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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멋진 신천지 달나라 여행이란 더 이상 없다

빛바랜 SF영화로 현실 읽기 7

 

멋진 신천지 달나라 여행이란 더 이상 없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이젠 아무도 밤하늘을 비추는 달을 보면서 토끼들이 방아찧는 모습을 떠올리진 않는다. 구소련이 최초 스푸투니크Спутник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때가 지금으로부터 딱 50여년전 일이고, 미국에서 이에 황급히 그 다음 해에 항공우주국NASA을 설치해 다시금 공을 들여 인류 최초 유인 우주선을 달나라에 보낸 것이 1969년의 일이다. 그러고보니 인간이 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한 지 불과 3, 40년만이 흘렀다. 그 전에만 해도 지구 이외의 삶의 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던 인류에게, 달 착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스카이콩콩'을 뛰듯 슬로우 모션으로 달 표면을 무중력 상태로 널뛰듯 다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에 우리 모두가 경이롭게 바라본 적이 있었다. 달은 새롭게 인간 문명을 뿌리내릴 수 있는 새로운 신천지로 멋지게 등장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달나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식민지의 효용성이 사라지고 냉전이 수그러지면서 그만큼 달나라의 매력도 잦아들었다. 이번 호는 근대 초기 SF영화 속에서 인간들이 지구 밖의 공간으로써 달나라에 지닌 동경과 상상,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고, 오늘의 새로운 디지털 공간 속에서 어떻게 이를 재음미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까 한다.      

 

달나라 금나라

달나라 얘기를 꺼내려면, 먼저 두 편의 오래된 고전을 넘고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조르주 멜리에스George Méliès가 만든 <달나라여행 Le Voyage dans la Lune (1902)>,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일 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이 제작한 <달의 여인Frau im Mond (1929)>이다.

        멜리에스의 <달나라여행>은 그가 남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달나라여행> 11분짜리 단편 무성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이 작은 필름에는 1900년대초 인간이 달에 대해 가진 여러 상상력들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달 표면에 인간의 우주선이 내리꽂히는 장면은 지금 보더라도 특수효과 측면에서 손색이 없다. 멜리에스의 달나라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놀고, 마치 무릉도원이나 낯선 이국의 정글과 같은 곳들이 나오고, 그 속에 야만의 달나라 원주민들이 달에 착륙한 과학자들을 뒤쫓기도 한다.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달에 사는 상상과 현실의 생물들로 잘 재현되고 있다. 멜리에스의 상상력 속의 달나라 풍경은, 지구와 비슷하나 인간 문명의 접촉이 없는 야만 상태의 이국적 상태였다.

        프리츠 랑의 <달의 여인>에 오면 달나라는 좀 더 과학의 눈에 비춰진 모습으로 성장한다. 1930년대로 접어들면 서구열강들의 식민지화 바람이 거세게 불던 차에, 달나라에 대한 상상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한다. 이 영화에서 종종 언급되는 '달나라 노다지론Moon Gold Theory'은 당시 식민지 정복 바람과 맞물려있다. 마치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마냥 달나라는 서유럽 제국들의 새로운 노다지의 원천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선 대다수의 자본가들이 달나라 노다지론에 코웃음쳤지만, 일부 재빠른 거대 자본가들의 연합은 이것이 새로운 이윤원을 보장해 줄 것으로 간파했다. 마침 달나라 로켓을 개발하고 있던 볼프 헬리우스Wolf Helius가 이들의 눈에 띄어, 산업 자본가들은 그를 위협해 달나라 탐사를 시도한다. 6명의 다양한 구성원들로 채워진 로켓우주선 '자유Friede'호는 달에 도착해 정말로 노다지를 발견한다. 금맥을 발견하고 탐욕에 몇 명은 죽고 서로의 총질에 산소통을 잃은 승무원들은, 주인공 헬리우스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 프리더를 남긴 채 지구로 귀환한다.         

        시대의 한계인듯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기술적으로 서툴다. 우주복 복장도 없이 다들 제각각의 옷을 걸치고 등장한다. 무중력 상태를 표현하기 힘들어서인지, 승무원들이 옮겨다니도록 만든 우주선 내부 천장과 바닥의 손잡이와 발목끈이 우습다. 달에선 공기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한 승무원이 성냥불을 여러번 그어대는 장면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성냥불이 살아나자 달표면에선 승무원들이 우주복없이 걸어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의 여인>은 설득력있게 지구에서 달까지의 로켓발사의 논리를 꽤 그럴듯하게 관객에게 설득시킨다. 물론 감독인 랑이 이렇게 잘 짜여진 영화를 만든 데에는 당시 물리학자였던 헤르만 오베르트Hermann Oberth의 공이 크다. 오베르트는 현대 로켓공학과 우주비행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랑의 기술 자문을 맡음으로써 영화의 현실감이 크게 향상되었던 것이다.1)   

        

냉전 시대의 달나라

랑의 영화 이래로 달을 소재로 했던 SF영화는 거의 20여년간 침묵을 지켰었다. 1950년이 되어서야 그 달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미 대중문화의 장을 통해 발산한다. 앞서 얘기한대로 구소련의 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과학 진흥에 대한 일종의 강박 상태로 모리면서, 달을 비롯한 우주비행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 커진다. 이런 가운데 헐리웃 스튜디오들은 그 대표작으로 조지 팔 제작의 <달을 향하여>를 내놓는다.

