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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난

 

 

 

요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난
한국은 과연 전쟁강간에서 자유롭나
[주장] 이 책을 둘러싼 민족주의 논쟁이 빠뜨린 진실
텍스트만보기   김홍주선(pheebss) 기자   
 
 
 
▲ <요코 이야기>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언론 보도로 네티즌들이 '들끓고' 있다. <연합뉴스>에서 지난 17일 <'얼빠진 한국' 일본마저 거부한 요코 이야기>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를 살펴보자.

전범 가족의 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슨이 성인이 되어 저술한 과거사 이야기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여성들을 강간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중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대나무 숲 저 멀리(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파문의 근원이다. 한인 사회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따른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상흔이 남은 가운데 이같은 교재를 문제의식 없이 채택한 것에 분노하여 항의하고 있다.

이에 이 책이 한국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된 것이 또한번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후의 보도는 민족감정을 터뜨리며 실제 책의 내용에 대한 확인은 제쳐두고 일단 문학동네와 한국 외교통상부를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엔 언제나 강간이... 한국이라고 결백할 수 있나

오랫동안 단일 민족을 형성하여 살아왔으며,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거친 한국인들에게 '민족'의 문제는 언제나 뜨겁다. 그렇기에 <요코 이야기>에 등장한 여성에 대한 위협과 강간의 가해자를 한국인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을 뜨겁게 자극하여 분노케 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자행된 역사의 만행 앞에서 한국인을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 또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기에 앞서 민족의 이름으로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강간과 성폭력이 자행되어 왔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일본에 의해서 한국과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에서까지도,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의 기지촌에서도 미군에 의해 수없이 저질러진 일이다. 또 한국이 베트남에서 수없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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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전시에 여성들을 강간하는 관행은 일부 남성들의 우발적인 행동만도 아니었다. 이는 인종청소를 위한 계획의 하나였고 강간은 여자들을 짓밟음으로써 상대국(상대 민족)의 미래를 짓밟으려는 계획적이고 집단적인 전쟁 작전의 하나였다. 그래서 강간은 어느 전쟁에서나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패전국 일본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남성에 의한 일본 여성의 강간이 '있을 수 없는 일', '과거사 왜곡'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가족 안 과 애인 사이에도 부지기수로 발생하는 '성폭력'이 민족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상대국 여성에게 가해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과연 누가 할 수 있는가? '순결한' 한국의 남성들이 할 수 있는가?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매체인 <한겨레>에서도 <요코 이야기>가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책이 담고 있는 강간 피해를 일축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증이 없다고? 일본군 성노예도 한때는 '떠도는 이야기'였다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가 지난 2004년 5월 12일 오전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군의 이라크인에 대한 반인권적 전쟁범죄 규탄 및 한국군 파병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규탄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우리는 '사료 중심'의 증거 채택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현재 그렇게 분노하고 공감하며 지지하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발굴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이 일이 우리 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까지 가게 된 지는 불과 10~20여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때는 한국에서 '성폭력' 자체가 공론화하던 때와 얼추 맞물린다. 여성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성폭력특별법이 제정(1993년)되고 성폭력 비난의 중심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로 힘겹게 돌아서던 때이다.

전쟁 당시의 피해가 있었던 때로부터 50여년이 더 지나, 최초의 할머니가 증언을 시작했다. "부끄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라는 신념으로 입을 연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사회는 '강간' 자체가 피해자 여성의 수치스러움으로 인식됐다. 그랬던 때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화와 강간'은 '떠도는 이야기'였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증언하려 들지도, 공론화하려 들지도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였다.

당시 할머니들의 '거짓말 같은 끔찍한 증언'에 일본의 자유주의 실증사학자들은 "구술된 이야기라서 정식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며 사실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역사 기술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기록된 자료가 부족했다.

공문서와 역사 자료를 기초로 '실증'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정신대 할머니들의 성노예 피해구술 기록(할머니들에게는 무슨 서사구조로 이야기해야할지 참고할 이야기틀도 없었고, 아파서 기억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은 한낱 '어중이 떠중이 헛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후 같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이 하나둘 입을 열어 증언을 시작하고 '성노예'와 다름없는 참상이 알려졌다. '정신대 문제'는 한국의 뜨거운 민족 감정에 힘입어 '사실'로 기록되어 알려졌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던 당시, 국내외의 여성들을 전쟁에 동원했다. 이 와중에 일본(내지) 여성들은 1차 위안부로 간호사 등의 2차 병력으로 활약하고 한국 여성들은 2차 위안부인 '성노예'로 다루어졌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2차 위안부인 '성노예'로 차출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정신대 문제가 민족 대 민족의 이름으로 공론화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제대로 발설하기 힘든 문제가 되어 잊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성노예' 문제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하면서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전쟁강간, 중요한 건 국적이 아니다

