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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희대의 명문이로다

 

 

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입력 :2006-01-19 21:45   최재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왜 인권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색칠하는가?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헌재 1996.2.29. 93헌마186)” 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경제계는 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립된 국가 기구의 근본적 목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있다. 이 점은 인권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는 이렇게 정한다.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헌법질서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인권위원회 법의 내용이 이러할진대 기본 계획 권고안 발표가 어떻게 해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참으로 단호하다. “인권위는 헌법 위의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번 발표를 두고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현상마저도 이념적 영역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모든 현상을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그것도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 현상을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는 경제5단체장의 비판을 그대로 경제계에 돌려주고 싶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인권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

인권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지위도 독립적이고 업무도 독립적이다. 다른 나라의 인권위도 대부분 그렇다. 도리어 우리나라의 인권위의 독립성이 다른 나라의 인권위보다 취약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경제5단체장은 이렇게도 주장했다.

“인권위의 독선적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기본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차기 인권위 위원의 재구성시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라고도 했다.

그러면 인권위가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가? 툭하면 일부 진영에서는 인권위 폐지론이나 기능 재정립론을 물고 늘어진다. 국가보안법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사형제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대체복무제 도입권고 때도 그랬다. 기본적 인권 수준의 향상을 기본 임무로 삼고 있는 인권위가 그러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헌법질서에 충실한 일일까?

툭하면 위원 구성도 문제 삼는다. 인권위 위원은 국회가 선출하는 4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다.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헌법이 특별히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게만 인정한 위원구성방식을 인권위원회에도 인정한 것이다. 더구나 국회가 선출한 위원 중에는 한나라당의 몫도 2인이나 포함되어 있다. 김호준 위원과 신혜수 위원이 바로 그 분들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인권위 구성이 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이것이야말로 좌우에 대한 기본개념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오해

“우리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 1998. 5. 28. 96헌가 4등, 헌재2001.6.28. 2001 헌마132)”

또 다른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결국 우리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2002.11.28. 2001헌바50 등 다수)”

늘 느끼는 일이지만 경제계는 우리 헌재의 결정 중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강조하는 부분만 애써 인용한다. 헌재 결정의 뒷부분,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부분이나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결정부분은 철저히 무시한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이 도리어 헌재의 결정에 반하고 우리 헌정질서에 반하는 주장일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인권위는 다른 기관보다도 더더욱 그 목적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간혹 경제5단체장은 시장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스러울 때가 있다. 시장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선택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 이것은 곧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계의 주장도 다양성의 한 형태로 존중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폄하하는 것은 결코 시장경제주의자들의 태도가 아니다. 일정 사안에 대해 재계의 주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는 언론이나 인권의 자유시장에서 평가되고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 의해 선택될 일이다.

그런데 왜 내 주장은 헌정질서에 부합하고 인권위의 발표는 헌정질서에 반한다고 비평하는 것일까?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추구에 있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인권의 보호와 수준 증진에 있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자체를 긍정해야 하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시장에 대한 오해도 문제이지만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장의 개념을 사회 전반에 확대시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 인권의 영역까지 극단적인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과잉일수 있다.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은 “시장경제는 좋지만, 시장사회는 거부한다”는 입장이었다. 경제계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에서 ‘성장이냐 인권이냐’ 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경제계

무엇보다도 성명 중 불행한 일은 경제5단체장의 사고가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성명에 깔린 기본 생각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권의 유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의 가치만을 앞세운 개발 우선 또는 경제 우선의 논리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을 위한 인권제한이라는 견해는 경제성장과 인권보장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채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서구의 선진사회 경험은 인권신장과 경제성장이 양자택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속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에 공고한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을 신장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양가치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성명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는 인권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고 양극화도 인권신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계의 획일적인 흑백논리가 여기에도 드러난 것이다. 경제계는 지금까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흑백논리로 사물을 재단해 왔다. 이번에는 성장이냐 인권이냐 하는 논리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기본계획 발표 자체가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시장에만 세계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세계화도 더더욱 중요하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정부가 발언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인권의 보편적 기준을 근거 삼는다. 왜 그 기준을 우리의 인권에는 들이대지 못하는가?

더구나 인권위가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기본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제적 인권 규범과 우리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왜냐하면, 먼저 헌법 제6조를 보자.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2001년 5월 UN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대해 2006년 6월까지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그 권고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권고의 근거는 우리가 가입되어 있는, 헌법에 따라 1990년 7월 국회의 동의까지 마친 ‘UN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이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UN인권규약에 가입하지 말라고, 그리고 비준하지 말라고 주장했어야지 지키지도 못할 국제 법규를 왜 받아들이도록 허용했을까?

국제인권법은 우리가 지켜야할 당연한 규범중의 하나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기본 계획은 UN총회에 근거해 178개국이 참석하여 만장일치로 동의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권고사항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미 기본 계획을 발표했거나 실행중이다. 늘 그렇듯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념적 잣대로 모든 사안을 단순화시켜버리고 마치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그리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제로 울타리 치는 관성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한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2)  
 
천민
2006-01-19 오후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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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민자본주와 그 앞잡이 월급쟁이들의 지랄병인디 그냥 내비두는 게 국익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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