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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싫은 이유

 

 

공부하기 싫은 이유
- 곽서 -   

2005/08/18 21:20:41  읽음 216  추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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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공부하기 싫은 이유

- 법앞의 평등과 합리적 적용이 요원한 사회

곽서

연전에 헌재 영감탱이들이 열받게 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옮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나. 세상에 경성헌법국가에서 불문헌법이 경성헌법을 개폐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에 까무라칠뻔 했었다. 그리고 애시당초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어야만 한다는 불문헌법이라는 것이 말이 될 법이나 한 이야긴가 말이다. 그로 인해서 대한민국 헌법재판제도에 대한 회의와 함께 헌법 공부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그래도 그동안은 제대로된 헌법재판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도청이니 뭐니 해서 시끄러운 것은 알았으나 지금 내 처지에 그런 관심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참 우연히도 오늘 노회찬 의원이 검사 7넘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공소시효제도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럴때는 민노당의 스탠스가 부럽다. 그래, 한때는 같이 콩밥을 먹은 투사들이었건만 어떤 이들은 좌고우면하면서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잃기 싫어하고, 그래도 어떤 이는 빵에 보낼래면 보내거라 너무도 당당하게 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어쨌든 민노당이어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도청건과 관련되어서 나오는 얘기가 그 유명한 '독수의 과실'이론이다. 혹자는 독수독과이론이라고도 하고 독나무열매이론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독수의 과실이라는 용어가 왠지 폼나게 느껴진다.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를 통해서 획득한 증거 역시도 증거능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 독나무에서 열린 열매에는 독이 들어있기 마련이므로 그 열매도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참 여기서도 내가 한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인지 갸우뚱하게 된다. 독수의 과실이론은 "수사기관"이 불법으로 증거를 획득했을 때 타당한 이야기이다. 물론 반대의 견해도 있으나 수사기관이 아닌 자가 불법으로 얻은 증거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현재의 확고한 판례 아니었던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청을 금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에서도 그로 얻은 결과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 통신비밀보호법은 사법시험(2차)와 거의 관계가 없으므로 1차 때 헌법공부할 때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는 그런 것 같다는 얘기니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여간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상으로는 그 도청자료를 형사처벌의 증거로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안기부가 수사목적으로 도청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거기 대화내용에 나오는 인물들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다지 말들이 많은 건지 참 모를 일이다.

노회찬 의원의 실명공개문제도 그렇다. 중고등학교 사회시간, 정치경제시간에 졸지만 않았어도 누구나 알고 있을 그 유명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바로 그거 아닌가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그것을 왜 노회찬만이 할 수 있었을까? 열린우리당의 그 쟁쟁한 투사님들은 학교다닐 때 공부를 안해서 몰랐을까? 아니면 딴 생각이 있었을까?

공소시효문제, 이건 언젠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소위 시효라는 제도가 있는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증거도 많이 사라지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우며 이미 현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질서를 인정함으로써 법적, 사회적 안정을 기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공소시효는 특히 10년, 15년이라는 오랜 기간 범죄자가 감옥에 있는 이상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가령 80년 광주의 원흉들을 보자. 그들이 그 오랜기간 고통받고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며 살아왔는가? 정치자금과 뇌물을 제공하며 우리나라 경제를 농단한 그들이 자신들을 죄인으로 생각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살아왔는가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시효라는 것도 철저히 있는 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친일로 부를 축적한 그자들을 위해 철저히 봏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찾겠노라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그들의 선조인 위대하신 친일파님들께서 일제에 충성하고 일제로부터 사정받은 땅, 아, 여기서 사정이라 함은 일제가 토지조사를 거쳐서 등기를 할 때 누구 누구가 소유자라고 확인해 주는 것을 말하는데, 하여간 그 땅은 사정으로 친일파 할배들이 원시취득하게 되고 그것은 법률에 의한 취득이므로 등기가 없어도 되는 것이었고, 아무리 오랫동안 국가나 타인이 점유하고 있었어도 시효취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원래 땅을 시효취득하려면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20년간 점유하면 된다고 법에 그렇게 쓰여 있건만, 우리의 위대한 대법원 나리들께서는 그 소유의 의사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예컨대 매매계약이라는 객관적인 권원으로 인해서 점유했을 때만 인정된다고, 법에도 없는 어마어마한 논리를 개발하여 지금까지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법리를 창조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들이 어찌 공소시효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피의자 또는 피고인편에 서서 그 어떤 경우에도 범해서는 안될 철칙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시방 하고 있는 이 공부는 참 부질 없는 것이 같다. 그래도 어쩌랴 아니할 수 없는 것인데, 자꾸 공부하기가 싫어지니 참 큰일이다, 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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