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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랩된 누드화,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오버랩된 누드화,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배준성의 '미술관'(The Museum)전을 가다
김형순 (seulsong)
 
 
  
갤러리현대 입구의 홍보게시물.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인형(doll)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94×259cm 2007
ⓒ 김형순
배준성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입체적 기법으로 누드사진과 서양명화를 오버랩 시켜 독특한 회화양식을 일구어낸 배준성의 '미술관(The Museum)전'이 지난 7일에 시작되어 오는 25일까지 경복궁 옆 갤러리현대에서 선보인다.

 

작품을 처음 보면 그림인지 사진인지 착오가 생기지만 그림 속에 베르메르, 다비드, 앵그르 등 서양미술사에 널리 알려진 명화들이 나오기에 그림 보는 재미는 두 배가 아니라 몇 배로 증폭된다. 그리고 그 명화들을 모사한 작가의 빼어난 솜씨에 할 말을 잃는다.

 

배준성(40)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는 않지만 최근 바젤 아트페어 등 해외미술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국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알랭 사야그(A. Sayag)는 그를 '고전을 껴안은 동양의 포스트모던예술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가의 관객 끌어안기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베르메르(Vermeer) 우유 따르는 하녀.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94×259cm 2007
ⓒ 김형순
배준성

 

작가는 결과보다 그림의 과정을 중시한다면서 "움직이는 정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정물화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전통을 거부하고 움직이는 정물화에 도전하고 있다.

 

작가는 또한 이미지 홍수시대에 관객들이 동시다발로 보여주는 기제가 강력하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여기에 부응하는 매체기법인 '렌티큘러(lenticular)'를 도입한다. 레이어(layer, 층위)를 층층이 사용하기 때문에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게다가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프라도,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유수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는 관객들이 감동을 하거나 혹은 함축된 뜻이 담긴 그림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표정까지 담고 있어, 이를 보는 우리도 마치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림감상의 기원은 누드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앵그르(Ingres)의 붉은 드레스(Red dress)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94×259cm 2007. 왼쪽 프레임은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나란히 놓은 것임.
ⓒ 김형순
배준성

 

우리가 흔히 화장실 낙서에서 누드를 보듯이 모든 미술 감상의 기원은 여자 몸에 대한 호기심이나 혹은 그런 것을 보려는 은밀한 욕망 즉 관음증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관객의 요구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그림에는 우선 볼거리가 많다. 우아하고 화려한 17~18세기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은 한국여자가 등장하고 보는 방향에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로 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리 유명디자이너인 라크르의 현란한 의상을 재현해 더욱 눈부시다.

 

작가가 의도하는 본질은 누드가 아니고 명화다. 다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작품이 쌓였고 이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비닐 작업과 렌티큘러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작가역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방향으로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관객에게 들춰보기 유혹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화가 알마-타데마(A. Tadema) 비닐(vinyl)과 사진에 유화 154×194cm 2007. 왼쪽은 비닐을 들춰보면 나온다.
ⓒ 김형순
배준성

 

장 보드리야르는 '유혹'을 21세기의 키워드로 보았다. 이제는 그림도 관객을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세련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혹의 기술이 필요하다. 작가는 바로 그런 정신을 그림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작가에 그림감상에서 관객의 더 적극적 개입을 유도한다.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주의할 점은 미술관 매너를 지키느라 점잔을 빼면서 눈으로만 감상하면 안 된다. 투명한 아크릴 비닐 필름이 있는 작품은 들춰봐야 한다. 그 속에 누드화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관객을 당황하게 하기나 낯설게 하는 것이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더 적극적인 반응을 유발시키거나 미적 호기심을 일으킨다며 이렇게 말한다.

 

"관객은 이러한 불규칙적이며 일정치 않은 대상과의 관계에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그간 경험에서 일탈된 느낌은 대상에 대한 감상을 더욱 매력적인 긴장으로 위치 이동시킨다."

