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헌법재판소장 임기, 3년인가 6년인가

헌법재판소장 임기, 3년인가 6년인가
[칼럼] 전효숙 사태, 원인은 따로 있다
텍스트만보기   김욱(wkimline) 기자   
▲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8일 오후 3일째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헌법은 정치적이다. 그러나 정치 그 자체는 아니다. '전효숙 사태'도 정치적이다. 그러나 정치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정치논리만을 앞세우는 것은 법치국가의 후진성을 드러낼 뿐이다. '전효숙 사태'라는 정치적 분쟁은 반드시 헌법질서 하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전효숙 사태'는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헌재 소장은 헌재 재판관을 겸하고 있어야 하는데 전 후보자는 지난 25일 재판관직을 사퇴했기 때문에 전 후보자를 다시 재판관으로 임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이 적법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조 의원의 주장 근거는 헌법 제111조 제4항의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이다. 이 헌법조항의 "재판관 중에서"라는 표현은 누가 봐도 혼란을 일으킬 여지가 없는 아주 단순한 문구다.

조 의원은 이 단순한 문구에 근거해, 현재 민간인 신분의 전효숙 전 재판관을 현행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일단 '재판관'을 위한 법사위 청문회를 거쳐 재판관에 임명한 뒤 '헌법재판소의 장'을 위한 인사청문특위를 다시 거쳐야 하지 않느냐는, 다소 번거롭고 불합리한 절차를 제기한 셈이다. 말을 바꾸면 지금이라도 그렇게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를 야당의원들의 발목잡기 정도로 생각하고 겉도는 공방으로 시끄러워진다.

예컨대 최재천 의원은 "대(大)는 소(小)를 포함한다.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민간인을 소장으로 임명할 때 헌법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하지 않고 곧바로 소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라고 성토한다.

한편 이 문제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청와대는 여야 특위 간사 합의에 따라 청문회 요청 동의안을 당초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에서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으로 보정해 총리와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부랴부랴 국회에 보냈다.

문제는 '청문회'가 아니다

ⓒ 중앙일보 PDF
그럼 이제 된 건가? 애초에 조순형 의원이 제기한 절차 문제로만 논란을 이해할 수 있다면 두 번의 청문회를 겸한 것으로 간주하고 사태를 이쯤에서 종결짓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청문회 절차보다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문제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실제로 이 문제가 제기된 내적 원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3년 임기가 지난 전효숙 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하면서 6년 임기를 새로 보장하려는 데서 시작됐다.

8일자 <인터넷 중앙일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한 관계자가 "재판관 동의안을 뺀 것은 실수"라며 "소장 임기를 6년으로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이 "대법관 중 대법원장이 임명됐을 때 임기 6년이 보장되듯 헌재 소장 임기도 확실하게 6년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규정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우리 헌법상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규정은 없다. 그리고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도 특별하다. 이에 비해 대법원장의 임기는 헌법 제105조 제1항에 "6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리고 제104조 제1항은 그 임명에 있어서도 '대법관 중에서'라는 제한 없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돼 있다.

여기서 해석상 쟁점이 발생한다. 헌법이 규정한 대로 대법원장의 경우는 진행 중인 대법관의 임기를 중간에 끊고 그를 6년 임기의 대법원장으로 새로 임명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대법원장은 현재 대법관이든 아니든 상관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 명시적으로 6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장은 다르다. 해석상 진행 중인 재판관의 임기를 중간에 끊고 그를 6년 임기의 재판관 연임 형식으로 새로 임명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장은 반드시 재판관 신분이어야 하고 재판관 신분과 임기에 근거해서 임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순차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대(大)는 소(小)를 포함한다"는 최재천 의원의 주장에서 '소'가 아닌 '대', 즉 재판관 연임문제만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는 임기가 진행 중인 재판관을 중도에 사임시키고 그를 다시 새로 6년 임기의 재판관으로 연임시키는 것은 위헌적이라고 본다.

