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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진 미국'의 빈자리... 유럽-중국 '호시탐탐'

 

 

'이 빠진 미국'의 빈자리... 유럽-중국 '호시탐탐'
[해외리포트] 내달 15일 'G-20 회담', 세계 자본주의 역사 다시 쓰나
  전용호 (chamgil)
 
 

"21세기판 브레턴우즈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단순한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의미하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944년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의 이론적인 토대로 설립된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폐기되고,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내달 15일 미국에서 열릴 G-2O 정상회담은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를 새로 짜는 중요한 토론의 장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등 기존 핵심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서 자국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각축전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브레턴우즈의 역사와 그 변화

 

  
케인즈.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케인즈

 

사회 교과서에나 들어본 브레턴우즈 체제가 탄생한 것은 지난 1944년이다. 미국 뉴햄프셔의 조그만 마을인 '브레턴우즈'에서 44개 세계 주요 정상들이 금본위 대신에 금에 달러 가치를 고정시키고, IMF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세계은행의 전신) 등을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IMF는 환율을 감시하는 동시에 무역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를 위해서 차관을 해주는 기능을 맡도록 했고, IBRD는 저개발국가들에게 차관을 해주는 등의 역할을 맡아왔다. 당시 브레턴우즈 체제 설립에 크게 기여한 케인즈는 국가간 자유로운 무역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개입'에 의한 일정한 시장 규제를 주창했다. 그는 금융자본의 자유화를 인정할 경우 각국의 복지정책이 제한을 받을 것을 우려,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시장 자유주의자와는 다른 개입주의자였다.

 

브레턴우즈 시스템은 1970대 초까지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서 그 기구들은 남아있지만 정부 개입의 필요성 등의 가치가 자리를 점차 잃어갔고, 결국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밀려난다.

 

영국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바로 이 앵글로 색슨식 신자유주의의 핵심 주자였다. 특히 이들은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통해서 새로운 성장동력과 침체된 경제의 돌파구를 찾았고, 이 강력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선두에 있는 스웨덴 같은 북부유럽국가들에도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커가는 파생상품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은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와 스스로의 탐욕 등으로 인해서 부실이 심화됐고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서 그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시장의 작동으로 인한 자율적인 규제와 효과적인 자원 배분을 맹신했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그 한계성을 스스로 보이게 된 셈이다.

 

  
1930년대 대공항이후 최고의 경제침체가 예상된다는 일간 <텔레그라프> 보도.
ⓒ 텔레그라프
브레튼우즈

 

"1930년대 이후 최대 불황될 것"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들마저 새로운 경제 질서 재편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것은, 그만큼 이번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유럽언론들은 '공포' 그 자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불황이 다가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노동당의 집권으로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했던 영국 정부도 최근에 브라운 총리가 "경기가 침체에 진입했다"고 인정하면서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실물경기도 더욱 얼어붙고 있다. 빵, 계란, 야채류 등 서민의 생활과 밀접한 물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으면서 소비가 주는 등 내수가 벌써 위축되고 있다. 

 

'부동산 침체→ 금융기관 부실→ 실물경제 악화'의 악순환 고리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올해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고 하향 수정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해 보인다.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독일 도이치방크의 이코노미스트 발언을 인용해 "우리는 앞으로 주요 국가들(Industrial countries)의 성장률이 1.2%로 떨어져 심각한 위축을 경험한 1980년대 초반 수준으로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경제의 동력인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마저 둔화되면서 세계적인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키스탄, 아이슬란드, 헝가리 등 10개국이 IMF에 이미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번 금융위기가 세계 국가들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세계 국가들의 각축전

 

아이러니컬하게도 영미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있던 영국에서부터 기존 브레턴우즈 체제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유럽보다는 미국에 가깝게 붙어서 외교정책을 펼쳐왔지만, IMF와 IBRD가 그간 사실상 미국과 달러의 이익을 위한 기구로서 존재해왔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었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같은 미국 중심의 '달러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하는 카드로서 '신브레턴우즈 체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투명한 금융 감독시스템의 구축"이 명분이지만 미국의 이익에 종속된 IMF와 IBRD 등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미국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바꿔보자 는 정치적인 목표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현 유럽연합 의장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 때"라며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지만, 서로 견제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키는 역시 미국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44년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탄생할 때만큼 미국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얼마나 유럽국가들의 요구를 수용할지, 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오바마든 매케인이든 차기 대통령이 취할 입장이 결국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더불어, 외환보유고 강국인 중국이 이번 정상들간의 모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기존의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새롭게' 행사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주의 선봉 IMF 개혁해야" 제프리 삭스 VS 장하준

 

  
장하준 캠브리지대학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재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내달 15일 정상회의 직전까지 각국들은 주판알을 튕기면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질서를 준비하는 데 열을 올릴 것이다.

 

현재까지 제기된 개혁 내용은 주로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나온 것으로 (1) IMF와 IBRD의 개혁 (2) 초국가적인 금융 감독시스템 구축 (3) 금융기관의 지나친 이익 추구행위에 대한 제동 등이 핵심 골자다. 

 

특히, 이중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달러 패권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IMF의 기능과 그 역할이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21일 기고한 글에서 IMF의 기능을 지금보다 더 확대시켜서 헤지 펀드 등 투기세력을 감시하고 진정한 세계의 마지막 자금대출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투기성 자금의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를 도입, 거둬진 자금으로 IMF가 위기시에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바로 그 다음날 <가디언>에 "IMF의 임무와 지배구조(governance)가 충분히 개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면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IMF는 통화긴축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미숙한 금융 규제완화와 개방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개발도상국과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IMF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개도국에게 불리하게 되어있음을 지적하고, 개도국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투표시스템' 등 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IMF는 구시대적인 기구이므로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의 갈 길은?

 

최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국제 금융시스템의 개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얼마나 한국 정부가 얼마나 뼈저리게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는 실로 의문이 든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금융시스템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탐색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하나의 외교적인 행사로 치부해서, 과거 우리 외교나 경제정책이 그랬듯이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따라서 대충 맞추고 따라가려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검증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 만능주의적 신자유주의적 경제철학이 한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간 금과옥조로 믿었던 시장중심적인 정책들, 예를 들어 최근 뜨거운 논의가 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등의 정책도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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