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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허경영’만 외쳐볼래!
말이란 것이 정말 무섭다. 한입 건너고 두입 건너면, 엉뚱한 말로 변색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해의 원인이 되고 상처가 된다. 상처가 된 뒤의 말은, 수습하기도 어렵다. 위로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두고두고 상처와 감정의 골로 남는다. 이때는 약도 없다. 오로지 시간이 흘러 망각을 기약할 수밖에.
그래서 말은 무섭다. 그런데, 이 무서운 말들 중에 사람들이 가볍이 웃어버리고 가는 말이 있다. 아니, 신경조차 주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하얀 거짓말’의 주인공, ‘허본좌 허경영’의 말이다. ‘공중부양’을 하고, ‘우주와 소통’을 하고, ‘4차원의 음악’을 하고, ‘IQ 300'을 말해도 사람들은 웃어준다.
허튼 사람으로 치부하기는 커녕, 엔터테인드먼트로 받아 들여 웃는다. 함께 콘서트장에 몰려 ‘허경영’을 외친다. 이 시대, 허경영의 ‘하얀 거짓말’은 웃음의 요소다.
정치인들처럼 말을 많이 쏟아내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나 선거철만 되면 ‘없던 지하철도 생기고’, 1조원대의 천문학적 공약들이 후보자의 말을 빌어 쏟아진다. 유권자들은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말들을 아예 공약(空約)이라고 단정한다. 애초부터 거짓말을 쏟아내는 사람들로 규정지은 것이다. 더 나아가, 쓰레기더미로 치부하는 유권자들도 있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알면서도 이들의 거짓말에 속아준다. 더불어, 속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계속해서 거짓말들을 쏟아낸다. 돌고 도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거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작은 단위인 기초의회 선거도 그렇고, 하다못해 제일 큰 선거일 대통령 선거도 그렇다. 돈 들어가는게 아니니,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온갖 말의 성찬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나면 말을 바꾼다.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내일이면,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그들이 쏟아낸 말들을 두고, 유권자들은 하나의 선택을 해야된다. 어쩔수 없이 주어진 네모표안에서 선택을 해야한다. 그래서다.
그들이 쏟아낸 말들에 대해서, 더 너아가 그들 집단이 쏟아낸 말들에 대해서 곱씹어 보아야 한다. 농민은 농민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서민은 서민의 입장에서, 지역민은 지역민의 입장에서 돌아보야 한다.
그렇게 무겁게 한표를 던져야 한다. ‘허경영’을 외쳐볼 요량이 아니라면, 무겁게 투표장에 입장하자!
지주와 마름, 소작농
뉴스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나온다. 그 낯익은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지게차에 매달린 1톤이 넘는 대형 쌀포대 밑을 낫으로 그었다. 그리고, 나락은 아스팔트 바닥에 한없이 쏟아지고, 그 위로 지나가던 차들이 나락을 짓이기고 지나간다.
이것이, 현재 농심이다. 1만원 이상 떨어진 벼 수매가에 갈갈이 찢어진 농심의 현주소. 그나마도 추곡수매물량도 전년에 비해 줄었다. 이래저래 울상이다.
지난주, 한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한 기자는, 이런 방식의 시위는 농심(農心)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본디 우리 이땅의 농심은 농작물을 상품으로 재배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행위로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상품을 대하듯, 스스로 농심을 깍아내리는 시위를 하냐는 핀잔이였다.
일면, 그럴듯 해 보인다. 그런데, 어제 뉴스화면에 낫으로 벼포대를 그었던 그 낯익은 그니. 오히려 그s니야 말로, 그런 농심(農心)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별로 관계도 없는 내게, 항상 단호박이며 호박이며 스스로 키운 농작물을 보내주던 그니. 부자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좋은 유기농 먹거리를 먹을수 있어야 한다던 그니였다.
예전, 한미FTA 반대 운동을 하다 수배되었을 당시, 천막에서 만났던 그니는 어떤 음식도 남기는 경우가 없언던 그니.
오죽하면, 그런 그니가 나락을 아스팔트 위에 버리게 되었을까. 그 심정은 어땠을까!
황금들판, 황금들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황금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가 아니였으리라. 몇십년전만 해도,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속에서 탐욕과 수탈의 의미로 다가왔을 터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황금들녁은 농약값, 비료값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가질수 없는 황금이리라.
가을은 깊어간다. 만산홍엽도 이제, 잎사귀를 털어낼 터이다. 그리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그 황량의 뒤안길로 접어들 터이다.
아무도, 보듬어주는 이가 없다. 4대강 사업에 고삐 풀린 혈세는 있어도, 농민들 어루만지는 혈세는 없다. 그리고, 이 4대강 사업으로 농토를 빼앗기는 무수히 많은 농민들은 내년 봄, 피토하는 아우성을 칠 것은 뻔한 일. 아이들 무료급식 사업을 많이 진행했다며 교사를 징계하는 마름은 많아도, 이 아이들의 점심을 위해 혈세를 쏟자는 정부는 없다.
