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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가요계의 보아를 꿈꿔요”

아아... 누님

지근거리에서 직접 한번 뫼시고 싶다

솔직히 이미 보아를 능가했다. 적어도 내 맘 속에서는...

여행자들의 객기를 이용한 온갖 노래 테잎은 양평이 꽉 잡음

 

에로가요계의 보아를 꿈꿔요”
[한겨레] 애로쏭·노골쏭·쇼킹시리즈 테이프 100만개 판 정희라씨
팬들의 성원으로 일본어 녹음 마치고 중국까지 노린다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 6월27일 땅굴을 취재하러 강원도 양구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을 빠져나와 양평을 지나칠 무렵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휴게소 매점 한켠 진열대 중앙에 낯선 테이프들이 시선을 확 끌었다. 테이프 재킷 옆면에 낯뜨거운 포즈를 취한 모델 위로 ‘힛트 신상품 애로쏭’(맞춤법 무시)의 빨간색 제목이 민망함을 모른 채 뻣뻣이 꽂혀 있었다. 테이프 앞면엔 5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붉은색의 원 바탕에 ‘19’가 찍혀 있었다. “어라~ 이런 게 다 있었네!” 동행하던 류우종 선배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게 주인은 테이프가 많이 팔린다고 귀띔했다. “야, 이거 얘기(기사) 되겠다.” 애로쏭 3, 4집의 테이프 두개가 한 묶음으로 6천원이었다. 차에 앉자마자 테이프를 틀었다. ‘다행히’(?) 노랫말이나 배경음악엔 결혼한 30대 중·후반의 우리 일행이 듣기에 민망한 구절은 없었다.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면서 늘상 하는 얘기, 겪는 얘기들이 뽕짝 가락을 타고 흘러나왔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고 또 웃었다.



연륜이 쌓여야 나는 맛
그렇다고 성인가요를 자타가 품위 있다(?)고 여기는 <한겨레21>에서 다뤄야 하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게 잡고 할 것 없이 재미있으니 그냥 쓰자는 생각이 앞섰다.

‘에로가수 일인자’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는 정희라(46)씨를 만났다. 지난 7월5일 그가 소속된 동대문 삼성음반 사무실에서다. 그는 ‘삼순’이처럼 불편한 이름을 가졌는지, 본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 그가 지난 2001년부터 부른 애로쏭 1~4집, 노골쏭 1~4집, 쇼킹 1~2집은 100만개나 팔렸다. ‘정통’(?) 대중가요계에서 지난 2002년 이후 100만장 이상 팔린 음반이 없는 음반업계의 불황을 고려할 때 놀라운 수치다. 음반 값은 싸다. 테이프는 보통 두개짜리가 한 묶음으로 6천~7천원에 팔린다. CD는 낱개는 4천~5천원, 두장짜리는 8천~1만원 정도 한다. 보통 음반의 반값 정도다. 그러나 저작권협회 등록 표시가 있다. 표절은 사절이란다.

희라씨가 꼽은 최고의 인기곡은 <소세지타령>이다. 가사를 좀 훑어보자.

“세상살이 우루루루~ 에로쏭 섹시녀 들어간다 한 곡조 뽑아볼까 어랑어랑 어허야 어야디야 내 쏘쏘쏘 쏘세지야/ 밥만 먹고 우루루루~ 어떻게 혼자사 긴긴밤을 쏘세지 하나 없이 긴밤을 세운당가 어랑어랑어허야 어야디야 내쏘쏘쏘 쏘세지야.” 그가 동창회 모임 공연에 요청을 받고 나가서 “내 쏘쏘쏘 소세지야”를 내빼면 남자들이 다들 자지러진다고 한다. 후렴구는 남자의 성기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어 좀 야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 곡은 어떨까? “형님은 좋것네/ 형님은 좋것네/ 아주버님 코가 커서/ 형님은 좋것네/ 아우야 동서야/ 그 말을 말거라/ 크기만 컸지요/ 실속은 없다네.” “구월단풍에/ 국회꽃은/ 서리바람에 피고요/ 이십안짝 처녀는/ 총각 품안에 피누나.” 지난 1994년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민속대관> 구전가요편에 실린 ‘정요’(情謠) 두편이다. 성인가요는 늘 있었다.

