무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로서 일반 투자자에게 제공․공표되어 그 주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주식투자를 하는 일반투자자로서는 그 대상 기업의 재무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감사보고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공표된 것으로 믿고 주가가 당연히 그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으리라는 생각 아래 대상 기업의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하였다.

대법원은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의 문제로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허위작성된 재무제표를 투자자가 실제로 신뢰하였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허위작성된 재무제표가 정당하게 작성되어 공표된 것으로 믿고 주가가 당연히 그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 정도에서 주식을 거래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생각은 미국의 시장사기이론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121) 이는 미국의 경우처럼 추정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피고에게 이를 반박할 권리까지 부정한 것으로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 과실상계 문제

감사인의 부실표시가 문제가 되었던 신호스틸 손해배상청구 사건122)에서는 원고가 당시 보유하고 있었던 주식을 빠른 기간 내에 처분하여 손해를 감소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하여 피고의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30%의 과실상계를 인정하였다.



V. 결    론

원고와 피고간에 입증책임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소송의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경험을 볼 때, 연방대법원이 Basic 사건에서 시장사기이론을 수용하면서 집단소송의 지형이 원고에게 크게 유리하게 변동되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95년 개혁법이 등장하였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따라서 증권시장에서의 플레이어(players)간에 공정한 게임을 위하여 원고와 피고간의 균형적인 입증책임의 분배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증권집단소송을 포함하여 증권소송에 있어서 손해배상의 다툼은 전통적으로 사인간에 발생하는 민법상 손해배상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먼저, 증권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는 증권거래소와 같이 고도로 복잡하고 거대한 거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용해 발생하는 증권범죄의 경우 일반투자자로서는 피고의 위법성, 그리고 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증권범죄의 경우, 위법행위의 입증이나 인과관계의 입증을 위해 요구되는 거래데이터는 증권시장에서 거래한 모든 시장참가자들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증권거래소 등 관련기관들이 쉽게 내어줄 수 있는 자료가 아니며, 또한 기업의 부실표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들도 기업의 내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자체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설혹 이들 자료에 접근이 허용되는 경우라도 증권시장에서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피고의 특정 행위가 주가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일반투자자에게 분석과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증권거래법은 이러한 증권시장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여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시켜 주거나 피고에게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증권거래법의 정신과 입장에 대해 대법원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하급법원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증권시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데, 이러한 세계적인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효율적인 증권시장의 구축과 유지는 국가적인 명제가 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증권시장의 공정성 제고는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사인간에 발생하는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는 민법과 자본주의의 핵심을 형성하는 증권시장의 메커니즘을 흔드는 증권범죄를 규율하는 증권거래법의 정신과 목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크다고 본다. 이는 증권거래법이나 증권집단소송법이 단지 사인간의 분쟁해결을 위한 차원만의 법이 아니라 한 국가의 금융정책과 기업정책의 미래적 구도와도 연계되어 있는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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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공정공시규정(Regulation FD)에 대한 소고



최 승 진

(변호사, 법무법인 우방)



【초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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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미리 취득한 회사의 내부자 등이 증권거래와 관련해서 이를 공개함이 없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내부자거래금지원칙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Chiarella 및 Dirks 판결에 따라 (1) 정보를 제공한 자가 그로 인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득하고, (2) 정보를 얻은 자가 회사 또는 그 주주들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한, 미공개 정보를 증권분석가 등 소수의 자에게만 미리 제공하는 선별적 공시행위를 규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선별적 공시행위는 공개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는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정보 획득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하므로 내부자거래행위로서 금지되는 미공개 정보의 제공행위와 실질을 같이한다. 따라서 공정공시규정은 (1) 회사나 고위 임원 등 회사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가 (2) 주요한 (3)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4) 증권전문가 등 소수의 자에게 공개하고자 할 때에는 (5) 그 공개가 의도적인 경우에는 동시에, 의도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지체없이 (6) 중요 사항에 대한 수시보고양식인 Form 8-K 또는 언론공표 등 적절한 수단에 의해 일반에게 공시하도록 규정하여 정보의 공개와 관련된 개인적 이익 및 충실의무의 유무는 따지지 않고 선별적 공시행위 자체를 규제한다. 한편, 공정공시규정이 내부자거래행위에서와는 달리 그 위반으로 인한 피해자에게 민사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위반행위가 내부자거래행위에 해당할 경우 내부자거래금지원칙도 동시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제도적으로 내부자거래금지 법규와 병렬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결국 공정공시규정은 미공개 주요 정보들의 선별적 공시행위를 제한하여 정보접근에의 공평성과 동등성을 달성하고자 하므로, 내부자거래금지원칙 등과 함께 일반공중으로부터 증권시장의 공정성 및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이고, 증권거래소 등에 대한 일반적인 공시제도만을 두고 있고 증권전문가 등에 의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는 우리 증권계에도 투자자들로부터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서 참고할 만한 적절한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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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공정공시 / 공정공시규정 / 선별적 공시 / 주요성 / 미공개 정보 / 증권분석가 / 외          국국적 증권발행회사 / 효율적 자본시장 가설 / 내부자거래




The Korean Journal of Securities Law, Vol. 3, No. 1, 2002



Essay on Regulation FD of SEC in the U.S.



Choe, Seung Jin




ABSTRACT

As a result of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s interpretation of insider trading in the Chiarella v. United States and Dirks v. SEC cases, federal antifraud provisions against insider trading impose liability on corporate officials, if after coming into possession of 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 they fail to publicly disclose that information or trade on that information, but they are not liable in cases involving the selective disclosure of the 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 to securities analysts or selected institutional investors or both, unless the officials obtain personal gain from the disclosure or the receiver is under a fiduciary duty with the company or its shareholders. The selective disclosure, however, bears a close resemblance to ordinary “tipping” and insider trading in that it leads to a loss of investor confidence in the integrity of the capital markets since investors who are excluded access to the 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 cannot help but question whether they are on a level playing field with market insiders. Regulation FD adopted by the United States Securities Exchange Commission requires that (1) whenever an issuer, or persons acting on such company’s behalf, discloses any (2) material (3) nonpublic information (4) to certain enumerated persons such as securities analysts, institutional investors and/or holders of the issuer’s securities who may well trade on the basis of the information, (5) the issuer must make public disclosure of that information (6) simultaneously for intentional disclosure or promptly for non-intentional disclosures to the investing public. Thus, the selective disclosure itself rather than personal gain and/or fiduciary duty relating to the disclosure matters in regards to Regulation FD’s application. Regulation FD, however, unlike antifraud provisions such as Rule 10b-5, does not create a private cause of action. Further, Regulation FD is designed to stand together with Rule 10b-5 in that Regulation FD can also apply together with Rule 10b-5 to the case when it meets the requirement of both Rule 10b-5 and Regulation FD. In harmony with the rule against insider trading, Regulation FD which targets the practice by establishing new requirements for full and fair disclosure by public companies is most likely to function to fortify the integrity of and draw reliance on the capital market from the investing public, and show a guiding example to us for ensuring our market’s integrity and enhancing investor confidence because we do not regulate the selective disclosure of the 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 to securities analysts including institutional investors, even though unfair securities transactions involving the selective disclosure and abuses by securities analysts occasionally occur, other than general reporting or disclosure duty of material information to the Korea Stock Exchange or the Financial Supervisory Commission.