        <달을 향하여>는 엄청난 자본 투자를 통해서 만든 초유의 대작이다. 게다가 달나라 탐사를 보다 현실에 기반해서 그리고 기존의 항공우주 과학에 기초해 다룸으로써, 후에 미국내 관료들에게 미 항공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하게끔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실지로 영화의 달 탐사 장면은 꽤 현실력있게 재현된다. 무중력 상태로 우주선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 자석붙힌 장화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주선 밖에서 생명줄을 놓쳐 떠다니는 동료를 구출하는 장면과 달에서 무중력 상태로 점프하면서 이동하는 모습 등은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손색없이 처리됐다. 로켓 발사 장면에선 핵에너지를 이용한 제트엔진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영화 전반부에선 2차대전 이래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핵 방사능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과 로켓 발사로 인한 오염 문제가 맞물리기도 한다.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로켓 과학자 찰스, 쎄이어 장군과 사업가 짐 셋이다. 미 연방 정부의 로켓개발 예산 삭감으로 곤경에 처한 쎄이어 장군은 후견인 짐을 설득해 자본가들로부터 추가 자금을 따오는데 성공한다. 쎄이어 장군은 달의 군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구소련을 따돌려 미국이 먼저 그 곳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자본가들을 설득한다. 이 세 명의 주인공은 군(軍)/(産)/(學) 복합체의 대표자들을 연상케 하는데, 이들 셋은 우주 프로그램을 통해 큰 이득을 보는 선도적 세력으로 묘사된다. 또 다른 재미는, 이들 3명이 또한 로켓 승무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는 로켓 연료 계산 잘못으로 달에서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들간의 돈독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모두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하나, 영화에서 빠져있는 주체는 연방 정부다. 오히려 정부는 달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데 마뜩해하고 우주 프로그램 예산마저 동결하는 부정적 대상으로 등장한다. 결과적으로 영화 <달을 향하여>에서 정부를 소외시킨 효과는 오히려 우주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상당히 긍정적인 반향을 주었다. 정부가 달 탐사를 과학기술의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한몫한 것이다.

      

신천지 달이 아닌 화성으로 간 까닭

같은 해에 만들어진 영화 <우주선 X-M Rocketship X-M> <달을 향하여>의 대규모 투자에다 해피엔딩의 스토리에 비교해보면 저예산 영화에다 영화 전개 또한 상당히 비극적이다. 이 영화는 <달을 향하여>와의 시나리오 저작권 문제로 애초 달 착륙을 의도했다 화성으로 가는 것으로 서사 구조를 고쳐써야했던 시련도 겪었다. 영화에서 승무원들이 의도치않게 이끌려간 곳은 달이 아니라 화성이다. 승무원들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들이 누리던 고도의 문명이 핵재앙으로 모두 소멸되고 야만의 종족으로 연명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화성에서 승무원들은 그 원시인들에게 2명이 살해당하고 1명의 승무원이 부상당하며 쫓겨나오고, 다시 지구로 귀환 중에 나머지 3명 또한 착륙 미숙으로 모두 몰살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전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우주선 X-M>에선 비유적으로 군사 경쟁에 의한 핵 재앙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그들이 달에 떨어지지않고 화성에 간 것은 저작권 분쟁이 그 현실적 이유였으나, 지구인들에게 핵재앙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암시로 작동한다.

         달의 모습은 그렇게 한참 낯설게 변화했다. 초기의 신과 야만이 공존하는 신천지에서 기업의 야욕이 끼어들고, 냉전의 현실이 개입하고, 핵재앙의 미래까지 점쳐지는 어둠의 공간으로 변했다. 그 당시 달에 대한 인간 상상력의 부정적 변천사를 오늘에 와서 비교해보면, 디지털 신천지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닮은꼴은, 신천지 달나라와 같은 자유의 디지털 공간에서 돈벌이와 국가 안보를 빌미로 해 권력의 감시가 늘어나고 장사치가 점거하는 공간이 되가는 현실에서 발견된다. 과거 인류가 달나라 탐사에서 핵 재앙을 감지하듯, 권력의 감시와 상업화가 판치는 사이버공간에서 우리의 미래를 하루빨리 감지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2007. 7.)

1) 듣자하니 이후 오베르트는 미국에 건너가 SF영화의 대중화 붐을 조성한 작품인 <달을 향하여 Destination Moon (1950)>에도 관여했다 한다.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면, 랑의 <달의 여인>은 히틀러가 감복하여 자주 보았던 영화였다 한다, 여기에 선보였던 로켓 우주선은 이후 2차대전 중 유럽 도시들을 초토화시키며 악명을 떨쳤던 유도로켓 브이원V-1과 브이투V-2 기술의 원조격이었다 한다. 오베르트는 히틀러밑에서 바로 그 V-2 로켓을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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