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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다리 부러진 고라니 일병 구출작전

내는 고라니가 새인줄 알았다.

 

 

필진] 다리 부러진 고라니 일병 구출작전
필진네트워크
▲ 제가 낚시를 한 굴암리 둠벙의 한 풍경입니다. 사진 테크닉은 후지지만 장면은 멋지죠? /필진네트워크 전종휘
제가 지난 주말 낚시를 갔다 고라니 한 마리를 구했습니다. 왼쪽 뒷다리가 부러진 채 300여 미터가 넘는 강을 헤엄쳐 건너며 죽음 앞에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생명의 힘을 보여준 그 현장을 사진과 함께 안내합니다.

저는 지난 14일 토요일 오전 7시께 서울 집을 나서 경기 여주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유일한 취미생활 낚시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주는 강뿐만 아니라 많은 둠벙과 저수지로 낚시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 쪽 둠벙에 도착하니 얼음이 얼어있더군요. 얼음 낚시 1시간 동안 입질 한 번도 없습니다. 차를 몰고 둠벙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강이 나옵니다. 그 쪽은 얼지 않았습니다. 1월초에 얼음이 아니라 물에 찌를 띄우고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낚시꾼으로선 크나큰 행운입니다. 자리를 그리로 옮겼습니다. 분위기는 좋습니다. 3.2칸대 두 대를 폅니다. 조용합니다.

그런데 오후 1시께부터 강 건너편에서 사냥용 총소리가 울립니다. 여러 차례 납니다. 혼자 욕했습니다. "낚시도 안되는데 어떤 XX가 총을 이리도 쏴대는거야?"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압니다. 이 총소리가 군에서 쓰는 K-1, K-2 총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10분쯤 지났을까요. 건너편에서 돼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납니다. `풍덩'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멀지만 보입니다. 한 네발 짐승이 강에 뛰어들어 이 쪽을 향해 헤엄을 칩니다.

▲ 헤엄치는 야생 고라니 본 적 있으세요? 건국 이래 최초의 촬영된 화면이 아닐지, 감히, 생각해봅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생명체의 힘은 놀랍습니다. 왼쪽 뒷다리가 부러진 고라니가 무려 300여 미터를 헤엄을 쳤습니다./필진네트워크 전종휘

10분도 채 지난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동물이 이 쪽 뭍에 다다랐습니다. 가만 보니 고라니입니다.




▲ 어때요? 이놈 귀엽지요? 300여미터를 세 다리로 헤엄친 대단한 놈입니다요./필진네트워크 전종휘

저는 웃습니다. 물고기도 안잡히는데 웬 고라니냐. "오늘 밤 신선한 고기 실컷 먹겠군." 어머니에게 중간 보고를 합니다. 어머니 정색을 하십니다. "들짐승은 함부로 잡으면 안된다." 어머니 말씀에 겁많은 저도 긴장합니다.

잠시 뒤 가보니 이 놈이 어딘가를 다쳤습니다. 육상 달리기라면 저보다 빠를 이 놈이 제가 가까이 가도 멀리 도망을 못 갑니다. 참고로 저는 고3 때 100m를 13.9초에 달린 게 최고 기록입니다. 덮쳤습니다.

이 놈 목을 왼손으로 누르고 제 몸으로 이 놈 몸을 깔아뭉갭니다.

저항이 대단합니다. 가만 보니, 이 놈 네 발엔 모두 굽이 달렸습니다. 제 손톱, 발톱 두께의 수십배는 되는 굽이 이 놈에겐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제 이빨 나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왼쪽 뒷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1센티미터 이상 보입니다. 참혹합니다.

이 놈 눈을 봅니다. 처량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동물의 애처로운 눈빛입니다. 차마 그 눈빛을 보고서도 이 놈을 먹고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습니다. 가만히 타일렀습니다. "내가 널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려주려고 하는거야. 나랑 같이 동물 병원 가자, 응, 제발" 말귀? 안통합니다. 이 놈 버둥거립니다.

한 5분쯤 잡고 있다 놨습니다. 답이 안나옵니다. 이 놈 도망도 못갑니다. 10여 미터 앞에 있는 풀숲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움직이질 않습니다. 휴대전화로 119에 신고했습니다. "여기 어디어디인데요, 다리 부러진 고라니가 있어요. 도와주세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119소방대가 나무위에 기어올라간 고양이를 구출하거나 도심에 출현한 동물을 생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119소방대가 위기에 처한 우리 동물의 친근한 이웃인줄 알았습니다. 말짱 황입니다. 119소방대 끝까지 안옵니다. 대신 경찰과 군청에 연락해 대신 오라고 하더군요. 경찰이 먼저 왔습니다.

경찰 어떤 때는 지나치게 거들먹거립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성실한 업무수행을 합니다. 하지만 소용 없습니다. 경찰은 마취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119 소방대는 있던데... 마취총을 동물 구하는데 안쓰면 어떤 때 쓰려고 지급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한 경찰 관계자가 119에 전화를 걸어 따집니다. 왜 업무를 미루냐구요. 맞는 말입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소방관도 있겠지만, 적어도 텔레비전에 나온 119 소방대원들의 동물 구출작전은 사기성이 짙다는 게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화면을 가만히 보십시오. 대부분 소방서가 찍은 화면입니다. 방송사에 보내 전파 탈만한 것만 찍습니다. 그리고 홍보합니다. 그럴 만한 현장만 나가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실망입니다.

여주군청 담당자는 관내 경찰차가 도착한 지 1시간 이상 뒤에 왔습니다. 다행히 포획용 박스를 가져왔습니다. 그 때까지 꼼짝 않고 있던 이 놈을 생포했습니다.

▲ 풀숲에 숨은 놈에게 제가 다가가자 이 놈, 궁둥이만 보이고 얼굴은 감춘 채 숨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필진네트워크 전종휘

잡을 때는 격렬한 저항을 하던 이 놈도 막상 통 안에 들어가니 조용하더군요.

▲ 경찰 2명과 군청 담당자 등 셋이서 고라니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야생동물 1마리를 살리기 위해 토요일 오후 시간을 반납한 공무원 여러분에게 `짝짝짝' 박수를 보냅니다, 119 대원들만 빼고... /필진네트워크 전종휘

여주군청에 간 이 고라니는 광주 쪽에 있는 동물보호협회로 갔습니다. 다리가 두 동강 난 이 고라니는 어떻게 됐을까요? 수술을 제대로 받고 정상의 몸을 되찾았을까요? 아니면 끝내 부상당한 다리를 잘라내야 했을까요? 조만간 제가 후속 보도를 하겠습니다. 그 사이 이 고라니의 안녕을 빌어주십시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종휘
격투기 자동차 낚시 그리고
http://wnetwork.hani.co.kr/symbio/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기사등록 : 2006-01-17 오전 11:36:17 기사수정 : 2006-01-17 오후 01: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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