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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로 본 기계-인간 인터페이스의 진화 (extra)

인간과 기계의 물아일체 시대가 온다: SF영화로 본 기계-인간 인터페이스의 진화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어 명령을 만들어 제어한다. 프로그래밍이란 것은 바로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명령 패턴을 짜는 일에 해당한다. 일례로, 누군가 휴대폰 터치 스크린에 특수키를 눌러 관련 화면을 보는 데는 기계만이 알 수 있는 명령 수행의 코드가 이미 들어가 있다. 이렇게 인간의 언어 혹은 명령을 기계에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인간의 개별 언어를 입력란에 쳐넣으면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기계어로 바꾸어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이젠 말, 몸짓, , 신체 접촉 등도 기계가 알아듣는 시대가 되간다

        인간과 기계와의 소통 관계에 놓여진 매개물을 우리는 '인터페이스'(interface)라 부른다.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은 곧 이들 둘의 소통 관계의 진화에 다름아니다. 글보다 말이나 몸짓만으로 소통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터페이스의 질이 달라짐을 뜻한다. 결국 인터페이스의 궁극적 비전은 보다 쉽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기계와 소통하는, 아니 그 극으로 밀고가면 인간과 기계가 일체되는 모델을 만들어내는데 있지않을까 싶다. 이렇듯 인간과 기계와의 인터페이스 진화에 영향을 줬던,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상상력을 줄 수 있는 큰 진원지 중 하나로 과거 공상과학(SF) 영화들에 등장했던 기발한 인터페이스 기술들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싶다.       

 

통신 수단에 있어서 인터페이스의 응용

통신 기술이 발달해 이제는 터치스크린 기반하에 사진을 찍어 휴대폰으로 전송하고, 이것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바로 동영상을 서비스업체로부터 내려받아 보고, 모바일 인터넷을 하고, 얼굴을 보면서 통화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앞으로 그 추이가 어찌 진행될 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그 중 하나가 미래 3차원 홀로그램에 기반한 통신이 아닐까한다. 공상소설 작가 웰스 (H. G. Wells)가 소설을 쓰고 각본을 맡은 영국 영, <다가올 세상 Things to Come (1936)>에선, 누군가 대중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한다. 3차원 홀로그램은 그 자리에 없으면서도 통신 상대의 디지털 신체가 나타나 생생히 움직이며 의사를 전달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을 지칭한다. <별들의 전쟁 Star Wars> 시리즈에서도 주요 통신 수단 중에 하나로 이 기술이 종종 등장한다. <토탈 리콜 Total Recall (1990)>에서는 이 기술이 레저 학습용으로 쓰인다. 가상의 스포츠 강사를 따라 학생이 테니스의 자세를 교정하고 배우는데 홀로그램 프로그램이 훌륭한 교본 구실을 한다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진화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진화도 급속도로 이뤄진다. 문자 중심의 키보드 입력에서, 그래픽 윈도우 화면을 통해 마우스 클릭을 하다, 펜으로 정보를 흘려넣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장차 컴퓨터 인터페이스 진화의 방향 중 하나는, 디지털 공간 안에서 네트워크 설계나 정보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3차원 그래픽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전자 네트워크망을 타고 흔히 기업 내부 문서를 빼가는 해커들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영화들이 컴퓨터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3차원 인터페이스 기술의 미래를 소개했다. 일례로, <해커들 Hackers (1995)>에선 해커들의 바이러스 공격과 기업 내부 보안 담당자의 스릴넘치는 추격전을 이 3차원 기술로 실감나게 보여줬다.

        또 다른 인터페이스의 진화는 세밀해진 그래픽과 함께 성장하는, 말 중심의 명령어 인식 기술이다. 이미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78)> '(HAL) 9000'이나, <알파빌 Alphaville (1965)>에서 도시 거주자들을 세뇌시키는 무시무시한 '알파60'이나, <악마의 씨 Demon Seed (1977)>에서 인간과 자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고 싶어했던 '프로테우스(Proteus)' 등은 더 이상 키보드로 소통하던 컴퓨터들이 아니다. 이들 인공지능 컴퓨터는 인간과 말을 통해 소통하고, 심지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이를 지배하려 했던 무서운 미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어쨌든 이러한 컴퓨터들의 모습은 이미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말 중심의 명령어 인터페이스가 그 추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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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정보 조회를 위한 인터페이스의 등장

기술에는 언제나 이를 쓰는 자의 힘의 논리가 깊게 깔려있다. 보안을 위해서든, 인구의 관리를 위해서든 현대 사회는 인간 정보를 그 때 그 때 조회하고 분류하고 집적한다. 우린 이미 휴대폰으로 애인이나 바람난 남편의 위치를 찾아내고, 전자태그(RFID) 칩으로 한 인간의 소비 성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시대가 갈수록 한 인간의 신원에 대한 조회 방식은 첨단화하고 언제 어느 때든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또한 진화한다. 그러다보니 이와 관련한 기술들을 소개하는 여러 SF영화들의 미래 전망은 굉장히 우울하다.

