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본적으로 경제이론서이며 큰 틀에서 경제질서 전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맑스의 <자본>, 케인즈의 <일반이론>,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등과 비슷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나온 <엔데의 유언>은 일본 NHK에서 미하일 엔데라는 동화작가를 인터뷰한 내용인데 그 내용은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을 소개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바로 그 실비오 게젤의 대표작이고 따라서 <엔데의 유언>이 소개하려고 했던 바로 그 책의 포지션을 취한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역시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을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역화폐운동을 소개한 책들도 이 책과 관련이 있는데, 그 까닭은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이 바로 세계에 퍼져있는 지역화폐운동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게젤의 경제이론은 1930년대 대공황의 시절 스탬프머니 형태의 지역화폐로 구현되어 대공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기존 지역화폐도 게젤의 공짜돈Free-Money 이론에 근거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화폐운동, 화폐개혁을 다룬 책들 상당수가 게젤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게젤의 경제이론은 국내 독자들에게 베일에 싸여 있다. 게젤의 경제이론은 지역화폐에서만 쓸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세계경제시스템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이론이다.토지개혁, 화폐개혁, 국제무역구조의 개혁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며 스케일이 아주 크다. 따라서 국내 독자는 게젤의 이론 전체를 맛볼 필요가 있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케인즈의 <일반이론>과 대비되는 포지션을 취한다. 경제학사의 비하인드 스토리이지만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표절, 왜곡한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케인즈는 게젤의 이자이론을 표절하였고 이 주제에 관하여 Guidi G. Preparata라는 학자가 <ON THE ART OF INNUENDO: J. M. KEYNES’ PLAGIARISM OF SILVIO GESELL’S MONETARY ECONOMICS>라는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런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이지만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케인즈가 단순히 표절을 한 것이 아니라 실비오 게젤의 이론을 곡해하였다는 것이다. 케인즈는 게젤이 말한 것처럼,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상품과 실물자본의 생산을 제한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여기서 게젤은 그 기본이자가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지 파고든다. 반면 케인즈는 그 기본이자를 ‘유동성프리미엄’이라는 개념으로 합리화한 다음 기본이자를 없앨 수는 없으며 단지 이자를 최소한으로 낮추어서 상품과 실물자본의 생산에 대한 방해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며, 돈이 순환하지 않고 쌓여갈 때는 적자재정을 통해, 즉 정부가 돈을 풀어서 해결하자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태어난 것이 유효수요이론이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막대한 정부 부채다. 또 이런 방식은 언제라도 유동성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이자를 아무리 내려도 돈은 순환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이자를 마이너스로 내려도 돈은 순환하지 않을 수 있다.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다면,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의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지 않는다면, 돈의 순환은 언제라도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케인즈의 방식에서 돈이 순환하려면 물가가 계속 상승해서 돈을 재화나 실물자본과 바꾸는 것이 이익으로 전망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의 남발로 이어진다. 놀라운 점은 이런 유효수요이론의 부작용 역시 게젤이 이미 100년 전에 예견하였다는 것이다. 게젤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 그가 제시한 공짜돈 개혁을 하지 않고 금본위에서 종이돈으로 갈아탈 경우 생길 일들을 미리 예견하였다. 그가 쓴 시나리오대로 이후의 경제는 움직였다. 케인즈의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미봉책으로 문제는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진다.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기존의 경제담론의 큰 축이 바로 이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왔다 갔다 할 뿐이란 것이다.
하이에크의 경우,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돈이 기본이자를 낳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면 공급이 불규칙적인 수요에 맞추어 기형적으로 변형된다. 소수의 경제주체가 시장 전체를 독과점한다든지, 팔지 말아야 할 것까지 모두 상품화된다든지 소위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케인즈나 하이에크와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며, 그것은 경제문제의 근원인 돈을 개혁하는 것이다. 케인즈 요법은 기존 돈의 결함으로 나타난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이며, 하이에크는 그 증상을 방임하는 것이라면, 실비오 게젤은 그 돈의 결함 자체를 바로잡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도 대비된다. 피케티는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의 결함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조세제도로 커버하려고 한다. 이런 방법 역시 문제의 근원을 놔두고 거기서 발생하는 증상을 사후처리하는 것,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게다가 불공정한 국제무역구조, 환율불안, 토지·영토·자원에 관련된 분쟁, 환경파괴, 기후변화 그리고 인위적 분배과정을 통한 정부의 비대화, 관료주의 등 조세제도로 커버가 될 수 없는 부분을 고려하면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실현가능성 측면에서도 게젤의 시스템이 훨씬 유리하다. 게젤은 한 국가 단위로 개혁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피케티의 방법은 전세계 경제를 동시에 개혁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기존의 경제·사회 분야 서적과 뚜렷하게 차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