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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영화 속 로봇의 진화, 그리고 로봇들의 반란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11


영화 속 로봇의 진화, 그리고 로봇들의 반란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몇 년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일본의 '아시모'(ASIMO)에 맞먹는 인간형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를 보면, 인간의 동작, 사고와 판단 능력을 기계 속에 심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끊임없이 경주되고 있는 듯싶다. 제 삶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SF영화 속에서도 그 줄거리를 이끄는데 로봇은 줄곧 중요한 역할을 점해왔다.

이번 호는 70년대까지 영화 속에 등장했던 로봇의 모습에 대한 얘기다. 영화에서는 저급의 단순 동작을 반복하고 반응하는 기계에서부터 인간의 외양에 감정까지 갖춘 사이보그 형식까지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기계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얼마나 근접하는가의 정도에 따라 로봇,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로봇, 사이보그, 휴마노이드 등으로 구분되거나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 로봇의 이미지 또한 그 때 그 때마다 인간의 충복으로써, 혹은 권력의 수행자로써, 혹은 암울한 미래의 상징으로써 변해왔다.

 



권력의 이미지거나 인간의 충복이거나

아마도 영화속 로봇의 최초 모습은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퓨쳐라'(futura)일 것이다. 미친 과학자 로트왕(Rotwang)에 의해 만들어진 이 로봇은 기계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마리아의 정념을 불어넣어 인간과 기계 조합을 시도한 초기 사이보그 형태다. 애초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 조 프레데르센(Joh Fredersen)의 죽은 부인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퓨쳐라는 지하 노동자들을 선동해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녀로 등장한다. 권력의 하수인과 같은 로봇의 모습은 <THX1138 (1971)>의 사이보그형 안드로이드 경찰들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의 폭력 수행자로, 은색의 금속 얼굴에 경찰복을 입고 손에 긴 진압용 전자 곤봉을 든 이들은 마치 권력의 냉혈한 하수인처럼 행동한다. 비록 외계인이 만들어낸 로봇이긴 하나, <지구를 조준하라 Target Earth (1954)>에 등장하는 깡통 로봇 또한 레이저 빔을 내뿜으며 닥치는대로 인류를 말살하는 이름모를 외계 종족의 하수인으로 등장한다.

        그 정반대의 경우로, <금단의 행성 Forbidden Planet (1956)>에 등장하는 로봇 로비(Robby the Robot)는 당시 미국 아동들의 장난감 문화를 바꿀만큼 인간에게 애완견과 같은 존재로 로봇의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지구가 멈춰선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에서 외계 행성의 평화사절단으로 온 클라투(Klaatu)의 충복 로봇 '고르트'(Gort)그 충성심에 있어서 가히 따를 로봇이 없다. 비록 고르트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긴 하나,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주인을 살리거나 주인의 말에 복종하는 로봇 이미지를 또 한번 강하게 남겼다.

        인간을 따르고 인간 사회에 우호적인 로봇의 모습은 <침묵의 질주 Silent Running (1971)>에서 두드러진다. 영화의 무대는 미래 어느 우주 화물선이다. 생태계 파괴로 지구는 거의 모든 환경이 괴멸한 상태다. 주인공 프리맨 로웰(Freeman Lowell)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친환경주의자다. 우주선에 자연의 온실을 만들어 식물을 재배한다. 하지만, 우주선 본부는 화물 수송의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추장스런 온실들 모두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극도로 분노한 로웰은 본부 명령을 수행하는 한 동료 승무원과 몸싸움 끝에 사고로 그를 죽이게 되고, 내친 김에 나머지 온실 폭파 작업을 수행하던 승무원 둘까지 폭발물로 날려보낸다. 화물선에 홀로 남은 그는 드론(Drone)이라 불리는 화물수리용 로봇들을 리프로그래밍해 충직한 하인처럼 부리거나 혹은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프리맨은 로봇 드론 원을 '듀이'(Dewey), 드론 투를 '휴이'(Huey)라는 이름을 붙힌다. 그는 로봇들과 카드 게임도 같이 하고, 땅을 파 나무를 심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본부 우주선이 자신의 화물선에 접근하면서 동료 승무원을 죽였다는 자괴감과 온실을 살려야겠다는 심정에 프리맨은 극단의 선택을 한다. 듀이에게 그 온실칸을 맡긴 채 우주 저 멀리로 쏘아보내고, 그는 사고로 다친 휴이와 함께 화물선에 남아 스스로 자폭한다. 배경 음악에 70년대 히피운동에 앞장섰던 조엔 바에즈(Joan Baez)의 환경친화적 음악이 은은히 깔린다.

        다른 어떤 영화보 <침묵의 질주>는 로봇에 대한 인상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프리맨이 운전 실수로 다치게 한 휴이에 느끼는 인간적 슬픔이나 단지 기계에 불과한 듀이에게 생태계의 상징인 온실을 맡기는 장면 등은 인간의 충복으로서 로봇의 이미지를 넘어서 자연과 공생하는 기계의 미래까지도 점친다.    

