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기고]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 인권위 'NAP 권고안' 왜 반대하는가
텍스트만보기   오마이뉴스(news)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NAP)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자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현장에서 인권증진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가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의 논리를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 경제5단체 회장단을 대표해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고용 억제 등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경제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한마디로 황당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이하 NAP) 권고안을 발표하자, 보수적인 언론과 재계가 똘똘 뭉쳤다.

이들은 '현 국가인권위원회 해체', 'NAP 권고안 전면 재검토', '국가인권위는 무국적 집단이며 교과서만 외우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단', '헌법 파괴적 발상', '인권위 구성은 시민단체 출신이 장악'이라는 말들로 현란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NAP 권고안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은 아예 NAP권고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논란거리를 정리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권단체(?)를 찾기에 바빴다.

또 행정부를 책임지는 국무총리가 한 재계 단체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권고안 내용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이행계획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재계는 전면적인 국가인권위 흔들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재계와 일부 언론의 반응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NAP 권고안은 한마디로 국가정책 전반을 인권으로 바로 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일부 언론들은 '그러니까 NAP가 교과서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NAP는 유엔이 회원국에 대해서 인권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이행계획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인권정책 이행계획을 수립할 주체인 정부에 대해서 인권전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NAP 권고안을 마련하는데 인권 이상의 잣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국가가 가입·비준·동의한 국제인권규약 내용이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런 상식이 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비판의 핵심은 ‘인권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NAP권고안의 주요 정책에 대한 내용을 곁들이며, 기득권을 누려오고 지금도 사회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천민적인 재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격렬한 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권중재 사업장의 파업권 유보 조치를 해소하고 약 84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라는 내용이 재계를 분노(?)케 한 것이다.

재계 주장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주장

▲ 경제 5단체장은 지난해 4월 22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의견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 원안대로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재철 무협협회장, 이수영 경총회장, 박용성 대한상의회장,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기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이상이자 국제적인 합의인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나라 재계의 저질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재계는 차라리 "인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오로지 경제현실론자(?)임을 고백하든지, "노태우 정권 때 가입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8조를 유보시켜 사실상의 노예노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정당한 보수를 받아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6조와 제8조를 이참에 유보하라고 주장했어야 한다.

유엔은 2000년부터 초국적인 기업과 기업시민단체와 더불어 '지구협약'(글로벌 컴팩트, global compact)을 본격 추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에 합의, 전세계 기업 활동에서 이 원칙을 주된 지향으로 삼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공공성이 강한 한국전력과 토지공사만이 작년에 가입했을 뿐이다. 이는 프랑스 374개, 브라질 121개, 캐나다 27개, 영국 59개, 독일 47개, 미국 80개, 인도 101개, 멕시코 19개, 중국 49개, 태국 18개, 러시아 19개, 일본 6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여 인권과 노동 분야의 국제기준 및 국제규약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자율적인 준수를 약속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미 101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이 때, 경쟁력 운운하며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재계가 과연 현재의 추세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청년실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협박과 매수 그리고 노동자 파업 때마다 위장폐업 및 업무방해 명목의 고발과 소송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생존권을 짓밟았던 재계가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

70년대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기업들이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잘 지켰다면 생리휴가나 출산휴가 내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인권단체들이 이렇게 분노했을까!

재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해체하고 이른바 덕망있는 인사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가 말하는 덕망있는 인사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답해 봐라. 공개 검증을 해 보자! 선동도 이런 선동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호민관으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서 법에도 국가인권위원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사퇴하지 않는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

재계의 주장은 기초적인 상식도 없고 그저 주장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노사관계'에 관여한다고 비판하고, 정치적인 공민으로서 공무원과 교사의 지위를 회복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권고내용을 30년 전과 똑같은 이유인 안보와 질서를 이유로 반대했다.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이것은 '소수의 인권' 또는 '진보세력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수의 인권'과 '보수세력의 주장'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퇴행적 기득권 지키고자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해 이견을 표시하는 회견을 열었다. 정강자 상임위원(왼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인권에는 다수와 소수가 있지 않다.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있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는데 힘이 적거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집단이나 개인이다. 힘으로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기득권층이 인권을 주장할 때 이것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권은 인권의 반대편에 있는 논리이다.

말하고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것이지 국민을 위한 것 혹은 국가발전과는 무관한 것이다.

퇴행적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재계와 일부 언론들의 정치연합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차라리 "우리는 인권을 모른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라. 제발 인권을 갖고 편가르기 하지 마라. 인권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장할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어떠한 선진국을 지향할지, 즉 국가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고 인간으로서 존중되느냐 하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시기다. NAP 권고안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2011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아직도 천민적 발상으로 경영하겠다는 기업은 퇴출 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더 엄밀하게 말해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자신들의 공헌을 선전하고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 경영은 이제 없다. 인권이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인 21세기에 기업은 분명하게 인권에 답해야 한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28일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 한센병력자들을 상대로 인권실태 조사에 나섰다.
ⓒ 고흥군
관련
기사
경제 5단체 "인권위, 노사문제 간섭말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