        영화 <로건의 탈출 Logan's Run (1976)>에서 미래 첨단의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손바닥에 크리스탈 모양의 신원 확인용 칩을 부착한 채 살아간다. 이 칩의 또 다른 용도는 생명 시계의 역할이다. 칩의 빛깔이 푸른색이면 아직 청춘, 빨간색이면 서른이 다가오는 거의 죽을 때, 서른살이 지나면 이도 깜빡거리면서 '카루서'(Carrousel)라는 폐기장에서 '재생'(renewal)이란 이름하에 파괴될 때를 뜻한다. 서른에 무조건 죽어야 되는 세상에서, 도시의 인공지능 메인 컴퓨터에 의해 작동되는 이 크리스탈 칩은 개인을 옭아매는 족쇄로 기능한다. 또 다른 영화, <가타카 Gattaca (1997)>에서는 유전학적으로 우성과 열성을 선별하여 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미래를 보여준다. 예서도 개인의 유전학적 데이터를 집적하는 서버 컴퓨터는 머리카락 한올이나 피 한방울의 분석에서조차 개인의 모든 신상 정보와 연결하는 무서운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와의 한번 마주침만으로도 한 사람의 신원이 확인되기도 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에선 그 유명한 표적마케팅의 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교통카드 대신 동공을 인식하는 시스템에 각자 눈의 초점을 맞춘다. 지하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자광고판은 그 행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의 소비 성향에 맞춰 맞춤 광고를 띄운다. 동공으로 파악되는 이들의 신원은 기업들의 소비자 정보로 이용되고, 메인 컴퓨터에 입력되어 언제 어디서나 맞춤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전자 데이터가 된.

         

사이버네틱스에 의한 인간-기계의 접속

외부로부터 기계에 이르는 명령 방식의 획기적 혁명은, 아마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들을 그 신경을 통해 기계에 바로 전이하는 그러한 인터페이스 구조일 것이다. 이미 사이버네틱스 연구자인 케빈 워익(Kevin Warwick)은 신체 반응의 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칩을 자신의 팔의 신경망 안으로 이식함으로써 인간-기계 합일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에서 미래 혁명가들은 가상의 전자 공간을 들어가기 위해 목 뒤의 포트 깊숙이 연결 단자를 삽입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nenberg) 감독의 <엑시스텐츠 eXistenZ (1999)>에선, 가상현실(vrtual reality) 게임의 일종인 '엑시스텐츠'를 하기 위해, 인간 등의 척수 끝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놓은 바이오포트(bioport)에 마치 유기체같이 생긴 '포드'(pod)를 연결시킨다. 신경이 모이는 목 뒤나 귀밑, 척수, 머리의 정수 등은 특히 SF픽션의 세계에서 인간이 기계에 접속하는 모뎀의 포트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쓰거나 말하지 않아도 신경의 신호에 따라 기계가 인식하는 합성(hybrid) 인터페이스의 미래가 도래한다.

           

인터페이스의 소멸, 사이보그의 미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터페이스 기술의 궁극적 미래는 인간-기계간 인터페이스의 종말이자 완전한 합일로 볼 수 있다. 그러려면 기계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기계가 돼야 한다. 앞서 얘기한 <매트릭스> <엑시스텐츠>에서 선보인 인간-기계간 인터페이스 기술을 미래의 첨단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들을 접속하기 위해선 연결 포트가 필요하며 이 둘이 떼어짐과 동시에 서로 다른 객체로 분리돼 인간의 명령이 기계에 전이될 수 없다는 단점이 늘 있다. 언제나 인간이 생각하는 바를 기계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살아있는 제 3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단순 프로그래밍된 지능을 가진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형태보다 더 발전된 무엇이다. 최근 영화들 속에서 소위 '사이보그'(cyborg) 혹은 '휴마노이드'(Humanoid)라는 사람도 기계도 아닌, 그 둘을 합친 것 이상의 것으로 묘사되는 신종족의 등장은 곧 이를 뜻한다.

        물론 이제까지 인간의 명령어를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받아들이던 기계가 이를 걷어버리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질 때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될 지는 깊게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영화 <휴마노이드의 탄생 The Creation of the Humanoids (1962)>은 그 부정적 미래를 코믹하게 잘 그리고 있다. 가상의 핵폭발로 인류 문명의 절멸 이후 인간 사회는 기계에 지배당한다. 로봇들이 그들 스스로를 생산하고, 인간의 문명을 지배한다. 로봇들은 결국 인간을 나약한 환경 부적응자로 취급해 인간-기계가 합쳐진 제 3의 종인 '휴마노이드'를 만들어낸다. 이들 종족은 인간과 똑같은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지니며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사태에 대응한다. 만일 이들 '휴마노이드'와 같은 신종족이 우리 미래의 인간-기계 소통의 미래 현실이 된다면, 인간-기계 잡종에 대한 상상이 그리 좋지만은 아닐 게다. (200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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