【차  례】


Ⅰ. 머 리 말

Ⅱ. 공정공시규정의 제정 배경―Rule 10b-5하에서의 선별적 공시행위

1. Chiarella v. United States   사건

2. Dirks v. SEC 사건

3. Dirks v. SEC 사건 이후―Stevens 사건

4. 공정공시규정의 제정


Ⅲ. 공정공시규정

1. 개    관

2.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요건

3. 공정한 공시의 의미


Ⅳ. 공정공시규정에 대한 우려―위축 효과(Chilling Effect) 및 시장의 급격한 변동

(volatility)등


Ⅴ. 공정공시규정의 실제와 기능


Ⅵ. 결론 및 시사점

1. 공정공시규정에 대한 평가

2. 시 사 점

3. 맺 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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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 리 말


1929년의 증권시장의 붕괴로 비롯된 대공황의 재발방지를 위해 제정된 뉴딜입법 중의 대표작인 1933년 및 1934년 각 증권거래법은 “햇볕이 최고의 살균제이고, 전등이 가장 효과적인 경찰”1)이라는 비유가 의미하듯 투자자 공중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정보공시를 투자자 보호 및 증권시장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근본 수단으로 삼고 있다. 투자자들이 시장을 통해 수익은 극대화하고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투자자들과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증권제도가 기초하고, 이러한 신뢰가 미국 증권시장의 보증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정직성(integrity)과 공정성(fairness)에서 비롯될 수 있다2)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33년 증권거래법이 증권의 최초 발행시 모든 주요 사실에 대해 충분히 공시할 것을 의무화3)하여 신주의 공모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투자자의 사기피해 등 폐해를 방지하고, 1934년 증권거래법이 이미 발행된 주식의 시장에서의 공정하고 정직한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 발행회사로 하여금 회사 및 발행된 증권에 관하여 사기, 부정확 또는 착오유발 표현, 기망 등을 포함하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4)도 이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주요 정보공시의무규정 및 반사기행위규정 등이 상당부분 미국 증권시장의 안정과 공정한 증권거래를 보장하고 나아가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확보하게 하여 증권시장 및 경제발전의 동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당초 법률이나 규정이 상정하지 못한 사례들로 인해 시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회사의 주요 미공개 정보를 증권시장 전문가나 그 정보에 기초해 거래에 참여할 예견되는 기관투자자 등에게만 미리 알려 그렇지 못한 일반 투자자들에 비해 당해 정보를 미리 제공받은 자 또는 그들의 고객들에게 투자상의 불공정한 이점을 주는 반면에 당해 증권뿐만 아니라 증권시장 전체에 대한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investors confidence)를 앗아가는 선별적 공시행위(selective disclosure)가 그 일례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이러한 행위가, 당해 정보가 부당하게 제공된 것이 아니거나 회사 또는 그 주주들과의 사이에서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자에 의해 취득된 때에는 후술하는 것처럼 내부자거래(insider trading)금지규정으로 규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The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는 종래부터 위법한 것으로 제한해 오던 위와 같은 증권발행 회사의 주요 미공개 정보(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에 대한 선별적 공시행위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규제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이를 제한함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2000년 8월 15일 Regulation FD(Fair Disclosure, 이하 ‘공정공시규정’)를 채택하여 같은 해 10월 23일부터 시행하고 있다.5)

아래에서는 이 규정의 제정 배경과 규정의 의미, 그리고 규정의 기능과 전망, 우리 증권계에 주는 시사점 등에 대해서 차례로 언급하기로 한다.



II.  공정공시규정의 제정 배경

―Rule 10b-5하에서의 선별적 공시행위


선별적 공시행위의 전형적인 사례는 “주주 및 시장에 알려야 할 중요한―증권의 가격을 변동하게 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정보를 보유하여 언론공표를 준비하고 공표할 시간을 저울질하면서 일반공중을 대상으로 한 어떠한 공개도 막고 있는 어떤 회사가 우호적인 특정의 선택된 증권분석가 등에게만 미리 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6) 이렇듯 선별적 공시는 대부분 회사 내부자와 증권분석가와7) 또는 그 정보의 사용으로 부적절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큰 특정의 자들과의 사이에서 중요하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에 관한 의사소통과정에서 발생한다.

SEC는 상당기간 동안 이러한 선별적 공시행위를 “투자자들과 증권시장 전체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니고,8) 투자자들의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증진을 그 주된 목표로 하는 1943년 증권거래법과는 반대로 증권시장의 공정성과 정직성을 훼손하여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해 왔다.9) 나아가 SEC는 선별적 공시행위 관행이 증권분석가 등으로 하여금 회사의 주요 미공개 정보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회사에 관한 객관성이 결여된, 오히려 우호적인 분석을 하도록 하게 함으로써 결국 증권분석가의 분석결과에 대한 투자자 공중의 불신까지 함께 초래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였다.10) 아울러 선별적 공시행위가 실상은 연방증권거래법상의 포괄적인 사기금지규정 등에 의해 금지되고 있는 정보제공행위(Tipping) 및 내부자거래행위와 같은 실질을 가지는 것인데도 법원이 이를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명백하지 않아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위가 서로 다르게 취급될 수 있는 데서 비롯되는 형평성문제도 고려되고 있었다.11)

