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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 다큐멘터리로 만난다

호오... 깊숙한 목구녕에 이렇게 깊은 뜻이...

 

 

전설의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 다큐멘터리로 만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웅변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펠라치오!
입력 :2006-01-06 12:10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
▲ 포스터  

제작비 2만 5000 달러, 포르노 역사상 최초 정식 극장 개봉!
표현의 자유 둘러싼 정부와의 전쟁 선포!
뜨거운 대중적 관심과 함께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워터게이트를 압도하는 화제 속에 총수익 6억 달러를 돌파했던 영화 <목구멍 깊숙이>는 그렇게, ‘세기의 신드롬’이 되었다.


워터게이트를 잠재운 ‘<목구멍 깊숙이> 진실 혹은 대담’

▲ 목구멍 깊숙히 개봉 후 인산인해를 이룬 극장 전경  

세계 포르노 영화의 전설, 가장 상업적으로 흥행했던 포르노 영화였던 <목구멍 깊숙히>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인사이드 딥 스로트>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72년 6월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워터게이트 사건. 딥 스로트(deep throat, 익명의 정보 제공자)에 의해 그 배후가 세상에 공개되며 닉슨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해야 했던 초유의 스캔들.

이 역사적 사건과 때를 같이한 또 하나의 ‘딥 스로트’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질 무렵 맨해튼의 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낱 포르노에 지나지 않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신드롬’이라 부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목구멍 깊숙이>는 단순히 파격적인 소재와 극장에 정식 개봉된 최초 포르노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화제를 얻은 것은 아니다. 미국 전역이 대대적으로 성 해방과 평등권, 반문화적 가치를 부르짖던 시기에 개봉,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을 뿐 아니라 단돈 2만5000 달러로 만들어진 저예산 포르노가 자그마치 6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총수익을 올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만큼 사회, 문화 전역에 일으킨 파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영화 관람의 차원이 아닌, 정부와 제도의 억압에 맞서는 사회 운동으로까지 그 의미가 격상되기도 했다.

<목구멍 깊숙이>로 세기의 히로인이 되었던 여배우 린다 러브레이스

<목구멍 깊숙이>는 자신의 성감대가 입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중산층 여성이 섹스에 탐닉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펠라치오(여성에 의한 구강성교의 일종)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이 범상치 않은 소재가 다른 포르노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범하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그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무엇보다 펠리치오가 남자를 위한 여성의 일방적인 봉사로 여겨졌던 기존 인식에 반해, <목구멍 깊숙이>에서 그려진 펠라치오는 동등한 남녀의 상호 관계를 뜻하고 있어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처럼 영화가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이르키자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단연 주연을 맡은 여배우 린다 러브레이스였다.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해 평범한 외모를 지닌 린다는,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남성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웃집 여자 같은 이미지가 평범한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기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구멍 깊숙이>의 대성공과 달리, 린다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뉴욕 경찰의 딸로 태어난 린다는 원래 연애 경험이 전무했던 순진한 소녀였지만, 갑작스런 차 사고로 좌절에 빠지며 우연히 만나게 된 트레이너란 난봉꾼에 의해 <목구멍 깊숙이>에 출연하게 되면서 인생의 항로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물론 뜻밖에 <목구멍 깊숙이>가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린다는 어느 누구보다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정식 연예인으로서 주류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들은 사회적 편견에 부딪혀 좌절 되었고 이후 출연한 영화들마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쓸쓸한 인생을 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가 무참히 망가진 후 반포르노 운동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에도 가입했던 린다는 자신을 포르노의 희생자로 증언하기도 했다.

800시간의 인터뷰,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

▲ 위 70년대 원전 촬영 모습 아래 다큐멘터리를 만든 두 감독  
영화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가 <목구멍 깊숙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의 할머니를 통해서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대중의 호응에 비례하여 그것을 억누르려는 법적, 정치적 제재 또한 강했다."는 할머니의 증언은 그레이저로 하여금 <목구멍 깊숙이>를 다큐멘터리로 재조명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켰으며, HBO 다큐멘터리 대표이자 13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쉴라 네빈스를 찾게끔 만들었다.

둘은 이면에 숨어 있는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해 보자는 것에 동의를 했으며, 선댄스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인정한 재능 있는 두 감독 펜튼 베일리와 랜디 바바토를 공동 연출자로 낙점했다.

영화 개봉 후 이미 수십 년이 흐른 상황에서 당시 관계자 및 기록들을 찾는 것아 쉽지 않았던 까닭에 감독들은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정한 후 2년 동안 장소를 불문하고 밤낮 없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당시 영화를 제작했던 프로듀서, 출연 배우들, 스탭들, 영화를 본 관객들을 수소문해 수 백 개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저명한 학계 인사들의 견해도 수집했다.

두 감독은 다큐멘터리지만 작품의 흥미를 반감시키지 않기 위해 <목구멍 깊숙이>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성 방식을 택했으며, 덕분에 작품은 다큐멘터리 특유의 리얼리티를 얻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언으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제작한 인터뷰 영상만 해도 800시간이 넘었으며, 그것을 편집하고 재구성해서 이야기로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만 해도 1년이 걸렸다. 그런 과정에서 <인사이드 딥 스로트>는 <목구멍 깊숙이>에 버금가는 화제를 낳았다. 작품 안에서 보여지는 표현 수위를 비롯, 외설 논쟁이 다시 한 번 불붙었으며 원론적으로는 다큐멘터리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감독들이 통감한 것은 "진실은 완전히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목구멍 깊숙이>를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들. <인사이드 딥 스로트>의 제작진들은 어쩌면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한 진실을 파헤치는 데 온 열정을 불태웠으며, 이제 우리는 경이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흘려보냈던 역사의 한 지점에서 <목구멍 깊숙이>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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