네티즌들이 감정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는 문학동네에서 당시 <요코 이야기>를 출판할 때, 한국 번역가와 일본의 저자가 만났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저자는 일본 정부의 잘못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자기 잘못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한 거지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현재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피시방에서도 사방에서는 전쟁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재일동포 기사를 썼던 친구 하나는 민족 운동의 진영 내에서 '민족의 순결성'을 강요하며 여성들에게 치마저고리와 모성을 강요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끈끈한 '가족애'를 본다.

강간은 일본군이 한국 민간인에게 저질렀던 것인가. 단지 그것뿐인가. 강간의 국적을 따지기 시작한다면 강간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국적이 중요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피해자도 '한 민족에게 당한 강간이기에 덜 상처받는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의 근·현대사에 휘말려 일본의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힘든 삶을 살아왔던 신숙옥씨는 <자이니치,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일본과 한국과 북한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치여가며 만신창이가 된 생생한 개인사의 증언이었다.

신씨는 일본인 남자 의사에게 강간당했던 '조센징 여자아이'의 삶에서부터 시작해 국적 불명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당했던 차별과 취직거부로 인한 가난을 겪었다. 지금 그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고있지만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자이니치'(재일교포를 뜻하는 일본말)의 존재를 이용할 뿐 제대로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경을 넘어, 민족을 넘어, 손을 마주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피차별자가 아니면 체험하지 못할, 인간의 '양심'과 만날 수 있는 인생은 최상의 인생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어느 나라 국가도 부르지 않는다. 어느 나라 국기도 게양하지 않는다. 내게 애국심은 없다. 국가를 사랑하기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사람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민족주의' 이름으로 공론화조차 틀어막아선 안돼

 
▲ 지난 해 8월 9일 낮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정대협 회원과 한·일 시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연대집회'가 제721차 수요집회를 겸해서 열렸다. 세계연대집회는 국제앰네스티(AI)의 제안에 따라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홍콩, 독일, 덴마크 등 세계 27개 도시에서 열린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가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국가와 민족으로 가려지지 않은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전쟁'을 일으킨 정부는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수많은 남성을 전쟁터로, 수많은 여성을 강간의 피해자로 내몰았다. 일본에서 우익 정권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행하고 수업시간에 '히노마루(일장기) 그리기'를 강요할 때 이에 대항하는 '올바른 역사 인식'은 어디에서 와야할까.

한·일 여성 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는 2005년 <여성의 눈으로 본 한일 근·현대사>를 펴냈다. 편찬위는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동안 일왕이 침략전 수행의 아들들을 위한 하사품으로 선물한 '위안부' 즉 일본군 성노예 등 가해의 역사를 삭제하고 가부장제를 강화해 군국주의의 기초로 삼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다.

물론 일본의 페미니즘에는 전시에 여성을 동원하여 전쟁에 '찬동'시키고 극렬히 선전했던 여성 이치카와 후사에(市井房枝·1893~1981, 1937년 부선획득동맹과 그밖에 8개 단체를 거느린 일본부인단체연맹을 결성해 '후방을 굳게 지키자'며 협력 체제를 만들어 이끄는 등 '국가 총동원' 체제에 적극 부응했다) 같은 '과거사'가 존재한다. 이들 역시 전범임은 분명하다. 그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으며 주어서도 안 된다.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논쟁도 '가해자 일본-피해자 한국'의 단순구도를 떠나서 복합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한국인 남성에 의해 일본인 여성에게 가해진(가해졌을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를 '민족'을 이유로 틀어막아선 안된다. 이런 시도는 일본 우익이 자국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위안부의 역사를 삭제하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요코 이야기>를 비난하고 막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전시 강간과 전쟁 폭력을 이야기하는 증언은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와야 한다. 그것은 어느 한 편에 속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국의 이익과 어느 한 인종이나 민족의 영달을 위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내셔널리즘은 배격돼야 한다.

불과 몇 주 전 술자리 성매매 방지를 위한 여성가족부 캠페인에 일부 남성들과 네티즌이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자체 캠페인'을 벌이던 한국은 무죄인가. 아직도 '성매매 방지 캠페인'이 필요한 우리 사회,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당당히 거리에 걸릴 수 있는 우리 현실부터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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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2007-01-18 10:0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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