따라서 공정공시규정이 제정되기 전에도 SEC는 주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증권거래를 1934년 증권거래법 제10조 b항12) 및 이에 근거하여 1942년 SEC가 채택한 Rule 10b-513) 에 의거해 증권사기행위, 특히 내부자거래행위로서 금지해 왔다.14) 이 규정들은 “어떠한 자라도”(any person) “증권의 매수 또는 매도와 관련하여”(in connection with the purchase or sale of any security) 어떠한 “조작적 또는 사기적 수단”(manipulative or deceptive device)을 사용하는 것, 즉 “누구에 대해서건 이루어지는 사기나 기망으로 인정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나 관행 또는 영업행위”(any act, practice, or course of business which operates or would operate as a fraud or deceit upon any person) 등을 위법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적용대상을 회사 내부자 및 직접적인 사기나 기망행위로 한정하지 않은 것이 SEC로 하여금 그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15) 이러한 사기금지규정은 적어도 1975년까지는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증권사기소송의 규제장치로 널리 활용되었고, 현재까지도 증권거래법의 사기금지규정 가운데 최고의 사용빈도를 보이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16) 이와 관련하여, Rule 10b-5가 주로 내부자거래를 규제하는 수단이 되고 있지만 회사 내부의 정보제공자(tipper)가 미공개 주요 정보를 회사 외부의 정보수령자(tippee)에게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증권거래를 하게 하는 때에도 적용된다.

SEC가 내부자의 증권분석가나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주요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인 공시행위를 내부자거래금지원칙에 의해 규제할 수 있었던 것도 선별적 공시행위를 tipping의 한 형태로 보기 때문이다.17)

미공개 주요 정보가 증권거래에 사용되는 것이 금지됨에도 선별적 공시행위에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미공개 주요 정보가 증권거래에 사용될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증권분석가의 시장과 일반 투자자들 사이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무시될 수 없고, 그들이 보유하는 정보와 그에 대한 분석 등이 개인투자자들의 투자방식 등을 지도하고 이러한 임무를 통해 시장의 효율성이 증진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증권분석가 등에 대한 일체의 정보제공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금지될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회사의 내부자들이 증권분석가 등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또는 제공할 수 없는 미공개 정보가 어떤 범위까지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18)

연방대법원은 1975년 이후,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Rule 10b-5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려는 SEC의 해석에 대해 위 증권거래법의 형사법규로서의 성격’19) 등까지를 고려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연방대법원은 Chiarella v. United States 사건20)에 이어 Dirks v. SEC 사건21)에서 Rule 10b-5의 적용을 받는 자가 “어떠한 자”(any person)일 수 없고, 일정한 경우에는 취득한 주요 미공개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거래에 사용하도록 하더라도 당해 미공개 정보의 회피 또는 공시의무(duty to abstain or disclose)가 인정되지 않아 Rule 10b-5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결국 Rule 10b-5를 근거로 한 SEC의 선별적 공시행위규제원칙에 제동을 거는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들은 SEC로 하여금 선별적 공시행위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1.  Chiarella v. United States 사건


이는 1975년과 1976년 사이에 통상 피인수회사의 명칭이 공란 또는 허무회사명으로 된 인수입찰서류를 받아 인쇄작업을 하다가 최종 인쇄일 밤에야 피인수회사의 명칭을 통보받고 인쇄를 완료해 출판의뢰인에게 공급하던 Pandick Press에서 활자지정원(markup man)이던 Vincent Chiarella가 서류의 다른 내용들을 통해 피인수회사의 명칭을 알아내고는 그 사실을 묵비한 채 당해 피인수회사의 주식을 매입한 후 인수사실이 공개된 직후에 매도하는 방식으로 14개월간 3만달러를 약간 웃도는 이익을 얻은 사실들이 비록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1934년 증권거래법 제10조 b항 및 Rule 10b-5에 의해 금지되는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며 형사기소되고 연방항소법원에서까지 패소하자 연방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Chiarella에 대한 유죄인정사실을 기각하면서, 주요 미공개 정보를 거래에 사용하기 전에 공시해야 할 의무는 주요 미공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정보를 취득한 자가 “그 상대방이 충실의무 또는 이와 유사한 위탁 및 신뢰관계(relationship of trust and confidence)에 기초한 권능에 의해 정보를 취득한 때에만 인정된다”고 판시하고, 이 사건의 경우 미공개 정보를 얻게 된 Chiarella가 그 상대방이라 할 수 있는 피인수회사의 내부자이거나 또는 그 회사와 사이에 위탁 및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피인수회사 주주들과의 사이에서도 그들의 대리인이나 수탁자의 지위에 있거나 또는 위탁 및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Chiarella에게 미공개 정보의 공시 또는 회피의무가 인정되지 않고,22) 결국 1934년 증권거래법 제10조 b항 및 Rule 10b-5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선별적 공시행위에 의해 정보를 제공받더라도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당해 정보의 소유회사 및 정보와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대방 회사 등은 물론 그 주주들과도 무관한 외부자라면 공개된 정보가 추후 거래에 사용되는지에 상관없이 선별적 공시행위가 제한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선별적 공시행위에 의해 정보를 취득한 외부자가 누구와도 위탁 및 신뢰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어 당해 정보를 증권거래에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2.  Dirks v. SEC 사건


