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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지금 네오나찌가 설친다!

아... 시의적절

타이틀 보고나서 대뜸 전사모 까는 것인지 단박에 알았다.

경부고속도로의 할아버지인 아우토반을 만든 히틀러는 박사모에게 절대 존경의 지존이다.

 

 

 

[국제] 지금 네오나찌가 설친다!

2005.6.6. 월요일
딴지 국제부
 

지난 5월 8일은 우리로선 어버이 날로 인식되지만 유럽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베를린에서 나찌독일의 항복문서를 받아낸 날로 기억한다. 바로 제2차세계대전이 종식을 알린 날이다.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갓 결혼한 아내와 동반자살한지 8일 후였다.

그리고 올해는 이 전쟁이 종식된지 딱 60주년을 맞는 해다. 당연히 파리, 런던, 베를린 등에서는 다양한 축제행사가 열렸고.

그런데 이날 독일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는 뜻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더랬다. 이 전쟁종식은 나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들이 '점령당한 역사'라고 외치는 2500명 가량의 또라이들이 장갑차, 시위진압차와 살벌하게 대치한 채 앞을 가로막아 선 것.

몇몇은 팔뚝에 'NPD' - 뒤에 언급한다 - 표시가 그려진 완장을 차고 있고 몇몇은 대가리 빡빡 민 스킨헤드 스타일을 한채 말이다. 광장은 이내 희고 붉은 바탕에 독수리를 그려넣은 깃발이 곳곳에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깃발 가운데 이런 문구도 있었더랬다.

"우리는 종전 60년을 기념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들은 용감한 군인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바쳤다."
"독일인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는 문화 걷어치워라."

이쯤되면 얘네들이 어떤 애들인지 감 잡았을 줄 안다. 바로 네오나찌즘를 표방하는 독일의 극우세력들 되겠다. 주목할 건, 얘네들의 대부분이 히틀러시대에 살지않은 혈기왕성한 2, 30대의 새파란 아쉐이들이란 거다.


현재 독일에선 약 150개의 동우회, 약 50,000여 명의 네오나찌스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재밌는 건, 얘네들이 네오나찌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중요한 루트로 삼는 것 중 하나가 록음악이다.

블랙메탈과 같은 강렬한 비트의 록음악 형식에다 네오나찌즘을 담은 가사로 무장한 나찌록, 이걸 전문으로 연주하는 밴드는 전국적으로 약 100개가 넘는다. 그리고 얘네들의 CD를 통신판매하는 회사는 약 50개 정도 된다. 이 정도면 정치적 세력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나찌록을 하는 밴드아니랄까봐 이름도 꽤 군발틱하다. 사이클론B, 게슈타포, 터키인 사냥꾼, 병사, 백인 아리아 반군 등등..

The Child Molesters 라는 나찌밴드

그런데 이런 네오나찌즘을 담은 음반을 배포하는 것에 대해 독일정부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몇몇 밴드의 리더는 빵에 드나들기도 하는데 심한 경우 3 ~5년의 중형을 받는 케이스도 있다.

'음악은 범죄가 아니다' 라는 나찌 밴드들의 항변에 대해 법원이 내린 판결은 한결같다. 인종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 차별화를 내세우거나 폭력 행위를 선동한다면 명백히 범죄가 된다는 거다.

"검둥이에게 선거권 주지 말고 배에 총알을 박아 버리자", "외국인 노동자, 그 더러운 진드기들은 모조리 어서 사라져야 해' 이런 험악한 가사가 담긴 음악은, 음악이기 이전에 일종의 '테러'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찌록은 젊은 얘들에게 제법 먹혀들고 있다. 나찌록을 하는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장은 암암리에 매진되어 네오나찌스의 아지트가 되고, 또 이들의 CD가 불법적으로 유통 판매되는 식으로 네오나찌즘은 록음악의 형식을 빌어 하나의 문화군을 형성하고 있는 거다. 이 CD는 88센트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 데 '8'은 여덟 번째 알파벳인 'H'를 뚯하고 '88'은 'Heil Hitler'의 첫 글자인 'HH'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 1930년대 희대의 선동가 히틀러의 대중연설이 했던 역할을 90년대 이후 나찌밴드들이 어느 정도 대신 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에선 현재 록음악의 형식 외에 여러 다양한 형태로 나치즘이 젊은 얘들에게 침투해 퍼트려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축구경기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고 때로는 캠핑의 형식을 빌리기도 하며 때로는 등산의 형식을, 때로는 음악회의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베이 같은 세계적 경매 사이트마저 네오나치 선전물을 거래하고 확산시키는 루트로 악용되고 있다.

분명한 건, 예전의 단순히 구호나 슬로건이라는 정공법보다 효과적으로 젊은 얘들을 파고 든다는 거다. 네오나치즘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젊은 층의 패션, 음악, 스포츠 그리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교묘히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인 건 유색인뿐만 아니라 네오나치 지네들이 스스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공격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좌파는 물론 동성애자, 장애인, 진보파, 노숙자, 비독일적인 문화 심지어 미혼모까지 포함되어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한골때림한다.