 

누드의 예술성 여부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방 거울(House Mirror)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50×162cm 2007.
ⓒ 김형순
배준성
 
누드의 예술성과 음란성 여부는 어느 시대나 논쟁거리다. 작가는 이점을 통쾌하게 빠져나갈 위트와 재치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너무나 세련되고 우아하고 장엄한 격조와 품격과 위엄에 매려 되어 도무지 그런 걸 언급할 틈이 없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도 <미의 역사> 서론에서 '옷을 벗은 비너스와 옷을 입은 비너스'로 서양미술사를 요약하기도 했지만 작가는 '옷을 입은 이미지'와 '옷을 벗은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합성하여 독특한 사실주의 회화형식을 생성해냈다.

 

사진과 미술의 경계 흐려지다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94×259cm 2007. 도무지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 김형순
배준성
 
누드사진 위 옷 그린 비닐 필름을 덮는 방식이나 방향에 따라 달라 보이는 렌티큘러 방식은 사진과 미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요즘에 이를 어떻게 통합하여 새로운 기법을 통해 작품에 담을까하는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미술양식을 위협하는 이때에 전통양식이 가지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종의 충격을 주는 극약처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창조적 결합을 통해 예술적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회화를 개척하여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다.
 
작가의 창조적 융합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휘슬러 차이나(Whistler China)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206×226cm 2007. 동서양 문화의 융화를 시도한 것 같다
ⓒ 김형순
배준성
 
작가는 아카데미즘을 충분히 소화했다고 자부하기에 이런 독자적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자기식으로 이를 비틀어 보려는 야심찬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성(聖)과 속(俗), 시간과 공간, 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전이 통합된 총체적 미를 추구한다. 누드사진과 고전회화에다 첨단패션까지 융합시킬 뿐 아니라 키치아트나 팝아트처럼 경쾌하고 가벼우면서 신고전주의처럼 장중하고 엄격함도 대입시킨다.
 
작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작품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전시회 제목은 한결같이 '화가의 옷'이다. 이 점에 대해서 "결국 나의 '화가의 옷'은 화가가 그리는 옷이 아니라 옷을 그리다가 발생하게 되는 화가의 별안간의 사건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미술관의 독점적 시각 희화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미술관 연작. 빵이 있는 새 정물화(New still life with bread) 캔버스에 유화 렌티큘러(Lenticular) 194×259cm 2007. 미술관에 대한 보다 쉬운 접근에 대한 암시가 풍긴다
ⓒ 김형순
배준성
 
미술평론가 김찬동은 이번 전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미술관을 제도의 정점으로 만든 서양미술의 시각적 관습과 전통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셈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렌티큘러 작품을 통해 미술관이 가지는 독점적 시각을 교란시키고 명작의 일부를 자신의 작품으로 대체함으로써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서구미술이나 그 제도를 희화하는 측면을 은근히 풍긴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이라도 하듯 미술관을 과거의 성전과 같은 권위적 공간으로부터 백화점이나 공공미술과 같은 일상적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작가 배준성은 누구인가?

 

[작가 약력]

  
작품 앞 작가
ⓒ 김형순
배준성

1967 광주 출생

199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200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07 '미술관(The Museum)', 갤러리현대, 서울
2006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갤러리 터치아트, 헤이리
2006 '화가의 옷', 캔버스 인터내셔널 아트 갤러리, 암스테르담

2006 '화가의 옷, 롯데 에브뉴엘, 서울
2004 '화가의 옷', 백해영갤러리, 서울
2003 "라크르씨, 치마를 올려 봐도 될까요?" 대림미술관, 서울
2002 '화가의 옷', 보자르미술관/투르(Tour), 프랑스
2000 '이름붙이기(Naming)', 갤러리인, 서울
1997 '이름붙이기', 살갤러리, 서울
1996 '독후감', 금호미술관, 서울

 

[수상] 1995 95년 정경자 미술문화재단 창작 지원 신인예술가상

2000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화관광부 주관

 
  
▲ 배준성의 다른 작품 감상하기. 그의 그림 어딘 가엔 렌티큘러가 숨어 있다
ⓒ 갤러리현대
배준성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www.galleryhyundai.com) /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 / 734-6111~3
mail@galleryhyundai.com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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