뉴욕의 증권브로커 회사에서 보험회사 주식의 분석업무를 담당하던 Raymond Dirks가 1973년 3월 6일 생명보험회사인 Equity Funding의 전직원 Ronald Secrist으로부터 사기성있는 회사의 관행으로 인하여 Equity Funding의 자산이 과대하게 평가되어 있다는 제보와 함께 사기행위를 밝혀 이를 공중에게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Dirks는 개인적으로 Equity Funding 본사를 직접 방문해 여러 임원 및 종업원과 인터뷰를 했으며 그 가운데 몇몇 하위직 종업원들로부터 사기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을 얻어냈고, 비록 Dirks 자신과 그의 회사가 Equity Funding의 주식을 취급한 바는 없었지만 그의 여러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 정보에 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중 Equity Funding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일부 투자자와 5명의 투자자문가들이 1,6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매도하였다. Dirks는 개인적인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Wall Street Journal의 직원과 접촉하면서 Equity Funding의 사기혐의사실을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Wall Street Journal로부터 검증되지 않은 혐의사실의 보도로 인한 형사문제의 우려 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Dirks가 조사를 하고 사기혐의사실을 유포하던 2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Equity Funding의 주가는 주당 $26에서 $15로 하락했고 같은 달인 3월 27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의해 Equity Funding 주식의 거래가 중지되고 보험감독당국에서도 이 회사의 회계서류 등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곧 SEC가 Equity Funding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4월 2일 Wall Street Journal이 1면에 주로 Dirks에 의해 종합된 정보를 보도함으로써 즉시 Equity Funding은 법원에 법정관리신청을 하게 되었다. SEC는 Equity Funding에 대한 제소와 더불어 사기행위 공개에 관한 Dirks의 역할을 조사한 후 “정보수령자는 비밀사항에 속하며 회사의 내부자들에 의해 제공된 것임을 알거나 알 수 있는 주요 정보를 취득한 경우 이를 공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려면 이를 거래에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Dirks가 내부 기밀정보인 사기혐의사실을 그의 고객들이 Equity Funding 주식의 거래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1934년 증권거래법 제10조 b항과 Rule 10b-5를 위반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Dirks가 불복하였고 연방항소법원 역시 Dirks의 주장을 기각하자 Dirks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연방대법원은 내부자의 증권분석가에 대한 정보제공(tipping) 및 그 증권분석가의 고객에 대한 정보제공(disclosure)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회사의 내부정보를 취득한 정보수령자는 오로지 (1) 회사 내부의 정보제공자가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주주들에게 부담하는 충실의무를 위반하고, (2) 정보수령자도 정보제공자의 위와 같은 의무위반사실을 알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만 정보수령자의 정보공개행위가 내부자거래행위에 속하는 것”이지 회사 내부자로부터 주요 미공개 정보를 취득한 모든 자의 당해 정보를 사용한 증권거래가 전부 금지되는 것이 아니며, 내부자가 충실의무를 위반하였는가도 그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직접 또는 간접적인 금전적 이득 또는 향후의 수익에 연결되는 유력한 명성을 얻는 등 개인적 이익(personal benefit)을 취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23) 이 사건의 경우 정보제공자인 Secrist는 물론이고 종업원들도 어떠한 이익을 취득한 바 없으므로 주주들에 대한 위 의무를 위반한 바 없고 결과적으로 정보제공자의 책임으로부터 파생되는 책임을 부담하는 정보수령자 Dirks에게도 역시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연방대법원은 판결에서 증권분석가들이 정보를 탐색하고 분석하며, 나아가 당해 정보 및 분석된 결과 등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등의 행위가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확보하게 하는 유익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이 판결은 또한 증권분석가의 상대적 지위에 있는 회사 내부자들도 객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금전 기타 개인적 이익24)을 취득하지 않는 한 증권분석가들에게 미공개 정보를 선별적으로 공시하여도 내부자거래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25) 따라서 이 판결은 증권분석가들에 대한 정보공개의 필요성과 정보공개가 유발하는 시장에 대한 불신 등의 문제를 모두 감안한 적절한 판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6)


3.  Dirks v. SEC 사건 이후―Stevens 사건


연방대법원의 Dirks v. SEC 사건 판결에 의해 회사 내부자의 증권분석가들에 대한 선별적인 공시가 상당부분 허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SEC가 선별적 공시를 이유로 내부자거래금지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1) 내부자가 정보제공으로 인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인 개인적 이익을 취득해야 하고, (2) 내부자로부터 선별적 공시에 의하여 정보를 취득한 자 역시 당해 정보를 거래에 사용함으로써 회사의 주주들에 대한 파생의무(derivative duty)를 위반하였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27)

그러나 SEC는 “개인적 이익”기준을 폭넓게 인정하여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증권분석가들에 대한 특별히 유리한 취급을 제한할 수 있었다.28) 이와 관련, SEC는 Ultrasystems, Inc.의 대표이사로서 3년 전에 예상치 못한 손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권분석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던 Stevens가 1984년 공중에 공개하기 하루 전에 선호하던 몇몇 증권분석가들에게만 회사의 분기별 수익이 예상치를 밑돈다는 정보를 미리 알려 당해 증권분석가들의 고객들이 회사주식을 매도하여 손실을 면하도록 선별적 공시를 한 사건29)에서 Stevens의 선별적 공시행위가 증권분석가들로부터의 그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개인적인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내부자거래에 해당된다며 퇴직한 그를 상대로 1991년 소송을 제기하였고 결국 이 사건은 화해를 통해 Stevens가 증권분석가들의 고객들이 면한 손실 전액을 반환하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이러한 SEC의 결정에 대해서는 증권분석가 등에 대한 선별적 공시는 거의 모두가 적어도 그의 명성을 유지 또는 고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석될 수 있어 결국 연방대법원의 Dirks 판결을 형해화한다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SEC가 후에 같은 논리를 적용한 사례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30) “개인적 이익”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연방대법원의 Dirks 판결에 반드시 저촉된다고 할 수 없다. 개인적 이익이라는 요건은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Stevens 사건도 법원에 불복하는 절차를 밟지 않아 법원의 판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SEC의 개인적 이익의 해석범위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고 선별적 공시행위를 제한하고자 하는 SEC로서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형해화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4.  공정공시규정의 제정


이러한 SEC의 입장은 앞서 본 바와 같이 투자자들이나 자본시장 전체의 이익에 반하고 1934년 증권거래법이 자본시장 발전의 토대로서 지향하고 있는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훼손한다는 이유로31) 선별적 공시행위를 일관되게 제한해 온 태도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SEC는 증권분석가들이 선별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입수할 수 있도록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자제하게 되어 결국 선별적 공시가 증권분석가들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의무를 방기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분석은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증권분석가들이 스스로의 성실한 노력과 직관 대신 선별적 공시에 의한 “결코 반감될 수 없는 정보접근의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결국 선별적 공시행위는 능력, 명민, 노력보다 회사 내부자에 대한 우월적인 접근성을 통해 투자수익을 얻거나 얻도록 하는 내부자거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32) 이에 SEC는 특별히 그리고 증권계의 관행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선별적 공시의 불공정성33) 들을 지적하면서 종전의 내부자거래금지규정의 적용에 있어서의 불확실성과 모호성34)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법에 의해 부여받은 자체 권한에 의해 제정할 수 있는 규정(regulation)의 형식을 통해 ‘공정공시규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III.  공정공시규정


1.  개    관35)


