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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의 정략과 대인의 정략.

 

 

 

소인의 정략과 대인의 정략.
 
번호 225726   글쓴이 반집승부 (tlsehdcjf)   조회 2233   점수 786   등록일 2007-1-14 17:05   대문 7   톡톡 1  
 
 
 

차라리 이창호의 바둑판을 엎어 버려라!

한국에 바둑천재가 여럿 있지만 그래도 꼽으라면 이창호 9단이 단연 으뜸이다.

바둑천재로 불리며, 10대 중반부터 정상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9세 때 조훈현의 제자로 바둑계에 입문, 1986년에 입단했다.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계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가 되었다.

1991년 국내 14개 프로 타이틀 가운데 7개를 석권, 스승 조훈현을 앞섰다. 1995년에는 15개 중 14개를 석권, 프로 바둑으로서는 세계 최다관왕에 올랐다. 특히 이때 상금 랭킹 면에서 최고인 기성위와, 전통과 권위 면에서 최고인 국수위를 조훈현으로부터 쟁취함으로써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1994년 7단에 오른 데 이어 1996년 한국기원의 결정으로 9단으로 특별 승 단 하여 최단 기간 내 9단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창호의 성적을 가지고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바둑 스타일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창호의 별호는 두 개가 있는데 그 하나는 '신산'이고 또 하나는 '돌부처'다.

신산 이라 함은 수 읽기, 즉 계산을 너무 정확하게 잘하는데서 붙여진 별호이다. 바둑이 초중반을 넘어서면 앞으로 펼쳐질 수를 머릿속으로 수 읽기 하여 판이 끝나면 몇 집의 승부가 나는지 정확히 계산해 내는 그의 천재성을 가리켜 바둑인들이 신(神)이라 칭한 것이다.

돌부처란 별호는 말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갈 길을 가는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대국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해설자가 무안한 경우가 발생한다.

'중앙으로 한 칸 뜀에 악수 없다'는 바둑 용어도 있듯이, 관전하는 해설가나 모든 프로들이 예상하기를 위로 한 칸 뛸 것이다 는 예상을 깨고 그는 아래에 잇는 수를 둔다.

관전하는 사람들은 호전적이다. 제치고 뻗고 치받으며 박살내 통쾌하게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하는데 뒤로 후퇴하는 느낌이 드니 답답할밖에.
이런 이창호를 상대는 일거에 제압하려고 기세가 등등해진다. 상대가 수세적이니 기고만장을 해서 공격 일변도로 나온다. 이때부터 이창호의 진가는 발휘된다.

아래로 이었던 수의 튼튼함을 기반으로 공격에 치중하다 방어 전략이 허술한 상대 허점을 파고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이창호의 '수 읽기'에 나와 있던 그림이다. 사람들은 왜 이창호가 초반에 뻗지 않고 아래로 연결했는지 그때서야 이해를 한다. 왜 돌부처처럼 자기 갈 길만 갔는지를 말이다. 후반전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이창호의 진가를 알기 시작한 사람들은 탄복을 한다. 그의 수 읽기 능력과 어떤 협공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의 판을 만드는 능력을 말이다. 판에 끌려가는 듯하다. 어느새 판을 이끌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신산'과 '돌부처' 라는 별호를 지어주며 칭송하는 것이다.

바둑을 처음 접하면서 듣는 경 귀로 '빈삼각은 패망이다' 라는 용어가 있다. 빈삼각을 두면 그만큼 큰 손해라는 경고의 문구이다. 그런데 이창호의 바둑에서 이런 빈삼각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창호가 빈삼각을 두면 해설자들은 끙끙 앓는다. 무슨 뜻이 있어서 둔 것은 분명한데 그래도 빈삼각은 좀 거시기 하다는 빛이 얼굴에 역력하게 나타난다. 천하의 이창호가 둔 수니 가타부타 평을 하기가 곤란해진다.

이창호는 빈삼각을 둬서 이득을 본적도 있고 때론 손해를 본적도 있다. 그러나 바둑에서 금기인 '빈삼각도 때론 둘 수 있다'는 격언을 새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수들은 이창호의 수 읽기를 통한 계산된 행마다. 그러나 이창호의 이런 계산된 전략에 대해 비난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어차피 바둑은 수 읽기를 통한 계산을 하여 자신에게 득이 되는 수를 바둑판에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행마보다 자기 정해진 갈 길을 가는 이창호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상대의 화려한 행 마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기초를 튼튼히 하고 실리를 챙기며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창호의 빈삼각과 방어적인 착 점들이 종반에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대국 상대자만이 아니다. 해설자도 그렇고 관중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그의 무서움을 느낀다. 중반에 반집을 이기고 있는 형국이면 그것을 끝까지 끌고 가는 무서움을 안 느껴 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그의 치밀함과 촉박한 시간 속의 계가 능력을.

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제 중반을 지나고 있는데 그는 계산서를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신산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장사꾼이 물건을 팔면서 '이문이 없다'는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없다. 다 장삿속으로 하는 말이다. 이창호가 계산된 수로 승부를 하듯이 장사꾼은 이득을 계산해서 물건값을 매긴다.

정치인은 정치적인 계산을 하고 정치행위를 한다. 다만 소인배 정치인은 자신에게 득 되는 정치행위를 하지만 큰 정치인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정치행위를 한다.

반대를 하는 것도 정략이고 찬성을 하는 것도 정략이다. 다만 자신을 위해서 찬성하고 자신을 위해서 반대하는 경우와 모두를 위해서 반대하고 모두를 위해서 찬성하는 통 큰 정략을 하는가의 차이다.

이창호가 든든한 기반을 바탕으로 종반 뒤집기에 성공하듯이 화려함에 빠지지 않고 기틀을 다지는데 전력한 참여정부의 성과가 곧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아니, 이미 끝내기는 시작되어 곳곳에서 탄성과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초반 화려했던 지난 정부들을 생각해 보라. 끝내기에서 모두 패배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참여정부는 내실이 탄탄하다.

반집도 한판이고 만방도 한판이다. 소인배들은 만방을 노리지만 고수는 반집에도 정열을 쏟는다.

참여정부의 마무리 솜씨 기대된다.


ⓒ 반집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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