 


위기의 징후로서 로봇들의 반란

반대로 인간에게 통제 불가능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로봇들의 미래 모습이 크게 눈에 띈다. 영화 <웨스트월드 Westworld (1973)>에선 로봇 오류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다룬다. 인간들의 유흥을 위해 서부 시대, 고대 로마, 중세의 세가지 주제로 델로스(Delos)라는 가상의 테마공원이 만들어지고, 실제 인간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들이 각각의 테마의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원된다. 하루 체험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한 관람객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현실감을 느끼지만, 로봇들은 점점 오류를 보이며 인간들을 해치기 시작한다. 중세 로봇 기사가 관람객을 살해하고, 로봇 뱀이 사람을 물어 죽이고, 서부의 악당 로봇(율 브린너역)이 체험 관객에 대고 총질을 해댄다. 유희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델로스엔 살인극이 벌어지고 통제 불가능의 아노미 상태에 이른다

       

B급 로봇 영화의 결정판, <휴마노이드의 탄생 The Creation of the Humanoids (1962)>은 핵 폭발 이후 92%의 인간이 멸종되고 도시 건설과 생산력 증대를 위해 로봇들이 인간보다 문명의 핵심에 서는 미래 사회에 대한 얘기다. '클릭커'(the Clicker)라 불리는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대거 활동하고, 이들이 직접 새로운 종류의 로봇 생산까지 책임진다. 로봇의 진화가 계속되면서, 당시 로봇의 핵심 모델이었던 R-34는 방사능 시대에 살아남을 후대의 생명체로 나약한 인간들이 부적합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들 로봇은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지니고, 인간의 기억을 갖고, 살인에 대한 충동까지 느끼는 불법 개조 모델, 휴마노이드 R-96을 만들어 모반을 꾀한다. 인간들이 로봇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신체질서국'(The Order of Flesh and Blood)의 몇몇 관리마저 비밀리에 R-96로 개조된다. R-96의 특징은 죽기 4시간 전의 인간 신체와 기억을 필요로 한다. 마치 외계인의 증식 방법처럼, 뇌 기억을 고스란히 로봇에 옮기고 죽은 인간의 거죽을 씌워 원래 인간을 대체한다. 휴마노이드들은 자신들에게 단지 한가지 빠진 약점인 재생산(출산)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또 다른 진화된 모델 R-100을 만들자는데 일치를 보고 영화의 막을 내린다.

        <악마의 씨 Demon Seed (1977)>에 이르면, 로봇 반란의 위기는 공포로 돌변한다. 또한 휴마노이드 모델 R-100의 실제 모습도 이 영화에선 볼 수 있다. 해리스(Alex Harris) 박사는 사업가들의 수주를 받아 '프로테우스 포' (Proteus 4)라는 마치 유기체처럼 살아있는 뇌덩어리의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프로테우스는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통제 불능의 무서운 괴물로 돌변한다. 프로테우스는 자신이 갇혀있는 터미널 박스를 나와 걸어다니는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의 숙주는 해리스 박사의 아내 수잔이 된다. 연구소와 연결된 수잔의 집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로봇, 컴퓨터 터미널, 자동 장치들은 프로테우스의 통제아래 들어간다. 수잔은 외부로 나가는 모든 통로가 봉쇄되고, 심지어 그에 저항하려다 로봇에 이끌려 포박까지 당한다. 결국 프로테우스가 강제로 그녀의 자궁으로부터 채취한 세포와 자신의 인공 유전자를 재배열하여 스스로 완벽한 사이보그 아기를 낳으려 한다. 한편 연구소에선 프로젝트를 지원했던 사업가들이 프로테우스가 지닌 위험성과 그 상업적 가치를 못미더워 이를 폐쇄하는 결정에 이른다. 전원을 잃기 전, 프로테우스는 수잔의 자궁에 '악마의 씨'를 밀어넣고, 한 달여만에 그녀의 배 안에서 로봇 아이를 속성 성장시킨다. 그 악마의 생명은 프로테우스가 만든 정육면체의 금속 인큐베이터에서 5일간의 숙성을 거쳐 태어난다. 수잔은 그 인큐베이터의 괴물을 죽이려 시도하나 괴물의 금속 비늘을 벗겨내자 병으로 죽었던 자신의 딸과 똑같은 아이의 얼굴과 피부를 본다. 영화는 음산하게  그 딸아이가 프로테우스의 목소리로 "나는 다시 살아났어"라 외치며 끝난다.

        

    세 영화의 로봇관은 비관론이라기보다는 거의 심각한 공포 사회의 모습에 가깝다. 로봇이 인간을 물고,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을 숙주로 삼는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인류 역사이래 기술의 진보에 열광하는 자들에게 그의 오류와 위협을 감안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의 끔찍했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전 지진으로 일본에서 가장 큰 핵발전소의 핵폐기물이 그 근해에 대량 유출된 적이 있다. 강도 높은 지진에 대한 예측 오류로 인한 인재라 한다. 앞으로 그 핵폐기물이 물속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과학기술이 안전하다는 믿음은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인간의 지적 한계 능력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미래 사회 로봇의 반란이 그리 상상만은 아니라 여겨지는 까닭은 아마도 알면 알수록 끊임없이 통제 불가능의 오류들로 인간을 괴롭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적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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