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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범인은 '양극화'?

중남미에서 일찍부터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도입된 결과 극심한 양극화가 발생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외국계에 넘어갔으며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실업률은 언제나 두 자리대라는 평가는 좀더 연구해 볼 필요

 

복수는 나의 것> 범인은 '양극화'?
[양극화를 넘어 ⑤] 영화 속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극과 극
텍스트만보기   박일한(news) 기자   
날이 갈수록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노동뿐만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등에도 뿌리를 내리며 공동체를 갉아먹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와 함께 '양극화를 넘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양극화해소연대는 지난해 9월 전국 13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사회·경제 개혁 추진을 위한 연대기구다. 이 글은 기획 다섯번째로 영화 속에 나타난 양극화 이야기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영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조만간 개봉할 영화 <홀리데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자살한 탈주범 지강헌의 이야기다. 제작사 측은 "영화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를 통해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심화되는 빈익빈부익부 현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1988년의 탈주범 이야기를 모티브로 빌려왔다는 얘기다.

지난해 최고의 인기 영화였던 <나의 결혼 원정기>와 <너는 내 운명>에서 농촌총각 만택(정재영)과 석중(황정민)은 우즈베키스탄이나 필리핀으로 신부를 찾아 떠난다. 처녀들이 떠난 가난한 농촌 총각의 문제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반면, 같은 시기 도시에선 <작업의 정석>에서 보여주듯 펀드매니저 민준(송일국)처럼 잘 나가는 '능력 남'들이 돈 있고 매력 있는 무수한 여자들을 두루 만나면서 최적의 상대를 찾는 '작업'을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모두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현상이 이뤄놓은 풍경이다.

양극화의 처참한 형태를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연작 첫 번째로 유명한 <복수는 나의 것>이다. 영화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 실업문제, 가족 동반자살, 유괴, 장기매매 등 양극화로 치달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모습을 매우 생생히 그린다.

이 영화를 통해 양극화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좀 더 생생히 지켜보자.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간단하다. 청각장애자인 류(신하균)는 누나(임지은)의 신장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괴를 감행한다. 돈만 받고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리라 결심하지만 아이는 물가에서 놀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익사한다. 중소기업 사장인 아이 아버지 동진(송강호)은 납치범이 자신의 딸을 죽였다고 판단, 복수를 감행한다.

성실하고 열린 젊은이 류는 왜 '착한 유괴'에 나섰나?

▲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신하균)은 중소기업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이며 누나를 아끼는 착한 청년이다.
영화에서 류는 매우 착하고 순진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누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성실하고 여린 젊은이다. 그런 류가 왜 유괴를 감행했을까.

먼저 누나의 신장수술이 급하다. 회사에서 돈 1천만원을 받고 잘린 후 누나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병원 측은 누나에게 맞는 신장이 없다며 무작정 기다리란다.

시간이 촉박한 류는 장기매매알선업자들을 찾아간다.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몸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공중 화장실 벽마다 붙어있는 장기매매알선업자들의 광고 문구를 보고 류는 누나의 신장을 구하러 나선다.

그런데 장기매매업자들은 돈 1천만원도 모자라 류의 신장까지 내놓으란다. 누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류는 무조건 허락하고 자신의 몸뚱이를 맡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누나 신장을 주겠다던 사람들은 돈과 자신의 신장만 훔쳐가고 사라져 버렸다.

돈과 신장까지 도둑맞은 류. 무엇을 할 것인가? 류의 여자친구인 무정부주의자 영미(배두나)가 먼저 유괴를 제안한다. 아이를 안전하게 데리고 있다가 돈만 받고 돌려주는 '착한 유괴'도 있다며 류를 꼬신다.

"저 차(사장이 타고 있는 자동차) 한대면 너 월급 10년은 되겠다. 그 정도 돈은 쟤네한테는 껌값이지만 우리한테는 목숨이 달린 거야. 그런 자본의 이동은 화폐가치를 극대화하는 길이라니까. 유괴는 무조건 나쁜 게 아니야!"

류는 결국 유괴를 결심하고, 유괴 대상으로 우연히 알게 된 중소기업의 사장인 동진의 딸을 선택한다.