일제치하는 벗어났어도, 지주와 마름, 소작농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된다.
투쟁 조끼
한달에 한번 모이는 충청타임즈 독자권익위원회. 이 자리는 생각보다 정겹다. 그리고 날선 자리다. 모인 자리에서 색(色)이 확연히 구분되는 대척점이 있다. 하나의 대척점은 본인이고, 또 하나의 대척점은 오수희 충북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다. 오회장의 색은 ‘빨주노초파남보’의 화려함이고 본인은 검정색이거나 혹은 곤색의 ‘조끼’이다. 오회장의 색은 긍정이고, 나는 부정이다.
어느날인가, 이 자리에서 오회장은 나에게, 말했다. ‘왜, 민주노총은 맨날 조끼만 입어. 칙칙하잖아. 그거 안입으면 안돼. 보기 좋게 입어. 그러면 더 쉽게 다가오잖아’
이른바 색깔론이다. 물론, 이 색깔론이 나에게 먼저 던져진건 아니다. 충청타임즈에 먼저 던져졌다. 오수희 회장은 보기좋은 신문을 강조하셨다. 색(色)을 강조하셨다.
사실 속으론 크게 공감했다. 속으로 그럴진대, 겉으로 제대로 반격이 나올리 없다. 그냥 웃었다.
사실, 노동운동이 공장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요즘같이, 정권과 보수언론이 집중포화를 퍼 부을 때면, 느껴지는 고립감은 태평양의 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무원도 월급쟁이다. 월급쟁이인 공무원은 당연히 노동자다. 그런, 공무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실을 두고, 온갖 구실을 다 붙여, 나라가 절단날것처럼 호들갑 떠는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그 보수언론의 행태를 보면 ‘고립감’이 아니라,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조끼는 이시대, 노동운동의 징표이자 상징이다. 그러나 한편, 나에겐 부담이기도 하다. 안에 있는 사람에겐 넘어가선 안될, 그리고 밖에 있는 사람에겐 들어오기에 장벽같은 경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젠 버겁다. 이 경계선이 분단의 휴전선처럼 질곡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어찌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장벽을 스스로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의 울타리. 조끼. 차이를 인정 하지 않는 경직된 구조. 원칙과 현실속에서 원칙만을 고수하는 구조.
촛불 소녀의 발람함과 재치가 부담감없이 노동운동내로 들어오고, 실업에 저항하는 프랑스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수십만 행렬이 자유로이 노동운동내로 들어올수 있는 이런 편안하고 경직되지 않은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상상과 기획이 노동운동에서 가능하기를!
깨지고, 또 깨져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경험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때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도록 사람들을 모으고 설득하는 일도 한다.
그런데, 최근 2년정도를 돌이켜 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나와 인연이 맺어진 노동조합, 그리고 사람들. 처음 목적한 바를 이룬 곳이 거의 없다. 거의 대다수가 그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노동조합이 해산되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 노동운동의 ‘운전면허’조차 의심하게 된다.
자동차 정비일을 20년 가까이 했다는 분과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탄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공이 깊어지고 기술적인 완성도가 커지는 그 앞에서 상대적으로 비교되어지는 나.
노동운동과 그 언저리에서 어언 15년 정도를 함께 했는데, 맨날 그 자리다. 소주한잔에 2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조합원 6명으로 노조를 결성했다가, 과거에 회사 물품을 몰래 내다팔았던 위원장의 전력 때문에 노조해산과 위원장의 사법처리를 맞바꾼 사업장. 그런데도, 결국 위원장은 구속되고 나머지 5명은 회사를 떠났다.
전체직원 60명에 30명으로 노조를 결성했던 모 환경폐기물 사업장. 조폭까지 동원된 회사의 압박에 조합원수는 11명만 남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약간의 위로금에 모두가 회사를 떠났다.
조합원 10명 내외의 사회복지시설 3곳. 모두가 1년 단위 계약직이였던 이 곳에서는 해고도 아니고, 계약해지, 혹은 계약만료라는 구실에 사업장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노동조합은 없어졌다.
충주에 있던 모 사회복지시설. 시설폐쇄라는 사업주의 고귀한 ‘고유권한’이라는 철옹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노조는 해산되었다.
어디 이뿐이랴! 다 옮겨 적지 못한 곳이 대여섯군데 더 있다.
벼룩도 낮짝이 있다고, 억지로라도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이 사업장을 자세히 보니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규모가 영세하다는 것이다. 거의 대다수가 50인 이하 사업장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규모만 작으랴! 다들 최저임금에 기반한 취약한 노동자들이고,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다.
그래서 더 힘들다. 조직되기도 힘들고, 사업주는 지불능력이 적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고 법의 보호도 외면된다.
애써, 위안을 삼는다. 앞으로 더 깨지고, 더 힘들어져도 이런,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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