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몇 가지...

[잡생각]

#1. 어제 오랜만에 '헌신'이란 표현을 반복해서 들었다. 연구자들이 '헌신'을 안한다는 말. 맞다. 그런데, '헌신'은 뭔가 '대의'가 있던지 최소한의 '목표'가 있거나, 아니면 '댓가'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심리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무력한 상태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헌신'이 없다는 말은 반만 맞다. 그네들 탓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나한테 한 사람의 입장은 충분히 존중한다. 허나 '대의'야 그렇다 치더라도, '댓가'만 보더라도, 이른바 진보단체들이 발주하는 연구 사업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사업도 대개 실비 조차 충족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구비 없이 뭘 한다는게, 교통비나 복사비, 자료구입비 없이 작업을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고, 한두번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더더욱 힘들다. 뭐, 연구작업에 이것만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그리고 모두 어려운 처지에 누구 탓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의 '헌신'이란 표현이 오늘날 현실에는 너무나 '순진'해서 드는 생각이다. 오늘날 연구진영과 실천진영 간의 관계가 그냥 '헌신'이란 표현으로 짤방이 될까? 지난 몇 십년 간의 역사성을 탈각한 채 말이다. 게다가 '헌신'만 가지고,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몇 명이나 늘까?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만 이 판에 남아 있는 거지만. 여하튼, 나는 감히 누구더러 '헌신'하라 못하기에, 그리고 '헌신'하라 그러면 닭살이 돋는지라, 오랜만에 굉장히 어색했다. 누군가는 용빼는 재주가 있나보다 했다. 원래 '조직관'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웃지 마시길.

#2. 언제 부터인가 얼치기 사회과학도로서, 인문학 전공자들을 만나고 나면, 기분이 묘하게 처지고 꼬이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미끌미끌한 미역줄기를 훑는 것처럼 이물감을 느낀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보적인 사회과학자들은 인문학을 포함한 이론에 대해 보통은 등한시하지 않는 반면에, 인문학도와 잉문학도들은 사회과학영역에 관심을 덜 가진다. 가진다고 해봤자, 약간의 정치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정도? 드넗게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접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게다가 그게 한마디로 그리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편견일 수 있으나, 대화가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치더라도, 몰이해가 심할뿐더러 이해하려고도 않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런 비대칭 자체야 크게 문제될 것 없으나, 이런 비대칭이 시쳇말로 진보적 이론의 '쇼핑' 유행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문제다. 당연히, 한국 현실에다가 이론을 착근시키고 번역하는 작업은 텍스트를 단순히 읽고 문화, 정치 비평을 하는데만 있지 않다. 이런 건 그런 것에 재능있는 일부 사람들이 하면 된다. 내가 볼 때 좀더 유의미하고 필요한 것은, 어떠한 작업 현장에서든, 자신의 연구 프로그램과 대상을 가지고, 그것이 사소할 지언정, 자신의 명제를 지속적으로 논증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은 단순히 '이론'만 가지고 되지는 않는다. 바라건대, 인문학도들이, 그리고 인문학에 경도된 사람들이, 구름 위 이론을 거쳐 현실로 내려왔으면 좋겠다. 제발, 미천한 우리들과 같이 놀아 주시는 광영을 베풀어 주시길!

 

#3. 어제 봤던, 좀 웃긴 글의 한 구절, "이 현란한 텍스트는 적잖이 불편하다. 고급스런 말재간의 쇼 같다는 기분도 들고, 아 요즘은 이렇게 말해야 먹히는구나 하는 생각도 나고, 독서카드를 잘 만들면 아마 이런 글을 잘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실용적인 교훈도 익힌다." 출처는 밝히지 않겠으나, 나도 현장노트나 수첩말고, 독서카드나 하나 만들까?쩝. 

 

#4. 대체 한 달에 한 번 꼴로 신문을 훔쳐가는 이는 누굴까? 재미난 기사가 있어서 가져 간 건 아닐테고. 잡을 수 있을까? -- 이틀 연속으로 신문이 없다. 이 기회에 한xx신문을 끊고 경x신문으로 갈아타야 할 듯. 아니면, 아이패드나 건희패드를 경품으로 주는 날까지 아예 끊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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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15:40 2010/11/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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