이는 우선 '연임'이라는 문리적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행위가 가능하다면 대통령 지명 3인 중 자신이 선호하는 재판관(대법관 경우는 절차상 좀 어렵다)의 임기가 대통령의 임기를 넘겨 끝나는 경우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그 재판관의 임기를 중단시키고 새로 6년 연임을 시작하게 하는 불합리한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6년 임기의 재판관을 중도 사직케 하고 새로 6년 연임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위헌적이라면 이런 식의 재판관 연임을 근거로 6년 임기의 헌법재판소 소장을 임명케 하는 것 또한 위헌적이 될 것이다. 최재천 의원 식으로 말하면 "대의 위법은 소의 위법을 포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비공식 견해는 다르다.

10일자 <연합뉴스>는 대법원이 전 후보자가 대법원장 지명 몫의 헌법재판관이었던 만큼 재판관직을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헌재소장에 임명될 경우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을 지명하는 '3:3:3 원칙'이 깨지고 대법원장 몫이 1명 줄어들 것을 우려해 사퇴 후 대통령 몫으로 재지명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했다.

여기서 대법원이 전효숙 재판관을 소장으로 임명할 경우 대법원장 지명분에서 대통령 지명분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이 좀 특이하다.

헌법상 '3:3:3 원칙'은 재판관 지명 비율을 의미하는 것이고 소장은 대통령이 9인의 "재판관 중에서" 지명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임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비공식 견해에 의하면 앞으로 헌재소장은 반드시 대통령 지명 3인 중에서 나와야 한다.

또 헌법재판소도 잔여임기 3년의 헌재소장이 임명될 경우 기관의 위상과 독립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재판관직 사퇴 후 임기 6년의 헌재소장을 지명해야 한다는 비공식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장의 임기와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독립성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국회까지 가세해서 각 헌법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전효숙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전효숙 소장임기는 애초에 3년이었다'고 보지만 하나의 가능한 해석일 뿐이다. 정치적 당파성은 뒤로 하고 일단 선택가능한 옵션을 한 번 정리해보자.

전효숙 사태, 세 가지 해결 방안

제1안은 임기가 진행 중인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새로 6년 임기의 소장에 임명하는 것을 인정하고 동의안을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청문회를 통합해서 한 번 하느냐, 각각 두 번 하느냐는 절차문제는 적절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선택의 합헌성은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으로 가려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선택이 가져올 정치적 불이익에 대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선택이 있을 경우 그것은 헌법해석적 관행이 되는 것이고 다른 입법이 없는 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에도 동일한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2안은 약간 무리가 있겠지만 전효숙 재판관의 사직서 수리를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었음을 이유로 무효(혹은 취소) 처리하고 기존 재판관 자격으로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아 3년 잔여임기만을 채우는 것이다. 이때 무효의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의 책임문제가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이 선택이 가져올 정치적 불이익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선택이 있을 경우 이 또한 정당한 헌법해석으로 인정되는 것이고 다른 입법이 없는 한 열린우리당이 야당이 됐을 경우에도 동일한 사안에서 6년 임기의 임명은 금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3안은 다른 새 후보자로 청문절차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가 급하겠지만 입법을 서둘러 이 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헌법해석의 혼란을 야기하는 입법미비는 가능한 한 빨리 법률로 규정해 놓는 것이 불필요한 논란을 막는 최선의 길이다.

'전효숙 사태'는 입법미비와 각 헌법기관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충돌해 만들어 낸 초유의 혼란상이다. 노 대통령이 틈만 나면 강조하는 시스템에 의한 행정과 정치의 궁극적 모습이 바로 법치주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전효숙 코드'의 찬반보다는 헌법정신의 실현에 초점을 맞춰 예지를 모아 해결책을 찾아주기 바란다. 정권은 짧고 헌법은 길다.
관련
기사
[뉴스가이드] 인사청문 국회법, 이건 아니잖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