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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가 반윤리적이면 빌 게이츠는 반윤리적 기업인?

상속세가 반윤리적이면 빌 게이츠는 반윤리적 기업인?
언론에 의해 패륜아로 몰린 상속세
텍스트만보기   윤종훈(ydh001) 기자   
▲ 보수 언론들이 상속세 인하 또는 폐지에 적극 동조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사진은 '글로벌 트렌드 역행하는 상속세 중과'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16일자 칼럼(왼쪽)과 <한국일보>의 상속세 기획기사.
보수 언론의 행태가 정말로 점입가경이다.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한다. 기아자동차의 예를 들며 '주인 없는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고도 한다. 심지어 상속세는 자식을 낳아 키울 동기를 없애는 반윤리적인 세금이라고까지 몰아붙인다. 상속세가 졸지에 패륜아가 되어 버렸다.

상속세가 기업을 망하게 한다?

▲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장은 개인 재산과 기업의 재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보수언론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유한양행의 지분을 사회헌납한 유일한 박사와 쇼이치로 도요타 도요타 회장.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주장은 개인 재산과 기업의 재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보수언론의 '무뇌아적'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속세는 주주 개인의 재산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이지 기업의 재산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속세 부과로 주주가 바뀔 수는 있지만 기업의 재산이 감소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상속세 때문에 창업자의 지분이 감소되면 경영권이 불안정하여 결국 기업이 망할 것이라는 뜻이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그런가?

가장 존경받아야 할 기업인 유한양행을 보자.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재산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였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 수십년간 알짜 기업으로 키워오고 있다. TV 토론에서 유한양행을 '실패한 기업'이라고 단정하는 외계인적 사고를 가진 언론인이 있기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도요타 자동차의 설립자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의 지분은 현재 0.4%에 불과하고, 도요타 가문의 전체 지분은 2%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높은 상속세(현재 일본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 이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70%였다.)가 설립자 가문 지분 감소의 주요 요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생각대로라면 도요타는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한다.

기아자동차를 예로 들어 '주인 없는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 망한 예를 들자면 '주인 있는 기업'이 훨씬 많다. 쌍용, 진로, 동아, 해태, 삼미 등은 철없는 2세가 세상물정 모르고 겁 없이 덤비다가 말아먹은 기업들이다.

기업의 성패는 최고 경영자가 유능한 경영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갈라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가 봐도 경영능력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설립자의 아들이 최고경영자가 되던 조카가 최고경영자가 되던 따질 사람은 별로 없다. 못난 목수가 연장 탓하듯이 기업의 운명을 상속세 탓으로 돌리지 마라.

미국의 상속세를 통하여 우리의 자화상을 보자

위에 비해 좀 더 이성적인 주장은 상속세를 없앤 몇몇 국가를 비교하여 우리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의 존재 의의는 그 나라가 갖는 역사적 환경과 다른 세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려돼야지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단순하게 주장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계기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공약 때문이므로 미국의 경우를 살펴 보자. 미국의 경우, 증여세는 존속시키되 상속세는 2010년에 한시적으로 폐지되는 법안이 2001년에 통과되었다(그나마 의회에서 별다른 결의사항이 없으면 2011년에는 2001년 수준으로 다시 부활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의 상속세는 1862년~1870년과 1898~1902년 사이에 한시적인 세금으로 도입되었다가, 1916년에 현재와 같이 항구적인 세금으로 다시 도입되었다. 상속세가 도입될 당시를 보면,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매우 심각할 때였다.

1860년대 산업혁명과 독점화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빈부갈등은 극에 달해 1896년 대통령 선거는 부자와 빈자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상을 띠어 필라델피아에서는 파리코뮌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반독점입법과 상속세 및 재산세의 도입 등 법과 제도로 부자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증여세는 1932년에 항구적으로 도입되었는데,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재력가들이 지배하는 정부도 폭도가 지배하는 정부만큼 위험하다"고 말할 정도로 부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사회분위기가 그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미국의 부호들이 ①기부나 세금을 통하여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②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정치사회적 외풍에서 비껴나가도록 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본격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설립자 가문은 재산을 신탁에 맡겨 관리하면서 이사회에 참여하여 전문경영인인 최고경영자를 감시하는 수준으로 기업경영에 참여하였다.

이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사회에서도 진짜 부자들인 빌게이츠,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록펠러 등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기 위해 '책임 있는 부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열심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 보수언론의 시각에서 보면, 반윤리적인 상속세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반윤리적이다.

모든 것은 변하는 법, 상속세 역시 언젠가는 변하거나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상속세가 생겨난 데에는 사회적 배경이 있듯이, 없어지기 위해서도 그에 필요한 사회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기형아인 재벌체제가 여전히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도,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한다.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록펠러 등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기 위해 '책임 있는 부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열심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 사진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누가 반윤리적인가?

재벌들은 자기 혼자 잘나서 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재벌키우기 정책이 재벌 태생의 비밀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재벌키우기 정책은 특혜 금융, 수출보조금, 세제지원, 환율방어 등 국민의 세금을 재벌들에게 쏟아 부은 것을 말한다.

드라큘라가 피 빨아먹듯이 정경유착에 의해 수십년간 국민의 세금을 빨아먹고는 이제 와서 자식에게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주려는데 세금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온 가족이 고생하여 장남 하나 출세시켰더니 자기 혼자 잘 났고, 자기 혼자 잘 살겠다며 가족을 외면하는 패륜아와 뭐가 다른가?

상속세가 반윤리적인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자가 반윤리적인가?

미국의 부자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설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상속세 폐지를 반대할 정도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진짜 부자들도 상당수 있다.

상속세 폐지 여부에 대한 논쟁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미국 부자 수준의 인식과 마음을 가진 다음에 하자. 우리나라 재벌 들을 선진국 수준의 부자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상속세는 유지되거나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의 상속세 폐지 논쟁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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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폐지론자는 상속세가 없는 나라로 캐나다, 호주, 홍콩, 스웨덴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의 경우, 상속을 일종의 양도로 간주해 양도차익에 대하여 과세를 하고 있다. 즉, 상속 당시 재산을 평가하여 부모가 취득한 시점의 가액과의 차액(양도차익)에 대하여 소득세를 물리고 있다. ‘상속세’란 이름의 세금은 없지만, 사실상 상속재산에 대하여 과세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본이득과세제도의 강화 등 소득과세제도의 정비를 상속세 폐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경우도 상속세가 폐지되는 2010년 시점에는 상속재산 취득가액의 조정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할 예정이다.

스웨덴의 경우, 발렌베리 그룹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대기업은 소유구조가 분산되어 있으며 지배구조 역시 투명하다. 따라서, 상속세 폐지는 중소규모의 특화된 가족 기업이 주로 대상이 된다.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지닌 재벌들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상속세 폐지 논쟁과는 다른 상황이다.

홍콩은 감세론자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인데, 홍콩은 조세피난처로 구별될 정도로 전반적으로 세금이 낮은 나라이다. 이는 중개무역과 국제금융거래를 주요 경제기반으로 하는 도시국가적 특성에 기인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는 애초부터 비교대상이 아니다.


2006-05-17 16:09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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