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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3학년 아이의 시험과 ‘아빠의 버럭’

초등3학년 아이의 시험과 ‘아빠의 버럭’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 녀석이, 깨진 송판을 들고 와서는 자랑을 한다. 태권도 학원을 다닌지 한달 정도 됐는데, 자기가 격파를 한 것이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송판에는 빨간 매직으로 ‘아빠의 버럭’ 이란 글자가 써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아이 녀석이 슬그머니 꼬리를 빼려 한다. 다시 물으니, 아이녀석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관장선생님께서 가장 혼내주고 싶은 것을 송판에 적어놓으라 했다는 것이다.


아이녀석의 대답을 듣고 나서는 되레, 내가 무안해진다. 사실 나는 아이녀석에게 ‘버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를 종종 낸 편이다. 매번 다짐하면서도 사실, 잘 고쳐지진 않는다. 다시, 최근에 내가 아이녀석에게 ‘버럭’ 한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지난주에, 아이는 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을 봤다. 시험을 이틀 앞둔 날, 아이 엄마는 EBS 문제집을 한권 사들고 와서는 주말동안에 아이와 시험문제를 풀어보라 했다. 시험문제집에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그리고 영어등 전체 8회 정도의 기출문제, 유형문제등이 실려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아이에게 벌써부터 이래야 되나 싶긴 했지만, 아이엄마의 눈치가 있기에 주말동안에 아이녀석을 붙잡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험문제를 반복해서 풀수록 계속해서 점수가 떨어진다. 나중에는 너무 쉬운 문제조차도 틀린다. 첫 번째 틀린 문제에 대해선 같이 교과서도 보고 충분히 설명해줬는데, 도무지 개선이 안된다.


아이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강제로 문제집을 풀게하는 것에 대해서 반항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버럭’.


그러나, 토요일을 그렇게 지나고 나서 일요일날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문제를 반복적으로 푼다해서 아이의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이 문제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문제를 풀라고 하니 실증이 났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 아빠와 하는 공부가 재미가 있을리 있겠는가! 나머지 문제집을 다 풀어놓으라고 엄포를 놓고 출근한 아이 엄마.


무시하기로 했다. 아이 녀석에게 밖에 나가서 놀자고 했다. 그리고, 엄마 오기 전까지 실컷 놀다오라고 했다. 그리고, 실컷 논다온 아이에게 교과서만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맘껏 뛰놀고 여러 가지를 눈으로 보고 촉감으로 익힐 그 나이. 우리 어른들이 시험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짜증나게 만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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