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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인형, 촌스럽다구요? 얼마나 예쁜데요"

 

 

종이인형, 촌스럽다구요? 얼마나 예쁜데요"
상상력과 재치 묻어나는 종이인형놀이의 재발견
텍스트만보기   안소민(bori1219) 기자   
 
 
▲ 인터넷 인형놀이의 모델들은 한결같이 세련된 서구화된 용모를 하고 있다.
ⓒ 안소민
 
올해로 여섯 살이 되는 딸아이가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의 옷입히기 놀이이다. 딸아이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대충 알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쉽게 설명을 하자면 화면 한 편에 모델이 있고 그 옆으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상과 악세사리, 헤어 등이 나열되어 있어 몇 번의 마우스 클릭과 드래그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개성에 따라 모델의 옷을 입힐 수도 있고 꾸밀 수 있는 놀이이다. 말그대로 옷 입히는 놀이이다.

딸아이는 처음에는 사촌언니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기 시작하더니 슬슬 특별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가지고 이 놀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난 딸아이의 놀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기특해하기까지 했다. 언제까지나 아기인줄 알았는데 벌써 패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며 내심 대견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였을까.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시킨 채 마우스만 딸깍거리는 딸아이의 모습이 마치 기계부속품과 같다고 느껴진 것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던 눈도 갈수록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손의 움직임도 나태해지고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 왜 아니겠는가. 오른쪽에 있는 의상 아이템을 왼쪽으로 끌어다놓기만 하면 되는 과정의 연속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다 차려준 밥상을 자신은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모델들의 천편일률적인 표정과 얼굴모습은 딸아이에게 획일적인 미인상을 심어주기에 딱 좋았다. 난 그 점이 우선 맘에 들지 않았다. 크고 화려한 눈,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모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는 언제부터 그런 서구형 마스크가 미인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여기에는 서구형 일색인 모델들이 중심이 된 이 인형놀이의 영향이 적지않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렸을 적 내가 했던 인형놀이를 떠올려봤다. 처음에는 문방구앞에서 20원 하는 종이인형을 사곤했다. 행여 팔이라도 끊어질 새라, 손가락이라도 잘릴 새라 조심조심하며 가위로 인형과 옷 등을 오리고나면 그것들이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책갈피에 넣어 보관하곤 했다. 남자아이들에겐 딱지가, 여자아이들에겐 종이인형의 옷들이 학생들 사이의 인기도를 가늠하는 0순위가 되던 시절이었다.

 
▲ 촌스럽고 수수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 예쁜 옷들.
ⓒ 안소민
 
조금 더 자라서는 인형 옷을 직접 그리고 놀았다. 물론 조잡하고 촌스러운 패션 일색이었으나 혼자서 인형의 옷을 그리고 색칠하며 오리며 놀았던 그 가슴벅차고 알콩달콩했던 재미는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종이인형놀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흥미를 불러일으킨 놀이가 아닌가 싶다.

첫째, 종이인형놀이에는 시들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종이인형놀이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그 전까지 내 또래의 아이들은 정말 지치는 줄도 모르고 인형의 옷을 수십번도 입혔다 벗겼다를 반복하면서 놀았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히고 여기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재미 등은 여자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매력적인 놀이였다.

둘째, 종이인형놀이는 손가락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소근육을 많이 쓰게 되고 따라서 두뇌발달에도 좋다. 무엇보다 가위를 이용해서 옷을 오리기 때문에 손을 많이 쓰게 된다. 얼핏보면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그것은 대단히 집중력이 필요하고 정교한 작업임을 알게된다. 또 옷을 어깨선에 맞춰 입혔다 벗기는 일도 얼마나 많은 손놀림이 필요한지 조금이라도 인형놀이를 해본 사람은 안다.

 
▲ 인터넷 인형들보다 훨씬 정감있고 예쁘죠?
ⓒ 안소민
내가 종이인형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자 다음날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아이가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바로 자신이 직접 만든 종이인형이란다. 물론 인터넷 인형놀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물이며 의상이 수수하고 간소했다. 그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인형그림이 어찌나 이쁘던지. 오히려 그 수수함과 촌스러움이 나는 더욱 맘에 들었다.

그날 조카아이와 딸아이 그리고 나는 가위를 들고 열심히 인형그림을 오리기 시작했다. 조카아이에게 물어보니 학교앞 문방구에서는 종이인형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어때, 앞으로 자기가 직접 만들어서 놀면 되잖아." 나는 조카아이에게 얘기했다. 오려놓고 보니 못생기고(?) 촌스러운 인형이 마치 내 친구인 듯, 옆집 꼬마인 듯 더욱 친근하고 살갑게 느껴진다.

아무 개성도 없고 추억도 없는 인터넷상의 모델들보다는 훨씬 정감있고 따뜻하게 느껴지지 아니한가. 그리고 인터넷 인형들의 옷보다는 조금은 덜 세련되었더라도 아이들의 상상력과 재치가 반짝 묻어나는 이 의상들이 내 눈에는 더욱 예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가위질을 하며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 추억에 잠시 잠길 수 있는 이 행복한 기분도 종이인형놀이가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 인터넷 인형놀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커나가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놀이를 하는게 어떨까하는 바람에서 종이인형놀이를 떠올려본 것입니다. 혹여 이글로 인해 인터넷 게임관련 분들이 오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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