그리고 이런 네오나찌즘을 조종하는 배후세력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은 극렬우익당인 NPD- National 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64년 결성되었으며 현재 당원이 대략 6,000여 명 정도로 민족 민주당, 혹은 국가 민주당이라고 불린다. - 다. 

NPD는 시위현장에 버스를 대절하고 음식과 맥주를 제공하는 등 공식적인 시위를 추진하고 홍보물을 제공하면, 이들에게 포섭된 네오나찌스는 알아서 거리에서 실력행사를 벌이는 등 NPD와는 공생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보통 NPD의 지지율은 전국적으로 1 ~ 2% 정도로 미미하고 몇 년 전부터 이 당의 불법화를 독일의 상.하원의원들이 추진하고 있어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작년 지방선거에서는 NPD당이 9%의 지지율을 얻는 기염을 토하게하는 주가 있었으니, 그 주가 옛동독 지역이었던 작센주다.

작센주에서 이처럼 극우당이 기염을 토하는 데는 또 스토리가 있다.

2차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영국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Battle of Britain)이 있었는데 점차 전세가 연합국으로 기울자 영국군은 독일의 보복성 맹폭을 가할 타겟을 정하는데, 그 지역이 작센주의 군수공장이 밀집한 드레스덴이다.

800대의 영국 공군기, 450대의 미 공군 B-17 전략폭격기가 2차례 융단폭격을 드레스덴 한 곳에만 집중한다. 그것도 공업지역과 민간지역의 구분없이 맹폭을 퍼부었는데 그 결과가 어땠겠는가. 드레스덴은 완전 초토화되어 무려 3만 5천명의 독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시킨다.

이런 역사 속에서 이 드레스덴 맹폭은 독일 극우민족주의세력에 의한 역사 재해석운동의 상징이 되버리고, 작센주는 전통적으로 게르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곳이자 극우정당이 상대적으로 득세를 하는 주가 된 거다. 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센주의 NPD 의원 12명 전원은 올해 나치 희생자 추모 묵념에서 묵념을 거부해 버렸고.

더 나아가 NPD 의원들은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독일인 홀로코스트를 추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색이 짙던 45년 초, 독일로 진주한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로 많은 독일 민간인이 사망했고, 같은 해 1월, 러시아 잠수함의 공격으로 독일 민간선박이 침몰해 9,000명 이상이 숨진 것을 근거로 들면서.

NPD와 네오나치가 기승을 부리는 더 현실적인 이유는 이렇다.

아시다시피 독일의 정치적. 제도적 통일은 이미 완료되었다. 그런데 동서독지역 주민들 간에는 정신적.문화적 이질성은 정치적. 제도적 통일과 무관하게 상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통일이 이러한 이질성을 직간접적으로 표면화시킨거라고 말하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통일 이후 독일은 내부적인 불황이 닥치고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된다. 동독민들은 통일 후 16년이 지났어도 서독인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데다 실업률은 서독의 거의 두 배가 넘으니 동독인들은 빡 돌게 될 수 밖에. 더군다나 상당수가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각종 복지를 감축해오던 슈뢰더 정권이 실업수당을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삭감시키자 동독인들의 불만은 급기야 폭발하고 만다.

그런 불만적인 상황은 동독인들로 하여금 이민자들을 적으로 돌리려는 심리를 부축인다. 이민자들 저 쉐이들 때문에 우리 동독사람들이 일자리를 다 잃는다.. 뭐 이런 식으로.. 이런 생각은 유태인은 인간이 아니라 '더럽고 위험한 바이러스'라는 히틀러 시대의 인종이론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특히 동독지역의 후생복지수준의 낙후와 실업은 젊은 얘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고 그 공한증은 히틀러 숭배와 같은 네오나치즘으로 표출하게 된다. 비록 자신들은 히틀러의 끔찍한 범죄를 목격하지 않았어도 히틀러 시대 당시의 독일 경제성장을 막연하게나마 희구하면서 말이다.

히틀러 시대의 경제가 어땠냐고?

도로 건설, 토지 개량사업을 확대하고 군대, 경찰, 감옥을 대폭 늘리고 비행장 건설사업 등 군수사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미혼여성에게 결혼 대부금을 주고 쉬게 한 다음 그 일자리를 실업 중인 남자들에게 줌으로써 실업자를 거의 없앤 것이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이전의 600만이 넘던 실업자가 거의 없어진 눈부신 경제 성과다. 물론 이러한 성장은 제국주의를 발현시키기위한 군수사업에 바탕을 둔 것이다.

평등주의와 더불어 이러한 놀라운 경제성과는 공포정치라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나찌에 열광적으로 도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러한 도취는 완전히 청산된 듯 하지만 그 명맥이 젊은 얘들한테 아직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고. 현실의 실업상태와 불안과 열등감을 대체하는 심리기제로써.


80년대를 단군이래 서민이 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고 회자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수 천명의 광주 시민을 살육하며 등장했던 80년대 정권, 그 정권의 수괴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또한 젊은 애들이다.

이들과 네오나찌의 본질적 차이를 아는 사람 있는가..

개인숭배 훼방놓기 우원회
  술탄(sultan@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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