공정공시규정은 회사가 주요 미공개 정보를 증권분석가, 기관투자가 등에게 미리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규제한다. 따라서 내부자거래의 외형을 지닌 선별적 공시행위를 그 규제대상으로 하지만 내부자거래금지원칙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내에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정공시규정36)의 적용요건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발행인 또는 그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가(an issuer, or any person acting on its behalf), (2) 주요 미공개 정보를 일정 범위의 자(일반적으로, 증권시장의 전문가 또는 당해 정보에 기초에 거래할 것으로 보이는 주식의 보유자 등)에게 제공할 때는 언제나(Whenever... discloses any material nonpublic information to certain enumerated persons(in general, securities market professionals or holders of the issuer’s securities who may well trade on the basis of the information)), (3) 그 발행인은 반드시 동일한 정보를 그 공개가 ① 의도적인 경우에는 동시에(simultaneously (for intentional disclosures)), ② 의도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지체없이(promptly (for non-intentional disclosures)) 일반공중에게 공시하여야 한다(the issuer shall make public disclosure of that information).37)


2.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요건


(1) 정보공시의무의 발생―정보의 주요성(Materiality)


공정공시규정은 오로지 발행회사 또는 그의 주식에 관한 “주요한” 미공개 정보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그 의미가 공정공시규정에는 정의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SEC는 그 명확한 의미를 포함시켜 달라는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술하는 연방대법원 판결(Basic Inc. v. Levinson, 485 U.S. 224, 236 (1988))을 인용해 공정공시규정에서 다루는 선별적 공시는 다양한 형태의 회사정보에 관한 것이므로 주요성에 대한 기준의 내용을 확정하지 않는 것이 개별사건의 특수한 상황에 적합하도록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인 반면, 이를 일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별사건에서 그 적용범위를 너무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개념정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38) 따라서 주요성 여부는 판례들을 근거로 그 의미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연방대법원은 위임장권유서면(proxy statement)과 관련된 TSC Indus., Inc. v. Northway, Inc. 사건에서 “주요 정보”란, “합리적인 주주일 경우 위임장권유서면에 누락된 사항이 어떠한 표결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고려요소가 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정보” 또는 “합리적인 투자자의 견지에서 공개가 그 공개 전에 알려진 다른 정보들의 총체적 의미(total mix)를 충분히 변경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되는 정보”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39) 한편 인수합병 문제와 관련된 Basic v. Levinson 사건에서는 합병의 협상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므로 주요 정보인가 여부는 특정의 합리적인 투자자가 문제된 시점에 누락되거나 잘못 표현된 정보를 증권의 매도, 매수 등의 행동기준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는가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여40) 구체적인 경우에 비로소 그 주요성 여부가 가늠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SEC도 회계에 관한 고시(Accounting Bulletin)를 통해 “단순히 일정한 수량적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주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예단을 버려야 하”고 “수량적으로 미미한 누락이나 잘못된 표현이라도 그 오류가 주가의 비정상적인 큰 폭의 등락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요성을 가진다”고 밝힘으로써41) 비록 회계자료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성 여부는 개별적 사실들을 종합해서 판단되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SEC는 공정공시규정의 주요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 주요성 여부의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예들42)을 제시하는 한편 후술하는 공정공시규정의 또 다른 요건인 의도적 행위인가 여부도 주요성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43) 그렇지만 경영진의 시장의 경향 및 그 경향에 비추어 회사가 산업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회사의 능력에 대한 논평 등은 주요한 정보라 할 수 없을 것이다.44)

SEC는 개별 미공개 정보가 주요한 것이 아니면 비록 이를 제공받은 증권분석가가 다른 정보들을 종합해 주요 정보가 된다고 해도 주요성을 갖지 않는 위와 같은 회사의 선별적 공시행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45) 문제는 회사가 주요하지 않은 미공개 정보를 증권분석가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하거나 하려는 시점에 증권분석가가 종합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다른 정보들의 내용이 주요하지 않은 당해 정보와 합해짐으로써 투자자 공중에게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주요성을 취득하게 됨을 알게 되는 때에46) 당해 회사의 주요하지 않은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 공시행위를 문제삼을 수 있는가이다. 주요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 공시행위가 금지되는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주요하지 않은 개별 미공개 정보가 증권분석가에 의해 중요한 정보로 종합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회사가 알 경우에는 그 정보가 비록 주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공시규정의 위반문제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47)


(2) 공시의무자―증권발행회사 또는 그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


공정공시규정에 의해 선별적 공시행위를 제한받는 자는 증권을 발행한 회사(issuer)나 그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이다. 증권발행회사에는 SEC에 1934년 증권거래법 제12조에 의해 증권을 등록한 회사, 같은 법 제15조 d항에 의해 정기적으로 SEC에 경영성과 등을 보고해야 하는 회사 및 폐쇄형 투자회사는 포함하나 그 외의 다른 투자회사와 외국정부, 외국국적 증권발행회사(foreign private issuers)는 제외된다.48) 따라서 “외국국적 증권발행회사(이하 ‘외국회사’)”는 비록 SEC에 보고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공정공시규정의 적용대상은 아니다. 여기서 외국회사란 (1) 주주명부상 50%를 초과하는 주식을 직접 또는 의결권 신탁증서 또는 주식예탁증서에 의한 간접적 방식으로 미국의 거주자가 소유하고, (2) (a) 이사회 또는 집행임원의 과반수가 미국 국민 또는 거주자이거나 (b) 50%를 초과하는 자산이 미국에 소재하거나 (c) 그 사업이 미국에서 주로 감독되는 회사를 제외한 외국정부가 아닌 증권발행회사를 말한다.49) 따라서 1999년 11월 미국의 나스닥에 직접 주권을 상장한 두루넷이나 뉴욕증권거래소에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한 한국통신 등50) 미국시장에서 증권을 발행하고 있는 우리의 적지 않은 회사들이 외국회사에 해당하는 한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입장이 궁극적으로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공정공시규정의 초안에서 외국회사를 그 적용대상을 삼았다가 최종안에서 적용의 예외로 정리한 SEC가 스스로, Form 10-Q 및 Form 8-K 등 특정한 보고의무(reporting requirement)에 대해서도 과거에 외국회사들에게 그에 따른 보고의무를 면제했던 것과 같이, 우선은 외국회사들의 공시에 대해서 주요 미공개 정보들이 SRO의 규정 및 그 정책에 따르도록 하는 등 적의처리될 수 있도록 하고 공정공시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증권시장의 세계화에 부응한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에 대비하여 외국회사들에 대한 보고의무에 관한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51) 향후 외국회사들에게 공정공시규정이 적용되거나 또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보고 내지는 공시 일반에 관한 원칙이 새로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52)

