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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아침에 길을 묻다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

국가 사멸론 vs 국가 폐지론?

 

 

광복절 아침에 길을 묻다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

[8.15 기획-아나키즘①]개인의 자유 바탕 소규모 공동체 지향 세계화 시대 대안 부상
입력 :2006-08-14 16:51:00   김세옥 (okokida@dailyseop.com)기자
세계화와 함께 그에 대한 저항 움직임이 거센 최근 몇 년간 진보진영의 학자 및 운동가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아나키즘학회가 창립돼 연구 활동이 시작됐으며, 최근 3년 동안 발간된 아나키즘 관련 서적은 지난 20년 동안 발간된 책의 수를 상회한다. 또 영화와 문학 등 예술작품에서도 아나키적 코드를 찾는 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이처럼 아나키즘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세계화에 맞서는 소규모 공동체 운동과 자율적 공동체 지향하는 아나키즘 소통

▲ 지난 2005년 열린 3.20 반전평화집회의 풍경(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자본주의와 함께 양대 산맥처럼 세상을 떠받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가 1980년대 말 붕괴하면서, 진보진영은 이를 대체할 사상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높여오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 여김과 동시에 이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아나키즘은 당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사상으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일제강점 당시 독립운동에 나섰던 신채호, 이회영, 박열, 김산 등의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아나키스트였다.

하지만 해방 직후 아나키즘은 겨울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아나키즘이 중앙집권적인 조직력이 강한 마르크스주의와의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에 대안이라던 마르크스주의가 결국 똑같은 작동원리로 개인을 괴롭힌다고 비판했다.

아나키즘이 겨울의 시대를 보내고 있던 가운데, 자본주의와 함께 세상에 대한 지배체제를 나눠왔던 마르크스주의가 1980년대 중반 무너지고 자본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지구를 서서히 휩쓸기 시작했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개발·개방논리에 따라 작동하기 시작했고 환경오염, 빈부 격차의 심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분쟁 등은 당연한 듯 뒤를 따라왔다.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1990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소규모의 생태운동과 대안교육운동 등의 공동체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율적 공동체주의를 말하는 아나키즘의 이론과 생활·행동 양식은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저항논리로, 세계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농민 이경해 씨가 지난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농산물 개방 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강압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직후,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는 “세계화가 아나키즘을 부활시켰다”면서 아나키스트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실제로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나이키, 맥도널드 등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기구들과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계인의 저항의 현장은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등에 반대하는 국제 평화집회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시위,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시위 현장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시민운동, 알게 모르게 아나키즘에서 이론적 근거를 찾고 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국내 시민운동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과 인권, 노동 등 여러 분야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이 같은 활동과 무관한 개인들이 모여 지난 2월 발기인 대회를 연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연대(사람연대)는 ‘사람’, ‘자연’, ‘평화’를 주요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사람연대가 내세우는 가치들은 자유와 자치, 자연을 강조하고 있는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정부분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시민운동이 대놓고 아나키즘의 가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하진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당히 많은 부분 이론적 근거를 그곳(아나키즘)에서 찾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이 자유주의에서 자신들의 대안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란다.

고(故) 이경해 농민이 목숨을 끊은 멕시코 칸쿤에서 지난 2003년 열린 반(反)세계화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흔히 노동자·농민·서민들이 잘 사는 사회를 얘기하며 거대한 자본과 싸우고, 조직적으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됐을 때 무력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만난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스스로의 자유를 위한 즐거움을 찾아가는 일상적 행위로 여기고 있었고, 그만큼 즐거워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나키즘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측면에서 그들이 갖는 생명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15일 아나키스트 항일투쟁 특별기획전 개최

▲ 박열의 옥중모습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이 광복 61주년을 기념해 15일부터 내달 30일까지 아나키스트 항일투쟁 관련 특별기획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아나키스트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정부기관 주최의 첫 행사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였던 아나키즘이 정부가 없는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조장하며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폭력주의, 사회주의의 아류 등으로 취급되면서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사실상 잊혀진 채 방치된 데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전시에서 아나키즘 운동의 태동부터 국내와 일본, 중국에서 전개된 아나키즘 운동의 실상을 알아보고 , 한인 아나키즘 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피기 위해 관련한 미공개 자료 6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선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다 발각돼 22년 동안 옥살이를 한 아나키스트 박열이 옥중에서 사용한 노트와 출옥 후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신조선’ 창간호, 그의 아내이자 일본인 여성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가 간행한 잡히 ‘흑도’, ‘후토이센징’ 등이 소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채호가 대만에서 체포된 후 취조를 받았던 일본 지룽 수상 경찰서 터와 취조내용이 실린 대만일일신문의 기사 등도 전시될 예정인데, 이들 자료가 국내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에도 남화한인청년연맹 단원인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등이 벌인 주중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라 처단 기도사건과 다물단원의 일제밀정 처단 등과 관련한 사진과 유품 등도 전시된다.

독립기념관 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들 아나키스트들이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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