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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열린 정보정책을 위하여

열린 정보정책을 위하여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한때 우리 사회 현실을 논하면서 사회과학계에 '종속이론'이란 말이 풍미한 적이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거대 자본이 자금 원조, 기술 전수, 자본 시장 개입 등 경제적 유인을 통해 제 3세 계 국가들을 종속형 저발전 경제의 나락에 영원히 가둔다는 중심-주변부의 이중 논리였다. 반 대로 선진국들은 제 3세계가 자신의 떡고물을 먹다보면 개혁이 일고 그것이 확산되면 발전이 온다는 '개혁-확산론'이나 '발전이론'에 대한 신화를 퍼뜨렸다. 하지만, 이 둘 다 우리 사회 현실 을 보는 눈에서 일면만을 과장해 우리에겐 잘 맞지 않은 이론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산업 경제에서 바야흐로 정보 입국에 접어들었다고 아우성치는 오늘 전설 속에 내려오는 '종 속'의 화두를 다시 따져봐야할 사정이 생겼다. 딱딱한(hard) 기술에서 연성의 말랑말랑한(soft) 기술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선진국에 의한 정보 독식과 북-남간 정보 불균형이 큰 문제로 떠오 르고 있다. 특히 '심리적 독점'(psychological monopolies)으로 먹고 사는 정보 독점은 상대국의 종속을 영구화하는 경향 때문에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한번 인이 배기면 중독이 번져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현대의 기술 종속이다. 마땅히 다른 기술적 선택의 대안이 없는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현대 독점이 치명적인 연유는 이른바 상대의 중 독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원도우, 워드, 익스플로러 등 하나의 소프트 '제국'에 거의 모든 정부, 공공기 관, 학교 등의 소프트웨어들이 구속되는 현실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종속 현상이다. 신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보 중독의 니코틴을 제공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호황을 누린다. 중독 에 의한 독점 효과는 좀처럼 기우는 법이 없다. 소프트웨어 비용 지불을 임의로 전기료 징수처 럼 정기적 가입 모델로 바꾸고나서 엠에스 제국은 앉아서 수십억 달러를 정기적으로 챙기는 잇 속을 얻었다. 반면 정보 종속의 굴레에 개발국들 대부분이 더욱 참담한 정보빈국의 지위로 낙 하하고 있다. 산업 시대보다 더 무서운 지적 재산권의 방벽은 선진국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나마 받아먹 으며 나름대로 성장의 기회를 찾는 시도마저 사그리 말려버린다. 그래도 서유럽의 일부 국가들 에서는 정보 후발국에 숨쉴 공간을 틔여주려면 좀 더 느슨한 예외적인 국제 저작권 적용이 필 요하다는 양심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국가 정보정책의 백년대계란 면에서 더 이상 소수 독점 기업에 의한 일국의 정보 독점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는 위기론도 등장한다. 이제 정부가 나서 소프트웨어 시장 경쟁의 기초를 회복해야한다는 각국 정부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드세다. 경쟁 시장의 회복을 위해서는 지금의 '닫힌' 소프트웨어 독점에 가장 큰 대항력인 리눅스(Linux) 운 영체제 등 '열린소스'(open-source) 스프트웨어의 정책적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제까지 정보정책 설계에 열린소스 소프트웨어를 적극 도입하려는 국가로 중국, 영국, 프랑 스,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25개국이 나서고 있다. 보안 능력, 안전성, 경제적 비용 등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열린소스 계열의 프로그램들이 이들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개발, 지원 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정보 독점에 반대하여 중앙 부처뿐만 아니라 하급 단위의 공공 기관들 까지 열린소스 프로그램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페루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열린 소스의 정책적 입안을 주도해 영웅으로 떠올랐다. '에드가 빌라누에바'(Edgar Villanueva)라는 이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구내 컴퓨터 소프트웨어 구입의 재정난으로 고민하다 열린소스 프로그 램을 대안으로 보고 정책 입안에까지 이른 경우다. 그는 페루 보수 정치권의 반대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페루 지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위해 정책적 차원에서 열린소스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자유시장론을 폈다. 오직 한마리의 사자(lion)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나머 지를 쥐처럼 부리는 불공정 경쟁의 독점체, 즉 '레오폴리'(Leo-polies)가 페루의 건전한 시장에 독약이라는 그의 평가가 먼나라 얘기같지 않다.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의 개방은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자유롭게 이용하고 수정이 가능한 경 쟁과 비배제성의 논리를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상업적 소프트웨어는 일반인의 코드 접근의 기회를 박탈한다. 프로그램 갱신은 업자의 몫이고 이를 쓰는 사람은 구입과 갱신 비용을 지불 하며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경쟁이 없으니 가격 인상이나 불공정 행위나 요구에 이용자는 수 동적 지위로 남는다. 열린소스를 수용한 국가들은 이같은 레오폴리의 독식을 미리 내다봤다. 그 저 수수 방관하다간 소프트웨어 종속에 이를 수 있다는 감이 섰던 것이다. 열린 소스를 위한 70여개에 달하는 입법안, 정부 보고서, 정책 연구는 정보 종속을 막으려는 이들 정부들이 시도 한 대안찾기의 증거다. 또한 리눅스로 대표되는 열린소스 운동이 소수 마니아들의 전리품처럼 여겨지던 컬트의 시대도 이제 갔다는 증거다. 달리 보면 열린소스 외에 레오폴리에 필적할 대 안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보 독점을 냉혹한 거대 기업들의 신자유주의 모델로 본다면, 열린소스는 이를 제어하는 최 소한의 사회복지 모델과 같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국민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사회복지 정책처럼 열린소스는 정부가 당연히 고려해야할 정보정책의 필수 사안이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의 룰을 회복하고 한 국가내 정보기술의 자립적 발전을 위해서도 정부가 나서서 열린 소스 운동을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이를 정책적으로 수용한 서유럽이나 남미 국 가들의 앞선 경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몇 년전부터 우리에게도 열린소스 운동의 정책적 도입을 위해 공청회나 입법화 등의 움직임 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흐름이 꾸물거리거나 그저 형식적 의제로 그치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정부가 나서 열린소스에 대한 민간의 흐름을 국가 정보 정책의 필수 의제로 껴안을 필요가 있 다. 정부 부처와 각급 기관들부터 독점 정보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리눅스 운영체제 등 소 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쓸 수 있는 경쟁적 시장 환경을 마련하고, 최대한 소프트웨어 코드간 소통이 가능하도록 호환성있는 시스템을 장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성을 지향 하는 대안적 소프트웨어의 개발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가올 우리 사회에서 '종속'과 같 은 빗바랜 용어를 또 한번 유행시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e세상, 20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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