한편 회사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에는 회사의 그의 고위 임원(senior official),53) 정기적으로 증권분석가, 기타 시장의 증권전문가, 주주 등과 접촉할 수 있는 기타의 임원, 종업원, 대리인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위탁 및 신뢰관계에 기초한 의무에 위반해서 미공개정보를 공개하는 이사, 임원, 종업원, 대리인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54)


(3) 공정공시를 의무지우는 공시의 수용자―일정한 범위의 자


공정공시규정은 주요 미공개 정보를 회사 외부에 있는 일정범위의 사람들, 즉 (i) 브로커딜러와 그 직원 등 연계된 자, (ii) 투자자문가, 기관투자가 및 그 매니저 및 기타 직원, (iii) 투자회사, 헤지펀드 및 그 직원들 및 (iv) 당해 정보에 기초해서 거래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주식보유자 등에게 공개할 때에는 동시에 또는 지체없이 일반공중에게도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55) 그러나 회사와 위탁 및 신뢰관계에 기초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자(일시적인 내부자, 즉 변호사, 회계사, 투자은행 등), 제공된 정보에 대해 회사와 명시적으로 비밀을 유지하기로 동의한 자,56) 증권의 등급을 산정하기 위한 평가기관 등에 대한 정보공개, 증권거래법에 의해 등록된 증권에 대해 요구되는 정보의 공시 등에 대해서는 공정공시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57)


3.  공정한 공시의 의미


(1) 공시의 시점―동시 또는 지체없이


공정공시규정은 선별적 공시가 의도적인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일반공중에게 공시해야 할 시점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선별적 공시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발행인 등 공시의무자는 그 정보를 동시에, 의도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지체없이 일반에게 공시하도록 요구한다.58) 발행인 등이 공시를 하는 경우 비록 공시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면 의도적인 공시에 해당한다.59) 여기서 ‘지체없는’ 공시는 회사의 경영임원이 공시를 알거나 알 수 있었던 때로부터 합리적으로 판단해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 내(또는 그러한 때로부터 24시간 이내 또는 뉴욕증권거래소가 다음날의 거래를 개시하기 전 중 늦은 것보다는 이전)에 이루어지는 공시를 의미한다.60)


(2) 공시의 방식


공정공시규정은 공개적으로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방식을 특별히 한정하고 있지 않다. 공시의무자로 하여금 SEC에 Form 8-K61)에 기재하여 제출하거나 그곳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보고하는 방식으로 공시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중에게 알릴 수 있는 다른 적절한 수단으로 주요 정보를 반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기 때문이다.62) 여기에는 언론공표, 공중이 일반적으로 접속하는 발행회사의 웹사이트상의 게시, 기자회견을 통한 발표 등 일반의 접근에 제한이 없는 공지행위가 포함된다.63)


(3) 공정공시규정의 책임과 연방증권법의 책임과의 관계


공정공시규정은 1934년 증권거래법 제13조 a항 및 제15조 d항, 1940년 투자회사법 제30조에 근거해서 공시의무를 부담시킬 뿐이다. 따라서 연방증권법상의 사기행위금지조항에 따라 공시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며, 공시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자에게 발행회사 등을 상대로 한 민사청구권 등도 인정하지 않는다. 공정공시규정도 공시의무 위반이 Rule 10b-5 위반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64) 공정공시규정의 공시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이 Rule 10b-5의 책임 등과는 별개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65) 따라서 공시의무를 위반한 자는 1934년 증권거래법 제13조 a항 또는 제15조 d항 및 공정공시규정 위반으로 SEC에 의한 강제조치(enforcement action)의 대상이 되나, 형사처벌이나 그 외의 자에 의한 민사적 배상청구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66) 구체적으로는 SEC로부터 행정제재로서 위반행위의 중지명령(cease-desist order)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민사제재로서 SEC에 의한 정지처분(injunction) 및/또는 금전적 제재(money penalties)를 당할 수 있다.67) 일정한 경우에는 회사 내부의 위반자 개인이나 위반행위에 가담한 자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제재가 가능하다.68) 이와 관련하여 이미 SEC는 공정공시규정을 위반한 혐의가 포착된 회사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69)

  


 IV.  공정공시규정에 대한 우려―위축효과(ChillingEffect)

및 시장의 급격한 변동(volatility) 등


공정공시규정의 제정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발행회사 등이 공정공시규정의 위반을 우려하여 증권분석가나 투자자 기타 언론 등에게 회사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도록 하는 문제, 이른바 위축효과를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70) 구체적인 사안에서 “주요성” 여부가 일의적으로 판단되기 어려운 것처럼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요건 해석에 있어 불명확한 부분들은 발행회사 등으로 하여금 증권분석가 등과 의사소통을 위해 과도한 주의를 하게 하고, 이는 곧 필요하고 가능한 정보의 제공까지도 삼가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시장에 정보의 부족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방대법원의 Dirks 판결에서 확인된 것처럼 공정공시규정 제정 전에 형성된 자본시장의 효율성확보와 정보공시의 공정성의 사이에서 유지되는 균형을 후자쪽으로 치우치게 한다는 우려와 맥락을 같이한다.71) 더욱이 정보가 증권분석가 및 그들의 고객들을 통하지 않은 채 직접 시장에 제공될 경우 정보가 시장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도록 하고 증권분석가들의 선도적인 분석 역시 제공되기 어렵게 하는 것이어서, 정보에 대해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일반 투자자들로 인하여 시장의 증권가격이 과도하게 변동하게 되는 문제도 아울러 제기된다.72)

그러나 SEC는 공정공시규정이 모든 정보를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정보만을 규율할 뿐이고 정보제공에 제한을 받는 자도 회사의 특별한 지위에 있는 자로 한정하여 인적적용범위에도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점, 주요한 정보를 일반공중에게도 동시에 또는 지체없이 적절한 방법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지 그 제공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시장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점 등에 비추어 공정공시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증권분석가 등의 관계를 위축하는 결과나 회사의 주요 정보들이 부족하게 되는 상황이 궁극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73) 나아가 선별적 공시행위의 제한의 반면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권가격의 과도한 변동문제에 대해서도 그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공정공시규정이 내부자거래금지규정과는 다른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회사 외부자와의 모든 접촉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회사의 고위 임원 등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주요한 미공개 정보에만 적용되는 등으로 가능한 한 야기될 수 있는 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배려를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74) 실제로 공정공시규정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가격의 급격한 변동 등 시장의 불안 등은 시장의 공정성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75)