유괴도 산업, 장기매매도 사업

▲ 영미(배두나)는 류에게 "세상엔 착한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다"며 "누나를 살리기 위한 유괴는 착한 유괴"라고 설득한다.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화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영화에서 보여지듯 유괴 범죄가 급증한다고 한다. 가난의 막바지까지 다다른 사람들, 그들이 선택할 최후의 수단은 돈을 훔치거나 '돈 있는 놈'을 납치해 돈을 요구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남미다. 멕시코 등 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도입된 결과 극심한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외국계에 넘어갔고,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실업률은 언제나 두 자리대 수치다.

이 지역에서는 납치산업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로 납치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에서는 납치범이 사업가나 부유한 가정의 자녀를 납치한 뒤 최소한 100만 달러의 이상의 거액을 챙긴다고 전해진다.

부자 동네엔 '방탄차 개조' 전문업체가 성업 중이며, 유괴나 납치에 대비한 보험업, 경호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납치 경호원 이야기를 담은 <맨 온 파이어>나 납치 협상가의 이야기를 담은 <프루프 오브 라이프>같은 영화에서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불법 장기매매도 사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일수록 증가하는 현상이다. 장기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 것 없는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의 몸뚱어리라도 팔려고 들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장기매매의 주요 원인이 이런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것이라면, '장기의 자유판매를 허용하자'는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의 주장은 공허한 말일 수밖에 없다. 자발적인 자유 판매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판매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카드 빛에 몰린 수백만의 사람들의 장기가 자유롭게 거래되는 세상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무차별 구조조정과 가족 집단자살, 이미 낯익은 이야기들

딸을 유괴당한 아버지, 동진은 복수를 결심한다. 그가 제일 먼저 범인으로 주목한 대상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다 잘린 팽 기사다. 동진은 최근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팽 기사는 갑자기 나타나 복직을 요청하며, 동진 앞에서 할복을 시도했다.

"사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 마누라 도망가고 애새끼들 굶어죽고 있습니다. 저 6년 동안 결근 한번 안 하지 않았습니까. 용접반 불량률 0.008% 나온 것 아시죠. 용접기와 한 몸 돼서 일신전기에 청춘을 바친 몸입니다."

동진은 "회사 사정을 잘 설명하지 않았냐"며 타이르지만 팽 기사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다.

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동진은 팽 기사를 찾아 나선다. 경찰과 함께 빈민촌에 위치한 팽 기사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 곳에서 동진이 발견한 것은 팽 기사 가족의 충격적인 집단 자살 현장이다. 일가족 모두가 약을 먹고 죽어 있었던 것이다.

연일 사회면을 장식하는 가족 집단 자살, 카드 빛에 몰린 사람들의 도피성 자살 등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자살자가 1만3293명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루 평균 36.4명, 39분마다 1명씩 목숨을 끊은 셈이다. 2000년 1만1794명, 2002년 1만3055명, 2004년 1만3293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셈.

주목할 점은 이들의 주요 자살 동기는 실업, 신용불량자 전락,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이유라는 점이다. 이들의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진짜 범인은 양극화된 신자유주의적 현실?

▲ 동진(송강호)은 류에게 복수하면서도 "너, 착한 놈인 것 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가해자는 류도 동진도 아닌 신자유주의일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류와 동진은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다. 류는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한 실직자며 부족한 의료 복지 제도에서 누나를 잃고 자신의 신장까지 도둑질당한 피해자다. 동진도 평생 열심히 살아왔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버텨내다가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까지 유괴당한 피해자다.

그런데 이들은 또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류는 유괴범이며, 고의적이진 않았지만 아이를 죽게 만든 원인 제공자다. 동진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창업 공신인 팽 기사를 해고해 그의 가족을 집단 자살로 몰고 간 가해자다.

영화를 보고 나면 도대체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헷갈린다. 이들은 왜 서로에게 복수할 수밖에 없을까. 모두가 가해자고 피해자인 현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박일한 기자
영화는 결국 모든 인간을 피해자며 가해자로 만든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비판하는 듯하다. 모두가 무한 경쟁으로 모는 현실, 무엇이든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상대방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진짜 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영미가 도로변에서 홀로 유인물을 배포하면서 외치던 "민중생활 파탄내는 신자유주의를 박살냅시다!"란 불온한(?) 구호는 어쩌면 감독의 진심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잘 알려졌듯, 이 영화를 만든 박찬욱 감독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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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 기자는 경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경제주간지 <이코노믹리뷰>를 거쳐 현재 <파이낸셜 뉴스>에서 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영화를 통해 딱딱한 경제, 경영 이야기를 쉽게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제in시네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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