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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

 

 

 

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
황해도 만신 이해경의 진접 <산사맞이 굿> -1
텍스트만보기   김기(mylove991) 기자   
▲ 처절한 표정으로 신을 부르는 이해경 만신. 무당이 어떻게 죽은 이를 불러와 산 이의 염원을 듣게하는지 실감나는 장면이다.
ⓒ 김기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서울 외곽 산 속에 마련된 굿당에서 황해도 만신 이해경(중요무형문화재 82-2호 서해안풍어제 및 대동굿 이수자)의 진접굿 <신사맞이 굿>이 열렸다. 진접이란 무당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모신 신을 위해 벌이는 굿으로 교회로 치자면 부흥회쯤 될 것이다. 이해경 만신은 신을 받고 불려온 지 15년 만에 진접을 올리게 된 것.

이해경 만신의 진접이 진행된 곳은 북악터널 근처의 약수암이란 굿당으로 몇 개의 굿당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 속의 작은 섬처럼 낯선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몇 개 굿 종목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정부가 해외에 문화사절단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그들을 초청하기도 하니, 탄압 일변도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 무속을 일상처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북악터널 옆 도시 속 섬 같은 '약수암'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곧바로 봄이건만 숲으로 경계 그어진 산 중 굿당은 때로 한 겨울 추위보다 매서웠다. 그 가운데 짧은 낮 시간의 봄볕은 밤새 언 몸에 따스한 위안을 주었다.

▲ 산 속에서 벌어진 굿판은 겨울보다 혹독하게 추웠다. 담요 등으로 몸을 감싼 채 굿을 지켜보는 사람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소설가 신중선,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등이 보인다.
ⓒ 김기
그 까닭에 얼굴 그을리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이 볕과 그늘을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 걸리기만 해도 단박에 한기가 엄습했다. 굿판의 풍경이 워낙 그렇기도 하지만, 추위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막걸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다.

이해경 만신의 진접굿이 올려지는 약수암은 도시 속의 섬 같고, 봄 속의 겨울 같아서 이래저래 일상을 벗어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공식적인 굿은 21일 새벽부터 23일 밤까지였으나 그것을 준비하는 이해경 만신은 이미 며칠 전부터 수백 개의 지화(제단에 걸려지는 종이로 만든 꽃)을 직접 오리고, 염색하고 다시 접기를 수없이 반복했으며, 큰 제단이 없는 일반 굿당의 형편상 마당에 새로 집을 짓듯이 제단을 만든 서예가 김기상씨는 한국화가인 동료와 함께 며칠 밤을 지새워야 했다.

▲ 서예가 김기상씨와 행위예술가 아란씨가 함께 벌인 서예퍼포먼스. 흰천에 '여기 오신 분들 복 받으세요'라고 쓰고 있다
ⓒ 김기
이해경 만신이 이름 붙인 이번 '신사맞이 굿'은 '굿과 서예의 만남'이자, '굿과 한국문화의 만남'이었다. 서예가 김기상씨는 굿이 잠시 멈췄을 때 어슬렁거리고 나타나 멋진 서예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의 글씨는 굿당 주변 여기저기 내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런가 하면 평소 이해경 만신과 교분을 쌓아온 많은 문화계 사람들 중 일부는 굿거리 사이를 자신들의 춤과 연주로 메워주었다.

사흘 동안 갖가지 굿, 공연, 퍼포먼스 넘쳐

보통의 굿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 바로 그것. 구경 온 사람들을 잠시도 쉴 틈 없이 보고 듣고 즐기게 해주었다. 그래서 사흘간의 굿과 갖가지 공연, 퍼포먼스를 지켜본 한 사람은 "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라고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들 정도였다.