대중을 상대로 부른 성인가요는 우리나라에서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성인가요는 시장에 나온 지 오래됐다. 어쨌든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다른 업체들이 섹시송 등 표절을 내놨지만, 꾸준한 인기를 누린 것은 애로쏭·노골쏭·쇼킹 시리즈뿐이었다. 주 소비층은 30대 후반부터 50대까지다. 그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대들에게 공감이 갈 수 있는 가사들”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연륜이 쌓여야 그런 맛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며 가수로서 나이가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해갔다.

그에게서 정통 가수의 냄새를 찾긴 어렵다. 내세울 만한 경력은 없다. 노래 실력을 처음 인정받은 것은 지난 1990년 동네 백화점 오픈 행사 때 나가서 1등을 해서 25인치 텔레비전을 탄 것이 전부다. 그 뒤 오디션을 거쳐 밤업소에 나가면서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불러왔다. 이제 자신의 음반을 내는 그는 가수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가창 실력을 묻자 “지금 있는 가수들은 (나만큼 하는 가수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옛날에 가수 김추자씨의 노래를 좋아했고, 지금은 인순이의 가창력 정도를 평가할 뿐, 눈에 차는 가수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매일 계란 노른자 1~2개와 삼겹살을 찾아 먹으며 목을 관리하는 영락없는 가수였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안 대는 프로다.

가창 실력? 나만큼 하는 가수가 없어~


노래가 저질이 아니냐는 곁눈질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다 그것(가사)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이중성을 탓했다. 노래에 음악성이 있냐는 기자의 반복되는 의구심에 “멜로디는 단조롭지만,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잘 맞는다”고 답했다. 가사가 좀 자극적(?)이라는 것을 빼면 트로트와 아무런 벽이 없었다.

그가 부른 노래를 둘러싼 믿거나 말거나 에피소드도 많았다. “내 노래를 들으신 분이 티코를 타고 가다가 너무 웃겨서 차가 논두렁에 빠졌다고 하더라.” 또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이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웃다가 자연스럽게 화해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자랑했다. 그의 노래는 성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성매매 세태를 꼬집는 풍자에서부터 오지랖 넓게 성교육까지도 다룬다.

성인가수인 그는 평범하게 사는 가정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은 대학에 다닌다. “남편이 처음엔 그것도 노래냐, 그 따위 노래 하려면 하지 마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뒤에서 도와준다.” 아이들도 인터넷에서 홈피를 만들어 가사를 올리고 하는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수입은 먹고살 만하다며 비밀에 붙였지만, 테이프 값의 10%를 고정수입으로 얻고 있었다.

이제 밤무대는 나갈 필요가 없다.

한국 시장을 제패한 그는 일본에 이어 중국으로 진출할 꿈을 꾸고 있었다. 일본 수출길은 이미 뚫었다. 일본 성인가요 매니지먼트사와 협약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애로쏭 1, 2집의 일본어 녹음을 마쳤다. 일본에서 먼저 찾아왔다고 한다.

“일본어의 ‘일’자도 못한다고 했지만, 일본쪽에서 내 목소리와 가사가 너무 잘 맞아, 일본어 녹음을 하게 됐다.” 일본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면, 중국에도 진출할 생각이란다. 그는 “일본에서 보아를 꿈꾸냐?”는 물음에 말없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러고는 “김연자, 계은숙, 정재은(이미자씨의 딸)씨 등이 일본에서 활동한다. 단지 보아처럼 매스컴을 안 타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여름 휴가철에 차가 막히고 졸릴 때, ‘성인’들이여 그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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