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기존 경제문제의 근원을 추적하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경제학 책들이 기존 경제질서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거나 그 위에서 대증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면, 이 책은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서 가장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현재 만성적인 경기침체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 책이 시의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은 여러 가지 인문학적인 측면과도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자나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와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정부의 임의적인 개입 없이 경제주체의 자연스러운 행위만으로 경제를 꾸려가게 한다는 발상은 무위無爲의 사상을 경제에 접목한다면 나올 수 있는 결과다. (이것을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과 혼동하면 안된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은 기존 경제질서의 결함, 즉 화폐제도와 토지제도의 결함을 고스란히 둔 채 방임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아담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만 그 손은 “나쁜 손”이다.) 동양의 노장사상이 경제질서와 연결된다.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노장사상에 심취한 분들은 자기의 사상을 정치경제에 반영하고 싶다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경제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위선이나 가식의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자기의 이익을 좇으면 사회에도 유익이 돌아간다. 무위의 인간, 무위의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예수는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면 돈을 섬길 수 없고 돈을 섬기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왜 사람이 돈을 섬기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돈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며, 그 해답은 바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찾을 수 있다. 돈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불멸성(액면가가 불변한 것)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매개로 사람들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이 돈의 종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접근한다면 기독교 신앙인들이 이 책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베이션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소로스가 제시한 재귀성이라고 하는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다. 재귀성은 어떤 경제적 상태가 있으면 경제주체가 그 상태를 인지하면서 그 상태를 조작하게 되어 그 상태가 바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격이 오르면 더 사고 더 사니까 더 오르고 그런 식으로 자기증폭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인지가 시장상황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격이 떨어지니까 팔고 파니까 더 떨어지고 경기침체, 경제위기가 온다. 따라서 소로스는 우리가 경제질서를 설계할 때 이런 재귀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바로 그 해답이다. 게젤이 제시하는 경제질서에서는 돈의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쌓아둘 수 없다. 돈을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돈이 순환하고 돈이 순환하기 때문에 돈공급이 넉넉해진다. 돈공급이 넉넉하니 더 쌓아둘 필요가 없어지고 따라서 돈의 순환은 더 규칙적이 된다. 재귀성이 기존 경제질서에서는 악순환을 만들지만,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선순환을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정치적으로 좌파 뿐 아니라 우파까지 끌어당길 수 있다. 조지 소로스는 기존 경제질서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지적한 “재귀성”에 따르면 이 책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생태주의와도 연결된다. 생태주의의 목표는 옳지만 생태주의 자체에는 그 목표를 이룰 만한 수단이 없다. 환경파괴는 현대의 산업구조에서 비롯하며 그 산업구조는 경제주체들이 기존 경제질서에 순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질서를 개혁해야만 생태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원전을 반대한다고 피켓 들고 시위해봐야 소용이 없다. 현대 산업문명의 에너지 수요를 커버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니까. 따라서 그런 산업을 자라게 하는 토양인 경제질서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문제의 결과가 아니라 선행하는 원인을 바로잡는 것이다. 기존의 돈은 액면가가 불변하고 그에 비해 돈과 교환되어야 할 재화와 용역은 그것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계속 소모된다. 따라서 돈은 재화 용역보다 우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정기적으로 기본이자라는 조공을 받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그 돈을 가지고 경제주체들이 하는 행위는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유도된다. 반면에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기 때문에 그 돈을 가지고 경제주체들이 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더 적은 감가상각을 이루도록 유도된다. 예를 들어 돈의 액면가가 연 5%씩 감가상각된다면 경제주체들은 그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할 때 5%의 감가상각이 1년보다 더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도록 늦출 것이다. 길면 길수록 좋을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만드는 모든 재화와 생산도구 등이 좀 더 긴 안목을 갖고 설계되고 좀 더 오래가도록, 좀 더 고장이 덜 나도록, 좀 더 견고하게 만들게 된다. 이것은 결국 자원을 아끼게 되고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파괴를 최소화한다. 이 책은 모든 생태주의자들에게 복음이 될 것이다.
돈의 속성은 환경파괴 뿐 아니라 범죄와도 관련이 있다. 범죄는 날로 흉포화·지능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치안은 범죄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발생한 범죄를 수습하고 범죄자를 격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죄를 예방하려면 범죄의 동기를 만드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범죄의 동기는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버는 것은 오래 걸리고 훔치는 것은 잠깐이다. 짧은 시간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태도가 극단적인 경향으로 흘러간 것이 범죄다. 범죄의 동기는 바로 지금 돈의 속성에 사람들이 순응한 결과다. 모든 범죄는 돈의 부족 때문에 돈을 목표로 이루어지므로 게젤이 제안한대로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한다면 돈의 넉넉함(통화팽창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돈순환속도의 증가로 인한 넉넉함) 때문에 사람들의 행위는 범죄로 유도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열망하는 분들,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분들에게 이 책은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네트워크 이론과도 접속할 수 있다. 경제현상을 네트워크 이론으로 해석하면 각 경제주체를 잇는 노드node가 바로 돈이다. 기존의 돈은 그 액면가가 불변하다는 점 때문에 돈이 교환에 제공되지 않고 쌓여있을 수도 있다.(디플레이션) 교환에 제공될 때도 특정 지점에 지나치게 집중될 수 있다.(인플레이션) 즉 네트워크가 끊기거나 교란될 수 있다. 하지만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을 개혁하면 돈은 중립적인 교환매개물이 된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네트워크가 정상화되는 것이다. 분업에 기초한 이 자연스러운 네트워크가 회복되면 이 네트워크가 곧 사회안전망이 된다. 사람들의 용역과 재화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임의적으로 덧붙여진 다른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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