가야금 병창 이영신, 가야금 산조 이지영, 철현금 유경화, 대금 연주가 한충은, 권용미, 판소리 오혜연, 해금 박자연 등이 연주를 했고, 서예가 김기상, 행위예술가 아란 등이 퍼포먼스를 보였다. 특히 범패를 연구하는 덕림 스님은 마지막 날 염불과 천수바라춤을 선보여 사흘 동안 공연 중 가장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 이해경 만신의 진접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해서 염불과 천수바라춤을 선물한 덕림 스님. 사흘간의 문화공연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김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구경 온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끈 문화계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재즈 가수 박성연, 국내 최고 범패 연주자 동희 스님, 몸짓예술가 유진규, 소설가 한말숙, 소설가 서영은, 포크가수 한돌 등이 굿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굿은 굿이다. 첫날 외날 작두타기, 마지막 날 두 날 작두타기 등이 열릴 때 모든 사람이 가슴 졸이면서 각자 소망을 간절히 빌었다. 도저히 세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사슬 세우기가 성공할 땐 오랜 숙원이라도 풀린 것처럼 지켜보던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로 만신의 영검을 치하했다. 이해경 만신은 소 한 마리를 삼지창 하나에 올려놓고 그것을 세웠다.

이것은 '군웅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이 삼지창에 소나 돼지 한 마리를 세우는데, 그것이 서게 되면 장군, 영웅의 혼이 무당의 정성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영험한 힘을 주겠다는 표식으로 이해한다. 이런 군웅거리, 작두 타기는 황해도 굿에서 가장 볼만한 과장으로 꼽힌다.

어찌 보면 굿하는 무당이야 전 과정이 모두 신을 영접하고 대접해서 잘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이렇듯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장면 속에서 무속에 대한 맛을 제대로 느끼는지 모른다. 몇 사람은 슬그머니 다가서서는 언제 또 저런 거리를 하냐고 물었다. 강신무계(降神巫系)의 굿은 세상 어떤 드라마,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준다.

비뚤어진 삼지창에 오르고…
참 신기하다, 혹시 트릭은 아닐까?


▲ 삼지창에 소 한 마리 분량을 모두 올려 놓은 이해경 만신. 삼지창을 유심히 보면 한쪽으로 기운 것을 볼 수 있다. 참 잘 우는 이해경 만신은 군웅들에게 소를 세워 달라고 빌며 울고, 그 기도가 받아들여져 마침내 소가 서자 다시 기뻐 울었다.
ⓒ 김기
날 선 작두 위에 선 만신의 모습은 아무리 낮춰 보아도 신묘한 일이다. 아무리 호기심이나 의심이 많은 이라 할지라도 혹시 무슨 트릭이 아닐까 시험해볼 엄두를 내기 힘들다. 아무리 무게 중심을 잡는 요령이 있다고 해도 비뚤어진 삼지창에 오르고, 그 소가 몽둥이로 두들겨도 쓰러지지 않는 데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하도 봐서 그만할 듯도 한데, 볼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 마술사같이 연습하거나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가 허구헌 날 소를 잡아 그것을 세우는 짓을 하겠는가. 이럴 때는 정말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님을 수긍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만신의 영험이건, 만신이 모시는 신 할아버지의 능력이건 그것에 직접적으로 의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단지 그런 현상 속에서 일상의 고민들을 잠시 잊고, 몰입해서 며칠을 쉬고 놀 수 있는 현실 속 바깥세상이 마련되는 것이 좋을 따름이다. 그래서 굿은 'Good'이다.

명색 무당이 대놓고 내세울 수도 없는 처지인 이해경 만신이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들을 굿거리 사이에 배치한 것은 그런 취지다. 의아한 카메오 출연에 흔쾌히 응한 사람들이, 굿이 가진 대동성에 대해 흔쾌히 동의한 점도 흐뭇한 배경이다. 어렵긴 하지만 우리들 피 속에 전해오는 문화 인자가 자라고 있다.

▲ 신사맞이굿 첫날 축하 공연을 한 봉산탈춤패의 모습. 일상과 조금 멀어진 도시의 섬 안에서 사람들은 즐겁게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굿은 'Good'이다.
ⓒ 김기

(다음 기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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