공정공시규정이 정보공시의 방법을 유연하게 규정하고 있고 그 규정의 위반에 따른 민사청구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비밀유지약정이 체결된 자 또는 신용평가기관 등에의 정보제공은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예외가 되는 등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도 위축효과를 방지하거나 축소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V.  공정공시규정의 실제와 기능


실무적인 관점에서 공정공시규정의 요건에 적합하게 주요 정보의 공시제도를 마련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76) 내부 법률고문이 회사 경영진 등을 교육하고, 회사내부의 정보를 증권전문가나 증권보유자들에게 전달하는 책임자를 특정하여 임명하고, 공시의 방식요건에 적합하게 회사의 주요 정보들의 공표방법이나 증권분석가 등과의 대화시 그들의 질문에 대해 적절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정형적인 답변 양식을 제작하고,77) 공정공시제도에 부합하는 공시에 관한 회사정책과 절차 등을 마련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78) 나아가 공정공시규정의 적용예외에 관련하여 주요 미공개 정보를 얻은 자와 체결할 비밀유지약정을 마련하거나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79)와 금지되는 행위80)등도 게시하는 등 공정공시규정에 대비하고 있다.81)

공정공시규정이 시행된 이후로 비록 얼마 되지 않아 성급하지만 공정공시규정에 따라 주요 미공개 정보를 일반에게까지 동시에 공시한 회사의 경우 하루에 많게는 20퍼센트에 이르는 주가의 등락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시장의 변동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는 사실들이 발견된다고 한다.82) 시장의 정보량도 그 전에 비해 감소하고 증권분석가들의 분석도 정확성이 약화된83)것으로 보인다고 한다.84) 그러나 SEC는 공정공시규정의 시장에서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하면서 그 시행효과를 더 지켜볼 것이며, 공정공시규정이 시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등 필요한 경우 필요한 추가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85)

1934년 증권거래법상의 강제적 공시제도는 ‘정직하고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의 공시를 통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의 기능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한 장치이다.86) 연방대법원도 “위법하게 취득된 주요 미공개 정보들이 법에 의해 걸러지지 아니한 채 증권거래에 사용된다면 투자자들은 그들의 자금을 그러한 시장에 투자하길 꺼릴 것”87)이라고 판시하여 공정한 증권시장이 투자자들의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선별적 공시행위에 대한 규제가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닌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단기적인 시행효과의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공정공시규정이 SEC의 책임있고 융통성있는 운용과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한편,88) 증권가격의 과다한 등락폭을 제어하고 선별적으로 공시되는 정보를 찾는 데 소요되는 지출을 포함한 자본시장의 주요 정보의 부재나 편중에서 비롯되는 비용도 줄이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89)



VI.  결론 및 시사점


1.  공정공시규정에 대한 평가


미국의 연방증권법은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가 자본시장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 신뢰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조건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인식한 데서 출발하고 있다. 나아가 시장에서의 증권의 가격은 모든 정보들을 반영하여 형성된다는 효율적 자본시장가설90)이 연방증권법과 SEC의 증권제도 운용의 전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1934년 증권거래법 제10조 b항과 그에 기초한 Rule 10b-5는 공정하고 정직한 시장질서를 해치는 내부자거래를 금지하여 왔고 그 적용범위도 단순한 회사의 내부자를 넘어 외부자이더라도 그와 특별한 인적관계가 있거나 회사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자, 회사의 외부 고문 등의 지위에 있으면서 당해 지위상의 권한에서 허용되지 않는 위법한 정보의 취득 및 이용행위 등에까지 확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장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다른 한 축인 증권분석가 등의 역할을 중시하여 증권분석가 등에게 회사로부터 일반공중보다 주요 정보를 먼저 제공해 온 선별적 공시행위가 연방대법원의 Dirks 판결로 인해 당해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자기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허용될 수 있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개인적 이익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내부자거래의 적용영역을 확대해 온 SEC는 선별적 공시행위가 그 정보를 취득한 자 및 그의 고객들과 그렇지 못한 일반 투자자 공중과의 관계에서는 정보취득자의 우위를 보장하는 tipper-tippee의 관계와 실질을 같이하므로 이를 제도적으로 제한할 필요를 느껴 그 규제장치로서 제정한 것이 공정공시규정이다. 공정공시규정은 미공개 정보 등이 주로 증권의 거래에 관해 사용되는 것, 따라서 거래라는 결과가 발생한 후에 이를 문제시하거나 또는 내부자 등의 충실의무 등을 위반한 미공개 정보의 제공행위를 금지하는 내부자거래금지제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이전의 당해 정보의 최초의 공개행위 자체를 문제삼는다. 정보를 사용한 ‘거래’나 선별적 공시행위가 충실의무를 위반하였는가는 고려함이 없이 당해 정보가 최초의 원천인 회사로부터 그의 재량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개행위를 규율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보의 주요성은 특정한 사건, 가령 그것이 주요한 공장을 인수하는 것이라면 인수계약의 체결 또는 그 인수를 위한 이사회 결의 등과 같이 어느 특정한 단계에서 확정적으로 취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영향을 줄 충분한 가능성이 인정되는 때 취득된다. 이 점에서 미국의 증권거래법상 보고의무에 기초하여 수시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때에 SEC에 Form 8-K에 의해 보고해야 하는 의무와는 반드시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내부자거래금지원칙에 비해 SEC가 관여할 수 있는 시간적 기준이 공정공시규정에 의해 앞당겨져 내부자거래를 예방하는 기능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정공시규정이 내부자거래금지원칙과는 별개의 적용영역을 가지고 있어 두 제도의 적용상의 저촉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아울러 그 위반에 대한 제재도 SEC가 주도적으로 행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는 행정적인 절차(administrative proceeding)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어서 법원을 통한 절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속하다는 특징도 갖는다.91)

따라서 공정공시규정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내부자거래금지원칙과 더불어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도록 하는 한편, 증권에 대한 편파적이지 않은 분석이 시장에 제공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공시규정이 소수의 증권전문가나 기관투자가 등만을 대상으로 주요 미공개 정보를 제공하여 시장의 공정성과 정직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해하는 선별적 공시행위를 제한함으로써 일반 투자자들의 그 정보에의 동시적 접근과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증권분석가들로 하여금 선별적 공시행위의 이익을 향유할 목적으로 회사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를 계속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92)


