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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독과 법리' 더이상 팔지 말라

 

 

'독수독과 법리' 더이상 팔지 말라
[기고]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증거 인정 예외 판례도 있다
텍스트만보기   최재천(cjc1013) 기자   
감찰시효는 살아있다

'떡값' 의혹이 제기되는 검사들에 대한 처리 방향이 문제다. 고위간부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주니어급'까지도 '관리대상'이었던 모양이다.

형사처벌이 있고, 징계가 있고, 감찰이 있다. 징계까지는 곤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감찰 시효는 살아있다. 선례가 있다. 다음은 지난 4월 13일 제1회 법무부 감찰위원회 회의 결과다.

"OOO검사장이 사건청탁을 위해 대검 범죄정보 담당계장 OOO을 2회 이상 만난 사실은 인정되고, 이는 품위 손상에 해당하나 징계시효가 도과되었으므로 즉시 인사조치 권고"

선례는 또 있다. 지난 17일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 횡령사건 관련 인천지검 전 수사팀에 대한 감찰사건'에서 역시 '인사상 불이익'을 권고한 것이 그것이다.

권력기관일수록 자체 감찰기능이 중요하다. 외부적 통제는 자칫 외압이나 정치적 간섭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 검찰, 국정원, 감사원 등의 자체 감찰기능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규명도 중요하다

'수사의 단서로 쓸 수 있느냐'와 '증거로 쓸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물론, 수사가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그 관련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고 '어차피 이 증거는 나중에 재판에서 인정받지 못할 증거니까 수사의 개시조차도 해선 안된다'고 지레 포기해 버리는 건 검찰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원회 답변에서 '혐의 있는 곳에 검찰 수사 있다'고 밝힌 원칙이 타당하다.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 중 이미 공개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고발도 있었고, 또 법률 이론상으로도 충분히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수사 개시와 증거사용 문제는 별개라는 것 또한 천 장관도 답변에서 밝힌 바 있다.

법조인의 최고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의 교재도 마찬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한 현행 형사소송법에서 수사의 필요성을 공소제기를 전제로 한 공판준비로 국한할 수는 없다 … 소송조건이 결여될 수 있는 사안에 있어서도,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관계의 규명이나, 특권해당 여부의 판단 혹은 특권없는 자의 공범가담 여부의 규명을 위해 수사가 필요하다."(사법연수원, <수사절차론>)

검찰은 이미 공개된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수사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통신비밀보호법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통비법도 필자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통비법 제4조는 "불법 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독수독과의 법리'는 만능이 아니다

갑작스레 '독수독과(毒樹毒果)'가 대유행이다. 이 법리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하여 발견된 제2차 증거(과실)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 판례에 의하여 발전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없다. 그래서 이번 사법개혁추진위원회 형사소송법 개정논쟁에서도 이 법리를 도입하는 데 대해 팽팽한 논쟁이 있었다. 시민단체는 도입하자고 했고 기존 법조계는 반대편에 섰다.(그런데 'X파일' 사건에서는 희한하게도 그 입장이 서로 바뀌어 있는 것 같다.)

백보를 양보해서 독수독과의 법리를 시인하자. 그것도 독수독과의 법리 때문에 아예 수사 자체를 해서는 안된다는 데까지 양보해보자. 이렇게 되면, 'X파일'에 드러난 '거악'과 관련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법이론상 도저히 수사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외 이론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법률가와 정치인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불리한 부분은 숨겨버리기 때문이다.

미국판례법이나 독일법 이론에 여러 가지 예외 이론이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만을 지적하겠다. 역시 사법연수원 교재다. '독립한 근원에 의한 예외 판례'가 그것이다. 위법한 행위와 관계없는 독립된 근원에 의하여 수집될 수 있었던 증거임이 증명될 때에는 증거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독수독과의 법리가 처음 인정된 그 판례에서 받아들였던 이론이다. '희박성의 원리에 의한 예외 판례'도 있다 (사법연수원, <형사증거법>).

문제는 증거가 독립한 근원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법한 도청에 의하여 얻은 정보와 증거 사이의 인과관계가 그 오염을 없앨 만큼 희박한 경우에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도청에서 얻은 정보의 증거 사용 여부가 문제된 사건이다. 한마디로, 다른 증거가 있고, 그 증거가 충분한 가치가 있으면 독수독과의 원칙은 깨진다는 것이다.

불법자금 제공, 증거는 여럿 있다

다시 'X파일'로 가보자. 공개된 녹음테이프 내용 말고도 비자금과 돈세탁에 대한 증거는 여럿 있다. 그리고, 97년 대선자금의 뿌리에 대해서는 수사한 적이 없다.

다만, 국세청을 이용한 대선자금 모금행위에 대해서는 일명 '세풍사건'으로 몇 차례 다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정치자금 기부는, 국세청의 압력에 의하지 않은 자발적 기부였고, 기부행위가 97년 9월부터 11월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정치자금법이 그 해 11월 14일부터 시행된 관계로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다.

다음은 참여연대가 이미 공개한, 이회성씨의 공소장 시작 부분이다.

"1997년 9월 초순경 삼성그룹으로부터 동 그룹이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수집한 10만원권 수표 1만매 합계 10억원을 교부 받는 등 대선자금조달에 노력하였으나..."

그리고 이회성씨는 법정에서 검사의 질문에 삼성그룹으로부터 60억원을 받았다는 점을 시인한 바 있다. 60억 부분과 돈세탁에 대한 수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바 없다.

백보를 양보하여 독수독과의 법리가 수사의 개시조차도 가로막는 법이라 하더라도 예외를 인정한 판례에 따르면 이보다 더한 증거가 어디 있을까? 이 돈이 그야말로 쌈짓돈인지 아니면 회사돈인지 밝혀낼 필요성은 없는 것일까?

▲ 최재천 의원
시장에 대한 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개입과 기업인의 반시장적, 불법적 행위에 대한 개입은 구분되어야 한다.

법의 생명 중에 하나는 평등이다. 특권계급을 없애 가는 것이 역사의 발전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법 집행 원칙의 확립이야말로 기업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며 '대외신인도'를 높여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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