2.  시 사 점


공정경쟁규정이 제한하고자 하는 선별적 공시행위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증권거래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깊지 않고 거래의 규모 역시 크지 않은데다 미국에 비해 직접투자에 의존하는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현저히 높은 우리 증권시장에서 특히 내부자거래에 의해 걸러지지 않으나 실상은 신고 또는 공시의무가 발생하기 전의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선별적 공시행위는 투자자들 사이의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는 곧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켜 결국에는 우리 증권시장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공개는 증권의 불공정 거래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증권회사의 직원이 관련되는 내부자거래나 증권회사 직원과 당해 회사가 관련되는 주가조작 등의 사안에서 회사로부터 미리 취득된 미공개 주요 정보가 사후적으로 위와 같은 불공정거래에 사용될 경우에는93) 선별적 공시에 따른 정보의 취득행위가 결국 불공정거래행위의 예비행위에 다름아니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94) 경쟁의 불공정성을 초래하는 공개의 선별성은 공개의 수혜자가 되는 증권분석가의 전문성 및 업무성과를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증권분석가들로 하여금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라도 정보를 얻도록 무리한 노력을 기울이게 하기도 한다. 한편,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통신수단은95) 증권시장의 참여자들을 질적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데이트레이딩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개인투자자들도 증권분석가 등을 통하지 않은 채 증권정보에 동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고, 미공개 주요 정보들의 가치를 증권분석가 등과 같이 분석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들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증권 및 회사에 대한 정보들에 관하여 증권분석가들의 분석에 상대적으로 덜 의존하도록 하는 결과와 함께 회사의 소수의 증권전문가 등 특정인에 대하여만 이루어지는 미공개 정보의 제공행위 등에 의해 그러한 지위에 있지 못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자들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 회사의 정보공시행위도 인터넷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더욱 용이해지고 있다. 따라서 특정의 소수에게만 제공되는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 공시행위가 긍정될 이유는 더욱 적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증권거래법령은 이미 상장법인 등에게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 발생한 때에 의무적으로 이를 지체없이 신고 또는 공시하도록 하여96) 주요한 미공개 정보들이 증권거래소 등을 통해 일반에 알려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투자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당수의 사항들이 위 법령에 비교적 상세히 열거되어 있어 공시의무자 등에게 초래될 수 있는 판단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도, 증권거래법 위반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사건들에서이지만, 공시대상인 ‘사항의 주요성’, 즉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법인의 경영에 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실로서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그 정보의 중대성과 사실이 발생할 개연성을 비교 평가하여 판단할 경우 유가증권의 거래에 관한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정보라고 판시하여 미국의 판례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97) 따라서 위와 같은 신고 또는 공시제도로 인하여 선별적 공시행위가 상당부분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98)

그러나 법령의 문언상 상장회사 등에게 주요한 미공개 사항을 증권감독위원회, 증권거래소 등에 신고하거나 요구에 의해 공시를 해야 할 의무를 부담시키는 위 증권거래법령의 규정들이 상장회사 등의 증권분석가 등에 대한 중요한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 공시행위를 직접 그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공개 주요 정보가 소수의 선택된 증권분석가 등에게만 선별적으로 미리 공개됨으로써 야기되는 정보의 불평등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선별적 공시행위의 규제목적이나 그 적용범위도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때에 증권감독당국이나 거래소 등에 대해 신고나 공시할 것을 요구하는 우리의 위 공시제도의 그것들과 반드시 일치하는지 의문이다. 선별적 공시를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미공개 정보의 ‘주요성’이 취득되는 시점 또한 우리 증권거래법에서 신고 또는 공시의무가 발생하는 시점과 동일한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설령 증권거래소 등에 신고의무를 부담하는 상장회사 등이 신고 이전에 증권분석가 등에게 미리 주요 정보를 공개했다고 하더라도 증권거래법령에서 정하는 기간 내에 신고를 한다면 위 신고 또는 공시의무에 관한 증권거래법상의 제재규정99)이 신고 전의 선별적 공시행위에 대하여 적절한 제재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아울러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시 1934년 증권거래법 제13조 a항 및 Regulation 13A에 따라 Form 8-K에 의해 수시보고의무 등 주요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공시하도록 하여 우리와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음에도100) 별도로 공정공시규정을 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 상장회사 등으로 하여금 중요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는 우리의 현행 증권거래법령상의 제도가 당해 회사들의 증권분석가 등에 대한 미공개 주요 정보의 선별적 공시행위를 규제하는 장치로 직접 사용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선별적 공시행위를 제한할 경우 정보의 불평등 해소를 통하여 투자자들로부터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는 대표적 기능 외에도, 증권분석가들로 하여금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까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노력 대신 공정하게 공개되는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공개 또는 미공개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하는 일에 더욱 매진토록 하여 증권분석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투자자들과의 경쟁속에서 분석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고, 미공개 정보의 선별적 제공에서 비롯될 수 있는 증권분석가 등과 관련되는 내부거래 또는 시세조종 등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위법행위도 일정 정도 예방하는 부수적 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  맺 음 말


미국의 SEC가 앞서 본 것처럼 증권거래의 공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면밀한 준비끝에 법원의 판결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자기 시장에 맞는 공정공시규정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그 위반에 대해서는 부여받은 강제권을 유효적절하게 행사하면서 신설된 제도가 가져오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그 시행을 계속적으로 제어·관찰·보완하여 시장의 현실과 규범의 원리가 서로 적응해 가도록 지원하는 태도는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의 시장도 적절한 투자처로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증권시장을 찾는 개인투자자들이 증가하면서 시장의 기초 구성원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증권과 관련된 사기 등 불공정거래행위와 관련하여 공권력의 개입없이 손실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 수단인 집단소송제도가101) 도입되어 있지 않고, 그에 대한 대응도 사기 등 위법행위와 손실액의 입증곤란 등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적 방법보다는 주로 사법기관을 포함한 감독당국에 의한 형사 및 행정 제재 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증권과 관련된 사기 등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해 투자자들의 능동적인 견제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증권감독당국의 적극적 역할이 더 요구된다고 할 수 있고, 필요한 범위내에서 증권시장의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심층적인 경험적 분석까지를 토대로 모두에게 공정하게 공개된 정보의 수집과 그에 대한 평가 등의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미국의 공정공시규정 및 그 제도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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